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서른 다섯번째 설교
고린도후서 3:7,8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후서 3장 IV
-자유의 편지(2)
지난 날을 되돌아 봅시다. 우리가 고린도후서 3장을 본지도 어느덧 4주째가 되었습니다. 첫 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스럽게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기브권) 그리고 우리는 두째 주에 결심했는데, 복음을 혼잡스럽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저번 주에 이 편지에 쓰인 것은 바로 '자유'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 자유는 우리를 죽이는 헌언약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새 언약의 자유입니다. 이 새 언약에 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서 우리는 발견했었습니다. 모든 구절에 '피'가 나왔습니다.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고 그 피는 예수님의 죽음이며 곧 우리의 살림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온갖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우리가 받은 저주를 없애시기 위해서 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없어진 그 자리입니다. 사형수였던 우리에게 자유가 선포된 그 곳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자유는 율법으로 얻어진 자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진 자유입니다. 종의 자유가 아니라 아들의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어진 구원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가 우리를 살립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그리고 오늘 우리는 3장 7절을 볼 차례입니다.
고린도후서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 이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중에 '의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사람?(기부권) 네. 글자라는 말입니다. 돌에 써서 죽게하는 글자. 이것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헌 언약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장동건이 모든 잘 생긴 남자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율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십계명이 이 율법, 헌 언약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한 것은 쉬운 성경을 보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쉬운 성경에 쓰인 고린도후서 3장 7절을 보겠습니다. 아마 이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고린도후서 3:7, 새번역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쯤 여러분은 이런 질문할 수 있어요. 전도사님. 예전에 맨날 십계명은 십자가라고 말해놓구서는 지금은 왜 십계명을 헌 언약이라고 해요? 그럼 십자가도 헌 언약이에요? 아니에요. 율법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선해요. 그 안에 분명히 새 언약의 힌트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율법안에 들어있는 새 언약의 힌트들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요. 마치 자식에게 매를 드는 부모의 마음안에는 사랑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자식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드신 율법의 회초리 뒤에는 복음의 사랑이 들어있는데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그 오해를 풀었던 거에요. 십계명에 얽혀있었던 오해들을 풀었던 것이 지난 12주간의 과정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바울이 말하는 십계명은 우리가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지만 십자가로 밝히 드러나지 않은, 오해가 풀리지 않은, 마치 우리를 죽이는 것만 같은 그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에요.
다시 정리하자면, 여기 나오는 돌에 써서 죽게하는 직분은, 십계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십계명은 장동건이 잘생긴 남자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헌 언약을 대표하기 위해 쓰인 것이고, 십계명은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의 헌 언약으로서의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다.
옛날 얘기 하나 해드릴께요. 엄청 옛날 이야기 입니다. 약 3000년전에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의 어떤 남자가 산을 올라갑니다. 그 남자는 그 산을 오르고 싶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남자. 산을 지금 두 번째 올라가는 겁니다. 어쨋거나 이 남자 열심히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그 산 위에서 40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계속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가 산을 내려옵니다. 손에는 두 개의 돌판을 가지고, 산 밑에 내려오니 사람들이 그 남자를 피합니다. 두려워합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누구일까요?(기부권) 네.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볼까요? 28절에서 33절까지 번갈아 가며 읽읍시다.
출애굽기 34:28~33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우리를 죽이는 의문의 직분을 받아들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율법을 받아들고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 광채는 그냥 빛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 할 만큼 강한 빛이었습니다.
여러분, 율법은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 법이라 저번 주에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이것은 억지로 하는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네 억지로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억지로 지키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구요. 강제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걸어놓구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7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고린도후서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영광을 인하여! 영광을 인하여! 그 억지로 지키는, 죽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 지키는 그 헌 언약도 뭐가 있어요? 영광. 네. 그 안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즉, 억지로 하는 것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매실 때 너무나 힘들어서 자꾸 쓰러지셨어요. 자꾸 쓰러지니까 로마병정들이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았어요. 그 사람은 구레네라는 동네에 사는 시몬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매게했어요. 이 사건은 상당히 이상합니다. 자유의 선포를 위해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속에 억지로 십자가를 매는 구레네 시몬의 이야기가 끼어있습니다. 복음으로 가는 길에 율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억지로 하는 일도 영광이 있어요. 억지로 하는 것도 좋은 일이 있어요.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매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이 구레네 시몬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좋은 일은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억지로 하는 일. 강제적으로 하는 일도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구레네 시몬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억지로 매셨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무언가 억지로 하고 있는 일이 있을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억지로 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자유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헌 언약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새 언약만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 이상 우리를 죽이는 헌 언약에 매여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지켜서 얻는 영광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듯이 모세의 얼굴의 빛나는 광채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곧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새 언약이 있습니다. 그 새 언약은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 것이고, 죽을까봐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유로 기꺼이 지키는 것입니다. 일을 억지로라도 해야했던 마당쇠가 아들되어서 이제 자유로 그 일들을 해내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마당쇠는 쫒겨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들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신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그 아들을 집에서 쫒아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니까. 그러나 그 아들은 종이었던 자신을 아들삼아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그리고 그 감격으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합니다. 자유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기부권) 네.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나를 위해 피흘리신 십자가 너무 감사해서 다른 이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 다른 사람한테 손해보더라도 웃을 수 있게 하는 그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이 영의 직분입니다. 강제가 아닌 자유로 지키는 이 사랑의 직분이 영의 직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영의 직분이거든요.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 사랑하게 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러분,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존재를 자기 안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회개. 헌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분께 우리를 솔직히 고백하는 회개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합니다.
'2009年 > 고린도후서 3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후서 3:6~18 : Not Must, But Will (0) | 2016.08.04 |
---|---|
고린도후서 3장 V - 영광에서 영광으로(고린도후서 3:9~18) (0) | 2016.08.04 |
고린도후서 3장 III - 자유의 편지(1) (고린도후서 3:6) (0) | 2016.08.04 |
고린도후서 3장 II - 그리스도의 편지(고린도후서 3:2~5) (0) | 2016.08.04 |
고린도후서 3장 I - 복음을 혼잡하게 하는 자(고린도후서 2:17) (0) | 2016.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