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마흔 한 번째 설교
마태복음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기도 V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이제 우리는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짧은 구절에 대해서 고민 해봐야 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임하옵시며’라는 말은 ‘오게 해주세요’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할 때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조선의 광복을 바라고 또 바랬던 사람만이 조선의 참 백성입니다. 일본의 압제에 굴복하고 자기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본의 압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은 조국의 광복이 찾아와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참 조선인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이 나라가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진심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니, 하나님 나라를 바란다고 말하나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가장 먼저 그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찾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를 구하라” 그 나라는 우리의 ‘먼저’입니다.
그럼 지금쯤 질문이 나와야합니다. “그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데요?” 저는 여러분들의 이 질문을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질문하고, 저도 질문하고, 답변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진짜 설교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어린 양, 나는 양치기 개입니다. 잘난 양도 잘난 개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결정하시는 것은 목자이신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그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200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말씀하시기 전에 꼭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하셨던 그 말씀. 우리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바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구경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절박함을 가지고 온 사람들. 위로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닷가 위에 정박해 놓은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물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본 새들이 와서, 씨앗을 쪼아 먹었습니다. 또 어떤 씨앗은 흙이 많지 않은 돌짝 밭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이글거리는 뙤약볕아래서 금방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자라려는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셨을 때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어찌하여,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이 말은 즉, “예수님 비유만 말씀하시면 저 사람들 못알아들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한테 설명하신 것처럼 저 사람들에게도 설명해주셔야죠.” 그 말을 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단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은 비유를 들을수록 더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마저 소용없게 되는 것이 비유란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사야서 6장9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귀는 듣지 못하고, 눈은 감겼다. 왜냐하면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비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쇼”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혹여나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유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헤깔리고, 모르겠어서 알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겁나는 말씀이지만, 그 사람들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제가 지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죠.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그것을 깨달을 수 없는 사람. 들을 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려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비유만 듣고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들을 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수님의 비유만 들어도,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입니까?
여기에 충격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들을 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네. 없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들을 귀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저 씨 뿌리는 비유를 제자들에게 해석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뒤의 말씀에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를 일일이 풀어주십니다. 이 말은 제자들도 들을 귀가 없었다는 겁니다. 듣고 나서 단번에 깨달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 비유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3: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비유만 듣고서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깨달을 수 없는 그 때, 들을 귀라고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때, 어떤 사람만이 예수님의 비유 풀이를 들었습니까? 제자들! 즉, 그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는 말은 “니네 들을 귀 아무도 없어.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어야 돼. 근데 그러려면 내 제자가 되렴” 즉,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듣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아니면 그 비유가 소용없습니다. 왜 소용이 없습니까? 제자가 아니면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의 경우가 마태복음 13장에 계속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읽었던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서 13장 내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이 비유의 뜻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13장 34절을 읽어봅시다. 그리고 36절도 읽어봅시다.
마태복음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태복음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룰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무리를 떠나사! 예수님의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의 해석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 무리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 뿐이었습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들이예수님께 몰려왔던 그 수많은 무리들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를 들었지만 그 뜻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자가 아니니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주시니까요. 그럼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먼저는 고민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찾아가겠죠. 그리고 그 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길 말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냥 따라만 다닌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제자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설교를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타 다른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핵심입니다. 정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겠습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깨닫는 걸 원치 않으신다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유독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풀어주시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오직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은 훨씬 많았습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십쇼. 제자로서 말씀을 들으십쇼. 우리는 들을 귀가 없습니다.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우리가 제자가 되지 않으면 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씀은 듣지만 깨닫지 못하는 예수를 구경했던 누구누구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씀이라는 귀한 검을 벽에만 걸어놓고 쓰지 않는 미련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다,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 몰려와서 바닷가를 가득채웠던 그 많은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입니다. 보고 있어 복되고 듣고 있어 복된 그 사람들, 바로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예언만 했지 실제로 그 예언의 주인공을 만나지 못했던 많은 예언자들, 그리고 많은 의인들이 너무나 간절히 보고 듣고 싶어했던 그 말씀의 본질을 제자들은 지금 봅니다. 지금 듣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 말씀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18~23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들을 귀가 없으나 나의 제자 되어 말씀을 만나고 들을 수 있는 복을 얻었은 즉, 이제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오랜 역사 속에 그 누구도 완전히 알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그러나 반드시 임하리라 약속되었던, 그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새 번역 성경을 그대로 읽어드립니다. 그대로 읽어드리는 것은,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데 여러분들을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해석에 제가 이것저것 덧붙이지 않아도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짝 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이 말씀은 ‘교회에서 떠들지 말고 얌전하게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세요’ 이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 어렸을 적엔 아무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아무도 말씀을 자세히 해석해주지 않았어요. 나중에야 나는 알았어요. 말 잘 듣는 아이와, 말씀대로 사는 아이는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난 여러분들을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이로 만드는 데 관심 없어요. 여러분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데 내 모든 관심이 있어요.
즉, 이 말씀은 결국,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관련이 있어요, 귀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데, 귀 있는 자들으라 말씀하시고, 정작 비유 풀이는 제자들에게 해주신 예수님의 행동과 오늘 이 제자가 되라는 이 말씀은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어요.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으로 열매 맺는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자 되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으로 열매 맺으려는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먼저 사탄, 악한 자가 그렇게 못하게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환난이나 박해, 여기서 박해는 종교적 박해를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무리들이 우리를 방해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 걱정, 돈 걱정 때문에 말씀대로 못사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는, 이것을 극복하고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사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비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 나라의 예고편을 통해서 몇 가지 단서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첫째는 사탄, 둘째는 환란과 박해, 세 번째는 세상 걱정과 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이겨내고 말씀처럼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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