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열 네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VII
-예수 우리 왕이여
0.
우리는 계속 기드온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대답해보십쇼.
1. 미디안 전투, 찌질이들의 승리. 하나님의 승리.
우리는 저번 주 공과 시간을 통해, 미디안 전투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기드온이 전열을 정비하여, 미디안을 공격할 채비를 합니다. 미디안을 공격하기 위해, 3만 3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사기 7:2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 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사기 7:3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말하여,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르앗 산을 떠나서 돌아가게 하여라."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아가게 하니, 그들 가운데서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생각해봅시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까요? 안필요할까요? 이걸 묻는 제가 바보같습니다. 당연히 사람이 많은 것이 유리합니다. 인해전술이라는 말 못들어봤습니까? 제가 중공군 역할로 분해봐서 하는데, 6.25전쟁 당시, 셀수 없는 사람들의 숫자로 밀어붙인 중국은 정말 강했습니다.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남한군이 다시 한강 이남으로 밀릴수밖에 없는 그 강함. 그것은 인원수에서 나왔습니다. 전쟁에서 인원수는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군대의 수가 너무 많아.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돌려보내라"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3만3천명중에 2만2천명이 돌아갔습니다. 고작 이제 만명 정도가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뜨십니다.
사사기 7:5
기드온이 군대를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니,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개가 핥는 것처럼 혀로 물을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모두 구별하여 세워라."
그 만명을 데려다가 물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을 먹는 자세를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두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개처럼 물을 마시는도 아닙니다. 핥는 사람들입니다.
이 문제는 좀 더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군대를 안다녀와서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질문하겠습니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네. 총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주경계'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에게 사주경계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밥을 먹을 때도 보초병을 세워놓고 밥을 먹습니다. 제가 옛날에 총을 한 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 잘 압니다. 이거 영창감입니다. 총과 사주경계. 전쟁에 임하는 사람의 생명입니다.
그럼 이제 물 마시러 온 만명의 상태를 점검해봅시다. 한 쪽은 무기를 손에 '파지'하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십니다. 멋있게. 군인답게. 한 쪽은 무기고 뭐고 경계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개처럼 마십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전쟁에 이기려면,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야 할까요? 네. 무릎꿇고 먹는, 정신 차리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마저도 돌려보내십니다. 3만 3천명 중에 두려워 하는 사람들 2만 2천명을 보내시고, 그 마저도 멀쩡한 사람들을 다 보내십니다. 그랬더니 고작 300명 남았습니다. 3만 3천명 중에 300명. 그리고 그 사람들, 물을 개처럼 핥아먹는, 전쟁에서 개 정도의 역할만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지질이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 지질이들의 손에 신무기를 쥐어주십니다. 그 무기는 건드리면 꺠지는 항아리와,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횃불과 사람의 심장은 커녕 고막조차도 뚫을 수 없는 나팔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 갈껄". "하나님이 오늘 우리 다 죽이시려나보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미디안 군인들은 서로 찌르기에 바빴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휘두르며 나팔을 불렀던 지질이 300명은 승리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승리였습니다.
2. 예수 우리 왕이여
이제 생각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왜 지질이들만 남기시고 형편없는 무기만을 손에 들리워서 미디안을 쳐부수라 하셨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 아니니,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이 미디안을 치는 전쟁의 성패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잘난척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이 그림 안에서 기드온은 왕 입니다. 왕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적군을 물리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사탄과 싸우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을 가리켜 왕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디안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기드온은 왕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드온의 능력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능력이었다면, 하나님께서 2만 2천명을 돌려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훌륭함 때문이라면, 개처럼 핥아먹는 사람 300명만 남겨 놓으셨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능력이라면,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했을 것입니다. 아이성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표의 그림입니다. 기드온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보여주십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왕이십니다. 사탄과 싸우시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그 분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십니다. 기드온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그 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 말씀을 가리는 것이 있습니다. 왜 입니까? 요한복음 8장 44절이 말합니다. "너희 아비는 사탄이니, 너희가 거짓말한다." 우리가 사탄의 아들, 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사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 말씀을 가립니다. 말씀을 마음에 심어야 하는데, 사탄은 그 말씀을 물어가고, 자라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마음이 왜 우리 안에 있습니까? 우리가 사탄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아들, 딸들이 사탄의 뜻대로 사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몸 가는 데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몸 가는 데로 살면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사탄의 자식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찾습니다. 그럼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 안에 바알들을 깨뜨려내십니다. 우리 안에 말씀을 가렸던 모든 것들을 다 태우십니다. 여러분의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게임? 컴퓨터? 책? 공부? 여러분의 꿈? 놀러가는거? 티뷔? 만약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말씀을 받지 못하게 하고, 혹은 말씀을 가리고 있다면, 그것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뜨려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믿으십니까? 그럼 우리는 양자가 됩니다. 사탄의 아들, 딸들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음으로 입양됩니다. 하나님께 입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아빠" 로마서 8장 15절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너희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그 동안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사람들이 맺은 관계들이 다 꼬여있고 엉망입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과의 관계. 사랑없는 나의 삶. 마치 전쟁터와 같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에 따라,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사이에는 사랑이 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흘러야할 그 자리에 무관심이 있습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시기가 있습니다.
그럼 말씀을 받아 새롭게 된 양아들, 양딸들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는 이제 그 무관심과 미움과 시기라는 미디안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는 죄의 결과들을 다시 수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요? 아니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우리의 손에는 주께서 무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활활 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먼저 깨뜨릴 나의 고집과, 그리스도 승리의 나팔을 들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겁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신 우리의 하늘 아빠께!
이것이 사람의 진짜 모습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며, 고립되고, 외로움에 눈물짓는 모습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먼저 손 내밀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것은 양아들, 양딸의 모습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기꺼이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그 말씀으로 마음의 바알들을 거두어 내고, 관계 속에서의 차가운 미디안을 몰아내는 것. 그것이 피상성을 벗어난 진정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3.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여러분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누구라 하십니까? 그리스도. 그 분이 여러분의 왕 맞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양자된 자들이여. 우리 삶의 변화의 시작. 최후의 승리. 이 모든 것이 예수 우리 왕께 있습니다.
마가복음 8: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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