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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12~21
그리고 여섯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물이 말랐습니다,
이제 여섯번째 대접 심판입니다. 지금까지의 대접 심판의 내용들을 다시 상기해봅시다. 먼저는 악성 종기가 있었고, 그 다음은 바다가, 그 다음은 샘이, 그리고 해(불), 짐승의 왕좌. 그리고 여섯번째 심판에 와서 다시금 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말라버립니다. 성경에서 물이 마르는 내용을 생각해봅니다. 먼저는 창조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바다 밖에 없던 땅구슬에서, 바다를 밀어내러 뭍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뭍이 사람의 공간 곧 땅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창세기 1:9,10).
또한 노아 역시 물로 뒤덮인 땅에서 그 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집트로부터 나온 이스라엘을 가로막던 바다, 그 바다가 갈라지고 땅이 말랐습니다. 그 길로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역시 요단이 갈라지고 그 땅이 말라서 이스라엘이 나아갈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물이 마르는 장면들은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갈 길을 막고 차지하고 있는 물(의 세력)이 말라야 하고, 하나님은 바로 이 일을 하십니다.
물이 마르는 사건 중, 오늘 본문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본문이 있습니다.
이사야 11:15
주님께서 이집트 바다의 큰 물굽이를 말리시고,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셔서, 유프라테스 강 물을 말리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것을 쳐서 일곱 개울을 만드실 것이니, 누구나 신을 신고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가 언급된 이 본문은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 사건 때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셨듯이, '유프라테스 강'이 마르게 될 것이라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유프라테스 강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흐르는 강으로 앗시이라, 바벨론 같은 고대 제국들의 수원(水原)입니다. 이사야 11장은 앗시리아의 패망을 예언하는 본문인데 이집트가 등장하는 것은, 성경이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세력의 멸망을 출애굽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출애굽 때처럼, 고대 제국을 관통해서 흐르는 저 유프라테스 강이 마를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은 마르고 뭍은 드러나 누구나 그 강을 건널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 역시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사야 44:27,28
하나님께서는 깊은 물을 보시고는 '말라라. 내가 너의 강물을 모두 마르게 하겠다' 하시며, 고레스를 보시고는 '너는 내가 세운 목자다. 나의 뜻을 모두 네가 이룰 것이다' 하시며, 예루살렘을 보시고는 '네가 재건될 것이다' 하시며, 성전을 보시고는 '너의 기초가 놓일 것이다' 하신다.
이사야 44장이 좀 더 구체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길을 가로 막는 세력이 "깊은 물"로 언표됩니다. 유프라테스 강은 실제로 고대 제국의 젖줄이었지만, 성경에서의 언급은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강이 마른다고 하나님께 맞서는 악의 세력이 끝장나는 것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깊은 물이 모두 마를 것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왕인 키로스(고레스) 2세를 말씀하십니다. 키로스는 유프라테스를 끼고 있는 거대 제국 바벨론을 멸망시킨 장본인입니다. 키로스 2세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뒤,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을 다시 본토로 귀환시켰습니다. 이때 무너졌던 성전이 다시 재건되고, 예루살렘에는 성벽이 둘려 도시의 면모를 되찾았습니다.
예레미야 51:36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보아라, 내가 너의 호소를 들어주며, 너의 원수를 갚아 주겠다. 내가 바빌로니아의 바다를 말리고, 그 땅의 샘들도 말려 버리겠다.
'바빌로니아의 바다'라는 표현은 실제 하나님께 대적하던 제국 바벨론을 의미함과 동시에, 성경은 바벨론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꼐 대적하는 세력을 언급할 때 사용합니다. 이미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제국 바벨론은 멸망했지만, 아직 예레미야의 예언이 유효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밧모섬은 이미 이뤄져 불필요한 예언들을 가져와 쓰고 있는게 아닙니다. 아직 예언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벨론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뿐 아직 악의 세력은 남아있고, 예언자들이 외쳤던대로 악의 세력은 증발의 결말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스가랴 10:11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올 때에 나 주가 바다 물결의 기세를 꺾을 것이니, 나일 강이 그 바닥까지 다 마를 것이다. 앗시리아의 교만이 꺾일 것이며, 이집트의 왕권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여러 구약 인유를 통해서 확인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바다'는 제국들과 연결지어 나타나는데, 이는 실제 국가임과 동시에 악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2) '바다가 말라버린다'는 말은 제국들이 실제로 멸망했었던 과거의 실제 역사를 가리킴과 동시에, 현존하는 악의 세력들도 멸망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3) 유프라테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악의 세력'으로 이해합니다.
4) 그리고 그 악의 세력의 멸망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 키로스 2세입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해로부터 (있는) 왕들의 길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즉 물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그 말라버린 땅을 밟고서 왕들이 진군할 길이 열립니다. 앞에서 바벨론의 패망은 키로스 2세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말씀드셨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철옹성같은 요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 침략에 의해 망할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도 마음 놓고 잔치를 벌이며 취해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무언가 전투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페르시아의 키로스 군대가 바벨론 도성으로 입성했습니다. 기이하게도, 바벨론을 관통하는 강인 유프라테스가 말라버렸고, 페르시아 군은 성벽이 아니라 그 말라버린 강바닥을 밟고서 도성 안으로 침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계시록에 적용됩니다. 유프라테스 강이 말랐으니, 이제 견고해보이는 요새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키로스의 부대가 그리로 들어가 바벨론을 멸망시켰듯, 이제 마른 강을 밟고서 왕들이 바벨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번에는 키로스 왕 때와는 달리 왕이 하나가 아닙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서부터 왕'들'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 들어갑니다.
예레미야 50:41
"보아라, 한 백성이 북녘에서 오고 있다. 큰 나라가 온다. 수많은 왕들이 저 먼 땅에서 떨치고 일어났다.
예레미야 51:11
너희는 화살촉을 갈고, 방패를 잡아라. 주님께서 메대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바빌로니아를 멸하기로 뜻을 세우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님의 성전을 무너뜨린 자들에게 하시는 복수다.
예레미야 51:28
너희는 세상 만민을 동원하여, 바빌로니아를 쳐라. 메대의 왕들과, 그 땅의 총독들과, 모든 지방장관과, 그들이 지배하는 모든 속국들을 동원하여, 바빌로니아를 쳐라.
'유프라테스'와 이 '왕들'에 대해서는 17장에서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여섯번째 대접 심판인 '유프라테스 강이 마른다'는 말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뒤에 깔고 있다는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용의 그 입으로부터 그리고 그
짐승의 입으로부터 그리고 그 거짓예언자의 입으로부터 (나온) 세 더러운 숨들을, 개구리들 같은. 즉 표적을 행하는 다이몬들의
숨들인데, 그것들은 온 거주지의 왕들에게 가서, 그들을 함께 이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그 전쟁으로.
일곱 머리 열 뿔의 붉은 용은 바벨론을 거처로 삼고서 물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프라테스 강이 말랐고, 이제 그 길로 많은 왕들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 쳐들어 올 것입니다. 이는 분명 짐승에게는 불리한 상황일텐데, 이상하게도 이 용은 이 전쟁을 오히려 조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사탄적 연합을 이루고 있는데, 그 입으로부터 더러운 숨결들이 나옵니다. 이 연합이 숫자 3으로 이뤄지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그 더러운 숨결을 개구리 같다고 묘사하는데 이 역시 출애굽에 대한 인유입니다. 출애굽 당시 개구리는 헤크트(Heqt)라는 이름의 신으로 숭배 되었습니다. 개구리는 영물이 아닐뿐더러 신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간이 숭배할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집트에 갇힌 이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그릇되게 읽었습니다. 요한이 '더러운 숨', '다이몬들의 숨'이라 말하는 것은, 어떠한 사고 방식과 연관된 말 같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피조물 중 무언가를 절대화시키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다이몬은 '귀신'으로 번역되고, 우리는 귀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다이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 다이몬이 신의 위치를 대신하려는게 문제입니다. 아름다움도, 강함도, 사람들의 연합도 필요하지만 이것들이 절대화되어 사람을 지배하면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게 됩니다.(그래서 '악'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군단'이라 칭한 집단 무의식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름다움 또한 질서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지, 그것 자체가 절대화되어 신의 형상을 띄게 될 때, 그 아름다움은 부정하고 추악한 결과를 낳습니다. 강한 것을 절대화시켜 마르스를 숭배하는 이들이 결국 전쟁을 벌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절대화시키려는 생각(더러운 숨들)은, 왕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물이 마른 길을 따라 자신들이 연합했었던 짐승을 공격하기 위해 진군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그 전쟁으로" 스스로 이끌립니다.
이 최후의 전쟁에 대해서는 스가랴 12~14장, 스바냐 3장, 겔 38,39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가랴 14:11~13
씨알이 다시 예루살렘에 자리 잡을 것이다. 다시는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민족을,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재앙으로 치실 것이다. 그들이 제 발로 서 있는 동안에 살이 썩고,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혀가 입 안에서 썩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보내신 크나큰 공포가 그들을 휩쌀 것이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저희들끼리 손을 들어서 칠 것이다.
씨알이 다시 예루살렘에 자리 잡을 것이다. 하나님의 씨를 통해 생겨난 새생명들은 다시금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공간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들은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의 관문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일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싸움을 걸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세력들을 재앙으로 치십니다. 그리고 스가랴 14:13에서는 그들이 내부분열을 일으킬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왕들과 짐승의 전투처럼 말입니다.
스가랴 13:2
그 날이 오면, 내가 이 땅에서 우상의 이름을 지워서, 아무도,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나는 또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
더러운 영에 관한 기록이 스가랴 13:2에서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들을 다시금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이 없어진다는 말은, 앞에서 개구리에 대해 설명했을 때 말했던, 그릇된 사고방식 자체가 없어질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전쟁"에 대한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끼어있습니다.
"자,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복되다, 깨나서 그의 옷들을 지키는 이는,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그의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옷과 부끄러움에 대한 권고는 3:18에서 라오디케아 에클레시아에게 주어진 바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여기 16장에서도 반복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만든 옷을 걸친 것부터 옷에 대한 장구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후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죽여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또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으며 채색옷을 입었다가, 그 옷이 강제로 벗겨지고 노예의 옷을 입었다가, 다시금 그 노예의 옷이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벗겨집니다. 누군가는 옷을 입히고, 누군가는 옷을 벗기려 합니다.
사람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벌거벗은 이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그냥 옷이 아니라 "빛나는 옷"으로. 그러나 사탄은 반대로 고자질하며, 우리가 감춰놓은 죄악들을 폭로하고자 합니다. 아니, 사탄은 좀 더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패러디하여 다른 옷을 준비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옷으로 죄악을 감출 수 있다고 속이며. 그러나 계시록 17장에서는 화려하게 치장한 음녀의 옷들이 벗겨지고 그 부끄러움이 드러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의 대권을 이양받으신 인자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사탄의 옷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그 옷으로 감추려 했던 죄악들이 낱낱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 날에 떳떳할 수 있는 이들은 깨끗한 숨으로 올바른 사고 방식을 지켜왔던,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일 것입니다. 인자께서 도둑처럼 오신다는 말을, 그 말을 직접 들은 요한이 인용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계시록 독자들을 일깨운 뒤에, 다시 최후의 전쟁에 대한 진술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함께 이끕니다,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 구절은 '아마겟돈'이라는 말의 원출처입니다. 본래는 '하르마겟돈'이라고 읽을 수 있는데, '하르'는 '산'이요, '마겟돈'은 '므깃도'라는 지명을 뜻합니다. 이 지역은 싸움이 잦았던 곳입니다.
열왕기하 23:29
요시아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아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아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사사기 4:3
야빈은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하게 억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 울부짖었다.
사사기 5:8
그들이 새 신들을 택하였을 때에, 성문에 전쟁이 들이닥쳤는데,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방패와 창을 가진 사람이 보였던가?
사사기 5:19
여러 왕들이 와서 싸움을 돋우었다.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의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움을 돋우었으나, 그들은 탈취물이나 은을 가져 가지 못하였다.
실제로 므깃도 지역에서 이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다기 보다는, '왕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므깃도를 인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공중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가 그 성전에서부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왕좌로부터 말씀하시길,
"되었다."
이제 마침내 일곱번째 대접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대상은 공중입니다. 하늘과 땅을 가로 막았던, 세상 모든 통치자들의 머리를 깔고 앉았던.
에베소서 2: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는 사탄을 일컫는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이 '공중'을 타격하고자 한다면, 출애굽 재앙 중 무엇이 가장 적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도 요한과 동일합니다. 단연 이것입니다.
여호수아 10:11
그들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도망하여 벳호론의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에, 주님께서, 거기에서부터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그들에게 큰 우박을 퍼부으셨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박으로 죽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찔려서 죽은 자보다 더 많았다.
우박입니다. 우박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펴는 여호수아 군대를 돕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물길이 열리고, 사탄이 파멸당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사람을 위한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때에 걸맞는 재앙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의 내러티브와 잘 연결됩니다.
그리고 공중에 우박이 쏟아지자, 하늘 성전에서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는 메시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적 말씀하셨던 바로 그 소리입니다. "되었다." 어쩌면 계시록은 사탄의 수족이 된 제국의 핍박 아래서 살고 있던 에클레시아들에게 이 '되었다'의 내용을 설명해주려고 집필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되었다"의 내용만이 절망한 사람을 일으킬 수 있고, 힘을 내도록 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체 무엇이 되었습니까? 십자가로 된 것은 악의 파멸입니다. 그 악의 파멸은 출애굽의 필수요쇼였습니다. 어린양의 죽음은 악의 수장을 박살냈고, 출애굽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두 개의 "되었다" 사이에 산다는 인식은, 자신의 현실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건, 과거에 그 날 "되었다"가, 미래의 찾아올 그 날의 "되었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 땅에 있던 이래로 없었던, 그렇게 큰 시대적 지진이. 그리고
큰 폴리스가 세 부분으로, 그리고 민족들의 도시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큰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서 그(바벨론)에게 하나님의
화의 격함의 포도주의 잔이 주어지도록 기억되었습니다.
일곱 대접 심판이 모두 이뤄졌습니다. 그러자 큰 지진이 이어집니다. 이 지진은 땅에서 최초로 벌어진 지진, 그러나 마지막인 지진, "큰 시대적 지진"입니다. 이 지진은 땅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그 진원지는 시내산 모티프로 가득한 하늘 성전입니다. 계시록에 나온 시내산 모티프들을 정리해봅시다.
요한계시록 4:5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치고, 음성과 천둥이 울려 나오고, 그 보좌 앞에는 일곱 개의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일곱 횃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요한계시록 8:5
그 뒤에 그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 채워서 땅에 던지니,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요한계시록 11: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요한계시록 16:18
그리고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 땅에 있던 이래로 없었던, 그렇게 큰 시대적 지진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천둥, 소리, 번개, 지진, 우박은 각자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줄곧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16장에 와서는 지금껏 사용되지 않은 "큰 시대적 지진"이 새로이 등장했습니다. 이 "큰 시대적 지진"에 의해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께 반역하던 큰 폴리스(도시)는 세 쪽이 나고, 민족들의 도시들은 떨어집니다. 이 '떨어짐'은 중간 하늘을 날아가던 두 번째 천사가 외치던 그 떨어짐입니다. 즉 큰 폴리스 바벨론과 그 바벨론에 동조했던 도시들은 같은 운명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 최후의 심판과 함께 찾아온 지진에 관해 성경 여러 구절들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이후 2,3절은 부활을 뜻하는 내용들)
학개 2:5,6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스가랴 14:4~7
그 날에 그의 발이 에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삼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그러나 도시를 세 조각 내버리는 이 큰 지진으로도 아직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 화의 잔을 마시도록 하나님 앞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이 모든 민족에게 그토록 먹였던 잔이, 이제는 하나님 화의 잔이 되어 다시금 바벨론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섬은 달아났고, 그리고 산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달란트만큼의 큰 우박이 그 하늘로부터 그 사람들에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그 우박의 재앙으로부터 비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재앙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섬'과 '산'에 관해서 계시록의 진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확인해봅시다.
요한계시록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6장에서 제 자리를 옮기는 섬과 산은 이제 아예 없어졌습니다. '산'은 '뿔'처럼 '세력'을 뜻하는 상징이고, '섬'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방민족'을 가리키는 유대적 표현입니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났고, 심판의 최종적인 국면이 묘사되는 가운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하나님을 비방하는 이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박 재앙이 특별히 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을 비방하는 이들의 완고함도 함께 커집니다. 30kg(1 달란트)의 큰 우박이 떨어지는대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창조세계의 주인인양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두려움과 영광의 길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6:12~21
그리고 여섯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물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해로부터
(있는) 왕들의 길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용의 그 입으로부터 그리고 그 짐승의 입으로부터 그리고 그
거짓예언자의 입으로부터 (나온) 세 더러운 숨들을, 개구리들 같은. 즉 표적을 행하는 다이몬들의 숨들인데, 그것들은 온 거주지의
왕들에게 가서, 그들을 함께 이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그 전쟁으로.
"자,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복되다, 깨나서 그의 옷들을 지키는 이는,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그의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는 그들을 함께 이끕니다,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리고 일곱번째가 그의 그 대접을 그 공중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가 그 성전에서부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왕좌로부터 말씀하시길,
"되었다."
그리고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 땅에 있던 이래로 없었던, 그렇게 큰 시대적 지진이. 그리고
큰 폴리스가 세 부분으로, 그리고 민족들의 도시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큰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서 그(바벨론)에게 하나님의
화의 격함의 포도주의 잔이 주어지도록 기억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섬은 달아났고, 그리고 산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달란트만큼의 큰 우박이 그 하늘로부터 그 사람들에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그 우박의 재앙으로부터
비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재앙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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