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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8~10
서로를 향한 사랑외에는 아무 것도 빚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가 토라를 다 이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만일 어떤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바로 이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토라의 이룸입니다.
권력이 아니라, 악과 맞서 싸웁니다. 그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닥터 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평가는 돌에게나 칭찬이지, 인간에게는 칭찬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서로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문제 없는 삶이라 여깁니다. 그것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견제를 통해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 균형은 대립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을 천천히 말려 죽이는 과정이지, 살리는 과정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있고, 또한 12:9~13에서, 그리고 19~21에서도 확인했습니다. 사랑은 한 분과 연결된 사람이, 타인과 연결되고자 애쓸 때 비로소 얻어집니다. 만일 사랑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얻어진다면, 바울이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악에게 지지 말라"고 말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악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 악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살몸을 불의의 병기로 주지 않고, 의의 병기로" 사용하는 이에게 사랑은 값진 결실로 얻어지며, 이것이 곧 악을 맞서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해보고 비로소 인정"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지 말라"는 부정문이 나열되어 있던 십계명을, 하나의 긍정문으로 전환시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환이 일어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로마서에서 줄곧 확인하고 왔습니다. 십계명은 토라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 토라가 다음의 한 구절이 이뤄지므로, '완성'되었습니다.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이웃에는 설득되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고, 물론 앞에서 바울이 언급했던 권세자들도 마찬가지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비뚤어진 방식입니다. 여기 새로운 방식이 있으니,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그 사랑이 바로 '토라의 이룸'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토라를 모르고도 그 토라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실한 사람이라 명했던 이들은, 한 분 하나님과 연결되어 창조세계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쉽게 되지 않기에 바울은 앞에서 우리의 살몸 전체를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지레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길이 열려 있음을 확인했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바로 이 한 길이라면, 우리는 이 길을 마땅히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길을 걷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길은 광야길, 우리는 의의 산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구름기둥이 우리 속과 하나님을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금 말한 이 본문이, B'임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사랑의 삶이, 곧 우리의 예배임을 알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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