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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12:7~12
그리고 하늘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들과 맞서 싸우는. 그리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전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하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그들에게 속한 어떤 곳도 이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1~6절 환상의 주인공이 용을 피해 광야로 달아난 여자였다면, 이제 이어지는 내용은 용에 대해서 말합니다. 부제를 단다면, '어찌하여 용이 땅에 있게 된걸까?', '어찌하여 용이 여자를 괴롭히게 된걸까?' 정도로 하고 싶습니다. A.D. 1세기 에게 해 연안에 있는 일곱 에클레시아는 거짓말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칭 유대인들은 에클레시아로 침투해서 에클레시아의 정체성을 흐려놓으려 했고, 로마는 힘으로 짓눌러 로마 황제를 신이라 인정하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에클레시아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의문은 고대의 예언자들과 같은 물음이었습니다. "(메시아 예수께서 이기셨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이토록 고생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요한의 환상은 하늘의 차원과 땅의 차원을 시각화합니다.
먼저 하늘의 차원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을 가리키는 성경의 용례입니다. 물론 우리 머리를 두르고 있는 푸른 하늘도 하늘이라 부르지만, 그 뿐만 아니라 우주, 또한 보이지 않는 인격의 깊은 차원 역시 하늘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잠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세요. 하늘에는 해, 달, 그리고 셀 수 없는 별들, 날씨, 바람등 다채로운 것들이 놓였지만, 우리의 한정된 시야는 그 하늘의 다채로움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 뜬 물체는 모두 다 '별'이고, 바람은 보이지 않으며, 해는 눈이 부셔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차원에서 말하고 쓸 때 등장하는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는 우리가 하늘의 차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합니다. 하늘과 땅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상'과 '현실'이라 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하늘은 이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땅은 그 이상과 다른 현실의 차원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은 도달하지 못할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이뤄진 이상이요, 현실은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니라 이미 극복되었고 극복되는 중이며 극복될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전투가 있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 하늘의 무대의 주연은 미카엘입니다. 미카엘은 사탄의 라이벌 역할입니다. 흔히 사탄이 하나님과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미스매치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싸울 수 없습니다. 다만 허용된 범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높일 뿐입니다. 사탄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천사가 바로 미카엘입니다.
다니엘 10:20,21
그가 말하였다. "너는, 내가 왜 네게 왔는지 아느냐? 나는 이제 돌아가서, 페르시아의 천사장과 싸워야 한다. 내가 나간 다음에, 헬라의 천사장이 올 것이다. 나는 '진리의 책'에 기록된 것을 네게 알려 주려고 한다. (너희의 천사장 미가엘 외에는, 아무도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할 이가 없다.)
다니엘의 환상 속에서, 미카엘은 인자를 도와 헬라와 페르시아의 천사장과 싸우는 천사로 등장합니다. 헬라와 페르시아는 당대 '제국'이고, 이 제국은 우상숭배와 사람들을 지배하고 짜먹으려는 야욕으로 가득찼습니다. 이러한 제국을 대표하는 천사는 타락천사요, 사탄이거나 혹은 사탄과 한패입니다. 그리고 미카엘은 이러한 타락천사와 싸웁니다.
유다서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그러나 미카엘이 모세의 시체 문제로 사탄과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탄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을 처단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는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고, 사탄이 그 일을 모두 하기 전까지는, 미카엘은 사탄과 싸울수도 이길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미카엘이 이제는 사탄과 싸웁니다. 그것도 1:1이 아니라, 천사 부대를 이끌고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고, 마침내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란, 바로 메시아 예수가 자신의 몸을 찢어 십자가에 매달린 바로 그때였습니다. 하늘(이상)과 땅(현실)은 서로 상관없는 두 차원이 아니고, 그렇다고 한 차원을 말하는 두 가지 방식도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차원과 보이는 차원이 서로 다르지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로 움직입니다. 하늘로 말하면 미카엘 군대의 이김이요, 땅으로 말하면 인자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 결과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하늘의 차원에 더이상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다니엘서 2:35의 인유입니다.
다니엘 2: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쇠와 은과 금이 다 부서졌으며, 여름 타작 마당의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가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에 가득 찼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에 제국을 상징하는 신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상이 날아온 한 돌에 맞아 부숴져 가루가 되었고, 그 가루들은 바람과 함께 흔적도 없이 날아가 사라졌습니다. 즉 하늘은 드러날 것이 드러나고, 알려질 것이 알려져셔, 더이상 신상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사탄이 있을 곳이 없어졌습니다. 달콤한 속임으로 접근해서 죽음이라는 폭력의 끝에 이르도록 하는, 고발자의 자리가 하늘에서 박탈된 것입니다. 땅에서 메시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안정과 평화를 약속했던 제국의 허위가 낯낯이 드러났습니다. 지키는 자에게 생명을 주고, 어기는 자에게 죽음을 주겠다던 이스라엘의 토라도 그 효력이 뒤집혀 깨져버렸습니다. 사람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 그 처형식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 한 사람의 숭고한 인간성(곧 '신성'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뿐이었습니다. 이상의 차원에는 그것만이 남았고, 오늘날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대중문화는 바로 여기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땅의 차원을 기술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큰 용은 던져졌습니다, 시작부터 있었던 뱀, 둘로 찢어놓는 자(디아볼로스) 곧 사탄이라 불리는, 사람사는 전체를 속이는 자가 땅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큰 소리를 들었습니다, 말씀하기를,
큰 용과 그의 졸개들은 땅으로 던져졌습니다. 그 용의 정체는 에덴의 뱀. 그는 속임에서 시작해서 폭력에 이르게 하는 영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하나된 것을 둘로 찢어 던져버리게 합니다. 최초의 부부가 그의 속임에 빠져 서로를 탓했듯, 이스라엘이 그와 놀아나느라 하나님께 오랜 세월 불순종했듯. 그러나 이제 하늘만큼은 그가 둘로 갈라놓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이루어졌습니다.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바랄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바랄만 합니다. 요한은 사탄이 흩날려 사라져버린 하늘, 숨님이 시원하게 불어오시는 바로 그 하늘에서 큰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메시아의 출애굽이 되었다,
즉 우리 가족들의 고발자, 낮과 밤동안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고발하던 자가 던져졌다.
"이제...되었다." 이 말은 십자가에서 메시아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셨던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제'라는 말은 무언가 이제 시작된다는 말이며, 우리는 무엇이 시작될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입니다. 메시아 예수의 출애굽은 '하늘에서 이뤄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곧 십자가로 파라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 폭로된 파라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므로써,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새롭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속임과 폭력으로 끌고간 십자가에서, 인자는 참(진실)과 희생으로 이기셨습니다.
해가 떠있고 달이 떠있는 시간. 하루 온종일 사탄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이들의 처벌을 기대했습니다. 욥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욥이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고난을 겪은 게 아니라, 사탄이 그것을 무척이나 바랐기 때문입니다. 욥을 시험하고, 그 시험에서 욥이 미끄러지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옳았음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의 참과 희생은 더이상 사탄이 그들을 고발할 명분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처벌은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받으셨고, 심지어 이제 시작된 출애굽 속에서 그들은 날마다 고발할 거리들을 없애가고 있습니다. 예수의 얼굴 빛을 바라보는 그들을 사탄은 속일 수 없고, 외부에서 쏟아지는 폭력을 공동체는 왼뺨을 돌려대며 상쇄시켜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이겼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증언의 로고스를 통해,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그들의 프쉬케를 사랑하지 않았다.
분명 오늘 본문에서 이긴 것은 미카엘인데, 땅에서는 '그들'이 이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앞에서 언급된 '우리 가족들'입니다. 하늘에서 이뤄지기 전에 사탄이 그토록 고발하던 그들이, 이제는 십자가로 시작된 출애굽을 통해 이기는 이들이 됩니다. 즉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출애굽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을 땅으로 던져버리는 미카엘의 이김을 가져왔고, 이제 메시아께서 진실과 희생으로 열어재낀 출애굽은 그이의 가족들을 통해 반복됩니다. 그들도 진실과 희생으로 사탄을 이깁니다. 본문의 어린양의 피는 메시아 예수께서 보여주신 자기부인을, 그리고 증언의 로고스는 사탄의 속임을 걷어내는 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참과 희생의 방법은, 속이는 이들이 폭력을 동반할 때, 자신의 목숨이 죽음에 이를수도 있음을 전제합니다. 목숨으로 살아가는 옛사람, 프쉬케를 죽이는 일상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인자의 방식으로 사탄을 극복하는 새로운 현실을 써갑니다. 이미 이뤄진 이상이 이제 그들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너희도 좋게 드러나라, 하늘들아 그리고 하늘들 안에서 거하는 이들아!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 왜냐하면 디아볼로스가 너희들을 향해 큰 헐떡임을 가지고서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 안되는 카이로스를 가졌음을 알고서.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늘이 좋게 드러나라고 명령합니다. 이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면, 곧 창조주의 명령이요, 반드시 현실이 될 외침입니다. 사탄이 쫓겨난 하늘은 반드시 좋게 드러날 것입니다. 사탄의 자리가 없는 이상은, 그야말로 빛납니다. 옳이 살아 있습니다. 또한, 그 이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가 바로 그 "하늘들 안에서 거하는 이들"입니다. 곧 앞에서 "우리 가족"이라 언표했던, 메시아를 따라 참과 희생으로 죽기까지 사탄을 이기는 신실한 에클레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하늘에서의 이김, 곧 하늘에서의 이룸은 하늘과 하늘 안에 사는 이들을 좋게 드러냅니다. 이 '좋게'는 곧 창조의 좋음이요, 하늘들 안에 거하는 이들은 창조 본면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이들이 됩니다. 이들은 각자의 이상들을 가지고 메시아를 따르며, 다양하면서도 하나된 창조의 조화로움을 삶으로 구현합니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이 하늘에서 이뤄진 승리가 달가울 수 없습니다. 여기서 땅은 메시아 예수를 거절한 인간적 차원을 가리키는 표현이고, 앞에서는 "땅에 거주하는 이들"을 뜻합니다. 이들에게 어떠한 화가 있는지, 우리는 일곱 실 이야기와 일곱 나팔 이야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또한 바다는 악이 활개치는 땅의 영역입니다. 사탄은 자신에게 1260일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얼마 안되는 끼어있는 시간 속에서, 그는 어떻게든 땅과 바다에 살고 있는 이들을 타락시키고, 심지어 에클레시아 마저도 짓밟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깥 뜰만을 밟을 수 있을 뿐입니다. 메시아 예수 거룩한 몸의 발꿈치만 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고작 3년 반 동안만 허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 계시록 12:7~12
그리고 하늘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들과 맞서 싸우는. 그리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전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하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그들에게 속한 어떤 곳도 이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큰 용은 던져졌습니다, 시작부터 있었던 뱀, 둘로 찢어놓는 자(디아볼로스) 곧 사탄이라 불리는, 사람사는 전체를 속이는 자가 땅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큰 소리를 들었습니다, 말씀하기를,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메시아의 출애굽이 되었다,
즉 우리 가족들의 고발자, 낮과 밤동안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고발하던 자가 던져졌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이겼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증언의 로고스를 통해,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그들의 프쉬케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너희도 좋게 드러나라, 하늘들아 그리고 하늘들 안에서 거하는 이들아!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 왜냐하면 디아볼로스가 너희들을 향해 큰 헐떡임을 가지고서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 안되는 카이로스를 가졌음을 알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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