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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1~11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그 성전으로부터 그 일곱 천사들에게 말씀하는 큰 소리를.

     "너희들은 내려가서 그 하나님의 격함의 일곱 대접들을 그 땅으로 쏟으라."


  이제 본격적인 대접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심판은 성전에서부터 들리는 큰 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이사야서 66:6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 66:6
성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오며, 성전으로부터 소리가 들려 온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님의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성전에서부터 들리는 소리는 주님께서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는 소리입니다. 악에 대해서 체념하고, 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소리는 다시금 정의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이제 갚으십니다. 그리고 그 갚으심은 일곱 '대접'들을 통해 이뤄졌고, 이 대접은 제사 도구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연기가 되어 올라갔고, 그 연기가 고스란히 그 대접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희망 속에 드려졌던 모든 탄식, 고통, 억울함들이 이제 그 대접들을 향해 쏟아질 때가 되었습니다.


  이 대접 심판은 앞에 나왔던 인 심판과 나팔 심판 뒤에 연속되는 사건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계시록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를 두고 반복되는 여러 심상들은, 하나의 현장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카메라와도 같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을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1. 땅 2. 바다 3. 물 4. 해 5. 짐승 6. 유브라데 7. 공중


  심판의 대상은 나팔 심판 때나 대접 심판 때나 동일합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가 창조세계 전체를 나타내고, 다섯번째부터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심판이 이어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앞에서 일곱 실(seal)심판이나, 나팔 심판에서는 첫째 심판부터 넷째 심판까지를 보여준 뒤에 다른 환상들을 보고나서 다시금 다섯번째 심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곱 대접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부터 일곱째까지 단번에 벌어집니다.


1) 첫번째 : 땅, 짐승의 표를 받은 이들과 아이콘에게 절한 이들 - 악성 종기


  그리고 첫번째가 떠나 그의 그 대접을 그 땅으로 쏟았습니다. 그리고 악한 종기가 있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가진 사람들에게와 그의 아이콘에게 절하는 이들에게.


  이 심판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출애굽 사건을 염두해둬야 합니다. 이 끔찍한 심판의 장면들을 인류의 멸망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은, 이 심판을 통해 1) 악이 심판 받고, 2) 언약 백성이 자유를 얻으며, 3) 마침내 창조세계가 회복된다는 출애굽 이야기를 그 배경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접 심판의 첫번째 내용은 악성 종기입니다. 짐승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들, 그리고 짐승과 그의 아이콘에게 경배하는 이들에게 악성 종기가 돋아닙니다. 이는 출애굽의 열 번째 재앙 중, 여섯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김세윤 박사는 질병은 미래에 찾아올 죽음이 미리 역사하는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이 짐승과 그의 아이콘들은 마치 팍스 로마나를 약속했던 로마 황제처럼, 자신들의 통치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죽음의 영향력에서부터 조금도 사람들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대접 심판을 통해 드러납니다.


  또한 이 악성 종기의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언약백성'에게 떨어질 것이라고, 신명기에 예언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28:14,15
  당신들은, 좌로든지 우로든지,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씀을 벗어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지 마십시오."


  "그러나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또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당신들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신명기 28:35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무릎과 발에 당신들이 고칠 수 없는 악성 종기가 나게 하셔서, 발바닥으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번지게 하실 것입니다.


2) 두번째 : 바다 - 피와 모든 바다 생명체의 죽음


  그리고 두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바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상태처럼 피가 있었고, 모든 호흡하는 생명이 죽었습니다, 그 바다의 것들이.


  나팔심판에서 1/3이었지만, 이제는 전체입니다. 바다는 이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두번째 대접 심판은 나일강이 피로 변한 출애굽 재앙을 인유합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악의 진원지,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바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의 호흡하는 모든 것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기생하여 살고 있던 짐승의 힘이 현저하게 약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 로마의 해상교역을 염두하고 이 구절을 썼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앞에서 짐승이 에클레시아를 표상하는 여자에게 물을 토해낸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17장에서 밝혀지는 물의 정체를 염두해보면, 이것은 악의 세력 자체가 그 토대를 잃어버리고 세력이 약화된다는 의미인 것은 분명합니다.


3) 세번째 : 물과 피 - 물들의 천사의 말


  그리고 세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강들과 물들의 샘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물들의 천사가 말하는 것을,


"당신은 옳으십니다, 계시며 계셨고 깨끗하신 이여,
왜냐하면 그것들을 당신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룩한 이들과
예언자들의 피들이 흘러나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를 그들에게 마시게 하심. 합당합니다."


  그리고 나는 번제단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여,
참되고 옳습니다, 당신의 심판들이."


  두번째 심판과 세번째 심판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앞에서 악성 종기가 났던 그림도 연결지어 볼 수 있겠습니다. 악성 종기가 나서 몸을 씻을 물이 필요할텐데, 연속적으로 물의 근원인 바다와 샘들에 심판이 떨어집니다. 악성 종기가 난 이들은 씻을 수가 없고, 심판은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집니다. 이 세번째 심판 역시 출애굽의 첫번째 재앙을 인유하고 있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물들의 천사"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물들을 관장하는 천사는, 물들의 심판에 대해서 아쉬워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천사의 고백은, 줄곧 '깨끗'을 언급합니다. 이는 물에 대한 심판이 물 자체를 정화하기 위함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물에 대한 심판 수단이 피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도 이를 암시합니다.


  그 정화란, 거룩한 이들과 예언자들을 죽였던 이들에게 그 피를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66:6이 말하는 "대적들에 대한 보응"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피조물인 '물'은 깨끗한 물이 되어, 그 창조된 본면의 모습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의 회복은 피를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그들이 이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어서 번제단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번제단 위에서는 줄곧 제물들이 희생되어 피가 뿌려졌습니다. 바로 이 방식 뿐입니다. 이 방식으로만 깨끗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방법을 만드시고, 직접 이 방법 안으로 뛰어드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49:26
너를 억압하는 자들로 서로 쳐죽이게 하고, 새 포도주에 취하듯이, 저희들끼리 피를 나누어 마시고 취하게 하겠다. 그리고 나면, 모든 사람이, 나 주가 네 구원자요, 네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위의 이사야 구절은, 지금 우리가 보고 내용들의 심상을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이들이 나오고, 그들은 피를 마시게 됩니다. 바로 이 방식으로 심판이 이뤄지고, 하나님은'야곱의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아래 보는 시편 79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등장하고, 억울한 이들의 죽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 어서 심판해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이 시편의 기도가 이뤄지는 현실을 우리는 계시록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즉 저 시편 기자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일곱 대접을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79:3~6
사람들의 피가 물같이 흘러 예루살렘 사면에 넘치게 하였건만, 희생당한 이들을 묻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원히 노여워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하심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저 이방인들에게나 주님의 진노하심을 쏟아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저 나라들 위에 쏟아부어 주십시오.


4) 네번째 : 해 - 불로 태움


  그리고 네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해에게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게 그 사람들을 불로 태우도록 주어졌습니다(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큰 열기에 태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재앙들에 대한 그 엑수시아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뚜렷을 드리도록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짐승이 가진 힘의 근원이었던 물이 오염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해가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의 해와 불은 실제 태양과 열폭풍이 아닐 것입니다. 계시록은 줄곧 상징을 사용해왔고, 여기서의 불길 역시 사람을 괴롭게 하는 무언가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7:20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나의 무서운 분노가 바로 이 땅으로 쏟아져서, 사람과 짐승과 들의 나무와 땅의 열매 위로 쏟아져서, 꺼지지 않고 탈 것이다."


  위의 예레미야 구절은 지옥에 대한 묘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었고, 그 전쟁과 파멸의 사건이 불로 묘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합니다. 자신들이 겪는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파라오의 완악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완악함에 대해서는 바울도 로마서 11장(풀이는 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5) 다섯번째 : 짐승의 왕좌 - 어두움


  그리고 다섯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짐승의 그 왕좌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실레이아가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으로 (그 나라에 속한 이들이) 그들의 혀들을 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 일들로부터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악성 종기, 바다, 샘, 불을 지나 이제 짐승의 왕좌가 재앙의 표적이 됩니다. 짐승은 하늘 성전에 '앉으신' 하나님을 패러디하여, 자신의 왕좌를 만들어 앉았습니다. 그런데 다섯번째 대접은 그 왕좌에 직접적으로 부어집니다. 그 결과는 캄캄함입니다. 이 역시 출애굽 재앙의 인유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집트는 태양의 후손임을 자처했고, 파라오는 자신을 태양신으로,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태양신의 아들 호로스로 여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하루 아침에 비참하게 죽었고, 파라오 아들의 죽음은 이집트의 우상숭배적 세계관에 가장 결정적인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의 죽음 직전에 있었던 재앙이 어두움입니다. 태양의 나라가 어두워졌다는 사실은, 파라오가 그토록 홍보하고 자랑하던 권세가 아무 것도 아니었음에 대한 폭로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로마에게 적용하는 듯 합니다. 계시록 2:13에 나왔던 "사탄의 왕좌"라는 표현은 이 다섯번째 대접 심판과 연결됩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낸 계시록의 일곱 도시들은 이미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특히 버가모는 황제 숭배에 열을 올리는 도시였습니다. 그 사탄의 왕좌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그 권세의 무력화를 상징하는 어두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대접 심판과의 동일한 점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이 무너지고 있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 돌아올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혀를 씹을 지언정, 마음을 바꾸어 돌아올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사야 8장의 예언처럼 말입니다.


이사야 8:19,22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속살거리며 중얼거리는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어 보아라. 어느 백성이든지 자기들의 신들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산 자의 문제에 교훈과 지시를 받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결코 동트는 것을 못 볼 것이다! 그들은 괴로움과 굶주림으로 이 땅을 헤맬 것이다. 굶주리고 분노한 나머지, 위를 쳐다보며 왕과 신들을 저주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땅을 내려다 보겠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뿐일 것이니, 마침내 그들은 짙은 흑암 속에 떨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6:1~11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그 성전으로부터 그 일곱 천사들에게 말씀하는 큰 소리를.

     "너희들은 내려가서 그 하나님의 격함의 일곱 대접들을 그 땅으로 쏟으라."


  그리고 첫번째가 떠나 그의 그 대접을 그 땅으로 쏟았습니다. 그리고 악한 종기가 있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가진 사람들에게와 그의 아이콘에게 절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두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바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상태처럼 피가 있었고, 모든 호흡하는 생명이 죽었습니다, 그 바다의 것들이.

  그리고 세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강들과 물들의 샘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물들의 천사가 말하는 것을,

"당신은 옳으십니다, 계시며 계셨고 깨끗하신 이여,
왜냐하면 그것들을 당신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룩한 이들과
예언자들의 피들이 흘러나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를 그들에게 마시게 하심. 합당합니다."


  그리고 나는 번제단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여,
참되고 옳습니다, 당신의 심판들이."


  그리고 네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해에게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게 그 사람들을 불로 태우도록 주어졌습니다(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큰 열기에 태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재앙들에 대한 그 엑수시아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뚜렷을 드리도록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짐승의 그 왕좌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실레이아가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으로 (그 나라에 속한 이들이) 그들의 혀들을 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 일들로부터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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