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류영모 선생은 賢을 '닦아난 이'로, 聖을 '씻어난 이'로 풀었다. 닦아난 이는 '수도자'요, 씻어난 이는 '거룩한 자'이다. 닦아난 이를 높이지 말라는 것은, 사람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닦아내는 어진이마저도 높이지 말라하니, 이밖에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을 따르면,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다툰다.
노자의 말과는 다르게,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는 '희소성'에서 시작한다. 얻기 힘든 것은 가격이 높고, 이 가격은 곧장 가치로 직결된다. 얻기 힘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부자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사회적 병리현상을 만든다. 쉽게 얻는 쪽이 있다면, 차라리 훔치는 쪽을 택하는 쪽도 있는 것이다. 비버리 힐즈가 있다면 할렘도 있는 것이요, 영등포의 마천루도 있지만 그 옆에는 쪽방촌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을 갈라놓고 가운데를 건너갈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씨알은 살기 위해 훔칠 수 밖에 없다. 원경선 선생이 풀무원 농장을 경영할 때, 모든 사람의 먹거리가 풍부하니 집 대문을 열어놔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 했다.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정말 귀한 것이다. 공기, 밥, 옷, 집(이미 이러한 것들 마저도 모두가 얻기 힘들어진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얻기 힘들다면 그것은 귀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사람답게 하는 것과 상관없은 것에 무슨 가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옳은 바람도 보이지 말아서'는 성경의 이 말씀과 같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3, 개정). 여기서의 '바람'은 '욕구', '하고자함'인데, 만약 옳은 욕구가 있고, 바른 일을 하고자 하더라도, 씨알에게 그것을 드러내놓고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음지가 양지가 된다. 왜 음지가 음지인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선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음지인 것이다. 선한 일일수록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볕 안드는 곳 없이 전체가 밝아진다.
[2] 성경의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하라 한다면, 단연코 '하나님 나라'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나라는 영토 개념이 아니다. '주권'이다. '다스림'이다. 노자가 '다스림'을 논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다. 그것도 씻어난 이, 거룩한 사람의 다스림이라니. 이 문장을 읽으면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예수가 떠오른다. 그 '기름 짜는 틀'이라는 이름을 가진 언덕에서, 그는 자신을 온통 짜내어 하나님의 맘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그의 뜻을 버려 십자가에 달렸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람은 금방 죽지 않는다. 자신의 체중에 폐가 눌려 질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천천히 사람을 고통속에서 괴롭게 말려죽이는 것이다. 너무 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로마는 사형수의 다리뼈를 분질러, 몸이 아래로 축 꺼지게 해서 바로 질식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그 약하디 약한 뼈도 꺽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예수가 죽었기 떄문에 뼈를 꺽지 못했다.
이러한 죽음으로 예수가 얻었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음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졌다. 십자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폭력과 복수를 누르는 충격적인 비폭력과 섬김의 통치가. 그 결과 예수는 죽음도 꺽어놓지 못할 새로운 뼈를 얻었다.
[3] 씻어난 이의 다스림은, 사람들이 다음의 일들을 알지도, 바라지도 못하게 한다.
1) 사람을 높이고 자랑함
2) 물건을 귀히 여겨 훔침
3) 옳은 일을 드러내놓고 행함
행여나 이 일을 알고 바라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히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3장을 끝내는 마지막 문장, "위무위, 즉무불치". 이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위무위'는 이미 2장에 등장했다. 하늘 아래의 상대적 가치를 따르지 않는 자리. 곧 '處無僞'. '僞'는 '위하다'와 '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위하다'는 '위로 두고 한다'하여 목적을 나타내고, '하다'는 말그래로 한다는 것이지. '위무위'라는 말에서는 이 두 가지 뜻이 다 사용된다. 즉 이 땅에 있는 것을 목적삼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목적삼나? 1장을 생각해보라. 玄이다. 하늘과 땅이 비롯한 진선미의 근원. 그 분이 행함의 목적이요, 그 분을 목적으로 두면, 다스리지 못할 일이 없다. 다 그 분 다스림 아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