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9~20
그러면 우리는 좀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사람이나 희랍사람이나 모두 죄 즉, '비뚤어짐'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고발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바,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묻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그러한 좋은 점이 있으므로, 이방인들의 처지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냐?' 조금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비뚤어짐'의 노예라는 점에서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천명합니다(로마서 1:1과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토라라는 무기를 가진 이스라엘 마저도 무력하게 만드는 강력한 파라오를 만납니다. 바로 "비뚤어짐(죄)" 입니다. 죄에 대해서 깨끗함을 유지하고자 그토록 애써왔던 민족 안에서도 자가증식을 훌륭하게 이뤄낸 그 어둠의 세력 말입니다. 바울은 "모두가 비뚤어짐 아래 있다"라는 말을 아끼고 아끼다, 여기와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이제 예수의 출애굽을 설명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출애굽의 전모가 5~8장에서 설명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법정의 그림으로 이스라엘의 상황을 그려냅니다. 유대인은 피고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토라의 내용을 인용해서 만든 법정 판결문을 보여줍니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모두가 한 쪽에 치우쳐 쓸데없는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에는 속임이 있고,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심한 말이 가득하고,
그 발걸음은 피 나게 하는 일에 바쁜지라.
부서짐과, 비참함이 그 길에 있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 채로,
그들의 눈 앞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그토록 이스라엘이 귀하게 여겼던 토라 자체가, 이스라엘이 분명히 유죄라고 선언합니다. 내용은 그대로 죄의 노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이 단락을 다루면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이 토라의 어디를 인용했고, 그 인용의 맥락이 어떠한가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또다른 이야기를 겹쳐놓아, 글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분명한 의미의 차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인용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편 14:1; 전도서 7:20; 시편 53:1
시편 5:9
시편 140:3
시편 10:7
이사야 59:7
시편 36:1
이 중에서 하나만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시편 53: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당장 이 구절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정죄가 목적인 것 같지만, 이 시편 53편의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시편 53:6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단편적인 인용을 넘어, 시편 53편 전체를 보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절은 포로기가 끝날 것을 간구하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포로기라면 언약백성 이스라엘을 붙잡고 있는 세력이 있을 것인데, 지금 이 짧은 인용은 바울이 '그 세력'을 무엇으로 봤을지 짐작하도록 합니다. (실패한 이스라엘은 '이방제국'이라 생각했지만) 이 구절 뿐만 아니라 다른 인용된 구절들도 이스라엘의 잘못을 고발한 이후, 주의 의로 인도하시기를 구하며, 악한 자를 심판하셔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을 간청하는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이렇듯 인용된 모든 구절들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반복되는 성경 인용구절의 나열처럼 보이는 내용이, 실상은 섬세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 배열되어 있고, 이 구절들을 둘러싸고 있는 바울의 주장의 주제들과 실제로는 온갖 측면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1
우리는 압니다.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나오게 하려 함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어떤 살몸도 그분 앞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자신의 비뚤어짐을 깨달을 뿐입니다.
고발장은 제출되었고, 이제 유대인들에 대한 판결이 선언됩니다. 당시 재판에서는, 피고의 죄가 분명해서 변호가 불필요할 때, 그 입을 막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요 18:22, 행 23:2) 토라 아래 있는 유대인은 더이상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토라 자체가, 그들이 죄의 노예임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그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해줍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그러므로"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디오티'라는 희랍어로 "왜냐하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3:20이 결론이 아니라, 유대인도 이방인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는 것이 결론이고, 이것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는 1:18부터 시작되었던 논리의 흐름이 여기서 일단락이 납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의구심을 남깁니다. 유대인의 문제는 토라를 지키지 않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토라를 지키는 행위로는 어떤 살몸도 그분 앞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간 바울이 주장해왔던 것을 번복하는 것 아닙니까? 이 구절은 2:13과 충돌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마지막 턱입니다. 기어를 1단으로 내리고선 천천히 잘 넘어가야 합니다.
세 가지 측면을 확인해야 합니다. '살몸'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옳다 인정받는다'의 의미,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단 '살몸'이라는 말은 영혼과 대비되는 물질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플라톤주의에서 기인한 것이지, 바울의 용례가 아닙니다. 바울이 '살몸(사륵스)'라 말할 때, 그 의미는 '그릇된 사고와 행동을 가지고 진노 아래서 심판으로 나아가는 인간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새롭게 되지 않은 인간, 다시 말해 토라를 지킬 수 없는 인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살몸'이라는 표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지칭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지금 이 단락 전체가 유대인들을 대화상대로 두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옳다 인정받는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자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한 글자 '의'라고도 표현되는데, 최후의 심판에서 어떠한 판결을 받을지 미리 안다는 말입니다. 출애굽 이야기로 말하자면,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같은 것입니다. 그 피가 발라져있다면, 열번째 재앙에서 어떠한 결과를 얻을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옳다 인정받는다'는 말은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현재에 미리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의롭다'는 말이 이 뜻입니다.
그럼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은 토라를 지키는 행위들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간 유대인들에 대한 고발들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은 정작 토라를 지키지 못했으면서도, 자신들은 토라를 지킬 수 있다며 이 행위를 내세웠고, 이것을 가지고 이방백성들을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 토라를 지킨다는 '행위'는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방인들을 나누는 경계였고,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언약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이 여기에서부터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토라를 지킴'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지킴은 새로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행위를 드러낸다고 판단받을 수 없는 지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말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토라를 지킨다고 내세우는 행위들이, 더이상 최후의 심판에서 옳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현재적 표지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토라를 지킴'을 폐지한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 <뉴 인터프리터스 바이블 코멘터리스, 로마서>, 톰라이트, p.1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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