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 세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XIII

외모가 아닌 마음, 그리고 기름부음


0. 저번 주 이야기


  우리 저번 주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제목을 공모했습니다. 여러 제목들이 제 핸드폰을 통해 전달되었고, 저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의 제목을 고를 수가 없어서, 두 개의 제목을 골라봤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죄의 두갈래 길' 이라는 제목과, '죽음과 삶의 선택' 이라는 제목입니다. 다른 친구들의 제목들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두 친구의 제목이 가장 우리가 말하려는 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제목을 제출한 친구 두 명은 있다가 저를 찾아오세요(예은, 주희).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이해한 것처럼, 우리의 삶은 사랑과 죄의 두갈래 길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선택하느냐, 죄를 선택하느냐는 죽음을 선택하느냐 삶을 선택하느냐와 같은 물음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지금은 기근의 시대입니다. 영적인 기근, 육적인 기근의 때에 답은 오직 사랑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든 작은 부분에서부터 선택되어야 합니다. 곧 이것은 삶과 죽음은 선택됩니다.


  이런 말 들어본적이 있습니까? '나비효과'. 나비효과는 태평양 한 가운데서 나비가 날개짓을 했을 때, 그 날개짓이 태풍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작은 선택이 나중에 큰 결과가 되어 돌아올 때, 그것을 '나비효과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들은 나비효과입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들이 큰 결과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돌아옵니까? 이 작은 선택들이 우리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내'가 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속담이 있죠. "될 성부를 잎은 떡 잎부터 알아본다" 진리의 사람은, 작은 선택부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속담도 있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작은 바늘을 훔치는 작은 선택들이 곧 소 도둑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담 보다도, 이미 우리의 주님의 말씀이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작은 일에도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큰 일에서도 옳은 선택을 합니다. 작은 일에 옳지 않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큰 일에서도 옳지 않은 선택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깨어진 거울들>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아, 물론 오늘도 계속 설교제목 공모는 계속됩니다. 이제 이 원고의 제목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만듭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사람을 배우기 전에 이제까지 배웠던 것들 전체를 다시 한 번 돌아봅시다.


  이렇게 그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함께 시작하기 전에 외쳤던 것은, "어린이 하겠습니다" 였습니다. 어린이는 나이가 어리고 몸이 작은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어린이.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의 계시에 순종하는 어린이. 하나님 나라의 어린이. 그 어린이 되기로 결심하고 우리는 말씀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이 이야기. 우리가 '말씀'이라 부르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만났죠. 이 하와는 우리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인 그 하와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고, 가죽옷을 입은 채 에덴 동산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예표와 불완전. 구약의 인물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고되고, 인간의 죄로 인한 불완전의 역사를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조각난 파편으로 그리스도를 비추는 깨어진 거울과 같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예고함과 동시에 죄에 대한 경고를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과 후손과 후손들. 그 중에서도 여호수아를 만났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와 같이, 불순종은 언제나 패배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다음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사사로서 완전한 사사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말씀 선생님으로서 바알의 능력없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그는 왕으로서 7년간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미디안을 박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삼손을 배웠습니다. 점점 상황은 안좋아지고 있죠. 미디안에 이어 이번엔 블레셋입니다. 7년이었지만 이제는 40년입니다. 점점 점입가경으로 죄악에 극을 달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서 지켜주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낼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그는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영웅은 말씀을 무시한 아담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전 격으로 룻을 만났습니다. 이 위대한 계보.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오는 이 위대한 계보에 참여할 수 없었던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침략의지를 가지고 보아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안으로 들어가는 기적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확인하려는 것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보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먼저, 우리 이 인물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봅시다. 그리고 이 그림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다윗을 이해하려는 밑그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진행할 이야기의 예고이기도 합니다.


1. 다윗에게 기름 부음

2. 사울과 타락한 사회

3. 의를 행하다

4. 사울과 타락한 사회는 다윗을 죽이려한다

5. 십자가가 아닌 밧세바


  오늘은 이 중에서도 '다윗에게 기름부음' 에 대해서 이야기 합시다.


1. 외모가 아닌 중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을 세우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6:1~3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

 

  사무엘이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가서,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여라. 그리고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내가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주겠다. 너는 내가 거기에서 일러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기름을 붓는 것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선출할 때의 의식입니다. 즉, 지금 사무엘은 새로운 왕을 임명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에 기름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새'라는 사람의 집에 갑니다. 이 '이새'라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요.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룻의 손자죠. 이새. 그는 룻의 손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룻의 손자인 이새의 아들들 중에 한 명을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새는 한 명 한 명 사무엘 앞으로 데려옵니다.

  

  먼저 키도 크고 잘 생긴 아들 엘리압이 1번으로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키도 크고 잘 생긴 그를 보니, 아, 하나님이 이 사람을 왕으로 뽑으시려나보다 생각이 들었삽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6: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보십니까? 중심. 사람의 중심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마음'입니다. 사람의 중심은 마음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기름 부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마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가 아닌 마음으로 판단하신다면, 우리도 마음으로 사람을 봐야 옳을텐데, 우리는 전혀 사람의 마음을 바라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생긴 사람이 못 생긴 사람보다 나아보입니다. 옷 잘입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연예인들의 잘난 외모를 보고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고, 아찔하게 차려입은 여자 아이돌을 보고 남학생들은 침을 흘립니다.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자들도 성형하고, 굶어가면서까지 몸매를 가꾸고, 근육을 만드는 사람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부터 고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데, 내 얼굴 고치면서 잘난 사람 만나려는 그 마음에 남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봅시다. 누가 더 잘생겼습니까? 알게 뭐야? 그럼 이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별로 입니까? 만약 이 사람이 당신의 친 오빠라면? 그럼 이 그림을 봅시다. 누가 더 잘생겼어요?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합니까? 얼굴에 살가죽이 조금 두껍고, 얇고, 아니면 조금 하얗고, 어둡고, 남들보다 뼈가 조금 많고, 적고,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좇고, 외모에 열광해도, 오늘 우리는 잠시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이 중심,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압에 이어 2번 아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6:8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무엘이 이 아들은 왕이 '아니라'고 했을 때, 이 '아니라'는 외모가 안된다는 말이겠습니까? 당신은 외모가 좀 떨어지니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겠소 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3번 아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6:9

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사람도 아닙니다. 외모가요? 아니요. 마음이요. 이렇게 6명의 아들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습니다. 다 왕의 재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습니다. "이게 다요?" 이새가 대답합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막내가 있긴한데요." "어서 데리고 오시오"


사무엘상 16:12

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 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이 막내 아들 이름이 다윗입니다. 성경에 써있습니다. 다윗은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그럼 여러분께 하나만 묻겠습니다. 다윗이 지금 기름부음 받아 왕이 된 것이, 눈이 아름답고 외모가 준수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9절에서도 말합니다. "너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하나님의 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여러분들이 만약 외모,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고, 그것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고, 그것을 여러분의 삶의 기준 삼고 있다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죄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선 대언자로서, 오늘 이 자리에 선언하기를,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마십시오.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압에서 떠나 하나님의 법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를 믿는 당신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아니됩니다.


2. 중심을 보고 기름을 부으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다윗보다 잘생기고 키크고 멋있는 형들 많았지만, 그들이 아닌 약관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기름부음은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임명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결정 된 것입니다. 잘 생긴 형들보다 덜 생겼지만, 키도 작지만, 하나님을 닮아 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옳은 뜻을 행하고 있는, 성실한 마음의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으로 판단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나갑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다윗의 기나긴 여정을 한 달여에 걸쳐서 살펴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처음 하신 설교의 제목이 "마음을 바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어" 였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외모?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외모? 괜찮아요. 당신만 욕하지 않으면 됩니다. 외모가 아닌 나의 마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3. 기름 = 하나님의 영


  그런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기름을 붓자, 하나님의 영. 성령이 그 마음으로 부어진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깨끗한 자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떻게 됩니까? 그 마음에는 주님의 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험 있어요? 저는 있어요. 하나님의 영을 구할 때, "하나님 제 안에 와주세요" 라고 고백할 때, 저는 주의 영이 이미 제 안에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선명해집니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이 옳다는 것, 정말 다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 기근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사랑이라는 것! 그동안 먹고 사는 문제, 내 몸뚱이 먹이고 입히는 문제 때문에 가리워졌던 진리들이 내 마음으로부터 명확해져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그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력한 확신.


  외모가 아닌 마음! 그리고 외모가 아닌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기름 붓듯 부어진다는 것은,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처음 하셨던 설교와도 일치합니다.


"마음을 바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어" 



  오늘의 암송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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