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요한계시록 14:1~5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시온산에 서 있는 어린양을, 그리고 그이와 함께 144*1000 이 그이의 이름과 그이의 아빠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미간들 위에 기록된.
새로운 환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환상에는 '시온'이 그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유대 맥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온이라는 단어가 나와도 별 감흥이 없겠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의 언급은 이제 이야기의 궁극적인 결말에 해당합니다. 토라를 맡았으나, 그 토라대로 살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하나님은 떠나셨고, 이후 포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포로기 동안 예언자들이 외치고 씨알들이 노래하던 것은, '왕의 귀환' 즉 하나님의 돌아오심이었고, 그 돌아오심의 장소가 시온이었습니다.
시편 2:6~9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네가 그들을 쇠지팡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왕이 돌아오시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먼저 악에 대한 처벌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악에 억눌렸던 자들은 자유를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재건되고, 다시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도성으로 일어섭니다. 이 모든 그림을 한 단어, 출애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악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권좌에 앉아 하나님을 패러디하던 파라오는 심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어 파라오의 손아귀를 벗어나고, 이후 땅과 성전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에게 이뤄집니다.
다시금 포로기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오랫동안 포로기를 지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본토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금 땅이 주어졌고, 그들은 부랴부랴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셨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인만 바뀌었지 그들은 여전히 포로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악이 처벌받았다고 보기엔 그들을 압제 하는 세력은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한 사람이 등장했고, 3년 반의 짧은 사역 이후,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나서 3일 뒤, 그가 부활했다는 소식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가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기이한 공동의 고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시온에 왕이 돌아오셨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고서, 우리는 요한 계시록 14장을 여는 저 첫 구절을 다시 읽어봐야 합니다. 보십시오. 시온산에 돌아오신 왕이 서계십니다. 바로 어린양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왕이 돌아왔으니 출애굽이 벌어집니다. 연대기순으로 기록되지 않은 계시록은 이미 왕이신 어린양으로부터 시작된 출애굽을 줄곧 묘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과 함께 5장에서 언급된 144*1000이 그와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미간에 짐승의 표를 받았던 이들과 대조됩니다. 그들의 미간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어린양이 아빠라 부른 그 분의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새 이름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우리는 이 계시록 14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사야 62장 전체의 맥락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사야 62장의 내용이 그대로 계시록에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2:1~12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님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또한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아주바)'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셰마마)'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헵시바)' 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쁄라)' 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님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 있는 팔을 들어 맹세하셨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
곡식을 거둔 사람이, 곡식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거둔 것을 먹고, 주님을 찬송할 것이다.
"거둔 사람이 자기가 거둔 것을 내 성소 뜰에서 마실 것이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 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계시록 14장과 마찬가지로 이사야 62장은 '시온'에 대한 언급으로 그 문을 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주목할 것은 그 이름이 온통 여자의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계시록 12장의 환상이 임신한 여자였던 것도 상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버림받거나,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아니라, 헵시바, 쁄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복된 여자로 이스라엘이 불립니다. 시온으로 돌아오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십니다. 따라서 계시록 14장에 등장하는 새 이름 역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새롭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름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 2:13에서 "받은 사람 외에는 알 수 없는 이름"이라 한 것은 남편에게 받는 아내의 이름이기 때문이며, 계시록 3:12는 '이름'을 통해서 마침내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과 인자가 하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름'의 심상은 결혼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부터 많은 물들 소리같고 큰 천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들은 소리는 기타연주자들이 그들의 기타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왕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네 생물 앞에서 그리고 장로들 앞에서. 그리고 누구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습니다, 만일 144*000이 아니라면, 그들은 땅으로부터 이미 매매된 이들입니다.
"나는 보았습니다"에 이어 "나는 들었습니다"로 이어집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144*1000의 사람들입니다. 새 이름을 받은 그들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는 시편 33편, 40편, 96편, 98편, 144편에 나옵니다. 이 시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읽어봅시다.
시편 98편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알려 주시고,
주님께서 의로우심을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어 보이셨다.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해 주셨기에,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다.
온 땅아,
소리 높여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여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여라.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아우르는 악기들을 타면서, 찬양하여라.
왕이신 주님 앞에서 나팔과 뿔나팔 소리로 환호하여라.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과
세계와 거기에 살고 있는 것들도 뇌성 치듯 큰소리로 환호하여라.
강들도 손뼉을 치고, 산들도 함께 큰소리로 환호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새 노래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입니다. 마치 출애굽 이후에 모세가 부르는 노래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 새노래의 시편들에서는 온 땅과 바다가 언급됩니다. 즉 창조세계 전체에 대한 출애굽을 노래합니다.
이 새 노래는 144*1000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부연설명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땅으로부터 매매된 이들"입니다. 이 "매매된"이라 번역한 단어는 희랍어로 '아고라조'입니다. 바로 앞 13:17에서 "만일 그 표 곧 짐승의 이름, 그 이름의 수를 갖지 않으면, 누구든 사거나 팔 수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다'가 아고라조입니다. 또한 계시록 5장에서 스물 네명의 장로들이 인자를 찬양할 때, 이런 가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피로 모든 지파와 말(혀)과 씨알과 민족으로부터 (보물을) 사드렸으며". 이 단어가 개역성경에서는 '구원'으로 번역되었는데, 다시 말해 이 본문에서 구원은 짐승이 아닌 하나님께 매매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문화와는 이질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사신 사람이 그의 신부될 사람임을 생각한다면, 이 매매는 이 신부를 얻기 위한 지불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144*000을 '구원받은 성도 전체'로 볼 것인지, 아니면 '어린양과 함께 싸우는 정예군'으로 볼 것인지의 이견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힌트가 될지 함정이 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여자와 함께 더렵혀지지 않은 이들, 즉 동정들입니다. 그들은 그이가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뒤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매매되어 하나님과 어린양께 (드릴) 처음 것으로 매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 안에 거짓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흠이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거룩한 전쟁에 참여할 때 성관계를 금했습니다(신명기 23:9~10, 사무엘상 21:5, 사무엘하 11:8~11). 게다가 이들 군대는 이스라엘 전체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144*1000을 구원받은 성도 전체가 아니라, "이것은 시작, 더 큰 수확이 올 것을 알리는 중요한 예고 표지판"으로 봅니다. 1
즉 이들이 동정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군대임을 보여주고, 그들이 흠이 없다는 것은 제물로서 희생을 무기로 하는 전투를 벌인 이들임을 보여줍니다. 즉 이들은 순교자들입니다.
이 144,1000은 계시록 7장, 여섯번째 인과 일곱번째 인 사이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4,5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이 찍힌 사람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장이 찍힌 사람은, 유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갓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구약에서의 인구조사는 항상 국가의 군사적 병력에 대한 계수"였고, "따라서 오직 군사적 연령에 속한 남자들만이 계수되었"습니다. 따라서 144,1000은 순교자들의 군대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이들은 "이방의 압제자들을 무찌르기 위해 유대의 사자 지휘 아래 소집"된 이들입니다. 2
따라서 이들 144,1000은 "어린양께 드릴 처음 것"이 144*1000이 되고(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아닙니다), 이후 "나중 드릴 것"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드려질 전체를 위해서 먼저 주께 바쳐진 제물, 순교자 군대로서 144*1000인 것입니다. 이들은 시온에서 벌어지는 악의 심판에 메시아와 함께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예레미야 2:2,3
"너는 가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이렇게 외쳐라.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젊은 시절에 얼마나 나에게 성실하였는지, 네가 신부 시절에 얼마나 나를 사랑하였는지, 저 광야에서, 씨를 뿌리지 못하는 저 땅에서, 네가 어떻게 나를 따랐는지, 내가 잘 기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나 주에게 거룩하게 구별된 나의 수확 중 첫 열매다.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 먹으면, 벌을 받고 재앙을 만났다. 나 주의 말이다.'"
첫 열매와 더불어 신부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예레미야 구절은 계시록 14장과 분위기가 잘 어울립니다.
야고보서 1:18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의 견해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야고보가 언급한 '우리'는 신실한 사람들 전체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음'에 관련된 구절들을 살펴봅시다.
이사야 53: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메시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종의 노래의 일부입니다. 즉 이 첫 열매들은 메시아와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유는 인자가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언급임을 기억해둡시다. 이 구절이, 우리가 내일 살펴볼 포도즙틀 구절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스바냐 3:11~14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를 이 도성에서 없애 버리겠다. 네가 다시는 나의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 이스라엘에 살아 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도성 시온아,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아, 즐거이 외쳐라. 도성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거룩한 도성, 왕이 돌아오신 시온에 남은 이들에 대한 묘사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4:1~ 5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시온산에 서 있던 어린양을, 그리고 그이와 함께 144*1000 이 그이의 이름과 그이의 아빠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미간들 위에 기록된. 그리고 나는 하늘로부터 많은 물들 소리같고 큰 천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들은 소리는 기타연주자들이 그들의 기타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왕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네 생물 앞에서 그리고 장로들 앞에서. 그리고 누구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습니다, 만일 144*000이 아니라면, 그들은 땅으로부터 이미 매매된 이들입니다. 그들은 여자와 함께 더렵혀지지 않은 이들, 즉 동정들입니다. 그들은 그이가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뒤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매매되어 하나님과 어린양께 (드릴) 처음 것으로 매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 안에 거짓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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