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스물 네번째 설교
신명기 5:19
도적질하지도 말지니라
십계명은 십자가다VII
-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 한 것이
우리는 십계명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8계명인 '도적질하지도 말지니라'라는 계명을 볼 차례입니다. 그 전에 우리 저번주 말씀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저번주에 우리는 세 명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기억이나요? 사라, 한나, 마리아를 만났죠. 그리고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이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속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게 해주셨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아이를 낳아서 기쁘다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영적 창녀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딸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할 능력이 전혀 없는 찐따같은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드리려고 합니다. 얼마전 제가 아는 형이 결혼을 했습니다. 저와 동갑인 아름다운 자매랑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 형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자기 아내는 도통 자기 성씨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형은 '전주 이씨'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아내가 자기 가문이나 성씨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달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형을 똑닮은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형의 아내가 '이'씨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전주 이씨세요?"
그 형이 하는 이야기가, 결혼하고나서도 자기 성씨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던 자기 아내가 자기 배로 아기를 낳으니까 그때야 비로소 전주이씨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안에 있습니다. 이 족보는 믿는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거룩한 계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도 이 거룩한 계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애기를 낳아보고 나서' 입니다. 즉, 나를 통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면, 혹 절망 중에 있던 사람이 나를 통해 예수믿고 희망을 얻는 것을 경험하면,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전했던 예수는 누구시지?" 그래서 로마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의 믿음이 소망의 다리를 건너 사랑이 되고 다시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의 믿음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의인은, 믿는 자는 그 다른 사람의 믿음을 보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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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의 계명으로 돌아옵시다. '도적질 하지 말라' 여러분, 도적질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이야기 하려는 도적질은 이런 도적질이 아닙니다. 여러분,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은 "남의 물건을 훔쳐서 교도소에 들어가지 말아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도적질은 우리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만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되죠.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남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도적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누더기와 상처 투성이인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습니다.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묻히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습니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부자가 말하였습니다. '조상님,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자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들에게로 가야만,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오늘 성경은 왜 부자는 부자가 되었는지, 사업을 했는지, 아니면 유산을 물려받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왜 나사로가 거지가 되었는지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는 예전에 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인형극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인형극에서는 부자가 나사로를 때리고 침뱉고 집에서 내쫒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런 장면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자는 인자한 성격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 부드러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자는 나사로에게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든지 말든지, 자기 개가 그 거지를 핥든지 말든지, 부자는 나사로를 먹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도 5초에 한 번씩 10살 미만의 아이가 죽습니다. 왜 죽냐하면 못먹어서 죽습니다. 파리를 쫒을 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쓰러져 죽습니다. 여러분 만한 아이들이 말입니다. 지구에서 약6200만명, 즉 지구 인구의 1%가 어떤 이유에서건 죽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3600만명이 기아 또는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매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나사로 처럼 굶어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치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이 창피하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열등하다거나 무능하다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 혹은 남 앞에서 자신이 창피하다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하등하게 본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들길 바라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식에게 밥을 먹일 수 없는 어미의 수치심을 우리가 가늠할 수 있습니까?
자기 보다 한참어린 사람에게 돈을 구걸하는 거지가 느껴야하는 수치심은 어떻겠습니까? 지하철 계단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어야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 까지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어떤 계기가 되어 그 수치심을 인정하게 되는 날이 왔을 것입니다. 나는 다른 정상인이 아니다. 나는 보통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 까지는 분명 그 사람의 인생속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을 누군가 알아줘야합니다. 누군가 말해줘야 합니다. 그동안 삶이 힘들었냐고. 당신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내가 많이 가진 것은 당신을 위해서라고. 이것은 다 당신과 친구 삼으라고 주신 불의의 재물이라고.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이 남들 보다 많이 먹고 있는데도, 혹시 남들 보다 잘 살고 있는데도, 여러분들 옆에 가난한 사람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도적질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오늘 내가 취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난을 만드는 것은 많이 가지려 하는 인간의 탐욕입니다. 쥔 손을 펼 줄 모르는 인간의 고집입니다. 하나님이 가난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지구에 식량을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누구도 굶지 않을 만큼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만으로도 모든 인류를 먹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 속에 빈곤은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이 탐욕의 역사에 즐겁게 동참하고 있는 사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왜 가난하게 되었을까는 나사로가 왜 거지가 되었을까처럼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싸가지가 없더라. 이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수치심을 인정한 사람은 그렇게 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장의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지혜로운 사람은 돈과 밥이 아닌 사람을 얻습니다. 우리가 먹인 그 사람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5,46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25:45,46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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