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요한계시록 14:6~13
그리고 나는 중간 하늘에 날아가는 다른 천사를 보았습니다, 오는시대의 복음을 가지고서 땅에 앉은 이들 즉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씨알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왜냐하면 그의 심판의 때가 왔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창조하신 이에게 경배하라."
그리고 두번째 다른 천사가 뒤따르며 말합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큰 바벨론이,
그녀의 포르네이아의 격정의 음료로부터 모든 민족을 마시게 하던."
두 명의 천사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멸망'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사실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이 심판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쉽게 간과합니다.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심판'이라는 말은, '너희를 망하게 해주겠어'의 동의어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곧 '바로 잡음'이고, 이 바로 잡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께 경배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도 땅도 바다도 제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기 좋다'하셨던 하늘, 땅, 바다는 지금 온갖 무질서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연기로 뿌옇고, 땅에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온갖 괴물들이 올라오며 그 힘을 땅에 있는 사람들을 압제하며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잡힐 것입니다. 창조세계의 창조가 창조주의 손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멸망될 것은 멸망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복음이 기쁜 것은, 그 멸망될 것이 반드시 멸망당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멸망당해야 할 것을 이렇게 부릅니다. 바벨론.
이사야 21:9
그런데, 갑자기 병거가 몰려오고, 기마병이 무리를 지어 온다. 누가 소리친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조각한 신상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서 박살났다!"
이스라엘 12지파중 열 지파는 앗시리아의 손에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지파만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이들마저도 마침내 바벨론의 손에 넘어갑니다. B.C.597년의 일입니다. 하늘을 품고서 땅 위에 당당히 서있던 솔로몬 성천은 하루 아침에 돌 무더기가 되었고, 언약백성의 자부심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타락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무산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충격적인 일이 바벨론을 통해 벌어졌습니다. 언약백성을 모조리 포로로 만들어버린 최후의 도성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기세등등하게 여러 세력들의 경합지인 비옥한 초승달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초거대제국 바벨론이 무너진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의 말대로 바벨론은 그 뒤에 일어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이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무너지고도 아직 악(惡)은 건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국 하나가 무너진다고 해서 인류를 타락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어둠 자체가 심판받은 것은 아닙니다. 언약백성은 이름만 바뀐 제국의 여전한 포로로 남아 있었고, 따라서 저 이사야의 예언도 아직 유효합니다.
요한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두움의 혐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포르네이아의 격정의 음료로부터 모든 민족을 마시게 했다." 이 말은 우상제의를 묘사합니다. 신전 여사제와 성관계를 맺으며 술을 마시고 황홀경에 빠져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의 여사제 역할입니다. 모든 민족과 관계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모든 민족을 더러운 격정으로 빠뜨립니다. 아래의 두 예언 속에서 바벨론에 담긴 포도주가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51:7,8
바빌로니아는 주님의 손에 들린 금잔이었다. 거기에 담긴 포도주가 온 세상을 취하게 하였다. 세계 만민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미쳐
버렸다. 바빌로니아가 갑자기 쓰러져서 망하였다. 그를 애도하고 통곡하여라. 혹시 그가 낫지 않는지, 유향을 가져다가 그 상처에
발라 보아라.
호세아 4:11,12
"나의 백성은 음행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무에게 묻고, 그 요술 막대기가 그들을 가르치니, 그들의 마음이 음심에 홀려서 곁길로 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빗나간다.
'바벨론'이라는 이름 앞에 '큰'자를 붙인 최초의
인물은, 이 바벨론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입니다. 다니엘이 자신의 꿈을 풀어주자, 느부갓네살은 그 꿈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서, "하나님을 가장 높으신 분(다니엘 4:2)"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다른 꿈을 꾸었고, 그 꿈을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왕좌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게 될 것이라 해몽했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에게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열 두 달이 지나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다니엘 4:30입니다. "이 거대한 바벨론."
다니엘 4:30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세운 이 도성, 이 거대한 바빌론을 보아라!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영화와 위엄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다니엘의 말대로 왕좌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머리카락과 손톱은 길게 자라고, 소처럼 풀을 뜯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그러나 이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레미야 51:64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이 곳에 내리는 재앙 때문에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다' 하고 말하십시오."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이다.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은 이사야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도 예언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과 비슷한 부분은 짐승입니다. 바벨론은 사람을 위한 도성이 아니라, '짐승'을 위한 도성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 속에서 짐승이 상징하는 바는, 사탄의 손에 놀아나는 제국들이었고, 이것은 계시록에서 일곱 머리 열 뿔의 용으로 합쳐져 나타난바 있습니다.
예레미야 50:39
그러므로 바빌론 도성에서는 사막의 짐승들과 이리들이 함께 살고, 타조들도 그 안에서 살 것이다. 그 곳에는 다시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며, 그 곳에는 영영 정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 이웃 성읍들과 함께 멸망하였을 때와 같이, 바빌론 도성에도 다시는 정착하여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여기 복음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 질서의 바로잡음. '모퉁이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바벨론은 무너져 돌덩이들이 즐비한 가운데, 그 안에는 쓸만한 돌이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울만한 주춧돌은, 바벨론이 아니라 그 밖에서부터 올 것입니다.
예레미야 51:24
"그러나 이제는 내가 바빌로니아 땅과 바빌로니아 백성에게 원수를 갚겠다. 그들이 시온에 와서 저지른 모든 죄악을,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그들에게 갚아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온 세상을 파괴한 멸망의 산아, 보아라, 이제 내가 너를 치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에게 손을 뻗쳐서 너를 바위 꼭대기에서 굴려 내리고, 너를 불탄 산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네가 영원히 황무지가 되어 사람들이 너에게서 모퉁잇돌 하나, 주춧돌 하나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이사야의 말도 들어봅시다.
이사야 13:19~22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바빌론, 바빌로니아 사람의 영예요 자랑거리인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때에,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영원토록 사람이 살지 못하며, 오고오는 세대에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아랍 사람도 거기에는 장막을 치지 않으며, 목자들도 거기에서는 양 떼에게 풀을 뜯기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다만 들짐승들이나 뒹굴며, 사람이 살던 집에는 부르짖는 짐승들이 가득하며, 타조들이 거기에 깃들이며, 산양들이 그 폐허에서 뛰어 놀 것이다. 화려하던 궁전에서는 승냥이가 울부짖고, 화려하던 신전에서는 늑대가 울 것이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은 절대로 연기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번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을 경배하고 그의 아이콘을 경배하면,
그리고 그의 미간에 혹은 오른손에 표를 취하면,
그 자신도 자기 화 잔으로 곧장 부어지는
하나님의 격함의 포도주로부터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과 유황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리고 어린양 앞에서."
그리고 그들의 괴로움의 연기가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올라간다,
그리고 낮과 밤 동안 쉼이 없다, 짐승과 짐승의 아이콘에게 경배하는 이들은,
그리고 만일 누구든 그의 이름의 표를 취하면.
첫번째 천사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바로잡을 것이라 외쳤습니다.
두번째 천사는 그 바로잡음이 바벨론의 멸망으로 시작될 것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등장한 세 번째 천사는, 바벨론에게 타협한 이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벨론에 살고 있는 비인간성을 경배하고, 그것이 만들어낸 형상을 닮고자 하는 이들, 곧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인양 살아가는 이들은 그들이 마신 포도주의 댓가로, 이제 하나님 진노의 포도주 또한 마시게 될 것입니다. 불과 유황의 고통을,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괴로움이 현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오는시대에 이르도록 계속됩니다. 그들의 괴로움에는 안식이 없습니다. 짐승이 되고자 했던 이들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스스로 짐승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괴로움을 당할 것이라 천명합니다. 전통적인 지옥 묘사에 이 본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이 관용의 시대 속에서 사람을 두 부류로 칼 같이 나누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윤리적 책임 회피하려는 경향, 그리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도출되는 과학적 원리만을 진리의 기준삼는 오늘날은 지옥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저 역시 '영원히 고통당하는 고문실 이미지로서의 지옥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자신의 인격을 짐승에 일치시키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자신을 짐승에 동기화시키고, 비인간성을 곧 자신의 인격으로 내면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비인간성, 악(惡),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바로 잡으실 때, 그 어두움과 더불어 자신도 파멸될 것 같은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짐승이 다스리던 현시대나, 메시아 예수 오는시대의 문이 열린 오늘이나, 짐승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이들은 안식할 수 없습니다.
불, 유황, 연기의 이미지는 이사야의 에돔 멸망 예언에서 가져온 인유입니다.
이사야 34:9,10
에돔의 강들이 역청으로 변하고, 흙이 유황으로 변하고, 온 땅이 역청처럼 타오를 것이다.
그 불이 밤낮으로 꺼지지 않고 타서, 그 연기가 끊임없이 치솟으며, 에돔은 영원토록 황폐하여, 영원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에돔이 되려는 이들은, 그 멸망을 함께 겪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거룩한 이들의 견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이들과 예수의 신실함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록하라. 복 되다 주 안에서 죽임당해 죽은 상태가 된 이들은, 지금부터.",
"네", 숨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수고로부터 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들이 그들과 함께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짐승됨이 아니라 하나님 창조하신 참 인간됨을 추구하는데에 현실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 하나님과 계명을 지키기로 한 계약관계에 들어간 이들은, 메시아 예수처럼 신실하게 그 계약을 이행해나갑니다. 그것이 바로 신실함입니다.
이들은 죽어도 복됩니다.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복되다고 말한 호라티우스가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복되다는 소식에, 메시아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킨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하십니다. "네."
죽음 마저도 복된 그들, 생을 걸어 바벨론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안식이 있습니다. 그 안식은 그들이 살아서 살던 방식에 뒤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4:6~13
그리고 나는 중간 하늘에 날아가는 다른 천사를 보았습니다, 오는시대의 복음을 가지고서 땅에 앉은 이들 즉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씨알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왜냐하면 그의 심판의 때가 왔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창조하신 이에게 경배하라."
그리고 두번째 다른 천사가 뒤따르며 말합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큰 바벨론이,
그녀의 포르네이아의 격함의 음료로부터 모든 민족을 마시게 하던."
그리고 세번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을 경배하고 그의 아이콘을 경배하면,
그리고 그의 미간에 혹은 오른손에 표를 취하면,
그 자신도 자기 화 잔으로 곧장 부어지는
하나님의 격함의 포도주로부터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과 유황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리고 어린양 앞에서."
그리고 그들의 단련의 연기가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올라간다,
그리고 낮과 밤 동안 쉼이 없다, 짐승과 짐승의 아이콘에게 경배하는 이들은,
그리고 만일 누구든 그의 이름의 표를 취하면.
여기에 거룩한 이들의 견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이들과 예수의 신실함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록하라. 복 되다 주 안에서 죽임당해 죽은 상태가 된 이들은, 지금부터.",
"네", 숨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수고로부터 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들이 그들과 함께 뒤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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