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하여: '위하여'로 대치됩니다. 나의 몫은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의 짐을 대신 지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몸소 하신 일입니다. 십자가가 교회에 가르쳐주는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나의 짐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으며, 한 몸인 가족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대신 지는 사랑의 법 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렇게 하셨고, 지금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환난: 이 '고난' 또는 '환난'은 정체성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두 발로 서 계시는 자체 만으로 '환난' 속에 거하신 것이였습니다. 세계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비뚤어져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출애굽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두 발로 애굽과 같은 나라에 태어나 살아가십니다. 세상의 요구와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신 예수의 삶은 압제와 환난이 계속 공급되는 삶이었습니다.
이 환난을 당한 자의 내면에는 '근심'과 '고뇌'가 발생합니다. '내 머리 둘 곳 없다' 하셨던 예수님은 분명 고뇌하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는 '근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신하여 받는 괴로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고뇌하시고, 십자가의 수난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환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의 뜻을 따름이요, 아직 어린아이와 같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필요: 다른 말로 하면 '부족'이나 '결핍'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환난이 부족하다 할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이 부족했을 리 없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사랑하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세상으로 대신 보내셨습니다. 예수의 발걸음을 대신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의 모습을 대신 보여주고, 예수님에 대해 말해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는 필요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의 필요: 왜 그렇습니까? 인격은 사랑 외에 다른 것으로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신실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그리스도의 모습 - 고난과 부활, 영광 - 을 담은 그릇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환난의 필요'입니다.
*채웁니다: 이 환난의 필요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각 성도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까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이 십자가의 의미와 사랑, 하나님이 선택한 방법을 두 눈과 마음과 몸으로 차차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강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해 알기 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이 좁은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초대되는 것입니다. 그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이 세상과 상치되는지, 얼마나 뒤집어져 있는지 조금씩 배우며 몸소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고난 속에도 '참기쁨'이 함께 있음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받기로 약속된 '참나라'의 소망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채우심'은 사실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게 됨을 말합니다. 내 몸에도 하나님의 뜻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채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낮아짐과 고난을 통해 화목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충만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골1:19) 그리고 이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케 되면 성도들은 또다른 '그리스도의 청지기'가 되어, 정체성으로 인한 세상의 압제와 고뇌 속에서도 기뻐하며, 세상 곳곳에 마음이 낮아진 곳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화해를 이루어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림 아닐까요?
*교회: 1차 수신자인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포함하여, 지역, 문화, 시간의 틀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된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직: 개역개정에는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경륜을 맡은 것이므로 청지기직으로 바꿔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의 말숨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이끌고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먼저 하나님의 말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뜻에 거스름이 없어야 그분의 청지기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과 숨이 하나님과 다른 말과 숨을 낼 때는, 그도 한 인격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숨을 맡은 종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계시를 받은 사도직을 감당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하나님의 말과 숨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는 한때 하나님과 다른 말과 숨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며 죽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맡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과 숨으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비밀: 그리스도이자,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 아버지께 순종하는 자의 생명 얻음을 말합니다. 죽음이 풍성함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생명을 낳고, 그리스도를 따라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통해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풍요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밀알이 누룩이 되어 온 빵이 부풀려지는 것입니다. 이 첫 밀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