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임명하시다(3:7~1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 쪽으로 가시는데 갈릴리에서 온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도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고 많은 무리가 따라왔다.
예수께서 무리가 위험하게 밀려들자 제자들에게 배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는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만지려고 밀면서 다가왔다. 더러운 영이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자신이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산으로 올라가셔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시자 그들이 예수께로 나왔다. 예수께서 열두 명을 임명하시어('사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사자로도 보내고, 귀신을 물리칠 권세도 주셨다. 열두 명을 임명하시면서 시몬은 '베드로'라 명하시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너게라고 명하셨다. 나머지 제자들은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예수를 넘겨 준) 가룟 사람 유다였다.
1. 바다에서
오늘 본문은 염장 본문. 우리를 산과 바다로 인도합니다. 먼저 어디부터 갈까요? 바다부터!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 쪽으로 가시는데 갈릴리에서 온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가시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3먹의 소식을 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 뒤, 갈릴리의 예수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가만 보니, 한 동네 사람들이 아니군요.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도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고 많은 무리가 따라왔다.
지도를 확인합시다.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 그리고 두로와 시돈이 가리키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우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대지 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살았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었는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전국'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전지역이 예수를 향한 열망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서부터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을까요? 먼 지역에서부터 짐 싸들고 예수를 만나러 이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분명, 예수가 나를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믿는 누군가였을 것입니다. 즉, 병자들, 죄인들, 세리들, 여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전국에서부터 예수께 몰려들었습니다. 악에 짓눌려 신음하는 백성들이 예수께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는 바다에 계십니다.
그 악에 짓눌린 포로들도 바다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람을 사람답지 않게 하는 악 역시 바다로 모이고 있습니다. 괴롭기 짝이 없는,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그 수많은 일들이 괴로운 사람들과 함께 예수께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바다로 말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자, 예수는 신선한 방식을 떠올렸습니다. 즉, 사람들을 바닷가에 세워두시고, 자신은 배를 띄워 물 위에 서셨습니다. 바다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 바다 위의 배.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는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만지려고 밀면서 다가왔다. 더러운 영이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자신이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령하셨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치유!
그리고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에 짓눌린 사람들은 악에서 해방을 얻고, 그 와중에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폭로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어디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그 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세계를 뒤덮은 악! 그 악의 틈바구니에서 한 곳 으로 모여드는 무수한 동물들, 그리고 가족들, 하나의 배로 모여드는 하나님의 것들. 그 배에서 만나는 구원.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서 벌어지는 악한 세력들의 섬멸.
이것은 마치 출애굽 이야기도 생각나게 합니다. 바다로 돌진해가는 사탄의 군대, 그러나 사탄의 군대도, 하물며 바다마저도 해칠 수 없는 한 사람,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서 벌어지는, 악한 세력들의 섬멸.
당시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바다에서 새로운 방주의 출현, 새로운 출애굽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산에서
그리고 성서 저자의 카메라는 바다를 지나 새로운 장면을 담기 시작합니다. 바로 산입니다. 이 새로운 방주의 출현, 새로운 출애굽의 사건이 벌어지고, 예수는 산으로 향하십니다. 이것은 우연입니까?
생각해보면, 노아도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갔습니다. 전세계가 모두 바다가 되었을 때, 그 바다를 지난 방주가 다다른 곳은 아라랏 산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세도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뚫고, 마침내 다다른 곳은 시내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다를 지나 오른 산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바다를 지나 산에 오르시는 예수의 머리 속에 이것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노아의 경우부터 생각해봅시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멈췄고, 그 산에서 벌어진 일이 창세기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에 있던 자들과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먼저는 아담의 일이 너희에게 일임되었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살펴봅시다.
(창 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그리고 노아의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산을 울립니다.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창 9:2)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아담의 언약과 다소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언약이 노아에게 주어집니다. 어디에서? 산에서! 즉, 산은 언약이 이어지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최초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 산에서 역사의 전달자들이 임명되고, 그들은 세상을 하나님 뜻 따라 다스릴 새로운 아담이 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당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 19:3)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가니,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출 19: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출 19: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출 19: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내가 세워준 언약을 지키면!" 이것은 아담 때부터 이어지던 그 언약이 노아를 지나, 이제 아브라함 자손인 이스라엘에게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간 사람들은 언약의 대상입니다.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간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어, 언약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은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갔고, 그 산에서 하나님 언약의 대상자들이 된 것입니다. 역사의 전달자, 세상을 하나님 뜻 따라 다스리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는 산에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만 산에 있지 않습니다. 열 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예수께서 산으로 올라가셔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시자 그들이 예수께로 나왔다.
예수께서 열두 명을 임명하시어('사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사자로도 보내고, 귀신을 물리칠 권세도 주셨다.
예수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이 산으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바다를 지난 사람들입니다. 악을 뚫고 나아가는 예수와 함께 했던 자들입니다. 누구입니까? 제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그림이 더 더해집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포로상태입니다. 신의 뜻을 어긴 대가로, 그들은 유배 상태입니다. 다윗 시절 찬란하게 빛나던 12지파는 모두 찢기고 없어져, 이제 겨우 두 지파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말 그대로 금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절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에스겔서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 에스겔서는 포로기에 쓰인 예언서인데, 포로기가 끝나고 해방이 찾아오면, 찢기고 상한 열 두 지파가 다시 회복된다는 예언을 담고 있었고, 이 내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열 둘을 불러내십니다. 악을 지나, 언약의 산으로 올라온 열 둘을 불러내십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 이 열둘은, 언약의 대상자요, 역사의 전달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게 부어졌습니다. 그 뜻은, 아담과 노아,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나, 예수를 통해 이들에게 전해진 바로 그 뜻이었습니다. 이 산에 모인 열 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릴 새로운 아담으로의 열 둘입니다! 즉, 이들을 통해 타락을 뒤집힐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아담에 이어, 하나님과 함께 다시 세상을 가꿀 청지기들이 새롭게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사도'라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명을 임명하시어('사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사자로도 보내고, 귀신을 물리칠 권세도 주셨다.
'사도'라는 뜻은 보냄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부인을 찾기 위해 보낸 그 종처럼, 하나님은 이제 이 열 둘을 보내십니다. 1) 그들은 왕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2) 이 왕의 소식을 다른 이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3) 왕에게 대항하는 더러운 인격들을 물리칠 신적인 권세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에스겔서 예언의 성취, 그러나 이 기쁜 장면은 이 열 둘 중에 가롯유다가 끼어 있다는 복선을 남겨둔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3. 여기에서
악의 세력과 대면하는 바다를 지나,
산에 올라와 새로이 언약을 받는 사람들
거기에 예수와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에게 맞게 재구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열두 명을 임명하시어('사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사자로도 보내고, 귀신을 물리칠 권세도 주셨다.
저 위에 언급되어 있는 사도들은, 왕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러운 악들을 일소하는 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달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바다를 지나 산에 올라온 것과 같습니다. 어떤 바다를 지났습니까? 죄악의 바다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숱한 더러움과 거짓의 바다입니다. 예수를 인정하는 자는, 바로 그것을 지나 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무수한 악의 세력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또한 그는 산에 올라 언약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산에 올랐습니까? 골고다, 해골의 산입니다. 그 산 위에서 예수를 믿은 그에게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그 위대한 왕이, 그와 함께 하고, 그를 보내며, 그에게 힘을 주십니다. 바로 그 십자가에서부터 그 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산에서 그는 역사의 전달자로 임명받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아담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관통하여, 그가 왜 사는지의 이유가 바로 그 산에서 밝혀졌습니다. 노아, 출애굽, 에스겔 모든 역사와 예언이 바로 그 산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그 산에서, 언약의 산에서, 이 땅을 하나님 뜻 따라 다스릴 새로운 아담, 예수의 제자로 임명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당신에게 말입니다.
그 언약의 의미.
마치 노아의 자손처럼, 우리는 죄 악에서부터 다시 인간의 삶을 시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처럼, 죄악과 더러움의 한가운데에 열린 길을 통해 우리는 그 악을 지나왔습니다.
마치 에스겔의 예언처럼 포로생활의 종결을 선언할 새로운 열 두 지파가 우리입니다.
역사가 말해왔던, 바로 그 회복의 현장이 바로 나의 삶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물을 지나 예수의 십자가에서 삶을 확인한 당신을 다시 덮어서 수장시킬 수 있는 악의 세력이 있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가치, 당신이 받은 언약의 의미가, 오늘 당신이 살아갈 어떠한 의미를 주지 않은채 희미하게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방주를 타고, 죽음을 넘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예수를 따라, 홍해를 지나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그 분의 언약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 언약에 충실한 것이, 곧 진정한 나입니다.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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