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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15:5를 살펴보기 전에, 이 요한계시록 연구 전체의 목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 구성

1주. 1:1~20 프롤로그
2주. 2~3장 일곱 에클레시아에 보내는 편지
3주. 4~5장 하나님과 메시아의 영광
4주. 6~8:5 일곱 인 심판
5주. 8:6~11장 일곱 나팔 심판
6주. 12~15:4 격화된 싸움 : 일곱 환상 또는 표징
7주. 15:5~16장 일곱 대접 심판
8주. 17~19장 바벨론과 짐승에 대한 최후의 심판
9주. 20장 천년왕국
10주. 21~22:5 새 창조와 영광 속에 들어간 완전한 에클레시아
11주. 22:6~21 에필로그


  그레고리 빌의 요한계시록 주석에 나오는 목차입니다. 우리는 지금 7주차에 들어왔고, 이제 15:5부터는 '일곱 대접 심판'을 다룰 차례입니다. 본문을 확인해봅시다.


요한계시록 15:5~8

  이 장면 이후에 나는 보았습니다, 하늘에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일곱 천사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일곱 재앙들을 그 성전으로부터 가지고서,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두르고서 그 금 가슴띠를 맸습니다. 그리고 그 네 생물로부터 그 일곱천사들에게 일곱 대접이 주어졌습니다,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사시는 하나님의 격함으로 채워진.

 

  우리는 이제 '이 장면 이후에'라는 말이 사실의 연속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이 겪었던 환상의 순서인 것이지 이 환상들을 특정 역사적 사건과 매칭시켜보려는 노력은 무익하다는 사실이 오랜 시간 동안의 오해를 통해서 확실해졌습니다.


  그런데 첫 단어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하늘의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증거장막 성전"이라 된 것을, 저는 어색하지만 계속 '~의'를 붙였습니다. 희랍어 원문에서는 이 단어들이 계속 속격(genitiv)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속격의 기본 의미는 전체와 부분입니다. 그래서 성전 인에 장막이 있고, 장막 안에 증거가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막과 장막은 그 기능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다만 요한이 성막과 성전 중에 한 어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토라 이야기의 이룸을 말하는 이 최종적인 국면에서, 광야 이야기와 성전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성전을 잃어버린 포로기 시대의 이야기들을 모두 아우르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막을 들으면 출애굽 한 씨알들의 광야여정이, 성전이란 말을 들으면 왕국시대와 포로기가 떠오릅니다. 즉 장막과 성전이라는 단어의 결합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아우릅니다.

 신천지라는 이단의 풀네임이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인데 여기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그들은 과천에 있었던 이단, 장막성전과 자신들을 분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씁니다. 그레서 역사 전체의 이야기를 이루는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라는 말이, 대한민국 과천에서 나타난 이단만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성경 전체의 역사가, 과거 대한민국 안에 있었던 이단들의 파벌싸움으로 국한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계시록 전체의 문맥에서, 이 시점에 증거 장막 성전이 출현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15장 초입에서 출애굽의 노래를 인유한 '어린양의 노래'를 보고 왔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49일만에 광야에서 마주하는 것은 서시내산입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천둥, 번개, 음성이 그 시내산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즉 홍해 도하이후 하나님의 처소를 만나는 것은 출애굽내러티브에서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성막은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성전 건축 역시 신명기 32장의 출애굽 노래이후 지어졌습니다. 즉 출애굽을 이루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 분의 처소를 만나는 일은 토라의 자연스러운 문맥입니다. 그런데 그 처소를 나타내는 단어 둘이 결합하고, 그 앞에 '증거'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왜?

 '증거'는 선언된 말과 짝입니다. 예언자를 통해 선언된 말이 증거를 통해 참 혹은 거짓으로 증명됩니다. 성전 안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를 '증거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안에는 모세의 출애굽 여정(곧 토라입니다)을 증명하는 세 가지 증거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처소가 드러났을 때, 그 명칭에 '증거'라는 말이 더해졌다는 것은 이 증거 장막 성전의 출현을 통해서 어떠한 '말'이 증명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란,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문제를 바로 잡으신다'는 심판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줄곧 예언했던 그 악에 대한 심판이 마침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하늘의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 나타나면서 말입니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출애굽의 목적이, 이스라엘을 붙잡고 있던 악의 세력을 파멸시키고,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과 함께 사시기 위한 것임을 기억한다면, 출애굽의 노래 이후, 하나님 처소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맥락입니다.

  그 심판을 대행하는 천사들의 묘사(세마포와 금으로 된 가슴띠)는 계시록 서두의 인자의 묘사와 같습니다(1:3). 즉 시편 2편이 말하듯, 이 심판의 주권이 쇠지팡이를 갖고 계신 예수께 있고, 이 최종적인 심판을 위해 보냄받은 일곱 천사들은 바로 그 인자로부터 보냄받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레위기 26:21
너희가 나를 거역하여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에게 너희가 지은 죄보다 일곱 배나 벌을 더 내리겠다.


  그레고리 빌은 심판마다 사용되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레위기 26:21의 인유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말씀을 생각하면, 이제 벌어질 일곱 대접의 심판은 불순종에 대한 심판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의 뚜렷과 그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연기로 채워졌고, 그리고 아무도 그 성전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악에 대한 최종적인 갚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전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성전의 직무를 보는 대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끝날 때까지는, 모두가 숨 죽이며 그 일을 지켜볼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금향로에 채웠던 그 기도들이, 이제 악의 중심부에 쏟아지는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5:5~8

  이 장면 이후에 나는 보았습니다, 하늘에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일곱 천사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일곱 재앙들을 그 성전으로부터 가지고서,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두르고서 그 금 가슴띠를 맸습니다. 그리고 그 네 생물로부터 그 일곱천사들에게 일곱 대접이 주어졌습니다,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사시는 하나님의 격함으로 채워진.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의 뚜렷과 그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연기로 채워졌고, 그리고 아무도 그 성전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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