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2~17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족 여러분! 우리가 빚진 사람들입니다. 허나 살몸에 빚진 것이 아니니 살몸을 따르는 삶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살몸을 따라 산다면, 죽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숨으로 몸의 짓거리를 죽이면,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숨에 이끌린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는 종의 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되는 숨을 받았습니다. 그 숨결로 부르짖습니다, 아빠 아버지! 숨님 또한 우리의 숨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이들이라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메시아와 함께 공동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나타나고자, 그와 함께 고난도 받는 한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토라에 대한 정리를 끝내고, 새로운 내용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족 여러분!'
바울은 '빚'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빚과 대단히 친숙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빚을 졌다는 것은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스림이 없는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니라,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그래서 무정부보단 악한 정부가 낫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바울이 이미 5장에서부터 풀어왔습니다. 메시아를 통해 용서받는 거저주심의 다스림이냐, 죽음을 낳는 (토라로 드러나고 증폭되는) 비뚤어짐의 다스림이냐.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이 이 다스림을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 대비시킵니다. 한 쪽은 살몸이요, 다른 한쪽은 숨입니다.
이것을 육체와 영혼의 대비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육체가 영혼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울과 거리가 멉니다. 바울은 우리가 '살몸'에 빚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살몸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비뚤어진 인간성, 즉 아담성입니다. 이 아담성은 이집트의 파라오요, 우리는 홍해를 건너왔기 때문에 파라오는 더이상 우리를 다스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의 삶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그 삶의 끝은 죽음이요, 유죄판결일 뿐입니다. 메시아의 대신처벌 받음과 성령으로 나아온 이 영광스러운 광야길을 모독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토라 이야기 전체를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숨으로 몸의 짓거리를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숨'이란 메시아와 하나되어 죽고 산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숨결이요, 짓거리란 비뚤어짐의 노예로 살 적의 행동양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짓거리를 죽여서 살몸을 몸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비뚤어진 것을 곧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과 함께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이뤄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입니다. 참 인간다움입니다. 새로운 아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숨에 이끌린 사람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들은 마치 어린양의 피를 발라 이집트를 탈출한, 그렇게 홍해를 건너고 마침내 광야로 나아온, 구름기둥에 이끌려 비뚤어짐의 생활을 청산해나가는 언약백성 이스라엘입니다. 숨은 구름기둥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숨에 이끌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출애굽기의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출애굽기 4:22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파라오의 이집트가 하나님꼐 심판을 당하는 그 열번째 재앙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나의 맏아들이라 하셨습니다. 파라오의 맏아들은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맏아들은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지금까지 했던 모든 로마서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있던 비뚤어짐의 노예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와 합하여 죽고 살아 광야로 나온 우리는 하나님의 숨결로, 죽음을 이기는 사람들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메시아의 십자가 처형으로 비뚤어짐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예수의 출애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숨을 따라 이끌린 사람들은 하나님과 아빠-자식 관계가 이뤄집니다. 죄가 있던 자리에 들어오신 성령꼐서, 우리의 호흡과 함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 라 부르게 하십니다. 그럼 우리도 아들, 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령은 새로운 출생입니다. 유죄판결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딸로 입양되어 새로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은 상속자입니다. 아들이라고 해서 여자들은 배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숨 쉬는 모두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상속자라면, 이들은 무엇을 받는단 말입니까? 바울은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메시아와 우리가 공동 상속자라는 이야기를 우선 덧붙입니다. 우리가 메시아 예수와 "함께 새싹이 돋아난", 즉 같은 근원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 본문을 위해서 '고난'이라는 단어를 언급합니다. 우리가 내일 살펴볼 주제는 이것입니다. 고난과 상속. 우리는 무엇을 상속받을 것이며, 그 과정은 어떠할 것인가의 물음입니다.
'바울의 편지들 > 로마서 연구 v.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8:31~39 (0) | 2015.07.23 |
---|---|
로마서 8:18~30 (1) | 2015.07.22 |
로마서 8:1~11 (4) | 2015.07.20 |
로마서 7:21~25 (1) | 2015.07.20 |
로마서 7:13~20 (3) | 2015.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