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οὖν) : 이 표기 뒤에 바울은 항상 명령문을 사용한다. 미리 앞서 그들의 처한 상황에 맞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후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하라', 라는 표현으로 항상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반응하여 너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라.' 매일의 삶도 '그러므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이 이러하므로, 나의 마음과 행동을 이에 맞게 바꾸는 것. 복음을 사랑하고 깨닫는 자의 의지를 숨님이 도우신다.
* 먹는 것, 마시는 것, 명절, 초하루, 안식일: 할례와 연속선상에 있는 구약의 율법을 뜻한다.
앞서 나왔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무할례가 더이상 정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무할례가 더이상 죄로 정죄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마음에 새기는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가 새로운 율법이 된다. (마음의 법) 그러므로, 죄를 판단하는 잣대를 바꾸라는 말이다. 이 잣대는 '그리스도를 아는 마음'이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제 너희가 종 되지 않고 나의 친구되었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더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이기 때문에 선에 다가간다. 그 빛을 사랑하기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사랑의 굴복이다.
* 곧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요구했던 음식에 관한 규례, 명절 지킴과 안식일들을 지키는 규례 등이 더이상 정죄의 잣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만 세상에 밝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십자가다.
이것들은 그림자였다. 그리스도로 인해 다가오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게 될 총천연색의 삶 뒤안의 그림자였을 뿐.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눈으로 그 주인공을 바라보아야 하지, 더이상 그림자를 응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중심에 그림자의 참 뜻과 중심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 "사귐"이자 "친구됨"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절대 무법자의 방종을 말하지는 않는다.
* 그러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몸"은 성도들의 모임, 교회이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롭게 된 나 하나의 행동과 결정은 그리스도의 것인 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의지를 행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참 뜻이다.
수박의 겉 껍질과 과육의 깊이로 비유한다면, 율법에서 마음의 율법은 이렇게 깊은 차이를 드러낸다. 마음으로 향해야 그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에서부터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같은 것을 뜻하셨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나 각종 예배와 규칙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율법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각 지체들이 순종하고 사랑으로 하나되라는 하나님의 마음의 법에 순종하기 위해 몸의 질서와 틀이 세워져왔던 것이다. 이 사랑의 걸음 마다 하나님의 숨이 도우셨다. 그러므로 나라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외적인 틀은 좀 다르겠지만, 이것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정신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의 전통이다. 구약의 백성들도 이 모습을 가졌다. 정신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