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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14~33


  내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생각하며 확신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닮음으로 가득해서, 모든 깨침으로 흘러넘쳐, 능히 서로서로를 마음에 둘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용기내어 여러분께 썼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로 비롯된 사람들이란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대목에서부터, 내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자가 된 일까지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함인데, 이 드림이 거룩한 숨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앞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결론냅니다. '여러분들은 할 수 있다.' 선함과 깨닫는 지혜와 서로에 대한 사랑은 모두 연결되어있습니다.


  바울은 다시 기억나게 했던 내용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로마에 있는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과 연결되는 신실함을 통한 의를 언급하고, 5~8장에서 메시아 예수의 출애굽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논한 뒤, 9~11장에서 완고한 이들을 위한 긍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모두가 로마에 있는 에클레시아 일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다시 상기시키려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이유도 밝혔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삶을 통해 완고한 유대인들을 질투나게 하겠다는, 그의 선교 계획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인신제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은, 사실 인신제사이면서도 인신제사가 아닙니다. 바울의 이방인 공양을 통해 실로 '아담성으로서의 나'가 죽는 것이므로 인신제사이면서도, 거룩한 숨결로 다시 일어나 새 삶을 살게 되니, 사람을 죽여버리기만 하는 인신제사와 다릅니다.


  바울이 12:3과 같이 제사장 직무와 관련하여 에클레시아를 논하는 것은 주목할만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제사장 나라의 견지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메시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일들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민족들을 경청케 하시고자 나를 통해서 힘입게 하신 것 외에는 내가 어떤 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때론 말과 일로, 때론 표적들과 경이로운 일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숨결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다니며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흘러넘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메시아의 이름이 불려지는 곳에서는 다른 이의 터 위에는 집을 짓지 않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한 이들이 알게 될 것이요.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이들이 함께 모일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메시아께서 민족들을 경청케 하시고자 힘입게 하신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말과 일, 표적들과 경이로운 일들의 힘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열거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숨결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방인들은 거룩한 숨결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이 이방인을 위한 제사장인 바울의 행보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Illyricum)에 이를 정도였다고 바울 자신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단까지 전도여행을 떠났다는 기록은 로마서가 유일합니다. 사도행전도 바울서신도 일루리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바울의 과장일지, 아니면 기록되지 않은 바울의 전도 여행이었을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전도여행의 거점은 예루살렘이 아닌 안디옥이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전도 여행 중 기록되지 않은 지역이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광범위한 전도 사역 중에서도, 메시아의 이름을 이미 부르고 있는, 다른 이의 터에서는 복음 전하는 일에 열심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보여주듯, 에클레시아의 리더쉽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다시금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이사야 52:13~15,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그래서 여러분을 향해 가려던 여러 번도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지역에서 더 할 일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스파니아로 가는 어느 때든 여러분에게 가려는 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나가는 길에 여러분들을 만나 여러분들로부터 먼저 부분적으로 채움을 얻은 후에 여러분들이 나를 거기로 보내주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이사야서에 흠뻑 젖어있던 바울이, 스페인 해안 쪽 도시들을 염두해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야 11: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이사야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이사야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이사야 51: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이사야 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지중해 연안에서 "더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이제 그 지역에서의 사역을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클레시아에게 맡긴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더 할 일이 없다는 것이지, 그 지역에서 더 이상 복음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이제 스페인으로 갈 계획을 가지고, 바울은 로마에 있는 공동체를 만나고자 합니다. 로마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지만(1:13), 로마 공동체로 가서, 거기서 여행 경비를 조달받은 뒤 스페인으로 가겠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로마의 교회들을 거점으로 삼고서, 스페인 서쪽 해안까지 도달하고자 합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한대로, 섬에 사는 사람들에 메시아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씻어난 이들을 섬기려고 합니다.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씻어난 이들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얼마를 함께 나누겠다고 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잘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루살렘의 씻어난 이들에게 빚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숨에 속한 것을 민족들이 함께 나누었으니, 예루살렘 사람들을 살몸에 관한 것으로 섬겨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일을 마치고, 이러한 일의 열매를 저들에게 확실히 도장 찍은 후에, 여러분들을 지나서 스파니아로 가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갈때, 메시아의 이야기들을 흘러 넘치도록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계획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일은 최초의 교회였던 예루살렘 공동체에게 벌어졌습니다. 재산을 서로 나눠쓰고, 매일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큰 위협 속에 있었습니다. 로마와의 긴장이 날로 심해지고 있어 나라의 존속 자체가 얼마남지 않았고, 로마의 편도 들지 않고 유대의 편도 들지 않는 에클레시아를 양 쪽에서 좋게 볼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근으로 인해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게 어려워졌습니다.

  이때 바울은 이방인 공동체들에게 모금 운동을 해서, 유대인 공동체를 돕고자 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이른 바, 연보 프로젝트. 이전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은 지구를 반으로 분할하는 원수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서로 돕는 관계이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났음을, 전세계에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9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숨에 속한 것은 '복음'을 의미하고, 살몸에 관한 것은 '돈'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연보 프로젝트를 마치고, 스파니아로 가려는 계획을 수행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연보 프로젝트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큰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집단 폭행, 재판, 옥에도 갇히게 됩니다(사도행전 21~27장). 아마도 로마서 15장을 쓰는 동안 바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우리의 주 메시아 예수와 숨님의 사랑을 통해,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나와 함께 싸웁시다. 이는 이스라엘의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 나를 살리기 위함이요, 나의 섬김이 예루살렘 속에서, 그곳의 씻어난 이들에게 받을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과 함께 함으로 힘을 얻을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바울은 연보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싸우자고 말합니다. 이 싸움에 동참하는 것은, 메시아 예수와 성령의 사랑을 가지고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 바울을 지켜달라고. 또 예루살렘 공동체가 바울의 모금을 오해하지 않고 잘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 일이 잘 마무리 되어, 바울이 로마 공동체와 함께 힘을 모아, 스페인에 있는 이들을 구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로마서 16:25~27로 알고 있는 송영의 다양한 위치가 있습니다. 어떤 오래된 사본에서는 그 송영이 로마서 15장 뒤에 이어지고, 16장의 나머지 내용이 나옵니다. 14세기 사본은 15장 뒤에 송영이 이어지고, 16장 없이 로마서가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로마서 16장은 바울이 쓴 것이 아닌, 교회가 추가로 쓴 내용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5장이 로마서의 끝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편지들에 비해 마무리하는 축복이 빈약하고, 로마서 16:25~27이 바울의 신학과 잘 어울리는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하게도 16장을 없는 셈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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