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녹음 파일이 11절까지 이어집니다.


로마서 5:6~11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메시아께서, 우리가 연약하여 말씀대로 살 수 없었던 그 때에,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의로운 이를 위해서도 좀처럼 죽지 않으며, 선한 이를 위해서 용감히 죽으려는 이도 어쩌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비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와 단단히 묶어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피로 의롭다 산정되었으니, 그이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더욱 더 구원받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서로 적이었던 하나님과 우리마저도 만일 그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사이가 되었다면, 이미 화해한 우리는, 이 아들의 다시사심 안에서 더욱 구원을 얻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소리 높여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이 예수로 인해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로마서 5:6의 시작에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 전체는, 앞 본문의 이유를 설명하는 본문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의 연약함과 경건치 않음은 모두 로마서 1:18~3:20의 비뚤어짐의 노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 수 없는 인간성, 하나님과 끊어진 인간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메시아 예수는 죽으셨고, 이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5:1~5에서 언급한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은 이 사랑의 화답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다음 문단에서 두 번의 '더욱'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피대상 1호였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메시아의 죽으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메시아의 죽으심으로 서로 원수였던 양쪽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그의 다시사심이 그 관계를 얼마나 풍성할게 할지 상상해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더욱입니다. 더욱 사랑, 더욱 구원.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더욱, 참 인간다움에 더욱입니다. 메시아의 죽으심을 통해서, 그의 다시사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멈춰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하나님과 나누는 사랑이, 바로 '우리'를 규정합니다. 우리가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우리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 주 메시아 예수"라는 자주 쓰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우리입니다. '주'는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오직 한 분 뿐입니다. 바로 메시아 예수. 사랑은 혁명입니다. 이전의 우상숭배의 이름을 갈아치우는 위대한 전진이, 마침내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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