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은 1~4장을 정리하면서도, 로마서 5~8장에서 다룰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확인해봅시다. 신실함(참 인간다움)을 통해 의롭다 산정되고, 그 산정된 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메시아 예수의 십자 처형의 결과이자,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이루는 충격적인 전환이었습니다.
로마서 5:12~21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을 알 수 있습니다. '비뚤어짐'이 한 사람을 시작으로 현시대로 들어왔고 그 비뚤어짐 때문에 죽음도 현시대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속에도 죽음이 꿰뚫고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비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5:12에 들어서면서, 앞서 제시한 이 내용이 밝혀졌으므로, 인간의 진정한 곤경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 전체가 비뚤어진 이유, 유대인 마저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반드시 해결되었어야 했고, 이제 메시아 예수 안에서 해결된 그 문제 자체. 이제 바울의 시선은, 모든 문제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한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바로 아담입니다. 그 아담의 비뚤어짐 때문에 죽음이 들어왔고, '비뚤어짐-죽음' 이라는 마찬가지의 곤경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라가 있기 전에도 비뚤어짐이 세상에 있었으나, 토라가 없을 때에는 비뚤어짐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인) 죽음은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같은 '벗어난 걸음'을 걷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 아담은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이루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이어지는 13~17절은 괄호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울은 비뚤어짐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토라가 이 문제와 상관있음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직 토라에 대한 수수께끼들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토라를 왜 주신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서 7장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지만, 이미 바울은 몇차례나 암시를 던져놓고 왔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뚤어짐과 토라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라가 있기 전에도 비뚤어짐이 있다(13절)"는 말을 잘 곱씹어 봅시다. 이 말은 토라가 없을 때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토라가 없을 때는 비뚤어짐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비뚤어진 사람들이, 비뚤어짐에 대해서 온전히 생각하지 못한채, 비뚤어진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토라 덕분에 비뚤어짐의 정체가 무엇인지 비로소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토라가 주어진 이유였습니다. 비뚤어졌음에도 비뚤어진 사실을 모르는 자가당착, 무언가를 자신의 자부심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 토라는 이스라엘을 실례로 삼아, 이 끔찍한 사실을 똑똑히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거룩한 글자는, 인간이 비뚤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냈지만, 그 비뚤어짐을 고칠 수는 없었고, 비뚤어짐이 낳은 죽음은 여전히 그 글자를 타고 기세등등했습니다. 이 일이 바로 아담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언급할 순서가 된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바로 이 '아담성(性)'에 있었습니다.(바울은 이 아담성에 대해서 1:18~32에서 묘사하고, 3:23에서 요약했습니다.)
'아담적 본성'이라 할까요? 바울이 앞에서 논한 그대로입니다. 그릇된 생각을 고집하고,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그것을 고칠 줄 모르고 오히려 자기자신을 정당화하는 인간. 이러한 모습은 세상을 돌보고 가꾸는 일과는 거리가 먼 비인간화의 흔적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성이 아닌 새로운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아담성에 반대되는 말은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온전한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 메시아와 하나된 기이한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십자가로 자신의 죄책을 씻고, 부활의 숨으로 실천력을 얻어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5:1~11에서 이러한 기이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기이함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 곤경의 근원에 대해서 말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과는 달리, 이러한 거저 주신 것이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떨어져 나감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그 거저주심 속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성히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비뚤어진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과는 달리, 이러한 선물이 있습니다. 즉 심판은 한 사람을 근거로 유죄 판결에 이르는 반면, 선물은 많은 '범죄'를 근거로 의의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잘못된 걸음을 걸었던 한 사람을 통해 다스렸지만, 거저주신 것에 넘치고, 삶속에서 의의 선물을 붙잡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 메시아 예수를 통해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신실함을 통해 무언가 충격적인 전환이 벌어졌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거저주심(은혜)'이라고도 하고 '선물'이라고도 합니다. 아담이 벌인 일을 덮고도 넘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스림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는 온전한 인간, 창조의 회복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유죄판결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의로운 걸음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의와 삶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흘려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하나님 아래) 놓이게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잘 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하나님 아래) 서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는 아담을 가리키고, "유죄판결"은 하나님의 심판(개역개정에서는 '정죄'라 번역했습니다.)을 떠올립니다. 즉 로마서 1:18~3:20의 절망적 현실이 "한 사람의 의로운 걸음"(곧 '예수의 신실함', '하나님의 의'입니다.)으로 의와 삶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아담성이 메시아성으로 변하게 된 것은, 메시아 예수의 의로운 걸음, 곧 신실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아담과 달랐고, 그 다른 면이 우리 속에 새로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새로운 주제들을 가져옵니다. 로마서 5:12~21에서 다룬 내용들은 로마서 6~8장들의 주요 쟁점들이 될 것인데, 바울이 새롭게 가져온 말들은 '흘려들음(불순종)'과 '잘 들음(순종)'입니다. 아담과 메시아를 대비시키는 특성이자, 완전히 다른 미래를 가져온 역사의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순종은 메시아성으로, 불순종은 아담성으로, 그리고 그 순종의 대상이란 바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토라가 (현시대에) 깊고도 넓게 들어온 것은 '잘못된 걸음'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짐이 넘쳤던 그 곳에 하나님의 거저주심이 넘쳤습니다. 마치 죽음 안에서 비뚤어짐이 사람과 세상을 지배했던 것과 같이, '대가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 역시 의를 통해서 우리 주 메시아 예수와 함께 얻는 오는 시대의 삶에 이르도록 다스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금 토라를 언급합니다. "토라가 현시대에 깊고도 넓게 들어온 것은 '잘못된 걸음'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토라를 왜 주셨을까?'에 대한 답변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토라를 주신 것은 잘못된 걸음들을 덮고도 남는 거저주심으로, 우리에게 "우리 주 메시아 예수와 함께 얻는 오는 시대의 삶"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8장에서 드러날 그 오는 시대의 삶에 대한 암시를 던지고 있습니다. 바로 '다스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말입니다. 앞에서 "죽음이...왕으로 군림했습니다"에 이어, 바울은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다스리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를 창조 이야기로 이끕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메시아가 아담의 곤경을 극복했으니, 우리가 새로운 아담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 > 로마서 연구 v.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6:12~14 (1) | 2015.07.14 |
---|---|
로마서 6:1~11 (6) | 2015.07.14 |
로마서 6:1~11 탈굼역 (0) | 2015.06.11 |
로마서 5:6~11 (0) | 2015.05.21 |
로마서 5:1~5 (4) | 2015.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