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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로마서의 마지막 네번째 토막에 이르렀습니다. 1~11장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다른 그림을 그렸지만, 그 그림은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졌고, 메시아 예수와 성령으로 새롭게 된 토라 이야기, 즉 인류 구원의 거대한 대서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느슨해지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앎이라면, 이제는 삶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토라 이야기의 일원이 된 사람들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서 이제 서술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해왔던대로, 길을 잃지 않도록 전체 구성을 먼저 확인해봅시다.
A. 12:1,2
B. 12:3~13
C. 12:14~21
C'. 13:1~7
B'. 13:8~10
A'. 13:11~14
D. 14:1~15:13
A는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놓여있는지 확인하게 합니다.("현시대"와 "오는 시대"라는 표현으로) 그리고 이야기 위에 놓여 있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며, 우리가 어떤 예배를 해야 하는지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A'도 "낮"과 "밤"에 대해 언급하며, A에서 말했던 "오는 시대"와 "현 시대"와 짝을 이루고, "메시아를 입는"이라는 표현 속에서, A의 "예배"와 짝을 이룹니다.
B부터 B'에 이르는 내용은 이 오는 시대와 현 시대의 시간 이해 안에서,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말하고 있으며, C, C'에 이르러서는 '공동체와 세상의 접경지역'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D부터는 로마 공동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집니다.
로마서 12:1,2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의 갸륵히 여기심으로 여러분을 가까이서 부르고 있어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세요. 이러한 제사가 이치(말씀)에 맞는 여러분의 예배입니다. 이 '현시대'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마세요. 오직 생각을 위로부터 새롭게 함으로 변신 되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해보고 인정(입증)하는데 이르세요. 그 뜻은 하나님을 닮아 좋고, 받아들일만 하며, 온전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1장을 읽어왔던 이들을 이렇게 호칭합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앞에서도 계속 이렇게 불렀지만, 이제 이렇게 부르는 것이 새삼 다르게 들릴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는지 분명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그래서"로 시작하는데, 이 "그래서"는 앞에 있는 로마서 11장의 결론을 받는 "그래서"입니다. "하나님의 갸륵히 여기심으로 여러분을 가까이서 부르고 있어요." 라는 문장에서, "갸륵히 여김"을 앞에서 "긍휼"이라 번역했습니다. 즉 토기장이 내러티브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 그릇"으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사람을 '설득되지 않음'에 가두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제는 그 긍휼을 전하는 사람들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가까이서 부르고 있다는 말은 성령과 상관이 있는 말입니다. 예수는 성령을 '보혜사'로 소개하셨고, 이 보혜사라는 말은 '곁에서 속삭이는 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긍휼 그릇들에게 성령으로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의 몸"입니다. 여기서 "몸"은 '살몸'이 아니라 '연대'입니다. 즉 여러분의 '공동체', '메시아로 하나된 식구' 입니다. 신실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밥상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긍휼 그릇에게 말하길, 그 공동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뒤에서 부연합니다.
예배란, 현시대 속에서 오는 시대를 사는 것입니다. 그 예배의 시작은, 현시대가 짜놓은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것입니다. 현시대의 틀 속에서는 생각과 실천이 고정되어 하나님의 새롭고 자유롭게 하시는 생각과 맞아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넘어서, 하나님의 생각과 연결되는 것이 시작입니다. 성전 위에 제물이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메시아의 죽음을 짊어진 성전들은 성령으로 이것이 가능합니다. 우상숭배를 넘어 자가당착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하나된 생각을 얻는 것입니다. 참 자유의 길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리고 그 생각은 '변신'을 가져옵니다. 변신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가족에게는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몸이 변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몸을 변화시키고, 그 몸은 마침내 부활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몸에 해당하는 변화를 통틀어 바울은 '변신'이라 부릅니다. 현시대의 틀에서 벗어난 신실한 사람들의 연대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새로운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일단 해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머리로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몸으로 아니 하나님 뜻의 탁월함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이 "하나님을 닮아 좋고, 받아들일만 하며, 온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 말들은 바울의 의도가 보이는 말들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좋다"는 말은 앞에서 '토라'를 설명할 때 했던 말이었고, "받아들일만 하다"는 말은, 언약 프로젝트를 거절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걱정과 슬픔을 떠올리며, "온전한 목적"은 로마서 8장과 11장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획을 떠올리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좋은 토라를, 받아들였고, 그 온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우주 가족입니다.
그 하나님의 우주 가족의 삶, 메시아를 함께 먹는 밥상 공동체의 삶이, "이치에 맞는 여러분의 예배"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여기서 "이치"라고 번역한 단어는 '로고스'입니다. 말씀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우리는 이 단어가 하나님의 언약 프로젝트 전체를 가리키는 말임을 9장에서 확인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삶이 말씀과 맞아 떨어집니다. 예수님과 맞아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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