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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15~19

  그리고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 불었습니다.


  마침내 세번째 화가 닥쳤습니다. 곧 일곱번째 나팔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들이 하늘에 있었습니다, 말하길,

"나라가 되었다, 코스모스로부터, 우리 주와 그분의 메시아에게 속한.
(그 한 분이) 다스리실 것이다, 그리고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하늘에서 들리는 큰 소리들. 마침내 나팔이 모두 불렸고, "나라가 되었"습니. 나라는 여러 의미를 갖습니다. 1)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기도 하고, 2) 그 통치를 받는 사람들도 가리킵니다. 3) 더불어 그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사는 3) 땅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의미는 아브라함 언약이 체결된 창세기 12장 내러티브를 반영합니다.

  이 나라는 코스모스로부터 '출애굽'한 이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코스모스는 오늘날 '우주'라는 의미가 되었지만 본래는 스토아 학파에서 창조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곧 태초에 빛으로 시작된 "옛 창조세계"입니다. 그 옛 창조세계로부터 새로운 통치가,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통치영역이 생겨난 것입니다. 일곱번째 나팔에 대해서는 이미 요한계시록 10:7에서 언급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0:7

  "크로노스가 더이상 아니다, 그러나 일곱번째 천사의 소리의 날들에, 나팔을 불고자 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뮈스테리온도 이뤄졌다, 마치 그가 그 자신의 종들 곧 예언자들을 향해 복음을 선언하셨던 것처럼."


  즉 이 사람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와 땅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 이뤄진 하나님의 비밀들입니다. 


  그리고 스물 네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왕좌에 앉아 있다가, 그들의 얼굴들로 떨어졌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말했습니다.


  옛 창조세계로부터 에클레시아가 출범하자, 그들과 연결된 하늘의 천사들이 엎드립니다. 자신들의 왕좌에서 내려와 얼굴빛을 감추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말하길,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주여 하나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
계신 이 그리고 계셨던 이,
당신이 큰 힘을 차지하셨고,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라는 표현은 4장에서의 찬양과 같은 가사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네 생물이 불렀던 것을, 지금 네 생물은 보이지 않고, 스물 네 장로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4장에서는 "계셨고, 계시며, 오시는 이"였던 가사는 개사되었습니다. "계신"이 가장 앞으로 옮겨졌고, "오시는 이"는 "큰 힘을 차지하셨고,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로 바뀌었습니다. 즉 4장에서 앞으로의 일을 내다보았다면, 일곱 나팔의 결말이 나오는 여기 11장에서 그 예언의 찬양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민족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화가 왔고
카이로스가 왔습니다.
죽은이들이 심판받는,
그리고 당신의 종들 예언자들과 거룩한 이들과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작은 이들과 큰 이들이 상 받는,
그리고 땅을 파괴하는 이들이 파괴되는."


  에클레시아가 출범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자, 전세계의 씨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스물 네 장로들의 노래는 출애굽 이후 모세와 이스라엘이 부른 노래의 인유입니다.

출애굽기 15:1~18

그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를 불러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
...
주님께서 오른팔을 내어미시니, 땅이 대적을 삼켜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손수 구원하신 이 백성을 이끌어 주시고,
주님의 힘으로 그들을 주님의 거룩한 처소(가나안 땅)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 민족이 두려워서 떱니다. 블레셋 주민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에돔의 지도자들이 놀라고, 모압의 권력자들도 무서워서 떨며, 가나안의 모든 주민도 낙담합니다. 그들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의 팔 때문에, 주님의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주님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데려다가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주님, 이 곳이 바로 주님께서 계시려고 만드신 곳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소입니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70인역은 본문의 "떨며"를 '오르기조(provoke)'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요한도 70인역 그대로, 민족들이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밝혀진 비밀"을 전하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핍박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70인역 번역자들은 마케도니아의 지배 아래 있었고, 요한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요한이 지금 파트모스 섬에 유배당한 이유는, 계시록 서두에서 밝힌 바대로 "하나님과 메시아에 대한 법정 증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본문의 "떨며"이고, 요한은 그들의 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즉 메시아 예수의 출애굽이 이미 벌어졌고, 그 메시아 예수가 이루신 출애굽의 소식은(곧 십자가입니다) 민족들의 화를 불러옵니다. 아니, 오히려 민족들(유대와 로마)의 화가 그 출애굽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민족들이 메시아 예수의 출애굽을 감당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은, 그들이 '자기 민족의 생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우상들은, 그 우상을 섬기는 민족의 생존을 보장해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생존에 대한 갈망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정 민족의 생존'을 보장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창조세계 전체의 갱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민족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구원의 소식은, 민족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만 생존하려는 모든 시도를 그 근본부터 흔들어 버립니다.

  모세의 노래에서 계속 반복하는 것은, '성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거룩한 처소". 이 처소를 지구의 일부, 특정 지역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늘로부터 땅 전체로 오십니다. 즉 창조세계 전체가 성소가 됩니다. 그리고 그 창조세계 전체를 에클레시아가 상속받는데, 에클레시아는 민족의 생존을 넘어, 전체의 생존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개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부르짖던 옛생각을 바꾸고, 창조세계 전체를 위해 죽고 사신 메시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메시아에게 화를 내며 맞서는 것은, 최종적인 화, 하나님의 세번째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전체를 위해 죽고 살고자 하는 에클레시아가, 새롭게 된 전체를 상속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에클레시아에게 분개하는 민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화를 쏟으신다는 점도 주목해봅시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는 원수를 갚지 않아도 됩니다. 원수 갚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에클레시아를 대적하는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10장에서 "더이상 크로노스가 아니다"라는 강한천사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카이로스가 되었습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수평적, 인간적인 시간이고, 카이로는 시간을 뚫고 들어오는, 수직적, 신적인 시간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스물 네 장로의 찬양 속에서 그 하나님의 때에 벌어지는 일이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1) 죽은 이들이 심판받는 때입니다. 그리고 심판 받는 죽은 이들과는 달리,
  2) 다음과 같은 이들이 상 받는 때입니다.
  "당신의 종들 예언자(아모스 3:7의 인유)들, 거룩한 이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이들, 작은 이들과 큰 이들" 이렇게 4중 구조로 표현된 이들이 곧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종이자 예언자들이고, 거룩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크거나 작거나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보았던, '죽고 산 에클레시아를 보며 공포에 휩싸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던 이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차례입니다. 마지막 때에 삶을 걸어 예언자의 책무를 감당하는 에클레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던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7000명만 남은 게 아니라, 7000명을 제외한 모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을 파괴하는 이들이 파괴되는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이들은 파괴될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원칙 그대로입니다. 2)에서 말하는 '상'은 영광의 부활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롭게 된 창조세계를 다스릴 자격으로서의 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파괴당함이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둠의 권세인 사탄의 파괴당함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 파괴당함을 심판의 부활로 읽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사탄을 통해 죄가 들어왔고, 그 죄는 죽음을 야기시켰습니다. 죽음은 사탄의 영향력을 0으로 만들면서도, 부활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저는 생각하면할수록 '죽음-부활'이라는 방법만이 악을 일소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악인에 대해서 심판의 부활이 있다면, 그 부활은 악을 일소하는 측면이지, 사람을 저주하고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나팔 심판 내내 반복되었던 1/3에 대해서도 생각해봅시다. 요한은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다. 1) 심판받는 죽은 이들, 2) 상받는 에클레시아, 3) 파괴되는 땅을 파괴한 사람들. 그런데 이 1/3에 관해서는 스가랴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3:7~9

"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내가 온 땅을 치면, 삼분의 이가 멸망하여 죽고, 삼분의 일만이 살아 남게 될 것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그 삼분의 일은 내가 불 속에 집어 넣어서 은을 단련하듯이 단련하고, 금을 시험하듯이 시험하겠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들에게 응답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그들은 나 주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스가랴에서는 1/3에 대해서 말합니다. 목자를 쳤을 때, 양 떼가 흩어질 것이고, 그 흩어지는 이들도 하나님께서 치실 것인데, 1) 1/3은 멸망하여 죽고, 2) 1/3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1/3은 금과 은이 시험받고 단련되듯 하나님의 씨알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만일 요한이 나팔 심판을 기록하면서 스가랴서를 인유한 것이라면, 멸망당해 죽는 이들은 땅을 파괴하는 이들이고(이들은 자신들이 행한대로 돌려받습니다), 살아남는 이들은 심판받는 죽은 이들, 그리고 에클레시아가 하나님의 씨알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전 안에서 그분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보입니다. 언약궤의 등장은 우리를 여리고성 이야기로 데려갑니다. 일곱째날, 일곱 나팔소리와 함께, 언약백성에 맞서던 큰 성 여리고가 무너졌고, 그 때 언약백성의 선두에는 하나님의 왕좌인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6:4~9


제사장 일곱 명을, 숫양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궤 앞에서 걷게 하여라.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때에 백성은 일제히 진격하여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언약궤를 메고 서시오. 그리고 일곱 제사장은 제각기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주님의 궤 앞에 서시오." 또 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성을 돌아라! 무장한 선발대는 주님의 궤 앞에 서서 행군하여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한 대로, 제각기 숫양 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은 주님 앞에서 행군하며 나팔을 불었고, 주님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랐다. 또한 무장한 선발대는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보다 앞서서 나갔고, 후발대는 궤를 따라갔다. 그 동안 제사장들은 계속하여 나팔을 불었다.


  하나님의 왕좌가 이제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왕좌가 이제 '드러났습니다'.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스물 네 장로들의 찬양하고, 이제 나팔을 다 불자 땅에 드러난 언약궤가 드러냈습니다. 그럼 이제 여기고성 전투 이야기에 따라 남은 일은, 큰 성 바벨론이 모조리 무너지는 일이고, 그 성이 무너진 자리를 언약백성이 차지할 일입니다. 아직 계시록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언약궤가 드러난 것은 마침내 찾아올 끝의 시작일 뿐입니다.


  요한은 다시금 그 심판의 진원지를 보여줍니다. 그곳은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구절을, 일곱 인을 다 땠을 때 봤습니다.


요한계시록 4:5a

왕좌로부터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이 나왔습니다...


  번개들, 소리들, 천둥들에서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지진과 큰 우박. 심판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다시금 하나님 앉아계신 왕좌를 보여주는 이유가 있겠지요.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1:15~19

  그리고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 불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들이 하늘에 있었습니다, 말하길,

"나라가 되었다, 코스모스로부터, 우리 주와 그분의 메시아에게 속한.
(그 한 분이) 다스리실 것이다, 그리고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그리고 스물 네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왕좌에 앉아 있다가, 그들의 얼굴들로 떨어졌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주여 하나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
계신 이 그리고 계셨던 이,
당신이 큰 힘을 차지하셨고,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민족들이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화가 왔고
카이로스가 왔습니다.
죽은이들이 심판받는,
그리고 당신의 종들 예언자들과 거룩한 이들과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작은 이들과 큰 이들이 상 받는,
그리고 땅을 파괴하는 이들이 파괴되는."


  그리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전 안에서 그분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번개들과 소리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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