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한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 외전III
-생명의 법 아래로
0. 저번 주 이야기
때는 사사시대. 장소는 유대 땅에서, 기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 이 징계를 떠난 한 가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벗어난 그 가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핏줄을 잃어버립니다. 핏줄을 대신하여 이방인 두 명이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이방인 중에 한 명이 우리에게 비로소 참다운 선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이 여자는 모압 백성이었으나, 이스라엘이 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모압의 신을 섬기는 자였으나, 하나님을 섬거려 했던 사람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털이 시어머니를 좇는 모험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 누구입니까?
네. 룻입니다. 룻,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버리는 일이 너무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반드시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마음을 굳힙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뛰어넘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넘어.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수천년이 지나 그 여자의 후손이신 한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침략이라고요? 침략은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요?
사무엘상 23:27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략하나이다
이 말은 말이 안됩니다. 왜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침략을 당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은 강하신 분.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이십니다. 그 분의 나라에는 적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침략 당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왜 입니까?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하나니 나라에 누구나 살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없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할 것없이, 이쁘게 생긴 사람이나 그저 그렇게 생신 사람이나 할 것없이, 차별이 없는 의로 말미암아, 그 나라에 살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나 그 나라에 살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문이 열려있습니다. 단, 그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만이 그 나라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략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침략하는 자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이 침략하는 나라를 반드시 얻겠다는 '의지'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침략자들의 남을 해치려는 더러운 마음이 아니라, 그 나라를 얻고야 말겠다는 그 의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침략자들의 "그 나라를 얻겠어!" 는 곧, "하나님 나라에서 살겠어!" 입니다. 우리는 침략자가 되지 않고는 그 나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즉, 그 나라의 정신으로 살려는 '의지' 없이는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수도 없고, 선택하지 않았으니 그 나라에서 살 수 도 없다는 말입니다.
선택하지 않아 살지 못하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너희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참 믿음이 별로 없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선택하게 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행동의 의지로 귀결되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룻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이었고, 남편도 없는 미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침략 의지가 있었습니다. 살거야. 하나님과 함께, 살거야. 그 나라에서. 살거야. 그 나라의 백성 되어!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의지가 반드시 어떤 일정 선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은 어떤 선입니까? 먹고 사는 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내 몸둥아리로 입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정신으로 사는 것을 원하는 것! 갈망하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기도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침략하십시오. '그 나라를 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십시오.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안다하더라도, 그 나라를 느낀다하더라도, 그 나라를 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혹 의지가 있더라도,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에 꺾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 사람이 아무리 명망이 높아도, 그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했으니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혹시 지금 스스로 나는 부요해, 나는 문제 없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더더욱 불쌍한 사람 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화있을 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으므로 이제 받을 위로가 없다." "너는 부자라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1. 하나님의 '법' 아래로 들어오다
이제 룻으로 돌아갑시다. 룻이 이제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들어갑습니다. 이스라엘로 들어감은 그저 지역이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법을 의미합니다. 룻은 지금 하나님의 법 아래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에 의해 룻은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룻을 다스리는 법은 사람의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입니다.
사람의 법은 죽음입니다. 사람을 죽입니다. 서울에 평화시장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닯장 같은 곳에서 수많은 젊은 처녀들이 옷감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18시간씩 노동했습니다. 이렇게 일해도 아무 지장없는 것이 당시 노동법이었습니다. 이것을 개선하려고 무수한 노력들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에는 전태일이라는 한 청년이 몸에 휘발유를 두르고 기자들 앞에서 자기의 몸을 불살랐을 때, 비로소 그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법은 바뀌지만, 노동의 현장이 척박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만드는 법보다 사람이 얻는 이익이 우선되기 떄문입니다. 사람의 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람을 이용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나중에 선생님들은 기회가 되시면 <sicko>라는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은 의료보험제가 민영화되었습니다. 이 말은 의료보험을 국가에서 관리하지 않고, 회사별로 여러 개가 있어서 골라서 가입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한 흑인 엄마가 죽어가는 자식을 앉고 이 병원 저 병원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병원마다 대답합니다. "당신이 가입한 의료보험은 우리 병원에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동분서주 하다가 아이가 죽어버렸습니다. 그 엄마가 인터뷰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미안하다. 아들아, 그러나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법을 우리 나라에서 시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그 법은 생명입니다. 사람을 살립니다. 이제 우리는 룻의 이야기와 더불어 세 가지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 법은 이미 수 천년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기 위해 이미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법이었습니다.
그 법의 탁월함을 함께 느껴봅시다.
1) 이삭을 남겨야 하는 법과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 법
레위기 19: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곡식을 벨 때 낟알이 떨어집니다. 넓은 농경지를 추수하려면 스피드가 필요하죠. 낟알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추구하다간 해가 지기 쉽상입니다. 쉭쉭쉭 낫질을 하다보면 잘 영근 이삭들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런 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법의 뜻대로 살라 하십니다. "그거 줍지마, 그리고 밭 모퉁이는 추수하지마"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일전에 배웠죠. 기근에 대처하는 방법.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남을 먹이는 것. 이것이 기근이라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인간의 답변이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고 밭의 모통이를 추수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혼자 다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몫을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낟알 떨어진 것은 다른 사람들이 주워갈 것이요, 모퉁이에 남겨놓은 곡식도 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구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신명기 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곡식을 떤다'는 말은 밟아 으깬다는 말입니다. 즉 곡식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소가 그 곡식을 밟게 하는 것입니다. 소는 초식동물이에요? 육식동물이에요? 초식동물이에요. 이 소가 곡식을 밟다가 배고파요,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곡식을 후루룩 먹겠죠? 이걸 방지 해야겠어요, 안해야겠어요. 해야겠죠.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느라 사람을 뒤로 하는 이 매정한 세상에서는 그렇게 해야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그 소를 먹게 내비두라는 겁니다. 그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주는 것은 나니까, 마치 니가 가진 것이 너의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니 것은 다 내 것인즉, 인색하게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소도 먹고 너도 먹고, 모두가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법 아래로 들어온 룻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룻과 나오미가 가진 것 하나 없이 유대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 아무 엇도 없지만, 이들은 굶지 않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룻기 2:2,3
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나가 보아라."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룻이 이삭을 줍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이삭은 남겨두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실행될 때, 굶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무 것도 없이 이스라엘에 들어온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도 먹을 이삭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룻과 나오미가 눈치를 챘는지 못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 이들이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법 아래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삭을 남겨두라는 하나님의 법. 그 법에 순종하는 삶의 모습. 그 모습이 지금 이 두 여자를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2) 희년의 법과 토지 무르기의 법
두 번째 법입니다. 레위기 25장 23, 24절을 봅시다.
레위기 25:23,24
땅은 아주 팔 수는 없다. 이는 그 땅이 내 것이며 너희는 나와 함께한 나그네들로 임시 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소유한 온 땅에서 너희는 정해진 때에 토지가 원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예배를 관장하는 레위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에게 땅을 나누어줄때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비를 뽑아 받은 땅을 '분깃', '기업'이라 불렀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라는 찬양이 있는데, 여기서 기업은 회사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제비를 뽑아 할당받은 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땅.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면적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은 '기업'은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분배된 땅은 다른 가족이나 가문에게 절대 양도될 수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은 땅을 팔고 사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성경에 땅을 '판다'고 나온 것은 파는 것이 아닙니다. '임대' 즉, 빌려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기업으로 받은 하나님 나라의 면적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가난해서 이것을 누구에게 팔았어. 그러나 이것은 판 것이 아닙니다. 빌려준 겁니다. 언제까지 희년까지.
희년은 자유의 해, 나팔의 해라고 부르는, 5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레위기 25:10
너희는 50년이 되는 해를 거룩하게 하고 그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것이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소유지로 돌아가고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동족에게로 돌아가라.
즉, 희년이 되면, 땅을 돌려받습니다. 돈이 없어서 종이되었던 사람들은 다 자유를 얻습니다. 다 자기가 받았던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이 날이 희년입니다.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에게 땅이 있습니다. 이 땅을 누군가에게 팔 수는 없고 빌려줬어요. 빌려주는 대신 저는 돈을 받았겠죠. 그런데 그 돈마저 다 써버리고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희년까지 기다려야죠. 그럼 이 때, 희년까지 남은 날을 계산해서 그 때 땅의 임대료를 우리 친척이 대신 내줄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다시 제 땅을 돌려받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친척. 나 대신 돈을 내주어서 희년 전에 땅을 받게 해주는 친척을 가리켜 이렇게 부릅니다. '기업 무를 자'. 예를 들어 엄마가 두부를 사오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딴정 피다가 콩나물을 사갔어요. 그럼 엄마가 뭐라고 하세요? 두부 물러와 이 놈아. 이 '물러와'의 '무르다'가 이 '무르다'입니다.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 주는 거에요. 친척의 가난한 상황을 알아서 대신 그 땅의 임대료를 내고 땅을 물러주게 하는 사람. 이 사람이 '기업 무를 자'입니다.
레위기 25:23~28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땅 어디에서나, 땅 무르는 것을 허락하여야 한다.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무를 친척이 없으면, 형편이 좋아져서 판 것을 되돌려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판 땅을 되돌려 살 때에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이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그 나머지를 산 사람에게 치르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땅을 판 그 사람이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땅은 산 사람이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한다. 희년이 되면, 땅은 본래의 임자에게 되돌아간다. 땅을 판 사람은, 그 때에 가서야 유산 곧 분배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다.
이 법 아래서 룻은 한 사람을 만납니다. 이 남자가 재산을 싹 다 다른 사람들 빌려줘서 돈으로 바꿔서 모압으로 이사갔던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러줍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보아스'입니다. 어? 그런데 이 사람 이름 많이 듣던 이름 아니에요? 아까 룻이 이삭을 남겨놓으라는 하나님의 법 아래서, 이삭을 주우러 갑니다. 그런데 그 밭 누구의 밭이었습니까? 네. 보아스.
룻기 2:3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지금 나오미와 룻이 이삭을 줍는 밭도 보아스의 밭이고, 지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물러주는 것도 보아스입니다.
3) 미망인의 결혼 법
마지막, 세 번째 법입니다. 신명기 말씀입니다.
신명기 25:5,7,9
만일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중 하나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 미망인은 집을 나가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그 남편의 형제가 그 여자와 결혼하여 형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
그러나 죽은 사람의 형제가 그 미망인과 결혼하기를 싫어하면 그 여자는 성의 지도자들에게 가서 `내 남편의 형제가 나와 결혼하기를 거절하며 자기 형제의 대를 잇게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
그 미망인은 지도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의 신 한 짝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것은 자기 형제의 대를 잇게 하는 의무를 거절하는 자가 받는 수치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실 보아스보다 엘리멜렉과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이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룻의 남편이 죽었잖아요? 그래서 룻을 미망인아라 부릅니다. 남편이 죽은 여자를 미망인이라고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은, 그 죽은 남편의 친척이 이 부인을 데리고 살으라 말합니다. 그래서 엘리멜렉과 가까운 친척인 그 사람에게 룻을 데리고 살으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척이 한다는 말이
룻기 4:8
그리하여 그 친척이 보아스에게 “자네가 사게” 하며 신발을 벗어 주었습니다.
이거 왜 신발 벗어준거에요? 자기 뺨을 떄리라는 겁니다. 자기 뺨을 떄리고 "이것은 자기 형제의 대를 잇게 하는 의무를 거절한 자가 받는 수치이다"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죽어도 나는 룻이랑 안살어 입니다. 이유는요? 이유는 더 충격적입니다.
룻기 4:6
그러자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그 사람이 말하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나는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없소. 잘못하다가는 내 재산만 축나겠소. 나는 그 책임을 질 수 없으니, 당신이 내가 져야 할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지시오."
무슨 말입니까? 쌀 아까워! 입니다. 나 먹고 살아야 하니까, 보아스 니가 룻의 가족이랑 살아. 나는 신발로 뺨 따구 맞고 이거 포기할래입니다. 여려분 보이십니까? 이 룻기에 등장하는 강렬한 대립.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느냐와 먹고 사는 문제의 대립 말입니다. 룻기는 이것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쌀 아까워서 룻을 못 데려가겠다는 그 가까운 친척의 말에 보아스는 신이 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룻기 4:9,10
그러자 보아스가 원로들과 온 마을 사람들에게 선언하였다. "여러분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 나는 엘리멜렉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과, 기룐과 말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겠습니다. 나는 말론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도 아내로 맞아들여서, 그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인의 이름이 그의 고향 마을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친족들 사이에서도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
역시 보아스입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서 룻은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서, 그 보아스의 이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서 보아스가 나오미 가족의 땅을 다시 사서 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서, 룻은 새 신랑을 얻었습니다.
2. 하나님의 법 아래서 만나는 한 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십시오. 그 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는 것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치 룻처럼 말입니다. 그 분의 통치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법아래서만이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분의 통치 아래에서 살면, 그 분의 생명의 법에 순종하며 살면, 우리는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은 보아스와 같습니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법 아래 들어온 자의 영원한 신랑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오늘 모압을 방황하는 룻들이여, 오늘 이스라엘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의 법 아래로 들어갑시다. 그 안에서 먹고, 그 안에서 기업을 얻으며, 그 안에서 신랑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로마서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2011年 > 2. 창조와 타락, 그리고 예표와 불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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