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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12:13~18
그리고 용은 자신이 땅으로 던져졌음을 알았을 때, 사내를 낳은 그 여자를 뒤쫓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두 차원은 분명 '인식'과 상관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은 자신이 땅으로 던져졌음을 "깨닫습니다". 즉 하늘과 땅은 공간적인 분리만이 아니라, 인식의 차이 곧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생각이 하늘에 이르는 사람이 있고, 생각이 땅에 갇힌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은 더이상 자신이 이상적인 차원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 더욱 이 땅의 차원을 망치고자 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요새 말하는 상상력이란, 현실에 없는 괴상한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면서도(땅) 현실과는 다른 무언가(하늘)를 생각하는 현실적인 힘입니다. 당신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4:18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서 뻔히 알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기에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을 통해 생각합니다. 그것의 되어야 함과 끝을 그려보고, 그것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저 보이는 차원에 갇혀 사는 이는 사탄과 처지가 다를게 없습니다. 사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하늘이, 오늘날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은, 하늘을 거절하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땅에 갇혀버린 용은 이제 "사내를 낳은 그 여자"를 추격합니다. "사내를 낳았다"라는 말에서 시편 2편의 울림이, "그 여자"에서는 창세기 3:15의 울림이 하모니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이 여자의 이름은 '시온'입니다.
이사야 66:8
누가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느냐? 누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길 수 있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이 오자마자 아이들을 낳았다.
결국 사탄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메시아를 낳은 에클레시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인해 자신의 머리가 깨질 것이라는 예언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디아볼로스는 그 이름대로 여자를 둘로 찢어 죽이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처음부터 물리적인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그의 공격은 언제나 속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에클레시아들이 사탄의 속임에 빠져 둘로 분열하고 찢기는 아픔을 많이 겪었습니다. 때로는 그 속임이 폭력으로 이어져, 사탄은 두 손 놓고 있음에도 메시아를 섬긴다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일들도 빈번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은, 사탄이 이제 더욱 가열차게 에클레시아의 인식을 왜곡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속임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만들고, 그 불신은 물리적 폭력이 되어 공동체를 둘로 찢어놓습니다. 이러한 공격 패턴이 사탄의 공격임을 끼인 시대를 살아가는 에클레시아는 반드시 주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자기의 장소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카이로스와 카이로스들과 카이로스의 반 동안 그 뱀의 얼굴로부터 떨어져 양육받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추격 속에서도 여자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고, 그 날개는 그녀를 광야로 데려갑니다.
출애굽기 19: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신명기 32:10~12
주님께서 광야에서 야곱을 찾으셨고,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려 오는 황야에서 그를 만나, 감싸 주고, 보호하고,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새끼들 위에서 퍼덕이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그 날개 위에 업어 나르듯이, 주님께서만 홀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은 옆에 있지도 않았다.
이사야 40:27~31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독수리의 인도를 받아 솟는 나, 솟는 우리. 왜곡된 이미지로 넘치는 사탄이 거니는 땅에서, 에클레시아는 타락한 땅에 하늘을 가져오는 참 성전이 됩니다. 그 성전에 진설병이 있듯, 성막과 함께 하는 언약 공동체에 빵을 내려주시듯, 그녀는 하늘에서 빵을, 바위에서 물을 공급받으며, 그 참담한 시절 속에서도 생육과 번성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에클레시아의 광야 생활에 대한 바울의 표현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1~4a
내 가족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이것을 모르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 가운델 지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세와 하나되어 구름으로 바다로 세례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숨에 속한 같은 음식을 먹었고, 모두 숨에 속한 같은 음료를 마셨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과 동행한 숨에 속한 바위에서 나온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메시아였습니다.
약속의 땅에 아직 이르지 못한 기간 1260일, 즉 초림에서 재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에클레시아가 살아갈 삶의 차원을 가리켜 요한 계시록은 '광야'라고 표현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녀는 자신의 하늘됨을 지키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 보호를 받습니다. 곧 생육과 번성입니다. 그녀는 출산을 거듭하여 하늘에 속한 자손들을 내고, 하늘을 품고 땅에서 고난을 감내해나가는 이들로 번성합니다. 아담에게 약속하셨던 생육과 번성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많은 자손들로 이어지고, 그 자손들이 오늘날 에클레시아를 통해 새로이 태어나는 숨님의 사람들, 다시 말해 예수의 증언(참)과 하나님의 말숨 지킴(희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뱀은 그의 입으로부터 여자의 뒤에서 강물같은 물을 쏟았습니다(던졌습니다), 그녀를 휩쓸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땅이 여자를(에게) 도왔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 입를 열어 용이 자기 입으로부터 던졌던 강물을 삼켰습니다.
계시록 12장의 환상은 출애굽 모티브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집트로 지칭되던 바다괴물, 독수리, 광야... 그리고 이제 출애굽 내러티브에서 빠뜨릴 수 없는 심상이 등장합니다. 물입니다. 이 물은 에클레시아를 핍박하는 용의 공격입니다. 마치 파라오의 패배 이후 광야로 인도되던 언약 백성을 막아섰던 홍해처럼 말입니다.
시편 32: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이 그 입으로부터 끄집어낸 물이란, 거짓일 것입니다. 온 세상을 속이는 그의 물 때문에 세상 전체가 마치 노아 때처럼 죽음으로 넘실댑니다. 거짓 속에는 생명이 없어, 모두가 그 물 속에서 수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신 창조세계가 그녀를 돕습니다. 거짓이 땅을 덮어도 땅이 간직한 참은 꼭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여호수아의 이스라엘이 요단을 밟으니 땅이 말라 그 길을 내어주었듯이 말입니다.
거짓을 따라 모세에게 반역을 꾀했던 고라 자손들이 땅에 삼켜지는 장면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민수기 16:31~34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딛고 선 땅바닥이 갈라지고,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들과 합세한 모든 사람도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고, 땅은 그들을 덮어 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회중 가운데서 사라졌다. 그들의 아우성 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우리마저 삼키려 하는구나!" 하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그리고 용이 여자에게 화를 냈고, 그녀의 씨의 남은 이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을 가진 이들과 전투 하려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다의 모래(암몬)위에 섰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탄의 반응은 포기와 낙담이 아닙니다. 더욱 분투에 불타 여자를 해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속임으로 되지 않자, 이제 폭력을 쓰고자 합니다. 이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박해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녀의 첫 아들은 하늘에 올라 왕으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남은 자손들이 아직 땅에 남아 있습니다. 요한은 이들을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을 가진 이들"이라 말하는데, '계명'이라는 표현 역시 출애굽과 상관이 있습니다. 계명은 광야 한 복판에서 받은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계명대로 산다는 말은, 곧 사탄과 싸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탄은 악의 진원지에 섰습니다. 페르가뭄 에클레시아에게 말씀하셨던 "사탄의 왕좌"가 떠오릅니다. '모래'로 번역된 말은 '암몬'이라고 읽는 희랍어인데, 이 표현이 암몬 족속과도 관련이 있을까 생각헀는데, 관련 내용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 계시록 12:13~18
그리고 용은 자신이 땅으로 던져졌음을 알았을 때, 사내를 낳은 그 여자를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자기의 장소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카이로스와 카이로스들과 카이로스의 반 동안 그 뱀의 얼굴로부터 떨어져 양육받습니다. 그리고 뱀은 그의 입으로부터 여자의 뒤에서 강물같은 물을 쏟았습니다(던졌습니다), 그녀를 휩쓸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땅이 여자를(에게) 도왔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 입을 열어 용이 자기 입으로부터 던졌던 강물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용이 여자에게 화를 냈고, 그녀의 씨의 남은 이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을 가진 이들과 전투 하려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다의 모래(암몬)위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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