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열 여섯번째 말씀
깨어진 거울들IX
-우리가 나실인이다
0. 지난 이야기
우리는 지난 시간 기드온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기드온은 사사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말씀에 의지하여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우상이 되었고, 말씀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죽었습니다. 기드온이 죽고난 다음, 이스라엘은 다시 주님의 말씀과 멀어졌습니다. 기드온은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예표하지 못하고, 불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드온은 예표했으나 불완전했습니다. 우리처럼 말입니다.
기드온 이후의 사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예표하나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점점 타락해갔습니다.
사사기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다시, 이스라엘은 다시 주님이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다시,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 참혹한 시대에 그 참혹함을 대변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삼손'입니다.
1. 삼손의 출생의 중요한 두 가지 이야기
-그는 나실 사람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는 나실 사람이다.
이 삼손의 출생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불임여성이었습니다. 즉, 임신을 할 수 없는 여자였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삼손의 어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사사기 13:3~5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조심하여,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라.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임신 할 수 없는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경우들이 등장하지요. 누가 있습니까? 이삭을 낳은 사라가 그렇습니다. 99살 먹은 할머니가 이삭을 낳았죠. 사무엘을 낳은 한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삼손의 어미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도 그렇죠.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여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다음에 생각해봅시다.
어쨋든, 주님의 천사가 마저 이야기 하기를, 그 태어나는 아이의 머리에 삭도, 즉 면도칼을 대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 이기 때문이다! 나실 사람. 이 나실 사람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나실 사람은 삼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내용입니다. 민수기 6장으로 가봅시다.
민수기 6: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남자나 여자가 나실 사람이 되어 나 주에게 헌신하기로 하고, 특별한 서약을 했을 때에는, 그는 포도주와 독한 술을 삼가야 한다. 포도주로 만든 시큼한 술이나 독한 술로 만든 시큼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포도즙도 마시지 못한다. 날 것이든 마른 것이든, 포도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실 사람으로 헌신하는 그 기간에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어떤 것도, 씨나 껍질조차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실 사람으로 서원하고 헌신하는 그 모든 기간에는, 자기 머리를 삭도로 밀어서는 안 된다. 나 주에게 헌신하는 그 기간이 다 찰 때까지는 거룩한 몸이므로, 머리털이 길게 자라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는, 나 주에게 헌신하기로 한 그 모든 기간에는, 죽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누이가 죽었을 때에라도, 그들의 주검에 가까이하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를 그 머리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자나 여자나 나실 사람이 되어 주님께 헌신하기로 하고, 특별한 서약을 했을 때에는,
첫째, 포도주와 독한 술을 삼가야 한다. 포도나무에서 난 어떤 것도, 씨와 껍질조차도 먹어서는 안 된다.
둘째, 자기 머리를 삭도로 밀어서는 안 된다.
셋째, 시체에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나실'이라는 히브리 말은 '구별된' 이란 뜻입니다. 즉, 나실 사람은 구별된 사람입니다. 무엇으로 구별된 것입니까? 이 구별은 나는 잘 나고, 너는 못 나고 이런 식의 구별이 아닙니다. 나실인에게 '말씀'이 주어집니다. 포도주와 독한 술을 삼가며, 자기 머리를 삭도로 밀지 않으며,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나실 사람은 구별됩니다. 나실 사람을 구별되게 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이러한 '나실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사기 13:7
그런데 그분이 내게 말하기를, 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제부터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또한 그는 나실인임과 동시에 하나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 임무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삼손의 이야기를 이 두가지 맥락에 따라, 재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즉,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람으로서의 삼손을 살펴보고, 나실인으로서 구별되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삼손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맥락에서 오늘 하나님꼐서 주시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로서의 삼손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정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임무대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수도 없이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삼손이 블레셋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세 가지 사건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들로부터 "삼손이 왜 이렇게 했는지"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여우 꼬리에 불 붙이기+성령께서 함께 하심
사사기 15:4~8
나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에 꼬리를 서로 비끄러매고는, 그 두 꼬리 사이에 가지고 간 홰를 하나씩 매달았다. 그는 그 홰에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여우를 내몰아서, 이미 베어 쌓아 놓은 곡식가리에 불을 놓았다. 불은 곡식가리뿐 아니라 아직 베지 않은 곡식과 포도원과 올리브 농원까지 다 태워 버렸다. 블레셋 사람들은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알아 보았다. 마침내 사람들은, 딤나 사람 곧 삼손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들러리 섰던 친구에게 아내로 주었기 때문에, 삼손이 저지른 일임을 알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딤나로 올라가서, 그 여자와 그 아버지를 불에 태워 죽였다. 그러자 삼손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이렇게 하였으니,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기 전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무찌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동굴에서 쉬고 있었다.
왜 이렇게 했습니까? 14장 2절을 봅시다. 삼손의 아내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네. 블레셋 사람입니다. 삼손은 블레셋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한 삼손이 잔치를 열어, 이상한 수수께끼 하나를 냅니다. 그 수수께끼인 즉슨,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는데 그게 뭐게?" 입니다. 답은 오늘 설교를 끝까지 들으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를 맞추면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상품으로 주겠다고 합니다. 기간은 삼 일. 그러나 만약 풀지 못하면 그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 옷을 달라 말합니다.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말에 겁먹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아내를 협박합니다. "삼손을 꼬셔서 그 답을 꼭 알아오시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당신 아비를 불태워버리겠소." 겁먹은 사람들의 협박에 또 겁먹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아내가 울고 불며 삼손에게 답을 가르쳐달라고 매달립니다. 그래서 삼손이 답을 가르쳐주죠. 약속된 삼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답을 맞춘 사람들에게 상품을 주기 위해 다른 동네 사람 삼십명을 쳐 죽이고 옷을 뺴앗아 옵니다. 그리고 기가 질린 삼손의 장인 어른이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친구에게 시집보냅니다. 삼손의 아내는 어디 사람이요? 블레셋. 그럼 삼손의 장인 어른도 어디 사람? 블레셋. 그래서 여우 꼬리에 불붙여서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싹다 탑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블레셋 사람들을 또 대량으로 죽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정당한 이유입니까? 말도 안되는 이유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의 밭을 태우고 그들을 죽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맘에 안들어서' 하나님의 뜻, 계획, 이런 것 없습니다. 삼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나' 자신에게 까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상한 것은, 14장 19절입니다.
사사기 14:19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덮쳤다. 삼손이 아스글론으로 내려가서 그 곳 주민 서른 명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노략한 옷을 가져다가, 수수께끼를 푼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몹시 화가 나서,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성령께서 이런 삼손을 도와주십니다.
두 번째 사건도 살펴봅시다.
*나귀 턱뼈 일당 천 사건+성령께서 함께 하심. 물 주심
사사기 15:14,15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마주 나오며,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내리니, 그의 팔을 동여매었던 밧줄이 불에 탄 삼 오라기같이 되어서, 팔에서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마침 삼손은 싱싱한 당나귀 턱뼈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손에 집어 들고,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이나 쳐죽이고 나서,
이 일은 왜 벌어진 것입니까? 삼손이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을 다 태웠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뗴를 지어 삼손을 죽이러 찾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삼손이 그들에게 말하죠. 11절입니다. "내게 행한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이 말은 곧, 나 건드리지마. 입니다. 나 건드리면 나도 똑같이 복수한다입니다. 그런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이 밧줄로 묶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것을 비웃듯이 끊어내고 나귀 턱뼈를 집어 들어 천명을 쳐죽입니다. 즉, 이 일도 삼손이 자신의 성질을 못이겨서 벌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구절은 이 사건에도 등장합니다.
사사기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마주 나오며,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내리니, 그의 팔을 동여매었던 밧줄이 불에 탄 삼 오라기같이 되어서, 팔에서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또 주님의 영이 삼손을 도와주십니다.
*신전을 무너뜨리다
사사기 16:28~31
그 때에 삼손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였다.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두 눈을 뽑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단번에 원수를 갚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다음에 삼손은 그 신전을 버티고 있는 가운데의 두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또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하여 기둥을 밀어내니, 그 신전이 무너져 내려 통치자들과 모든 백성이 돌더미에 깔렸다.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살았을 때에 죽인 사람보다도 더 많았다.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온 친족이 내려와서 그의 주검을 가지고 돌아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무덤에 묻었다. 그는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블레셋을 쳐부신 마지막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28절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주십쇼" 개역성경에는 더 분명하게 나와있습니다.
사사기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여기서 '나'가 몇 번 나옵니까? 이 한 절에 무려 세 번이나 나옵니다. 나를, 나를, 나를, 왜 이렇게 하나님께 '나를', '나를' 말하는 것입니까? 나의 원수갚기 위해서. 아직도, 삼손은 하나님의 생각 따위는 관심없습니다. 그저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도와주십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나' 밖에 모르는 삼손을 계속 도와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꼐서 삼손을 도와주실 때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블레셋과 싸울 때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지금 삼손이 이뻐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잘 하고 있어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임무,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임무를 삼손에게 주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하려고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일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삼손의 일대기는 '구별되지 않음' 이다.
이제는 나실인으로서의 삼손의 인생을 살펴봅시다. 나실인으로서의 그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별되지 않음'. 그는 전혀 구별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별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에 순종입니다. 삼손은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실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나실인에 대한 말씀을 하나하나 깨뜨리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는 벌들이 사자 시체에 만들어 놓은 꿀을 먹습니다.
사사기 14:8,9
얼마 뒤에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러 그 곳으로 다시 가다가, 길을 벗어나 자기가 죽인 사자가 있는 데로 가 보았더니, 그 죽은 사자의 주검에 벌 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었다. 그는 손으로 꿀을 좀 떠다가 걸어가면서 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 주었으나, 그 꿀이 사자의 주검에서 떠온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본인도 이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으로서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그의 부모에게 말씀하신 그 나실인의 말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기고자 마음 먹으면 어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별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머리에 삭도마저도 댑니다.
사사기 16:17
하는 수 없이 삼손은 그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 놓으면서 말하였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으면, 나는 힘을 잃고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들릴라라는 여자를 만나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마저 모두 깎여 나갑니다. 나실인의 머리는, 나실인이 지금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별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그러나 수도 없이 시체를 가까이 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으며, 머리에 삭도마저 댄 그의 인생은 이제 구별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모르는 이방 백성들과 하나 다를 것 없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별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삼손의 인생의 끝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3. 구별되지 않음의 끝은 멸망이다
삼손의 끝은 어떠합니까? 함께 멸망합니다. 함께 멸망합니다. 말씀을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멸망합니다. 혹자는 삼손의 마지막 복수가 멋있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삼손이 그렇게 쓰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사였던 삼손은 평생을 블레셋과 싸웠죠. 그렇게 이스라엘의 구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대로 블레셋을 쳐부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삼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쓰임받고 버림받았습니다. 말씀없는 자들과 함께 멸망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삼손의 문제는 '나'였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는한,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대단해도, 위대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쓰임받고 버림받는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대형 백화점 지하에서 과일 파는 아주머니의 삶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구별되어 있는가? 입니다. 이 구별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3:9
그리고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니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웃기지 말아라. 하나님은 땅 위의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되기 하실 수 있으시다. 니가, 아니면 니가 하고 있는 그 일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 바로 위의 구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회개는 무엇입니까? 회개는 메타노이아라는 단어를 씁니다. 메타는 바꾸는 것이고, 노이아는 생각입니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울고 불고 한다고 전부 회개가 아닌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바꿔야 할까요? '나'! 나를 버리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거절하는 '나'를 버리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치 안는 '나'를 버려야 합니다. 불순종의 나를 버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구별입니다. 불순종의 나를 버리는 것, 이것이 자기부인입니다.
4. 우리가 나실인이다.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오늘 이 말씀이 삼손 이야기를 완벽하게 정리해줍니다. 오늘 이 정확한 로마서 12장 2장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 첫째,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이 하는 것을 닮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사 삼손은 세상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 입니다. 세상은 '나'를 강조 합니다. 내가 잘되야 하고, 내가 성공해야 하고, 나만 잘되면 상관 없고,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 나, 세상이 말하는 '나'는 내면보다 외모가 중요한 '나'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나'는좋은 대학교가 아니면 인생의 낙오자로 강요받는 '나'입니다. 돈이 없으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나'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씀은 그것을 본받지 말라 말합니다. 본받는다는 '닮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는 일을 닮지말라. 그것은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니야. 그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이 곧 회개입니다. 세상을 따라갔던 나의 마음을 '메타노이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한 자는 '변화'를 받습니다. 그 변화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완전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찾으려는 삶의 방향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삼손이 되지 마십쇼. 고집불통인 '나'를 버리고 말씀 아래로 들어오십쇼.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을 알려고 할 때서야만이 비로소 여러분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군신지 알 수 있습니다.
'2011年 > 2. 창조와 타락, 그리고 예표와 불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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