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열 세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VI
-그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0. 지난 주 이야기
우리 지난 이야기들을 복습해봅시다.
1) 하나님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투명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말씀은 연결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마치 말씀은 투명한 창문과도 같습니다. 그 투명한 창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나 그 창문에 때가 끼고, 더러워지면 우리는 그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더러워지면, 그것은 더 이상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는 말씀을 말씀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투명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투명한 말씀에 때가 끼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할 만큼 더러워지고,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오염된 말씀은 더이상 말씀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우상'이라 부릅니다.
바알이 그러합니다. 바알은 말씀을 오염시켰습니다. 우리는 저번 주에 바알에 대해서 살펴봤었죠. 그 때 그림을 못보여 드렸는데, 이렇게 생겼습니다. 첫번째 그림은 디아블로라는 게임에 나오는 바알의 일러스트입니다. 두번째는 바알의 신상입니다. 이 바알은 저번 주에 이야기 했듯이, 땅의 신이며 풍요의 신입니다. 다시 말해, 부자 되게 해주는 신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바알을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바알을 가져다 두고, 바알의 법을 따라, 바알의 뜻에 따라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바알로 인해 오염된 것은 더이상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상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다릅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릅니까? 만약 우리가 말씀 아닌 무엇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는 말씀을 오염시키고, 마치 말씀 아닌 것을 말씀처럼 따르고 있다면 그 역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나눠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하나님 말씀 아닌 다른 것. 무엇입니까? 그것은 없어져야 합니다. 제거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직 말씀 뿐입니다. 하나님과 바로 당신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압니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을 압니다. 말씀으로 말입니다.
2) 말씀이 말씀 아니게 되었을 때,
그 말씀이 오염되었을 때, 말씀이 가려졌을 때, 말씀이 말씀 아니게 되었을 때, 사람의 삶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경험합니다. 자신과 형제였던 미디안의 침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왜요? 말씀의 부재. 말씀이 말씀되지 않았을 때, 사람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집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과의 사이가 깨집니다. 둘째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과 살인이 발생합니다.
다른 경우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리비아 사태를 알고 있습니다. 리비아 정부군과 시민군이 지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언론조차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어떠한 정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때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던 저들은 왜 싸우는 것입니까? 그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없어, 하나님 대신 대장되려은 카타피와 그 카타피를 응징하려는 시민들, 또 그 시민들을 죽여서까지도 잠잠하게 하고픈 정부군이 있을 뿐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도 실재합니다.
여러분의 학교에서는 어떠합니까? 친구를 미워하고, 싸우고, 욕하고, 뒤에서 씹고,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납니까? 너무나 어리고 착한 여러분들 사이에서 왜 서로 싸우고 왕따 시키고 이간질합니까? 거기에 말씀 없습니다. 말씀 없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저 싸우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처럼 말입니다.
가정은 어떠합니까? 왜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고 생각합니까? 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눈을 부라린다고 생각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자리에 말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없어 싸움이 벌어집니다. 관계가 깨어집니다.
3) 주께 돌아서라, 말씀 아래로 들어오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어린이 여러분, 주께 돌아서십쇼. 지금 여러분의 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사랑없는 삶속에서 매말라가고 있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깨지고, 왜 사는지를 알지 못할 때, 주께 돌아오십쇼. 주께 돌아서는 것은, 말씀 아래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다시 말씀 아래로 들어오십쇼. 그 말씀은 새끼를 품는 독수리의 날개입니다. 그 말씀 아래로 들어올 때, 우리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나의 관계의 회복과, 나의 내가 사는 이유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말씀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말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하고 짜증나는 것이었습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죄를 짓는데 불편하다는 말입니다. 죄를 짓고 싶은데,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제가 알고 있는 말씀들이 제 안에서 '너 그러면 안되는 거 알잖아' 라고 자꾸 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마치 저를 지적하는 것같고, 마치 저를 죽일 것 같고, 너 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그 마음의 소리가 무척이나 싫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가르쳐주셨습니다. 말씀은 나를 죽이고, 나를 지적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주신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 그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불구덩이로 기어들어가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 삶에 옳지 않은 부분들을 무관심으로 방관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은, 나를 죽이려고 하심이 아닌 나를 살리려고 하심이었습니다. 내가 생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걷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도 그러하셨듯이, 저에게도 세 가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분만이 나의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분이시며, 그 분만이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둘째는, 저의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저의 죄는 이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장 35절이었습니다.
셋째는, 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4) 기드온이 보여주는, 참 선지자 그리스도.
그 한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죄를 없애시고, 그 죄의 결과도 소멸하시는 그 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저의 괴로움을 불태우시사, 저를 다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한 분이셨습니다. 이것을 기드온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저번 주에 살펴봤듯이, 기드온은 죄의 원인인 바알 신상을 박살 냈습니다. 말씀을 가리고 있던 그 가증한 것을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불태웠습니다. 이 사건은 기드온이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라 배웠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 예수님은 선지자이시구나. 그 분은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시구나. 왜냐하면 기드온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잘났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바알 신상을 부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찌질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찌질이 기드온을 통해 어떤 그림을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누군가를 예고 하십니다. 그럼 대답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바알 신상을 부수는 기드온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시는 그 한 분은 누구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한 사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말씀 아래로 들어갈 때 보여주시는 그 한 사람,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바알 신상을 부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참 선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의 원인들, 즉, 말씀을 가리고 있던 눈꺼풀과 수건들을 거두어 주시는 참 선지자 이십니다. 말씀을 말씀되게 하시는 참 선지자이신 것입니다. 말씀의 창문을 가리고 있던 묵은 때들을 그의 보배로운 피로 닦으시는 영원한 선지자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그 다음 기드온이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봅시다.
사사기 7:1~12, 16~22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모든 군대가 일찍 일어나, 하롯이라는 샘 곁에 진을 쳤는데, 미디안의 진은 거기에서 북쪽 골짜기에 있는 모래 언덕에 있었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 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말하여,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르앗 산을 떠나서 돌아가게 하여라."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아가게 하니, 그들 가운데서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주님께서 또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내가 너를 도와 거기에서 그들을 시험하여 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이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내가 또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나가지 못할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은 데리고 가지 말아라."
기드온이 군대를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니,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개가 핥는 것처럼 혀로 물을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모두 구별하여 세워라."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의 수가 삼백 명이었고, 그 밖의 백성들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겠다. 미디안 사람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나머지 군인은 모두 온 곳으로 돌려보내라."
그래서 기드온은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만 남겨 두고 나머지 이스라엘 군대는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은 삼백 명은 돌아가는 군인들에게서 식량과 나팔을 넘겨받았다. 미디안의 진은 그 아래 골짜기에 있었다.
그 날 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적진으로 쳐내려가거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네가 쳐내려가기가 두려우면, 너의 부하 부라와 함께 먼저 적진으로 내려가 보아라. 그리고 적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네가 적진으로 쳐내려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부하 부라와 함께 적진의 끝으로 내려갔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사막 부족들이 메뚜기 떼처럼 그 골짜기에 수없이 널려 있었으며, 그들의 낙타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각 사람에게 나팔과 빈 항아리를 손에 들려 주었다. 빈 항아리 속에는 횃불을 감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내가 적진의 끝으로 가서 하는 대로 따라 하여라. 나와 우리 부대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의 사방에서 나팔을 불면서 '주님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군사 백 명이 적진의 끝에 다다른 것은, 미디안 군대의 보초가 교대를 막 끝낸 한밤중이었다. 그들은 나팔을 불며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렸다. 세 부대가 모두 나팔을 불며 단지를 깨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면서 "주님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들이 저마다 제자리에 서서 적진을 포위하니, 적군은 모두 아우성치며 달아났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주님께서 모든 적들이 저희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 적군은 도망하여, 스레라의 벳싯다와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선까지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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