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서른 네번째 설교
고린도후서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라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III
-자유의 편지(1)
점점 더 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주간 고린도후서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고린도후서 이야기는 이번 주에 끝내려고 계획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쉽게 전할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이 고린도후서 3장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앞으로 2주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린 이 말씀을 지나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차 방정식이 어렵다고 해서 피하기만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x가 두 개인 수식을 풀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을 살면서 고린도후서 3장6절을 비껴갈 수 없다면, 오늘 만납시다. 그리고 그 말씀에 우리를 던집시다. 그러한 의지 있는 자에게 이 말씀은 이해됩니다. 깨달아집니다. 살아집니다.
오늘 본문은 한 절입니다. 그러나 이 한 절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충격 그 자체 입니다. 다같이 읽어봅시다.
고린도후서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제가 감히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 말씀을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이 뒤의 고린도후서 내용을 포함한 성경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좌우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과 율법입니다. 강제와 자유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우선 지난 내용을 간단히 다시 짚어보고 오늘 내용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이미 두 주전에 복음을 혼잡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혼잡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냐면, 복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입니다. 마치 천하의 명검을 벽에만 걸어놓듯,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말하나 그대로 살아내지 않는 그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을 혼잡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아니하고 0000의 00로 살기로 했습니다. 네.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는, 단순히 입으로만 나발을 부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의 모든 부분으로 곧 나의 삶 전체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토해내는 그러한 삶. 그것이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삶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편지에 쓰인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을 말하려고 입구에는 고린도후서 3장 6절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문을 지나지 않으면 편지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의 '저'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먼저 '새 언약이 도대체 무엇이냐?'를 알아야 이것이 순서입니다. '새 언약'이란 무엇일까요? '새 언약' 있다면 '옛날 언약'있을까요, 없을까요? 네. 있습니다. 성경에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옛 언약의 일꾼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분명 새 언약의 일꾼이라 부르셨습니다. 우리 옛 언약들을 한 번 들쳐 봅시다. 다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옛 언약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만약 다 찾으려면 오늘 여러분들은 집에 못갑니다. 깔끔하게 출애굽기만 봅시다.
출애굽기 21:12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애굽기 21:14~17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 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이것이 옛 언약의 정체입니다.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임당하는 법' 이것을 옛 언약. 어려운 말로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는 이 '율법'.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 법이 수백가지가 적혀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법을 다 지키신 분 계십니까? 이 말은 즉,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아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 여기 있습니까? 장담하건데 이 자리엔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자리 뿐만 아니라 온 지구에 이 율법의 저주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로마서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도 나온 새 언약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뭐가 새 언약이라고 누가복음 22장 20절이 말하고 있습니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이 잔은 포도주 잔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15절을 봅시다.
히브리서 9:14,15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죽을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니 이를 인하여 그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니! 여기서 죽을 행실이 뭐에요? 네. 율법을 어긴 행위가 죽을 행실이에요. 여기 있는 모두는 죽을 행실만 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죄인이에요. 율법을 어긴 죄인들. 우리는 그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 모두는 나무에 달려 죽어야하는 저주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죽을 행실에서 깨끗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피로 우리를 씻기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 중보는 중간자라는 뜻이에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 그 가운데서 언약을 새로 쓰신 분이라는 것이에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죽을 우리를 살리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8:12,13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우리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보배로운 피로 씻긴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 우리의 죄가 예수 보배로운 피로 씻기는 것. 그것을 새 언약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고 이것은 없어져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첫 것이 무엇이겠어요? 옛 언약. 율법. 우리를 죽이는 법. 이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고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사는 종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새 언약을 언급하는 본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도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의 포도주를 말하면서 새 언약을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 8장9장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새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새 언약일까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피가 상징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피를 흘리시고 죽임당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를 흘리신 그 곳.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그 보배로운 피. 그리고 십자가. 십자가는 그냥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장소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피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옛 언약을 어길 수밖에 없는 나의 죄. 나의 저주에서 나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그 피의 장소 입니다. 새 언약, 그것은 보배로운 피, 그리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저주가 끝났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옛 언약을 어겨 죽음으로 갚아야만 했던 우리에게 자유가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죽음으로 피로 얻은 자유입니다.
따라해봅시다. '새 언약의 일꾼은 자유의 일꾼이다' 이것은 그 유명한 '마당쇠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당쇠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마님이 마당쇠에게 말합니다. "마당쇠야! 저기 김대감댁에좀 갔다오렴" 여러분 이것은 율법입니까? 복음입니까? 주인 마님의 종인 마당쇠는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키지 않으면 아마도 쫒겨날 것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반드시 지켜야하는 그 명령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마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종이었던 마당쇠를 아들삼습니다. 그래서 마당쇠는 하루 아침에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집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마님이 마당쇠를 불러 말합니다. "아들아. 저기 김대감댁에 좀 갔다오렴" 여러분, 마당쇠가 그 말을 안지키면 쫒겨날까요? 안쫒겨날까요? 안쫒겨납니다. 만약 엄마 말씀을 안듣는 아이는 무조건 집에서 쫒겨나야 한다면 저는 진작부터 머리둘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이었던 마당쇠. 매일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마당쇠. 그 마당쇠가 주인마님의 은혜로 아들이 되었는데 주인 마님의 말씀을 안지키고 응석부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그 명령을 지킬 것입니다. 주인마님에 대한 감사로 그 마음은 가득할 것입니다. 그깟 김대감님 댁에 갔다오는거 열번이면 어떻고 백번이면 어떻습니까? '자유'로 지켜낼 것입니다. 이 자유로 지키는 법이 새 언약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의 가슴에는 이 새언약. 자유의 언약이 쓰여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그 피를 믿는다면, 그 피가 나의 죄를 씻기고, 그 십자가 죽음이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은 옛 언약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아들된 마당쇠처럼 자유로, 기꺼이, 하나님께 충성할 것입니다. 나아갈 것입니다. 그 분께 자신의 인생을 드릴 것입니다.
다시 고린도후서 3장 6절을 읽어봅시다.
고린도후서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게 하시고 그 일에 만족하셨다. 그리고 의문으로 하지 않으시고 영으로 하셨다. 여기서 '의문'은 글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글자' 이 의문이 상징하는 것이 옛 언약입니다. 왜냐하면 옛 언약은 문서로 글자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글자에 쓰인 것대로 살지 않으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은 곧 율법이요 옛 언약입니다. 죽음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은 옛 언약처럼 글자에 적힌대로만 살아야하는 강제와 구속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임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라. 이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를 나에게 영생을 주실 유일한 분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살아계신 성령이 여기서 말하는 영입니다. 즉, 새 언약은 글자가 아닌 마음에 쓰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예수 믿는 자 마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이 영을 두 글자로 '성령'이라고 부르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마음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글자들로 쓰인, 의문으로 쓰인 옛 언약에 묶여있지 않습니다. 새 언약. 옛 언약의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감당하셨다는 그 새 언약을 믿는 자는 그 마음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그 영은 우리 마음에 이것을 새겨주십니다. '자유'
얘들아 회개하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의 가슴에 이 참 자유를 새기자.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거야. 나는 옛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율법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거야. 그리고 말하는 거야. 예수님 필요해요. 예수님 아니면, 나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해주실. 저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실 분이 아무도 없어요. 주께 고백하는거야. 이것 없이는 아무도 저 사망의 법에서 해쳐나올 사람이 아무도 없어. 돈으로도 명예로도 지식으로도 저 사망은 못이겨.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는 이겨.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편지는 자유의 편지입니다. 옛 언약에서 벗어나 새 언약으로 넘어온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탈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방된 자. 진정한 자유를 얻은 자는 너무 기뻐서, 그 자유가 너무 감사해서 내 옆에 있던 묶였던 사람들을 자유케 해줍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노동으로 때로는 돈으로.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 언약의 자유를 전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에 쓰인 것. 그것은 분명히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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