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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13:1~10
그리고 나는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열 개의 뿔과 일곱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했고, 그의 발들은 곰 같았으며, 그의 입은 사자같았습니다.
"나는...보았습니다" 라는 표현은, 요한이 새로운 환상으로 넘어왔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새로운 환상 속에서 어떤 짐승을 보았습니다. 이 짐승은 우리에게 익숙한 다니엘 7장의 바로 그 짐승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7장에서는 네 마리의 짐승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네 마리가 한 마리로 융합된 모습입니다. 그 짐승은 다니엘 7장 짐승들의 머리수를 합한 것과 같은 수의 머리들을 가지고 있고, 부분적으로 다니엘 짐승들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외형은 표범을, 발은 곰을, 입은 사자 같았습니다. 이렇게 짐승이 더해진 것은, 지금 요한이 상대하고 있는 신성모독적인 권력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각 짐승들이 특정 국가를 가리키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큰 악의 실체에 대한 표상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용이 자신의 힘을 주었고 자신의 왕좌와 큰 엑수시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들 중 하나는 도살당해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의 상처(재앙)가 나았습니다. 그리고 온 땅이 그 짐승 뒤에서 놀랐고, 그 용이 짐승에게 엑수시아를 주었기에 짐승은 그 용을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며, 누가 이에 맞서 싸울 수 있으랴?"
이 짐승은 용과 '힘', '왕좌', '엑수시아'를 공유합니다. 이 "주어졌다"는 표현은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옛적부터 계신 분'과 '인자'의 관계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마치 인자에게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옛적부터 계신 분으로부터 주어지듯, 용으로부터 첫번째 짐승에게 힘과 왕좌와 엑수시아가 주어집니다. 인자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였다면, 이 첫번째 짐승은 불붙은 색깔의 용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 짐승의 머리에 있는 상처는 곧 사탄 자신의 상처입니다. 이 둘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창세기 3:15의 예언대로,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는 거짓과 폭력으로 무장한 사탄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이 첫번째 짐승은, 이 상처마저도 도살당한 어린양을 패러디하며 마치 상처가 나은 것으로 내보입니다. 여기서 '상처'라는 말은 희랍어로 '플라게'인데, 상처라는 뿐만 아니라 재앙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악에게 출애굽의 재앙이 떨어졌고, 이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환상속에서 첫번째 짐승은 상처가 회복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출애굽의 재앙이 효력이 없었다면, 메시아 예수를 통한 출애굽도 없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메시아 예수를 통해 오는시대로 나아온 이들의 존재 자체가 그 치명적인 상처의 증거가 됩니다. 즉 사람들의 출애굽이 곧 강한 자가 결박되어 있고, 이제 누구나 그 어두운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의 왕은 이 사실을 감추고 속이려 합니다. 자신이 건재한듯, 그 상처를 눈속임으로 없는 척하며, 마치 부활하신 어린양처럼, 자신도 도살당했지만 일어난 행세 합니다.
첫번째 짐승은 바로 이 '날조된 사실을 근거로' 용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진술을 패러디하여 붉은 용을 찬양합니다. 다음의 진실과는 달리.
이사야 27:1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좁고 예리한 큰 칼로 벌하실 것이다.
매끄러운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처치하실 것이다.
곧 바다의 괴물을 죽이실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큰 신성모독의 것들을 말하는 입이 주어지고, 그에게 42개월 동안 행할 엑수시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향해 신성모독의 말들을 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장막을 친 이들을 비방했습니다.
용의 부활이 참 부활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목숨이 붙어 있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그의 목숨은 42개월짜리, 이 기간 안에서만 기고만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서의 예언과도 들어맞습니다.
다니엘 7:25
그가 가장 높으신 분께 대항하여 말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괴롭히며,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까지 그의 권세 아래에 놓일 것이다.
한 때 두 때 반 때가 곧 마흔두달이며, 사탄의 활동은 이 기간으로 제한되었습니다. 메시아 예수를 통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가 아니면,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눈 앞에 악의 부활, 악의 재개를 볼 뿐입니다. 십자가의 예수에도 불구하고 온천지는 악한 일 천지가 아니냐고 반문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속고 있으며, 그 제한된 마흔 두달 너머를 생각할 줄 모릅니다.
용이 불러낸 이 첫번째 짐승의 방식은 비방입니다. 곧 하나님께 반하는 것들을 말함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곧 속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과 더불어 비방의 대상이 됩니다.
"하늘에 장막을 친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이 땅을 버리고 하늘 어드메에서 살게 될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 절대의 차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대어, 이 땅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아담들로서 이 땅의 주인들이니, 이 땅을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새로워짐을 시작으로, 이 땅 마저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에 장막을 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자신의 토대삼았고, 이제 그 토대가 이 땅을 덮을 일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거룩한 이들에 맞서 전쟁하는 것과 그들을 이기는 것이 주어졌고, 그리고 그에게 모든 종족과 씨알과 언어와 민족에 대한 엑수시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땅에 거주하는 이들은 그를 경배할 것이고, 그는 그의 이름이 창조세계의 시작부터 도살당한 그 어린양의 삶의 책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붉은 용과 그의 분신인 첫번째 짐승의 관계가 전지구적으로 퍼져갑니다. "모든 종족, 씨알, 언어, 민족"의 사중표현은 곧 인간의 차원 전체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제 어둠의 영향력은 인간의 차원 전체를 집어 삼켰습니다. 앞에서 첫번째 짐승의 작태가 비방이었으므로, 이는 모든 인간이 참을 드러내지 않고, 속이며, 거짓을 말하는 상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달기 위한 정치세력들의 공모처럼, 또한 살기 위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면 안된다고 말했다가 후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부정했던 것처럼, 그리고 부활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훔쳐갔다는 거짓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메시아 예수께서 그 공생애 내내 속임을 마주하셨듯, 에클레시아도 그러합니다.
비방하는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이끌고 거룩한 이들과 맞서며, 심지어 거룩한 이들을 이길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주어가 드러나지 않은 "주어졌다"를 신적 수동태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허용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마흔 두달 간만 그리 될 것입니다.
"도살당한 그 어린양의 삶의 책"에, 애시당초 창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적혀있지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복수가 아닙니다. 즉 우리 주변의,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수입니다. '그'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요? 거룩한 삼위일체를 패러디하고 있는 사탄의 삼자일체. 그 타락한 이름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의 시작과 이룸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구든 두 귀를 가졌다면 들으십시오. 만일 누구든 갇혀야 한다면, 갇힐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 칼로 죽임당해야 한다면 그는 칼로 죽임당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이들의 견딤이고 신실함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표현은, 더 알아듣는 이와 더 못알아듣는 이로 사람을 극명하게 나눕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분리를 위함이 아닙니다. 저 말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진리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알아듣는 이는 더욱 긍휼의 그릇으로서 알아듣지 못하는 이를 위해 자신이 알아들은 것을 몸적 삶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알게 된 이는 더욱 알아듣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알아듣지 못한 이는 자신이 알지 못한 그것을 그저 덮어두어선 안됩니다. 반드시 알겠노라 해야합니다.
요한은, 악의 정체에 대해서 보았던 환상을 다니엘서 인유를 통해 기술하며, 지금 로마의 지배 아래서 죽임당하고 있는 에클레시아 식구들의 진실을 밝힙니다. 요한은 환상과 인유들을 사용했지만, 저 구절에서의 갇힘은 정말 문자 그대로 갇힘이요, 칼은 정말 사람을 찔러죽이는 칼입니다. 로마 황제 숭배를 거절한다는 명목으로 감옥에 갇히고, 콜로세움으로 끌려가는 이들의 죽음은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요한이 밝히는 그들 죽음의 의미는 마흔 두달 아래서의 견딤이요, 신실함이었습다. 더 넓은 차원을 살아가는 하늘 장막들이기에 가능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요한의 다니엘서 인유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그러한 이들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 비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알아들은 사람은, 자신도 더욱 그렇게 견디며 신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요, 못알아들은 사람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사 속에서, 인류 전체가 생각해봐야 할 하나의 질문은, 바로 저 사탄 마저도 패러디해서 자신의 정당성 삼고 있는, 메시아 예수의 도살당함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각자 답변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창조주가 빚어주신 귀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요한 계시록 13:1~10
그리고 나는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열 개의 뿔과 일곱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머리들에는 신성모독의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했고, 그의 발들은 곰 같았으며, 그의 입은 사자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용이 자신의 힘을 주었고 자신의 왕좌와 큰 엑수시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들 중 하나는 도살당해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의 상처가 나았습니다. 그리고 온 땅이 그 짐승 뒤에서 놀랐고, 그 용이 짐승에게 엑수시아를 주었기에 짐승은 그 용을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며, 누가 이에 맞서 싸울 수 있으랴?" 그리고 그에게 큰 신성모독적인 것들을 말하는 입이 주어지고, 그에게 42개월 동안 행할 엑수시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향해 신성모독의 말들을 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장막을 친 이들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거룩한 이들에 맞서 전쟁하는 것과 그들을 이기는 것이 주어졌고, 그리고 그에게 모든 종족과 씨알과 언어와 민족에 대한 엑수시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땅에 거주하는 이들은 그를 경배할 것이고, 그는 그의 이름이 창조세계의 시작부터 도살당한 그 어린양의 삶의 책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누구든 두 귀를 가졌다면 들으십시오. 만일 누구든 갇혀야 한다면, 갇힐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 칼로 죽임당해야 한다면 그는 칼로 죽임당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이들의 견딤이고 신실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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