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며, 그에게 믿음직한 자들이 되어 함께 그를 예배할 목적으로 모인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의 수장이시고, 각각의 성도는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 여럿이었으나 그리스도로 화해되어 그의 안에 하나가 된! - 한 몸입니다.
*으뜸: 이전 본문에 등장하듯이, 창조자로서, 그리고 맏아들로서 만물의 으뜸이 되신 이께서는 창조와 피조세계의 지탱에만 관여하지 않으시고, 만물의 회복의 으뜸이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히 만물의 맏아들이 되시어,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무엇때문에 이 피조물 중의 하나로 오셔서 우리들을 이끌고 가셔야 합니까? 이것은 인간을 아름다움으로 창조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스스로 내팽개친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시 이끌어 아름답게 하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 때문입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진 우리와 만물의 으뜸이 되시사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끌고 가십니다.
*모든 충만함: 이 충만함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충만함'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서로의 앎이 충만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름이 없고 그의 의지와 능력과 사랑이 동일하게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충만은 창조 때 만물에게 쏟아 부어졌으며, 예수님께서는 이 창조에 직접 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 만물은 이 충만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의미의 충만함, 목적의 충만함, 빛의 충만함, 화평의 충만함, 생명의 충만함.... 이것들이 죄로 인해 얼마나 시들게 되었는지를... 나의 주변과, 나의 안을 한번 되돌아 봅시다.
*깨어진 사이를 다시 이어주심: 개역성경에는 '화평을 이루'신다고 쓰였습니다. 화목하여 평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즉 깨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입이다.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만물은 주의 뜻을 거스름 없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인간도 하나님과 화목하며 만물은 분열이 없고 누구 하나 하나님의 한 분이심에 대적하여 자신을 높이는 이 없었습니다. 이 사이를 깨트린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따먹음입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이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거스르는 것을 나의 몸은 왜 사랑하며 잊지 못할까요?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에 분열을 가져다주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깨트리는데 말입니다. 그 까닭은 바로 죄가 눈을 어둡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드러나심(영광)이 보이지 않고, 우리는 다른 빛을 찾아 갈급함을 채우려고 합니다. 내 영혼의 고갈됨을 채울 수 있는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뚜렷이 들리지 않고 우리 두 눈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귀에 들리는 다른 목소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붙드시고 성도를 부활로 이끄시는 예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우리를 거룩함의 길로 이끌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짐 없이 화목하여 하나됨: 개역개정은 '화목케 됨'인데, 더 길게 풀어보았습니다. 흐트러짐이 없음은 '창조상태의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사랑이 만물을 꿰뚫는 다스림이 됩니다. 그리고 개개의 인격은 자유의지로 하나님 곁에 머물기를 기뻐하며 순종하기를 선택합니다. 서로 다름이 서로를 섬기며 더욱 질서와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이루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룩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회복됩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지극한 마음의 깊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닮아가며, 악을 미워하고 가까이 하기도 싫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빛으로 충만할수록 죄를 사랑하는 어둠의 무지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는 시대의 생명을 얻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사명입니다. 죽기까지 죄와의 씨름은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죄가 왕권을 빼앗아 무지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며, 자기의 왕됨을 전파하여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에게 죽음은 이미 끝났으되, 다가올 심판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속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법과 질서를 따라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먼저는 '알고', '선택하며', 잘못했을 때는 '돌이키며',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끄심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첫째는 나와 하나님의 화목함이며, 둘때는 나와 이웃의 화목함, 좀 더 멀리 볼 때는, 무너진 세상의 회복을 일으키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흐트러짐은 죄가 틈타는 구멍입니다. 그러기에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자 함은 이 흐트러짐을 미워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이 의지 마저도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오늘도 기억'하고 이에 나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값없이 가르치심과 돌보심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