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주기도문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주기도문, 예수님께서 예수 공동체에게 주시는 그 위대한 기도에는 그 공동체의 목적과 뜻, 즉, 예수 공동체가 무엇인가? 그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 쓰여있습니다.
예수 공동체는 어떠한 공동체입니까?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 오직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공로로, 죄책이 소멸됩니다. 영혼이 정화됩니다. 육체가 생명속에 살게 됩니다. 따라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을 지나,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아들, 양딸이 된 것입니다. 즉, 예수 공동체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하나님의 양아들, 양딸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왜 부르셨습니까? 왜 그들을 모으셨습니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이름의 거룩을 위해 모였습니다. 그 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 공동체에 사람들을 모으셨습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의 삶은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공동체의 거룩한 삶 즉, 죄에서 떨어진, 죄를 미워하는 삶을 통해 자신의 이름의 거룩을 되찾으십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은 사람의 계획과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 공동체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합니다. 그 다스리심은 곧 하나님 나라. “나라가 임하옵시며” 즉, ‘하나님께서 다스려주셔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해주세요’ 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방해가 될까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거룩한 세계에서 쫓겨난 사탄은 이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사탄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 사탄이 쫓겨났듯이, 이 땅에서도 사탄이 쫓겨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반드시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되는 그 날,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나라와 권세가 완전하게 이뤄지고, 사탄은 설 자리는 이 땅에서 마저도 없어질 것입니다. 오직 지옥의 불구덩이만이 그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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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구절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구절입니다.
1. 하나님 나라를 기도한 우리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주기도문의 구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배웠던 것들을 우선 볼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3. (아버지의) 뜻을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세요.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부터 ‘땅에서도 이루어 주세요’ 는 모두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빠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럼 ‘아버지에 대한 기도’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른 이후, 세 가지의 기도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기도의 중심에 바로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가 아버지에 대한 기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을 위해, 우리를 그 나라로 모으시는 것이며, 하늘에서 이룬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버지 청원, 즉, 아버지에 대한 기도에서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럼 이제 주기도문의 후반부를 살펴봅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의 앞부분, 하나님에 대한 기도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면, 그 뒤의 후반부는 어떤 내용입니까? 네. ‘우리’입니다. 전반부에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기도가 있었다면, 주기도문의 후반부에는 우리에 대한 세 가지 기도가 등장합니다. 이 '우리'는 어떠한 우리일까요? 전반부와 연결지어 생각해봅시다. 하나님 나라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을 바랍니다. 그리고 그 거룩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이뤄진 나라가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우리는 어떠한 우리입니까? 방금 전까지 ‘하나님 나라를 기도한 우리’ 입니다.
2.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
하나님 나라를 기도한 우리가 이어서 기도합니다. 무엇이라 기도합니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먼저 ‘일용할’ 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일용할’은 무슨 뜻일까요? ‘일용할’ 말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는 출애굽기로 가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일용할’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지 않습니다. 그 중에 일용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용이한 구절이 바로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아무 것도 없는 광야. 사막 한 복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막 한 복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살았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 하나 없는 그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레슨이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그 레슨 중에도 이스라엘은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네, 물이 없네, 나 죽겠네, 종으로 살게 내비두지, 왜 나를 구출했느냐며, 온갖 땡깡을 다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먹이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주신 가루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만나입니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입니다. 이 만나 가루는 꿀섞은 과자 맛이 나는 가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만나에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날 그날 먹을 것만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날 먹을 것보다 많은 양을 가져갈 경우, 남는 양의 만나는 다 썩었습니다.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일용할’ 이라는 말은 ‘그 날 그 날에 먹을’ 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 날 딱 하루 먹을’ 이라는 말이 일용할 이라는 의미입니다. 일용할 이라는 말은 저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죠. 따라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라는 기도는, “오늘 하루 먹을 음식을 우리에게 주세요” 입니다.
이상합니다. 예수 공동체가 하나님 이름의 거룩을 위해 모였습니다. 모인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이 땅에서도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 대해서 기도하기를, 그 기도의 시작이, “오늘 먹을 음식을 주세요”입니다. 아니, 내일 먹을 음식도 주시고, 아니 이왕이면 일년치 음식을 주시면 좋은데, 왜 하필, 그 날만 먹을 입니까?
3. 하나님이 당신을 아신다
마태복음 6:31~33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이 주기도문의 뒤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마라.” 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시기 때문에! 당신이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기도하는 것은, 자기가 섬기는 신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몰라서 내가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이나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아십니다. 땅 위의 백합화 조차도 입히시고, 하늘의 새조차도 먹이시는 그 분께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르실리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먹이신다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절대 잊지 않으시지만, 사람은 이 사실을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바로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날마다 그 날 먹을 음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그 날 먹으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먹이시는구나’. ‘그 분은 나의 필요한 것을 아시는 그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시구나’. 결국, 이 그날 그날의 일용할 양식의 기도를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그 분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그러한 하늘 아빠를 날마다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음식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 전의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확인 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함을 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날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그냥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 추수하기 까지, 하나님은 모든 날씨를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모든 곡류와 육류와 채소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오늘 우리의 식탁에 올라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기 이 전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 당신을 먹이십니다. 그것도 날마다 먹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분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예수 공동체의 식구들은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먹을 것을 주시옵소서” 그 날 먹을 음식을 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날마다 자신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먹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먹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왜 먹이시는 줄 아십니까?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너희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책임지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4. 당신은 다른 사람을 아는가?
이제 시작입니다. 이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먹인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모험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여러분, 조금 전에, 성경에 ‘일용할’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출애굽기였고, 또한 그 중에 하나가 지금 읽을 야고보서 2장 15,16절입니다.
야고보서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그 날 먹을)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저에게 사과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습니다. 오늘 먹을 사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은 하나가 있습니다. 만약, 내일 역시, 오늘처럼 하나님께서 먹이실 것을 믿는 사람은, 이 남은 사과를 어떻게 할까요? 마침, 저기 하루종일 그 날 먹을 것을 못 먹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남은 사과를 어떻게 할까요?
이 사과는 남은 사과입니다. 내일을 위해 저축할까요? 아니면, 오늘 먹을 음식이 없는 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좋을까요? 아까 말했던 바로 그 지점. 날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신다는 사실을 믿는 바로 그 지점에서만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험입니까?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입니다.
내일을 위해 이 사과를 저축하는 그 사람은, 내일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것을 의지하고 있을까요? 만나는 저장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자신의 풍족함을 위해 저장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삽니다. 설령 내일 풍족하지 않을지라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삽니다. 그리고 살립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아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험입니까? 다른 사람을 아는 모험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채워주는 모험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아신 바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여정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먹인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다른 사람의 일용할 양식은 내가 책임진다. ’ 그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사람을 내가 먹였어요. 그럼 내가 잘나서 그 사람 먹인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먹이신 거에요. 내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일용한 양식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나눔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기심의 사탄은 그 자리에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나의 먹을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어두움과의 싸움입니다(엡 6:12). 세상의 빛인 우리가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는 그 날의 양식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럼 남는 것은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필요한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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