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교회 주일학교 스물 세번째 설교


신명기 5:17

간음하지 말지니라


십계명은 십자가다 VI

-세 여자 이야기

 

  오늘도 십계명중 칠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를 가지고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저번 주에 '마음을 잃다'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때 들은 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라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라는 사실, 그것도 신랑을 마음에 두지 않는 창녀 같은 신부라는 것입니다. 신랑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어려운 말로 '간음'이라고 하며, 오늘 십계명에서는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사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명의 여인들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여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똑같은 주제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치 땅을 파서 그 안의 금은보화를 발견하듯, 오늘 이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시는 우리가 됩시다.


  먼저 '사라'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남편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나이는 90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이 90살 먹은 할머니인 사라의 남편인 100살먹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8:10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말을 문 뒤에서 몰래 들었던 사라는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풉'이었습니다. 사라는 웃었습니다. 구십세의 할머니가 아기를 낳는 다는 것은 본인이 구십세이면서도 정말 우스워 보이는 이야기였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 두 번째 여자를 만나봅시다. 이 여자의 이름은 '한나'였습니다. 한나는 사라처럼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아기를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젊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이 사람의 남편 이름은 엘가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부인이 있었는데 브닌나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기에 '부인이 둘이나 있어?‘ 이러겠지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남편 하나에 아내가 여럿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에게는 자신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한나의 임신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장 터지는 일은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브닌나는 한나를 놀립니다. 뭐라고 놀리냐면, '자식도 없는 주제에' 

  

  마지막 여자는 '마리아'입니다. 우리가 보았던 위의 두 사람과 다르게, 이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라가 할머니라서,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께서 임신을 막으셔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이 마리아의 경우, 결혼을 아예 안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없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났던 이 세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한 사람은 불임여성이라서, 한 사람은 처녀라서, 아이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 이제 이 자식 없던 사람들의 뒷얘기를 들어봅시다. 할머니라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라의 결말은 어땠을까요? 네. 아이가 생겼습니다. 이삭이라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를 낳기 전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들은 사라의 반응은 '풉' 하고 웃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진짜 아이를 낳고, 비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우리의 한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나는 기도했습니다.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그리고 아이를 주시면 이 아이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리겠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분통터지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임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었다'라는 이름의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리아는 어떨까요? 우리가 잘 알듯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 공통점을 찾아봅시다. 그것은 '자식을 낳을 수 없던 사람들이 자식을 낳았다'입니다. 임신이 불가능했던 이 세 사람은 모두 임신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는 누가 낳게 해주신 것입니까? 구십세의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아이가 있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한나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낳게 해 주신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먼저 사라의 아들인 '이삭'의 경우부터 살펴봅시다. 이 이삭은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제'는 죽여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즉,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이삭을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고민합니다. 그리고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백세에 얻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그 아들을 묶어서 제단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죽이려고 아브라함이 칼을 든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그렇게 하나님께 드린바 된 이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입니다. 성경 속에서 그는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자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한나의 아들은 누구였죠? 네. 사무엘.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로 보냅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자식을 얻었는데,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사무엘상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으로 사무엘서가 쓰여 졌습니다. 


  마리아의 아들은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광이십니다.


  세 번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아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가능을 뛰어넘어 하나님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그 엄마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오늘의 공통점들을 종합해봅시다. 


첫째,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세 여인에게

둘째, 하나님께서 자식을 낳게 해주셨고

셋째, 그렇게 낳은 자식은 하나님께 드려졌다. 그 엄마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풉’으로 반응하는 신부입니다. 저는 때때로 ‘나는 나이가 너무 많군’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조금만 더 어렸으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에 ‘풉’으로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약속을 믿지 않는 신부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어떠한 이유에서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풉’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불임여성들입니다. ‘불임’이라는 말은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불임여성들의 이야기를 인간극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아이를 너무 원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사용합니다. 그리고 웁니다. 왜 왜냐하면 어떠한 노력도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불임여성인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우리는 자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녀입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처녀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 역시 그 자체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뭐라고 약속 하셨느냐면, "내가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너 자식 낳게 해줄게." 입니다. 복과 번성은 자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번성이라는 말은 많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뭐가 많아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영적창녀인 나를 통해서! 아이를 도대체가 가질 수없는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기다 못해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니가 축복의 통로다. 너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나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인간이 여기에 서있고, 거기에 앉아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영적인 바보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너를 통해서 내가 내 아들, 딸들을 낳겠다." 이 말은 곧 나 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찬양이 삶이 여러분을 바꿀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날이 오늘이 아닐지라도! 여러분의 인생 중 어느 날 하나님의 도구인 나를 통해서 예수님께 무릎 꿇을 날이 올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믿음은 비단 나만의 믿음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믿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은 믿지 않는 자를 믿게 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의 친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남편이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께 돌아오는 한 명 한 명은 여러분들의 아이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들이 얻은 자식입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번성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는 반드시 겪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통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그 엄마가 비명을 지르듯,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사라도, 한나도, 마리아도, 그 아이낳음의 고통을 걱정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나옵니다. 그것은 그 고통보다 아이를 낳고 난 뒤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낳은 엄마가 매일 그 고통을 떠올리신다면 여러분들은 오늘까지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사랑한다면 그 친구를 예수 믿게 하는데 드는 고통은 ‘풉’입니다. 물론 그 고통은 날카롭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이 흐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채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말입니다. “너는 나의 신부야. 그리고 너를 통해서 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날 거야.”  


  그리고 나를 통해 살린, 나를 통해 예수 믿은 그 사람들은 내 영광 아니라 하나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 예수 믿게 했다고 해서 잘난척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도선물? 우습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바랄 것은 그 따위 선물이 아닙니다. 그와 비교 할수도 없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선물에 눈 돌아가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나는 불임여성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 믿었다고 해서 그것은 나의 공일 수 없습니다. 아이를 갖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예수 믿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의 영광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으로 또 다른 사무엘상, 사무엘하를 씁니다. 사복음서를 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영적 창녀인 우리들에게 아이를 약속 하셨습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의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우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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