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서른 일곱번째 설교


누가복음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기도 I

-기도를 가르쳐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리즈를 대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납시다. 풀어졌던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고, 다시 배낭을 들쳐 맵시다. 아직 우리가 갈 길은 멀어요. '진리는 외로워도 날이 갈수록 담대해지노라.' 외롭고 좁은 이 길을 끝까지 걸읍시다. 그 길의 끝은 형용할 수 없는 광명이요, 주인의 영광입니다. 몸의 부활이요, 영생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는 주기도문 강해 설교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주기도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저 그렇게, 아무런 감흥없이,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로구나' 그렇게 읽었던,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처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우리에게 있어 주기도문은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 읽어주는 교회의 형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주기도문은 위대한 광채를 잃어버리고, 먼지가 앉고 이끼들이 끼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감히 바라기는 그것들을 우리 모두 닦아 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주기도문의 식상한 글자 뒤에 숨겨진 하늘의 진리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누가복음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보기에 앞서,  오늘은 이 주기도문이 나오게 된 배경,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다시피,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제자들은 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었다던 그 요한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먼저 요한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겠습니다. 요한은 누구입니까? 구약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을 봅시다.


이사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그리고 다시 돌아와 마태복음 3장 3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마태복음 3장 3절에 와서야 성취되었습니다. 즉,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누가복음1장을 보면 됩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누가복음 1장이 나보다 훨씬 능숙하고 현명하게 세례요한에 대해서 가르쳐 줄 겁니다.

  

  암튼 그런 사람이었어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태어났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이 사람 역시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세례 요한뿐만이 아니었어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곧 세상의 끝이 오리라 생각해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운동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파가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오늘날 말로 하면 중산층 평신도 경건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에센파라는 파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살면서 성경을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파가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부르짖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 세례요한의 공동체 안에서 계셨습니다. 그 증거가 마태복음 3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마태복음 3: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도 요한의 공동체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공동체들을 비롯해서 이런 각각 운동을 하던 각각 공동체들은 공동체의 목적과 뜻을 담은 특별한 기도문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들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봤겠죠. 뭐를요? 요한이 자신의 공동체의 목적과 뜻을 담은 기도문을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것을요.


  그리고 후에 예수님은 요한에게서 독립합니다. 그래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요한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하시려는 일의 목적과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세요"입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정말 기도를 가르쳐 주시죠. 즉,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의 목적과 뜻을 천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 사역의 이유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목적입니다. 매 주 이것을 기도하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멋  부리는 것도 아니요, 시간 때우기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뜻을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다른 누가 만든 것이 아닌 예수님 자신께서 보여주시는 삶의 이유. 그것이 주기도문인 것입니다.


  제가 오늘 군복을 입었습니다. 입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모아서 나름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까 여러분들께 말씀드렸듯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했죠. 그럼 로마에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의 사람들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할까요? 네. 반란입니다. 반란.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고, 공명 정대한 뜻을 실현하고자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는 이 사람들은 반란군입니다. 

 

  이것은 특이하게도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도 명쾌하게 이해됩니다. 우리는 36년간 일본의 지배아래에 있었습니다. 일본의 지배 아래 우리는 신음했습니다. 일본의 폭력과 억압은 분명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군인으로 노예로 정신대로 무고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갔고 자유는 박탈당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 땅의 정의를 지키고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섭니다. 그리고 사람을 모읍니다. 여러분, 이것을 독립운동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도, 세례요한도, 열심당도, 엣센파도, 하물며 바리새인조차도, 죽음과도 같은 핍박 속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고 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은 행동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목숨을 걸고 사람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모은 사람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기도문을 가르친 사람들이나 배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문을 대할까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것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 단호하고도 결연한 결의와 결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주기도문은 군사를 모은 장수가 내리는 작전 명령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 레지스탕스가 되시겠습니까? 네? 그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작전 명령을 하달하십니다. 그것이 주기도문입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생명을 겁니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도 생명 걸어 이것을 지킵니다. 예수님은 이 주기도문의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대장이 목숨을 걸고 내놓은 이 뜻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구경꾼 아니면 스파이 입니다. 그리고 이 둘 다 이 거룩한 레지스탕스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4절을 봅시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여러분, 이 땅은 이 세상 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코끝이 피비린내로 진동하는 일제시대나, 인격이 썪는 냄새로 가득한 지금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정의는 죽었고, 빈곤과 질병은 단 한 번도 이 땅에서 소멸된 적이 없으며, 악한 자는 득세하고 착한 사람들은 핍박받고 상처받기는 매양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한 땅에서 여러분들은 거룩한 독립군이 되시겠습니까? 이러한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내시길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여러분들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생명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생명은 아닙니다. 생명은 생명으로만 얻어집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내 생명이 얻어졌듯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선 누군가가 죽어야 합니다. 마치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 부모의 산고의 고통 끝에 생명이 태어나듯 말입니다. 여러분, 이 일에 여러분의 생명을 걸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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