작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수원역에서 희생자들을 조문한 뒤 근처 빵집에서 왼뺨대기들과 함께 모였다. '시국이 이러한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가, 내가 꺼낸 답변은 로마서 풀이하겠다는 것이었다. 톰라이트를 통해 <성서>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배운 이래, '청소년을 위한 로마서'에 대한 부담이 계속 있었고, 다석 사상을 통해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만 여겼던 바울의 개념어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4년 4월 29일을 시작으로 9월 9일까지, 로마서를 한절한절 다시 번역했고 풀이를 달았다.
해석이 힘이다. 성서 본문에 뿌리를 박고, 그것을 삶으로 끌어올려 열매맞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작심삼일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숨이 온 몸을 돌아 몸을 깨끗게 하고 영양분을 전달하듯이, 성령이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이다. 해석과 삶.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다. 텍스트를 읽어, 몸으로 쓰게 하는 것이 숨의 일이요, 그 결과물이 삶이다. 글과 삶의 일관성이 바로 숨에 있다. 나는 숨쉬는 청소년에게 희망을 걸었다. 로마서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만든 로마서 풀이를 통해,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청소년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적에, 나는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려고 동사무소며 구청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평동 어드매에 있었을때, 나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무언가 상황이 급박한데도, 나는 어찌할지 바를 몰라 여기로 뛰었다 다시 길을 돌려 저기로 뛰었다를 반복하며,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는 전화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 날은 참 날이 따뜻했었는데, 그 따뜻함마저 짜증으로 치밀어 오르고, 실연당한 여자처럼 울면서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동하려고 버스를 타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니 그제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핸드폰을 꺼내 내가 써놓았던 로마서 풀이를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전혀 내가 쓴 글처럼 느껴지지 않더라. 나도 놀라서 내 글에 내가 댓글을 달아놓았다(현장은 여기).
그리고 시간이 다시 한참이 흘렀다. 로마서에 대해서 쓰자고 마음 먹은 날이 A양의 생일이었으니 그 날 이후 꼬박 1년이 지났다. 다시금 개정의 필요를 느낀다. 다른 이유 있으랴, 누군가의 힘이 되기 위해서다. 2000년 전에 쓰인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풀고 또 풀어내는 이유는 그 뿐이다. 왜 하필 로마서냐고 묻는다면, 이 글이 '역사가 뒤집힌 사건'과 붙어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작살난 그 사간의 최초 목격자들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과 공간이 많이 떨어진 글이기에, 우리가 이 글들을 이해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좋은 학자들이 많이 있고, 이해하고자 마음 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다. 이 일을 돕기 위해 풀이를 다시 고쳐 쓴다. 다만 풀다가 너무 방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서 전체 개요를 제시하고, 로마서 워드리스트를 만들 생각이다. 다시 시작한다. 내년에 또 다시 시작할지도 모르지. 끝까지 새로울 수 있도록 갈고 닦아나가겠다. 지켜보시라. 우리 같이 열매 맺기를.
색인
색인 작업은 라틴어를 기준으로 만들 것이다. 벌게이트판 단어들을 표제어로 사용하되, 옆에는 희랍어 원문 단어와, 우리말로 번역한 단어를 나란히 배열할 것이다.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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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라이트, New 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p.3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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