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 일곱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XVIII

- 타락의 결과


1. 계시


  우리 먼저, 저번 주 병찬이, 광준이가 질문했던 것들을 좀 더 살펴봅시다.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기서 하얀 부분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봐왔던 10여년 남짓의 시간, 그리고 여러분이 자라왔던 이 서둔동이라는 공간. 여러분이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이것을 하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 아래로 갈수록 색깔이 어두워집니다. 색깔이 어두워지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점점 더 내려가면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역사입니다. 정말 오래 전의 일들입니다. 그리고 맨 밑으로 내려가면, 무언가 모든 것이 처음 시작했던 그 시작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우리는 몰라요.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것은 짐작이요, 추측일 뿐입니다. 정작 우리는 이 볼 수 없는 캄캄한 과거에 대해 정확하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시작’을 알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먼저 과학이 있겠죠.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알기 위해서, 최근의 일들을 통해서 옛날 일들을 알기 위해서 점점 파고 내려갑니다. 이 방향을 잘 기억해둡시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종교가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생각대로 믿어버립니다. 걔중에는 미신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이 있던 없던 이 질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이든, 미신이든, 신화든, 종교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아래로 도달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티비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보고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불과 30년 40년 지난 사람을 찾기 위해 학생 기록부를 뒤져보고, 동사무소가서 주소 뒤져 옛날에 살던 집주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지구의 나이 누군가는 56억년, 우주의 나이는 그 보다 더 오래되었겠죠. 이런 우주와 지구의 시작, 인류의 시작을 티뷔는 사랑을 싣고와 같은 방법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말입니다. 조금 전에 방향을 잘 기억하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즉, 사람의 머리로부터 출발하여, 이 밑까지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방향이 생겨났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누군가가 이 시작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는 추리하거나 원리를 따져서 이 시작을 발견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래에서부터,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이 시작에 관한 진실들이 우리의 손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진 이 진실을 가리켜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계시’. 즉,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아득한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던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발송하신, 하나님과 우리에 대한 편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바로 이 계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방향은 세상의 철학과 과학과 미신과 종교의 방향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전달된 바로 이 계시를 믿는 것입니다. 이 계시가 믿음의 내용입니다. 이 계시는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았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정직합니다. 이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계시를 대하는 태도


  그러나 우리가 이 계시의 말씀을 듣기 전에 여러분께 말씀드릴 계시를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도입니다. 이 계시는 반드시 태도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태도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입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그 분에 대한 참다운 태도없이는 배울수가 없습니다. 학자적인 태도나, 시건방의 태도로는 절대 계시가 보여주는 진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내가 모른다’입니다. 제가 여기 책 한권을 가져왔습니다. 제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사서 피고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 내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이 내용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본적이 없지만-물론 본 친구들도 있지만-미국에 대한 책의 내용을 보고 그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책을 열때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펴서 읽을 때, 가장 위험한 태도는 “나 이거 다 알어”입니다. 이런 마음은 절대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이 캐도 캐도, 파내도 파내도 끝없이 진리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따라서 이 계시의 말씀을 볼 때는 ‘내가 계시를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의 마음을 가지고 이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은 목사님이든, 전도사든, 집사님이든, 학생이든, 나이가 많고 적든,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두려움과 공경의 태도, 둘은 내가 이 내용을 다 모른다는 겸손의 태도.


  한 가지 오해를 더 정정하고 진행합시다. 흔히들 무언가를 알게 되면 교만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무언가를 알게 될 때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앎을 멈추게 될 때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의 말씀은 끝이 없는데, 내가 끝이 있다고 착각할 때, 내가 이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알기를 멈출 때, 그때 교만은 찾아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라 착각할 때, 진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다시 계시의 말씀을 펴기 전에 여러분께 당부드립니다. 앎을 멈추지 마십쇼.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 계시로부터 배우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의 헛된 사상과 교훈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식입니다. 이 진리로부터 우리는 죽는 날 까지 끝없이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이 계시의 말씀에 끝없이 맞춰가야 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이 나인 것처럼 될 때까지, 즉,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이 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이 계시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교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원래 모습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무엇을 듣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 이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 편지. 계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 믿음은 바로 이 계시의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계시 앞에 우리의 마음을 다 열어재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계시를 들을 때 반드시 필요한 태도입니다.



3. 타락의 결과

-타락에 대한 개괄적 설명


  우리는 저번 주에 창조와 타락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창조되었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나 타락했습니다. 누가 먼저 타락했습니까? 사탄! 사탄의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 했기 때문이죠. 하나님과 같아지려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만이 높임 받으셔야 하는데, 하나님 아닌 자신을 높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사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버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타락’ 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누어 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신의 위대한 영광에 지음 받은 것들을 초대하십니다. 그 분은 높이 솟은 산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산 말고 주변에 다른 봉우리는 절대 올라설 수 없습니다. 그 분만이 높으신 산이십니다. 우리는 그 산 아래 거하는 사람들이지, 또 다른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어서는 아니됩니다. 즉,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신다.” 이것은 저번 주에 경운이가 잘 말한대로 창조의 질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음받은 사람들이고, 당연히 그 분의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먹을 때나 마실 때나,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언제나 그 분만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높이고, 모든 영광을 그 분께 돌리는 것이 사람이 만들어진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높이 솟은 산이 되려고 했던 사탄과 그 사탄을 닮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였습니다. 마치 제페트 할아버지를 배신한 피노키오와 같이, 창조 질서를 역류하는 배신자들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 자신을 높임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버린 것을 가리켜 ‘타락’ 이라 부른다고, 우리는 저번 주에 배웠습니다.

 

-타락의 결과를 배우는 이유

  그리고 이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사실 여러분이 기분 나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선언되는 계시의 말씀이 여러분을 기분 좋게하고 혹은 나쁘게하고, 또는 재미가 있고 없고는 전혀 우리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분과 재미가 아니라, 진리와 거짓을 가려내는 날카로운 검뿐입니다. 오늘 이 진리의 말씀을 진실로 받으면, 내가 얼마나 처참하고 끔찍한 상태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찐득하고, 결코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죽음의 늪에서 내가 결코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타락의 처참함과 끔찍함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구원하심에 대한 참된 감사와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 수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위력을 알게 되듯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타락의 결과는 다음의 교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죄책과 오염.


-죄책

  죄책이 무엇일까요? 죄책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책임’ 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말씀의 통치를 거부했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지겠습니까? 하나님께 지음 받았으나, 그 분을 배신한 책임을 무엇으로 지겠습니까? 바로 저주를 받아 영원을 지옥에서 보내는 일입니다. 타들어가는 불구덩이와 유황불의 온도 속에서 영원을 보내는 일. 이것이 타락한 자가 갖게 되는 죄에 대한 책임입니다.


베드로후서 2:4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심판 때까지 어두움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원래 지옥은 사람을 위해서 예비 된 곳이 아닙니다. 여기 써있는 타락한 천사들, 그리고 뱀이라 불리는 사탄도 사람이 아닙니다. 즉, 지옥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을 위해 예비 된 곳이지, 사람을 위해 예비 된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천사들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즉,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준비 되었고, 타락한 천사에게는 지옥이 준비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 안에 있던 자들은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사람을 위해 준비되지 않은 그 곳에서 심판받고 멸망합니다. 사는 동안,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자들은, 결국 자신의 소원대로 그 무거운 짐을 평생 내려놓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닮으려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말씀의 통치를 거부한 뱀의 자식들은, 사람에게 준비되지 않은 그 곳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곳은 어디입니까? 지옥. 그 지옥에서의 영원한 삶. 이것이 죄에 대한 책임, 죄책입니다. 타락의 첫 번째 결과입니다.


-마음의 오염

  죄책에 이은, 타락의 두 번째 결과는 바로 오염입니다. 오염은 두 가지 오염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오염이고, 둘은 육체의 오염입니다. 먼저 마음의 오염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자신을 자랑한, 사탄을 따라간 자들은 그 마음이 오염됩니다.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성경은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 즉, 사탄을 닮으려는 너희는 악하다! 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나 정말 나빠질꺼야. 다 죽여버리겠어” 이런 마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의 악은 진리를 모르는 상태를 가리켜 악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타락한 자들은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에 가득 있는, 그러나 진리와는 상관없는 말들을 입으로 늘어놓는 것입니다. 성령없는 그들은 결단코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진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7,8

죄의 본성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마음은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안에 진리 되신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렇게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 내가 하나님을 찾으면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 안에 있는 자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으며, 마음이 오염된 사람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같이, 아예 하나님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리가 아닌 악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기는커녕, 그 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습니다. 타락해서 마음이 오염된 자들이 그러합니다.


에베소서 4:17, 18

이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강하게 권고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듣기도 거부하니, 알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듣기를 거부합니다. 듣지 않으니 그 안에 믿음이 있을 리 만무하며, 하나님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라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안에 악이 조금은 있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심지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조차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만약 100년만 살다가 죽을 사람들이라면 사실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으면 그 안에 있던 악도 없어질 테니까, 악이 있던 없던 죽으면 그만이죠. 이 시간 믿는 친구들이 아닌, 믿지 않는 친구들은 잘 들으십쇼. 한 가지 가정해보자는 것입니다. 만약 한 번 죽으면 끝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영원히 살게 된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진리라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우리 안에 없던 것인데 어느 날 악이 조금이라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지 않으려는 마음, 말씀을 순종하고 싶지 않는 작은 마음이 어느날 생겨버린 것입니다. 없었던 악이 사람의 마음에 생길 때, 이것이 50년 100년이 아니라, 영원을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없던 것이 생기고, 이 생긴 것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작은 악이 영원을 지나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영원을 지나 한 사람을 모두 점령할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작은 악이 생겼다면, 이것은 영원을 지나 우주적인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는 영원을 지나 사탄과 꼭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악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니 됩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이 영원히 살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든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소멸하려고 해야합니다. 영원의 마지막 날 사탄으로 변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디도서 3:3

이전에는 우리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하며 육체의 즐거움을 따라 세상 일의 노예가 되었고, 악한 일을 하며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행동 또한 오염됩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 분을 높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을 따라 세상 일의 노예처럼 살고, 진리가 아닌 일을 하며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사는 것이 그 사람 삶의 전부가 되버립니다. 이것이 타락하여 마음이 오염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육체의 오염, 사망

  마음에 이어 사람의 육체가 오염되었습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해 사망이 들어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던 인간은 마음이 썪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육체도 썪어갑니다. 이것을 성경은 ‘사망’ 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합니다. 말씀을 다시 확인해봅시다. 사망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인간은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죽음은 곧 타락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인간은 죽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 인간은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죽게 되었습니다. 썪게 되었습니다. 상처나게 되었습니다.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들게 되었습니다.

  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반드시 찾아올 죽음이 미리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병은 죽음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없던 것들입니다.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육체의 오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봅시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떨어진 사탄에게 속아서 인간도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떨어짐의 결과를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는 무엇입니까? 네. 죄책입니다. 지옥에서의 영원한 삶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둘은 오염입니다. 마음과 몸이 오염되어, 오염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몸은 썩고 병들며 나중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것들을 잘 기억해둡시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0~18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선언한 타락의 결과들은 바로 나와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끔찍하고 비참하며,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나와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입니다. 혹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타락한 사람의 모습. 이것은 오늘 우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이 이 타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 이제 예수님 믿으면 되잖아요?” 타락한 사람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과 같습니다. 제가 물에 빠져봐서 아는데, 수영이고 나발이고 정말 없습니다. 정말 끝장입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어? 물에서 나가면 되잖아요?"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는 믿음은 여러분의 생각이나 결심만으로는 결단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믿음은 남들이 믿는다고 믿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세뇌되어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누군가가 대신 영접기도를 해줬다고해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 것은 착각중의 착각입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자기 가족과 국가가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이슬람교도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사람의 습관을 따라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스스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다. 내가 모든 것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 바로 그 분이시다라고, 그 사람 본인의 입술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기적입니다. 신비입니다.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성령님만 우리를 믿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성령은 증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 믿음의 증거가 되십니다.


  오늘 설교는 미완성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타락의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한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바꿔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타락의 결과들이 하나 하나 정복되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회복되는 것을, 다음 주에 이 자리에서 선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할까요? 하나님께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의롭게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분만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이 심판받았음을 가르쳐주십니다. 그 분께 이 내용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성령 없이는 믿을 수 없으므로, 성령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이 부어지며, 성령만이 진리를 증언하십니다. 


  물에 빠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박함을 느끼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소리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태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하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일입니다. 같이 이 시간 고백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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