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잘못 생각해왔던 것을 정정합니다.
그간 저의 주장은,
1) 인간사의 문제가 생존의 문제요,
2) 생존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3) 고로 이 죽음의 문제가 인간사의 문제의 본질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존하고자 하고, 그 생존이 악을 만들어낸다는 도식을 오랫동안 믿고 사용했으나, 저는 이것이 세밀하지 않은 주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시작은, 죽음 때문에 악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악했기 때문에 죽음이 선고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 싫어서 생존에 매달리는 것은, 자신에게 떨어진 판결에 대해서 불복하는 범죄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판결은 이미 떨어졌습니다.
죽음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
죄책과 죄책감'의 문제를 숙고하게 합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죄책은 감정을 씻어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하지 않을 때', 여기에서 죄책감이 생깁니다. 나는 이 단어에서 '감(感)'자가 붙었다하여, 죄책이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죄책'입니다. 잘못에 대한 실질적 책임입니다.
그 잘못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옳은 것을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는데서 존재의 비참함을 느끼고, 이 느낌은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피고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의 죄목은 인간이 인간답지 못했다는 것이 죄목입니다.
이 죄목이란 우리가 '윤리'라 부르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존재하나, 그 인간이 인간답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이 말은 죽음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는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의 저의 생각과는 달리) 윤리의 문제가 먼저요, 죽음의 문제가 나중입니다. 우리가 윤리라 부르는 것은 인간사의 방편으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판결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생존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신의 판결을 거절하는 사람들입니다. 한편으로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이들은 모범수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판결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감옥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말하는 물리적 세계입니다. 석가가 말했던 윤회의 수레바퀴입니다. 노장사상이 말하는 자연입니다. 주희가 말했던 역(易)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자신들을 필멸하는 인간이라 생각했던 것이나, 스토아 사람들이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서 닫힌 우주를 구상했던 것이나, 에피쿠로스가 죽음은 잊고 내면의 평안함을 추구하자고 했던 이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판결을 어찌할 수 없는 닫힌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1) 인간다움을 잃은 인간 대표에게 죽음이 선고되었다.2) 모든 인간은 죽게 되었다. (이는 윤리적 문제와 직결된다)3) 그 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이 곧 생존에 대한 집착이다.4) 따라서 생존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가속화시킨다.(윤리적 실천의 파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간은 이 신의 판결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역(易)'의 정체입니다. 이 '역'안에서 우리는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만, 모든 것이 허(虛)와 무(無)로 돌아갑니다. 좋은 괘가 나오든, 나쁜 괘가 나오든, 그것은 죄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만물이 다 지쳐 있음을 사람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해 아래 새 것이란 없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새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것, 우리보다 앞서 있던 것이다.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 세대도 그 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