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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1~7


  숨 쉬는 모든 생명체(Πασα ψυχη)는 다스리는 권세들 아래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면 권세는 있을 수 없고, 권세들은 하나님께서 질서있게 배치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권세를 벗어던지려는 자는 하나님의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요, 그 반대하는 자는 스스로 (그에 대한) 심판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닮은 일을 할 때에는 그 다스리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악한 일을 할 때에나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하나님 닮은 일을 행하세요. 그러면 (오히려) 그 권세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당신에게 있어 하나님 닮음을 이루는 사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악을 행한다면, 권력을 두려워하십시오. 권력이 달리 공권력을 가진게 아니니 말입니다. 즉 권력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기 위해 (범죄에 처벌로) 갚아주는 하나님의 봉사자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쉰에이데시스(συνειδησις)' 때문이라도 그 아래 놓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금을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공무원이 되어 바로 이 일을 위해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에게 줄 것을 납부하되, 세금을 걷는 이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관세를 걷는 이에게 관세를 납부하십시오. 두려워할 이를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를 존경하십시오.


    우리는 C'로 넘어왔습니다. 12:14~21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설득되지 않는 사람과 접해있는 '신실한 유대인(곧 그리스도인입니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 13:1~7은 어려운 본문입니다. 적어도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인 정치색을 띄게 된데는, 이 로마서 13:1~7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수냐 진보냐의 논의는, 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논의가 일관적으로 진행된다면, 이 본문 역시 '제3의 길'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지, 현시대가 압박하고 있는 양자택일의 틀 속에 우겨넣어서 이해하면 안될 것입니다. 현시대가 압박하고 있는 양자택일은, 정치권력이 긍정적인 것이냐, 부정적인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긍정적이라 말하면 보수권력이 환영해 줄 것이고, 부정적인 것이라 말하면 진보세력이 곁에서 '그럼 그렇지'라고 끄덕이며 환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양자택일에 섣부르게 동조하지 않습니다. 일단 바울은 '권세'와 '권력'에 대해서 말합니다.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 권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보수주의자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권세와 질서'라는 말을, 특정 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변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동경기의 심판으로서의 권력입니다. "악한 정부가 무정부보다는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심판은 불완전하지만, 그렇다고 심판을 없애서는 안됩니다. 한 분께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살이 속에서, 눈에 보이는 심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이 권세요, 권력입니다. 그리고 작은 법규의 위반에서부터 절도, 강간, 살인등의 큰 범죄에 이르기까지, 국가권력이 있기 때문에 '치안'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바울은 이런 차원에서 권력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권력이 어떠한 권력이든지', 무조건 옹호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한'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나, 권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 권세 자체를 없애기 위한 투쟁보다, 그 권세 아래서(즉 운동경기의 룰을 지키는 선 안에서) '잘 하고자' 해야 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면",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구속하고 처벌하는 일이 개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으나, 국가 권력에게는 허용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질서라면, 나의 잘못 때문에 국가 권력에 의해 처벌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국가 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곧 내 이웃이기도 합니다. 국가 권력을 배제한다는 것은, 또한 많은 사람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권력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질서의 일부입니다. 그들에게 공권력이 주어진 것은,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습니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아닙니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이나, 권위에 대한 부정이 아닌, "권위에 대해서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책임을 일깨우는 일"을 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완전하지 않는 심판이지만, 그 심판의 직위를 인정해주는 것이 인격적 성숙이고, 우리가 맞서 싸우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악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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