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스물 여덟번째 설교
신명기 5: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십계명은 십자가다 IX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오늘 우리는 십계명의 십 번 계명을 볼 차레입니다.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이제 고지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신명기 5장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신명기 5: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이 계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네. 남의 재산에 관심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의 아내나 집이나 밭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그의 재산을 갖고 싶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상해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해요. 그럼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민준이가 엄청 좋은 킥보드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가지고 싶은 거에요. 다른 건 안 되고 민준이가 타던 것 그거만 갖고 싶어요. 처음엔 민준이에게 이렇게 말하겠죠. “야 그거 나 줘라. 그거 너한테 별로 안좋아보여.” 그러다 안 되면 나중에는 힘으로 빼앗으려 들것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사실 지구의 역사입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힘으로 다른 나라의 인권을 빼앗고 자원을 빼앗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에 의해 36년간 착취당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착취당합니다. 인권을 유린당합니다. 제가 민준이의 킥보드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일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오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탐심에 이끌려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오늘 십계명은 이것을 경계합니다. 니 꺼가 아니면 가지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남의 것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네. 여러분 그럴꺼에요? 안그럴꺼에요? 남의 것 탐내지 말아요. 네. 그럼 이것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여러분, 정말 남의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만 버리면 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남의 것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일까요?
여러분, 그럼 몇 가지 제가 질문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내 것은 무엇입니까? 돈은 여러분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명예는 여러분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명예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 지식은 여러분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것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땅위에 살아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남의 것을 탐내서도 안 되고, 또한 우리는 우리의 것을 탐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즉,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과 동시에 자기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도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탐심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비유를 들어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구약은 덧셈뺄셈입니다. 신약은 2차방정식입니다. 남의 물건만 탐하지 않으면 된다는 구약의 말씀은 덧셈뺄셈입니다. 자신의 것도 탐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신약입니다. 2차방정식입니다.
덧셈뺄셈을 모르는 아이가 2차방정식을 풀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2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덧셈뺄셈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것 또한 탐내지 말아야한다는 신약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 중학생입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서도 덧셈뺄셈밖에 못합니다. 이 덧셈뺄셈밖에 못하는 중학생아이는 중학생다운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학생이라면 중학생에 걸 맞는 수준에서 놀아야 합니다. 2차방정식을 풀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소녀시대도 아니고 구약시대도 아니고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더 이상 덧셈뺄셈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약의 가르침을 넘어서 신약의 가르침을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애시당초 우리에게 덧셈 뺄셈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2차방정식을 풀게 하는데 있습니다. 덧셈뺄셈에 매여서 그 안에서 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을 넘어 신약으로! 율법을 넘어 복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십자가로 더 가까이!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남의 것도 탐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자신의 것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구약의 말씀은 사실 모든 종류의 탐심을 버리라는 신약의 말씀으로 확장됩니다. 남의 물건도 탐내면 안되고, 내 물건도 탐내면 안됩니다. 물건도 탐내면 안 되지만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들도 탐내면 안 됩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모든 종류의 탐심은, 남의 물건이든, 내 물건이든, 물건이든 물건이 아니든,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이 탐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봅시다. 13에서 21절입니다.
누가복음 12:13~21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떤 동생이 등장합니다. 이 동생은 말합니다. “예수님, 내 형과 재산을 나누게 해주세요” 여러분, 이 동생은 어쩌면 자신의 마땅한 재산을 요구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동생을 등쳐먹으려는 악랄한 형으로부터 자신의 정당한 재산을 지키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동생의 요구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 내가 니네들 재산 분배하는 사람이냐?” 그리고 또 말씀하시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어떤 탐심? ‘모든' 탐심!'
이 신약성경에서의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소유에 대한 탐심이 아닌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탐심을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십계명에서는 남의 것만 탐내지 않으면 됐지만,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탐심을 버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가 확장된 것입니다.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산을 분배하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재산의 넉넉함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명예를 위해서, 좋은 대학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용당하려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너희들의 재산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재산을 늘려주시고, 우리의 이름을 명예롭게 해주셨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유의 넉넉함에 우리의 생명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생명은 여기에 있지도 않고 저기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 생명은 바로 믿는 자의 삶속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욕심내는 남의 물건, 우리가 욕심내는 내 물건, 우리가 욕심내는 명예, 사람, 자리. 다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그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 부자는 진짜 넓은 땅에 곡식을 생산하는 사람이었는데, 땅이 너무나 커서 농약을 비행기로 쳐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해 그 농부는 그 해에 풍년을 맞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곡식이 그득하게 생겼습니다. 창고에 다 담을 수 도 없을 만큼의 곡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아 이 많은 걸 어디다 저장하지? 밖에 두면 분명 도둑 맞을 텐데...” 한 참을 고민한 부자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그래 곡간을 더 확장공사 해야겠다. 지금보다 두 배로 늘려야겠다.” 그리고 또 말합니다. “아 그렇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수 있겠지?”
이 사람이 남의 재산에 탐냈습니까? 다른 사람 물건을 훔쳤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이 관심가지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등신아, 니가 행복을 말하느냐? 오늘 밤에 내가 니 영혼을 도로 찾으면 니가 준비한 곡식과 곡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여러분, 여러분의 행복이 어디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싶어하는, 여러분이 탐내는 그것에 행복이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으시지만 그 분은 영원하시고 우리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반석이십니다. 그 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썩고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죽습니다.
여러분, 구약시대 때 십계명이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에 욕심내지 말아라.’ 지금은 너무 가지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혹여나 그 잊혀질 물건 때문에 여러분의 친구와 이웃과 싸운다면 그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 오늘 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심을 버려라.’ 남의 물건이든, 니 물건이든, 물건이든 물건이 아니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아닌 모든 탐심을 버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곧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라’ 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구의 모든 인간이 다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기 욕심대로 되려면요, 남은 망해야되요. 이건 당연한 거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이 사는 세상은요, 결국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곳은 다 망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관계가 지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먹이사슬 알죠? 예를 들어 풀이 있고 그 풀을 먹는 메뚜기가 있고 메뚜기를 먹는 개구리가 있고 개구리를 먹는 뱀이 있다고 칩시다. 먹이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는 아닐지라도 세상도 마찬가지고 모두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개구리가 혼자 잘 살아보고자 평소의 두 배로 메뚜기를 먹었다고 칩시다. 그래서 메뚜기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메뚜기가 없어지면 개구리도 없어집니다. 개구리가 없어지면 뱀도 없어집니다. 풀은 있으나 마나 아무에게도 영양분을 줄 수 없게 됩니다.
서로 자기만 잘 살겠다고 욕심 부리는 곳. 저는 그러한 곳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남이 잘 되길 바라지 않는 세상. 지옥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묻습니다. 천국을 보여줘봐. 진짜 구원이란게 있어?
여러분, 올림픽에서 금매달 딴 선수는 어떻게 합니까? 엉엉 웁니다. 우생순 봤나요? 금매달 따기 까지 했던 고생은 금매달 따고 흘리는 눈물의 양과 비례합니다. 엉엉 웁니다.
오늘 비가 옵니다. 이 비는 강물을 불릴 것이고 거대한 물결을 만들 것입니다. 이와같은 우리 마음의 탐심들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얻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수영의 천재에요. 그래서 수영을 했더니 어느날 금매달을 따버렸네. 감격이 있을까요? 기쁨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안에 있는 죄와 싸우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냥 비가 오면 비가 내리듯, 흘러가면 흘러가듯 몸을 맡겨요. 그렇게 죄에 따라 물에 따라 흘러가는 사람이 그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쁨을 알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 못느낍니다.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고서는 구원의 감격을 삶에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전도사님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셨는데, 죄가 뭐에요? 네. 죄는요, 교회 안오는게 죄가 아니에요. 헌금 안내는게 죄가 아니에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 죄에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은요, 자기 부인하지 않는 거에요. 자기 부인 하지 않는 것은요, 나만 살고 남은 죽어도 된다는 마음이에요. 즉, 탐심이 죄인 겁니다. 교회를 아무리 잘 나와도 그 마음에 나만 잘되리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탐심으로 가득찬 죄인입니다. 교회에서 배운 게 없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연어에요. 탐심의 강물속에서 그 강물을 역행하는 연어에요. 나만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이 마음과 피흘리기 까지 싸우며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에요. 이 연어만이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천국의 영광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가는 길이 힘들겠죠? 하지만 걱정 말아요. 전세계 모든 종교 중에 그 종교의 신이 직접 내려와 사람들을 위해 죽었던 종교는 기독교 말고는 없어요. 그래서 기독교가 희망이에요. 기독교에서 하는 일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이라 말하는 것은 ‘내가 남을 위해서 죽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먼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혼자 가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손잡아 그 강물을 같이 거슬러 올라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낼수 있어요. 혼자가 아니니까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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