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 세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XIV
-기름부음은 성령부음
0. 저번 주 이야기
우리는 저번 주에 다윗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순서를 따라 다윗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말했습니다.
1. 다윗에게 기름 부음
2. 사울과 타락한 사회
3. 의를 행하다
4. 사울과 타락한 사회는 다윗을 죽이려한다
5. 십자가가 아닌 밧세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다윗이란 개인이 겪은 단편적인 일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일생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공동체의 맥락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표와 불완전의 안경으로 이 그림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강력한 침략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이방인 여자 룻. 그리고 그의 손자 이새. 그리고 그 이새에게는 일곱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그 일곱 명의 아들들 중에서 한 명을,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는 자로 즉, 하나님께서 선택한 왕으로 임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생기고 키 큰 엘리압? 누가봐도 잘난 아비나답?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럼 무엇으로 보십니까? 사람의 중심. 곧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단 한 사람이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이 상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에게 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으로 판단받은 사람, 그래서 기름부음 받은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받은 사람. 그 사람 이름 누구입니까? 그 사람의 이름이 다윗입니다.
저번 주 암송말씀을 한 번 같이 봅시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깨끗합니다. 깨끗한 얼굴이라 쓰여있지 않습니다. 깨끗한 마음, 얼짱 아니라 마음짱. 중심이 올바른 그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1. 다윗의 기름 부음과 나
다른 아들들 아닌, 하나님께 마음으로 판단받은 아들, 다윗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대관절 오늘 여러분과 저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반대편에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땅에서 있었던,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다윗이라는 왕의 대관식의 이야기가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게 이 그림을 통해 발견해야 할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저번 주에 '기름=하나님의 영' 이라 배웠습니다. 즉, 기름 붓는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집니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기름이 부어지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누구입니까? 먼저 선지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집니다. 둘째는 누구입니까? 왕 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도 기름이 부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할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은 부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4:18,19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을 예수님께 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즉, 성령이 부어지고 나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일, 포로된 사람에게 해방을 선언하시는 일,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시는 일,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시는 일, 주님의 은혜의 해, 희년을 선포하시는 일.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하는 일은 이런 일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왕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일입니다. 성령은 다른 일이 아닌, 바로 이 일을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구절이 사도행전에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성령이 부어졌기 때문에,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원하시는 뜻을 실행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할 사람으로 선언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두루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라는 말은 원인과 결과를 가르쳐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이 원인이 되고, 두루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고쳐주는 것은 결과가 됩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선한 일, 마귀 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고쳐주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이, 그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지,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졌는지를 알게하는 방편이 됩니다. 즉, 그 사람이 성령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삶이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그 삶은 어떤 삶입니까? 선지자로서의 삶, 왕으로서의 삶, 제사장으로서의 삶입니다.
오늘 이와 동일한 역사가 다윗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제 왕되서 좋겠네. '평생을 편하고 늘어지게 사람들 부려가면서 살수 있겠네'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왕은 그냥 왕 아니라, 기름부음받은 왕이요, 다윗이 이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될 사람임이 선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역사가 우리에게, 당신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다윗의 기름부음이 이야기는 당신과 상관이 있습니다. 만약 오늘 당신 안에 성령있다면, 당신도 선지자요, 왕이요,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입니다. 즉, 선지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왕으로서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풀어주고,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그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당신의 삶만이,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증명합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의 말씀이 보증합니다.
다시 우리의 말씀을 정리해봅시다.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것은 외모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로마서 10:10). 또한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피가 마음에 뿌려지고, " 어디에 뿌려져요? 마음에, 마음에 뿌려진 예수의 피 때문에 우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히 씻었다고 말합니다. 기름부음의 위대한 사건. 그 시작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마음입니까? 말씀을 받는 마음입니다. 성령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지금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이라는 밭에, 말씀이라는 씨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이 씨가 파고 들수 없는 단단한 아스팔트와 같다면, 오늘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가시덤불이 많아서 태양을 쬘 수 없는 마음밭이라면, 그 씨가 자라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이 떨어져도, 그것을 시시때떄로 놓치지 않고 물어가려는 새가 있습니다. 그 새의 이름은 마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마치 소가 하루종일 갈아놓은 밭처럼 부드럽게 해야합니다. 씨가 떨어지면 바로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새들이 쪼아먹지 못하게 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름 곧,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의 결과는 곧 선지자, 왕, 제사장으로서의 삶입니다.
2. 당신 안에서는 성령이 있는가?
그럼 이제 물어보자는거지. 정직하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는 거지. 성령받은 사람의 삶은,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질문의 답을 모르거나, 혹은 이 질문에 답할만한 삶이 없다면, 경우의 수는 단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당신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지 않았거나, 다른 하나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으나 매일매일 자신 안에 있는 성령을 소멸하고 있거나(데살로니가전서 5:19).
그럼 이제 우리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을 물어봅시다.
1. 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2. 나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습니까?
3. 나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에 나온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옛날 전쟁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시대에 여러분들이 태어났다면, 벌써 장가를 갔을 나이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어리광 부릴 나이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앞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 안에 혹시나 고민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 내 안에는 성령 없는데', '내 안에 성령있는지 모르겠는데','그래서 오늘 저 이야기는 나와 상관이 없는데' 그럼 이제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그럼 너에게는 구원이 없는데'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겠으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은 어떻습니까?
마가복음 3: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얼마 전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니 안에 성령님 계시니?"
답변은 대체로 이랬습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교회를 수년간 다녀도, 말씀을 매주일마다 들어도, 맨날 성령님은 내 친구, 화이팅을 불러도, 성령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커녕,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신지 계시지 않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공동체에서 표류하는 부레옥잠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상황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분은 잘못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잘잘못을 가리시는 변함없는 기준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성령을 가르치지 못한 선생님의 잘못과, 성령에 대해 관심없는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도행전 19:2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성령은 누구신가?
그럼 이제 물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고 다윗이 받은 기름부음의 정체는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우리의 생명이심을 말씀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그 성령은 누구십니까?
에베소서 1: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이 인치심이,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합니다.
성령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인치심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인치심은 도장입니다. 그 사람의 구원을 보장하는 도장을 우리에게 찍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때 마지막 심판은 첫째 아들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당시 첫째 아들은 집안의 전부였습니다. 첫째 아들이 죽는다는 것은 그 집안의 계대가 끊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왕족에게는 그 왕족의 파멸을 상징하는 것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은 지나갈 것이다. " 그래서 생긴 것이 유월절입니다. 유월.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인치심. 예수를 진실로 믿어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만이 마지막 심판에서 유월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없음은 생명없음입니다. 끝장입니다. 성령없이는 소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 시간 정직하게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만약, 당신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그 성령은 마지막 날 열매 맺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 씨앗 없으면 마지막 날 부활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새로운 몸을 하나님께 받습니다. 그 몸은 썪지 않는 몸이요, 상처입지 않는 몸입니다. 예수님꼐서 변화산에서 경험하신 완전하신 몸입니다. 그러나 성령없는 사람은 지금은 숨쉬고 있을지언정, 죽은 송장과 다름 없습니다. 아니, 죽어도 죽을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 성령없는 사람만큼 비참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영원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일서 5:6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다만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습니다. 성령은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고린도전서 2: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분의 피묻은 복음을 전했을 때, 여러분들이 그 말씀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 안에는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성령님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옳음을 우리의 마음안에서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12장 3절도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4. 성령을 구하라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알게 하는 성령. 그 분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만, 그 분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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