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죄: 우리의 살몸이 하나님을 향하여 순종할 수 없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마음과 분리되어 따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 내가 왕이 되어, 정욕대로 욕망을 따라 선택하며 나의 논리대로 세상을 지배하려 합니다. 이 몸의 비뚤어짐은 곧 몸의 무할례입니다. 이것은 따지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는 할례가 없는 정신적 무할례 상태와 같습니다. 온 민족이 할례에 참여하지 않은 무할례자들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질서, 하나님의 법과는 상관 없이 생존하여 번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 무할례 상태의 결과는 '죽어있는' 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른 죽음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근원과의 연결이 끊긴 유기체는 자연히 죽음을 맞게 됩니다. 참 인격과 연결이 끊어진 수많은 인격들은 깨어진 서로의 인격을 거울 삼다가 근본을 잃고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인격이 죽어가게 됩니다. 누가 높은지를 겨루는 권력 다툼, 착취, 방탕함, 소외, 죽음에 이릅니다. 깨어진 인격을 보고 자신의 인격을 보는 자는 그 원형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떠난 상태, 바로 살아 있지만 '죽어있는' 상태는 마음 뿐만 아니라 몸의 생명도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향합니다.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까닭에, 그 생명을 의미있게 하지도 못하고, 그 생명들을 다스리는 자연 원칙들에 의해 지배를 당합니다.
*최초의 것들과 힘있는 것들: 만물을 다스리는 원리나 물질, 혹은 이치가 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 마저도 이 원리에 종속되며, 이것들이 마치 모든 세상 위에 가장 힘 있는 것들 처럼 제시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거슬러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시간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죄를 지은 이후 인간은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간을 지배하는 것들이 힘 있다 하는 것들입니다. 또 다른 최초의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흙 입니다. 만물은 흙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흙을 다시 말하면, 유기체가 가진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단위를 가지고 현대에는 무엇을 합니까? 복제와 치료, 또 생명의 탄생에 까지 개입하며, 생명을 주관하려고 합니다. 그 밖에 통치로 향하게 하는 모든 수단들이 바로 힘 있는 것들입니다. 모든 것 위에 가장 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이렇게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인간들이 생명을 다스릴 때에는, 자비함 없이 이 생명을 값으로 환산하고 짓밟고 악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통치, 모두를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통치입니다.
*법령으로 쓴 조서: 신율에서 몸과 마음이 떠나 살았던 우리를 고발하는 조서가 쓰여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증거하는 법적인 서류입니다. 여기서 '조서'는 헬라어로 보면 '손으로 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에 반대되는 말이 하나 등장합니다.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가 바로 그것입니다.(2장 6절) 궂이 '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나의 죄를 '손으로 쓴 것'을 지우는 그 손은 본문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할례에 적용해 다시 말하면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는 역으로 '하나님의 손으로 행해지는 할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례의 구체적인 그림이 오늘 십자가 위에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할례의 장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고발하는 '손으로 쓴 글'을 지워버리시고, 그 '손으로 쓴 글'을 끄집어 내 없애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 조서의 댓가가 치뤄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떠올리고 묵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조서에 쓰인 나의 죄목들이 지워지고 하나님의 손으로 무죄의 상태로 끄집어내지는 그 법 조문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가운데: 이 가운데는 무엇이 있습니까? 죄가 탕감되고, 손으로 쓴 고발문이 지워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마음으로 순종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죄의 조문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순종함이 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예시로 보여졌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 할례는 직접 하나님의 손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믿음으로 달린 신자들의 마음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의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 십자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우리를 함께 살리시는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부터 지켜지지 않았던 우리의 마음의 무할례와 그로 인해 죽은 몸이 다시 그와 함께 '살아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예시를 따라서 십자가로 이기어 살아가는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러신 것 처럼, 다른 세상의 힘있다 하는 다스림들을 떨쳐내 버리고, 생존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여 참 생명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산 자들은 11~12절에 그리스도의 할례를 마음에 받아 옛 몸이 죽고 새 몸을 가지고 다시 살게 된 자들입니다. 이 상태를 13절에서 '그와 함께 살아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 상에 죽음을 향해 간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십자가에 함께 묶였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발씻김을 생각해봅니다. 산자들은 '목욕한 자들'입니다. 한번 목욕한 자들은 깨끗하여 졌으므로 더이상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 몸이 깨끗하나 발이 더러워지므로 발을 씻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발은 개인의 의지를 반영하여 걸음을 걷습니다. '걷는다'(walk) 이 행위는 다른 말로 '행한다'(do)로 번역합니다. 즉 삶을 살아가며 행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질 때마다 그 마음을 씻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발을 씻음'입니다. 이러므로 서로의 발을 씻어줌으로 서로의 죄를 씻김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보이신 예를 본받아 예수님과 함께 "살아있는 자들"로 살아갑니다. 그 생명은 사랑하는 섬김이고, 그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꽃피웠습니다.
사랑하는 섬김이 세상의 다른 원칙들을 이기는 비결이자, 우리가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예시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살아있는' 삶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