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scandal)'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연예인들이 몰래 연애하다가 발각되면 그걸 스캔들이라고 부르잖아요? 요즘에는 '평판이 떨어지다'의 의미로 쓰입니다만, 이 말은 본래 스칸달론(σκανδαλον)이라는 희랍어에서 왔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다'라는 의미에요. 옛날 성경에는 '실족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스칸달론이 나오는 구절 하나를 좀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8:7 입니다. 일단 시작은 이렇습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로부터 코스모스가 망했구나! 


  여기서 "코스모스"가 여러분 가진 책에서 무어라 번역되었는지 찾아보세요. "세상"입니다. 코스모스는 세상이에요. 코스모스하면 무엇이 생각 나나요? 가을에 피는 예쁜 꽃 이름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꽃을 가만 잘 보면, 그 꽃잎이 아무렇게나 막 피지 않고, 뭔가 질서가 느껴지지 않나요? 아무렇게나 핀 꽃은 없겠지만, 옛 사람들은 이렇게 질서 잡힌 꽃을 보고서 코스모스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코스모스가 "질서가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이 코스모스라는 말은 꽃 이름이기 이전에,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질서가 있는 세계라는 뜻으로요. 그리고 예전에는 코스모스라고 하면, 사람 사는 데만 가리켰겠지만, 오늘날 영어로 cosmos 이렇게 쓰면, 우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코스모스가 망했어요! 바로 스칸달론들 때문입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 코스모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질서는 커녕 자꾸 넘어집니다. 원래 코스모스는 그런 곳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스칸달론의 지뢰로 가득 찬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요. '잘 걸어서 안넘어지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코스모스에서 살다보면, 내가 넘어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넘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러분은 언제 넘어져 봤나요?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칸달론에 걸린 적은 없나요? 나는 그 친구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는데 싸움에 휘말렸거나, 나는 그 친구에게 욕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서로 욕을 하게 되었거나, 나는 그 친구의 뒷담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뒷담화를 함께 하고 있거나. 걸려 넘어지는게 오히려 질서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이어지는 구절은 이렇습니다.


  즉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안도감이 생깁니다. 이 코스모스에서 사는 건 그런 겁니다. 어느 날 뉴스를 틀었는데, 뉴스 앵커가 "오늘은 어떤 사건 사고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날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날은 없을 거에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게 계속 있을 겁니다. 이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확실하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도 뭔가 안 좋은 상황들을 계속 만나게 될겁니다. 피할 수는 없을 거에요. 코스모스에서 사는 건 그런 거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내용은 이 다음부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통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오게 하는 사람은 망했구나!


  코스모스가 왜 망하게 되었는지가 나왔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입니다. 자신을 통해서 그 스칸달론이 오게 하는 사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코스모스와 함께, 바로 이 사람도 함께 망합니다. 


  다시 아까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나를 어떤 친구가 툭 하고 밀쳤습니다. 역시 코스모스의 삶이란 그런 것이지요. 걸려 넘어질 만한 게 오지 않을 순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손해보기를 죽는 것처럼 싫어하는 나도 그 녀석을 힘껏 밀어주고 싶은 '싶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때 만일 내가 화를 내면서 나를 밀친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똑같이 밀치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코스모스에 또 하나의 스칸달론을 보태는 사람입니다. 코스모스가 왜 망할 코스모스에요? 이렇게 스칸달론을 이 코스모스에 가져오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스칸달론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망할 사람들입니다. 


  스칸달론은 나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스칸달론을 누가 나에게 주었는지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건 내가 그 걸려 넘어질 돌부리 앞에서, 안 걸려 넘어지고 용케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코스모스에 또 하나의 스칸달론을 가져오지 않는 일입니다. 적어도 나 라는 사람 때문에 그 누구도 걸려 넘어져선 안된단 말입니다.


  여기까지 듣고나면, '아, 착하게 살라는 말이구나'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8 

그런데 만일 네 손이나 네 두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을 뽑아라, 너로부터 던져버려라.

그 오는시대의 삶에 들어가는 것이 너에게 온전하다,


  이때 손은 다른 사람에게 스칸달론을 주려는 손입니다. 이때 두 눈은 다른 사람에게 스칸달론을 주려는 눈입니다. 그럼 이 손과 눈을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차라리 뽑고 던져 버리라는 말입니다. 이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식입니다. 우리의 눈과 팔다리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스칸달론도 이 땅에 가져오지 않는 일이 말입니다. 이 일이 에클레시아의 일입니다. 설령 누군가 우리에게 스칸달론을 주더라도, 우리는 용케 넘어지지 않고 마치 오뚜기처럼 균형을 잡으면서 그 사람에게 스칸달론을 되돌려주지 말아야 한단 말입니다.


마태복음 18:9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오는시대의 삶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스칸달론을 주려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칸달론을 주는 손을 가진 사람은 지옥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사람의 삶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도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사람의 삶이 오는시대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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