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있는 예수 공동체들에게




  '메시아'이신 예수의 노예, 나 바울은 사도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임명받았습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자기 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 아들은 몸으로는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고, 거룩한 숨으로는 죽은 이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올곧게 세워졌으니, 이 분이 곧 예수, 메시아, 우리 주님이십니다. 리는 모든 민족이 그 이름을 충성스럽게 따르게 하고자 예수로부터 사도직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민족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편지를 하나님의 사랑 하심을 입은 로마의 모든 사람,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보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왕이신 주 예수를 힘입는 삶, 그리고 하나 됨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먼저 내가 왕이신 예수 때문에 여러분 모두에 대해서 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은, 온 세상이 여러분의 신실함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면 언제나 쉬지 않고 여러분을 말합니다. (이 일의 증인은 그 아들의 좋은 소식 안에서 내가 맘과 인격으로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 뜻 안에서 어떻게든 여러분에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나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숨을 여러분에게 나눠주며, 여러분을 건강하게 하고자 합니다. 내가 여러분들 안에서 나와 여러분들이 가진 믿음으로 위안을 얻습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내가 몇 번이고 여러분에게 갈 계획을 세웠지만, (내가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열매를 거둔 것과 같이,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항상 무슨 일이 벌어져 길이 막혔음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나는 희랍 사람이나 희랍 아닌 사람이나 지혜 있는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에게 다 빚진 자입니다. 그러니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이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그리고 희랍 사람에게도 동등하게 주십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신실함에서 신실함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의인은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산다"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옳지 않음과 불경함을 향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하나님다운 것이 그들 속알에 있습니다. 질서 잡힌 창조세계부터 그의 행하신 일에 이르기까지, 그 보이지 않는 성스러움이 인지되었고, 또한 그 끝없는 힘과 하나님다움도 알려졌으니, 그들이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를 드러내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의 생각이 공허해지고, 미련함이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리석게 되어서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게 될 사람과 금수와 기어 다니는 것들의 꼴들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셔서,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욱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십니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여자들마저 순리적인 성관계를 역리로 바꾸었으며, 남자들도 여자와의 순리적인 성관계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했습니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스스로 받았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한 분 모시기를 싫어하니, 그 한 분은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하게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 추악, 탐욕,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거만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어리석은 자요, 믿지 못할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한 분께서 정하셨음을 알고도. 자기들만 그런 일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옳다고까지 합니다. 



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누구이든지 남을 판단할 때에는, 자신도 같은 일을 행하기 때문에 자신을 정죄합니다. 심판자 행세하는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공명정대하게 이뤄지는줄 압니다. 남을 판단하면서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당신의 회개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것입니까? 완고한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서기를 거부하는 것은,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드러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스스로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한 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참을성 있게 선을 행하므로,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구할 때, 한 분은 그들에게 '오는 시대의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편을 나누고, 진리를 따르지 않으며,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따를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의 인격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희랍 사람에게도 동등하게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고, 그에 걸맞게 가치롭게 여겨지며, 싸움 없이 하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또한 희랍 사람에게도 동등하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율법 밖에서 삐뚤어진 사람은 율법 밖에서 심판받을 것이고, 율법 안에서 삐뚤어진 사람은 율법으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롭다고 선언되는 사람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방 사람은 날 때부터 율법이 없지만, 그들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행할 때마다, 율법이 없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율법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고 때로는 변명하며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포하는 복음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그 날에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자신을 '유대사람'이라 칭한다면 말입니다. 즉, 당신이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미래에 이뤄질 바를 알고, 율법에 의해 지시된 것들의 남다름을 옳게 여기면서, 자신을 가리켜 믿기를, "나는 율법 안에 있는 앎과 진리의 요점을 가진 자라서, 눈먼 사람의 인도자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야"라고 믿는다면 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남을 가르치면서도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도둑질합니까? 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간음합니까? 우상을 몹시 싫어하면서도 자신은 이교도들의 신전을 텁니까?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자신은 율법을 어겨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민족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구나!'' 이스라엘이 율법을 행한다면 할례는 유익하겠지만, 만일 율법을 어긴다면, 할례는 소용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사람이 율법이 선언하는 바를 올곧게 지키면, 그 무할례자를 할례받은 사람처럼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태어났을 때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그 규정과 할례를 근거로 율법을 어기는 이스라엘을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즉, (진짜) 유대 사람은 눈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할례는 살가죽에 보이게 해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유대 사람은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으며, 할례는 규정이 아닌, 하나님의 숨결로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칭찬은 사람으로부터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유대사람에게는 무엇이 좋습니까? 진정 할례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좋은 점이 매우 많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이 알리고자 하시는 바를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 일부가 그 임무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신실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며, 모든 사람은 거짓됩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당신이 당신의 말씀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당신이 법정에 서실 때에 승리를 얻으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의 불의함으로 뚜렷해진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람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할 것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참되심이 나의 거짓 속에서 더 풍성하게 드러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내가 죄인으로 판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은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비방하듯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고 말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좀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사람이나 희랍사람이나 모두 죄 즉, '삐뚤어짐'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고발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모두가 한쪽에 치우쳐 쓸데없는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에는 속임이 있고,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심한 말이 가득하고,

그 발걸음은 피나게 하는 일에 바쁜지라.

부서짐과 비참함이 그 길에 있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 채로,

그들의 눈앞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우리는 압니다.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나오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어떤 살몸도 그분 앞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자신의 삐뚤어짐을 깨달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아주 별개이면서도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직함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그 안에서는) 둘로 찢겨짐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삐뚤어져 버려서 하나님을 뚜렷이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벌어진 어린양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저 하나님 가족 삼아 주셔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피안에 있는 그 믿음직함 때문에 예수를 법궤 덮개 앞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속에서, 현실로 달려오는 과거와 미래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를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그의 의가 현시대를 뚫고 바로 지금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것과 예수의 신실하심으로 출애굽 한 사람들 또한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만한 게 어디 있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되겠습니까? 자랑스러운 글자들을 지키려는 것으로 되지 않고, 사람이 자기 인격으로 하나님의 인격에 신실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 노동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다'라는 말이 우리 안에서 확실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유대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참으로 유대 사람 아닌 사람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할례자도 신실함으로, 무할례자도 신실함으로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신실함 때문에 율법이 폐기처분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굳건히 세울 것입니다.


4


  그러면 몸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에 관해서는 어찌 새롭게 이해해야겠습니까? 만약 아브라함이 노동으로써 의롭다 선언 되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롭다 선언하셨다." 노동하는 사람에게는 노동의 대가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할 급여로 계산됩니다. 그러나 노동하지 않고서도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분께 신실한 사람에게는, 그 분이 그 신실함을 의로 여기십니다. 다윗도, 노동없이, 하나님이 의롭다 선언하는 사람의 복에 관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범법자들은 용서받는다.

죄인들은 죄 덮인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

주께 죄를 계산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그러면 이 복이 할례 받은 이에게 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 받지 않은 이에게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그 신실함을 의로 여기셨다."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 일이 있던 때는) 아브라함이 할례자일 때 일어났습니까? 무할례자일 때 일어났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할례자였을 때가 아니라, 무할례자였을 때입니다. 그는 할례받지 않았을 때, 신실함으로 얻은 의에 대한 확인 도장으로써, 할례라는 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무할례자면서도 신실한 모든 사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무할례자도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이들의 조상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자들의 조상이면서도, 할례받지 않았을 적에 그가 걸었던 신실한 발걸음을 따르는 자들의 조상입니다. '세상을 상속받으리라!'라고 아브라함이나 그 씨알에게 하신 이 언약은, 율법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실함의 의로 되었습니다. 만약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라면, 신실함은 알맹이 없게 되었을 것이고, 언약도 효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화를 불러올 뿐이고, 율법 없는 곳에는 율법을 어기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출애굽을 시작하여, 거저 주시는 가르침과 돌보심의 과정을 지나, 그 언약이 모든 그 씨알에게 굳건하게 되는 데 이르는 것입니다. 모든 씨알은, 율법에서 시작하지 않았고,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실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그 분 앞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망을 거스르는 상황 중에도 소망을 바라보며, "네 씨알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자신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나이가 백 세나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는 믿는 바에 힘내어, 하나님을 드러냈고, (하나님도) 약속하신 바를 힘내어 이루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의가 선언되었습니다." "그에게 선언되었다"라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 때문만이 아니요, 이제 막 선언 받을 우리,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 주를 일으키신 분께 신실한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예수는 우리의 삐뚤어짐 때문에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셨고, 또한 우리의 의를 위하여 일으켜지셨습니다. 



5


  그 결과, 신실함을 시작으로 의롭다고 선언된 우리는 하나님 만나는 날까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싸움 없이 하나 됨을 누립니다. 그 예수와 함께, 우리는 신실함으로써 은혜 속에 들어감을 얻었고, 바로 그 은혜 안에 서 있으며, 하나님의 드러나심을 소망하며 소리 높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압제 중에도 소리 높입니다. 왜냐하면 이 압제는 견딤을, 이 견딤은 시험에서의 인정을, 이 인정은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이루는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로. (우리 맘에 부어진 사랑이 이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때에 우리가 힘을 낼 수 없었음에도, 정해진 때를 따라,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의로운 이를 위해서 좀처럼 죽지 않으며, 선한 이를 위해서 용감히 죽으려는 이도 어쩌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을 우리와 함께 단단히 묶어두셨기에, 그때에 우리가 삐뚤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피 안에서 지금 의롭다 선언된 우리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그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서로 적이었던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사이가 되었다면, 그 아들의 다시사심 안에서 하나님과 그러한 우리는 더욱 더 구원얻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기까지 합니다. 그 예수로 인해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의 삐뚤어짐'이 한 사람을 시작으로 세상 속에 들어왔고 그 삐뚤어짐 때문에 죽음도 세상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속에도 죽음이 꿰뚫고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삐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삐뚤어짐이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삐뚤어짐을 이치에 넣고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동일한 벗어난 걸음을 걷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 아담은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이루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과는 달리, 이러한 거저 주신 것이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떨어져나감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그 거저주심 속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성히 흘러 넘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삐뚤어진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과는 달리, 이러한 선물이 있습니다. 즉 심판은 한 사람을 근거로 유죄 판결에 이르는 반면, 선물은 많은 떨어져나감을 근거로 의의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잘못된 걸음을 걸었던 한 사람을 통해 다스렸지만, 거저주신 것에 넘치고, 삶속에서 의의 선물을 붙잡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잘못된 걸음을 통해 많은 사람이 유죄판결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걸음을 통해 많은 사람이 믿음직스러운 삶에 이릅니다. 마치 한 사람의 흘려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하나님 아래) 놓이게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잘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하나님 아래) 놓이게 됩니다. 율법이 (세상에) 깊고도 넓게 들어온 것은 잘못된 걸음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삐뚤어짐이 넘쳤던 그 곳에 하나님의 거저주심이 넘쳤습니다. 마치 죽음 안에서 삐뚤어짐이 사람과 세상을 지배했던 것과 같이 '대가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 역시 의를 통해서 다스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얻는 오는 시대의 삶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6


  그러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삐뚤어짐 속에 머물겠습니까? 거저주심을 넘치게 할 목적으로? 일 없습니다. 삐뚤어지는데 있어서 죽어버린 우리가 어찌 지금도 그 안에서 살고자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잠기다 못해, 그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깊게 잠겼던 우리 아닙니까? 그 결과, 그의 죽으심에 이르는 세례를 통해 그와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이것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온 통 드러나시어 죽은 사람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된 삶 속에서 걷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가 '함께 새싹이 돋아난 이'라면, 또한 그의 다시 사심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가 그리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못박혔습니다. 삐뚤어진 몸을 아무 소용없는 상태로 남겨두기 위함입니다. 더이상 삐뚤어짐에 끌려다니는 종이 아닌 것입니다. 즉 죽었던 이가 삐뚤어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와 함께 살 것을 또한 믿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죽은 적이 없고, 이제는 죽음이 결코 그의 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삐뚤어짐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삐뚤어짐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선언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러므로 여러분은 삐뚤어짐이 여러분의 죽을 몸을 다스리지 못하게 해서, 몸의 욕구 아래서 조아리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여러분의 손과 발을 삐뚤어짐 옆에 있게 마세요. 의롭지 않은 일의 무기가 되고 맙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곁에 있게 하세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산 자로서,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 곁에 있게 하세요. 삐뚤어짐이 여러분의 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 아래 있지 않고 거저주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잘잘못을 가리는 법 아래 있지 않고 거저주심 아래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어찌 막 삐뚤어질 수 있겠습니까? 일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곁에 서서 섬기고자 하는 이의 말을 잘 듣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여러분이 곁에 서서 잘 듣고자 하는 자를 섬기게 된다 말입니다. 삐뚤어짐을 섬기다가 죽음에 이르거나, 잘 듣는이로서 섬기다가 '의의 판결'에 이르게 됩니다. 참으로 거저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 곁에 여러분들이 섬기는 이로서 있게 될 것입니다. 삐뚤어짐을 섬기던 여러분들이 전달받은 가르침의 기초 위에서 마음으로부터 잘 들고자 했으니 말입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삐뚤어짐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義)로 섬기는 이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의 욕구에 무력하니, 내가 사람을 예로 들어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음란과 무질서 곁에서 섬기는 이로 두어 혼란의 상태에 이르렀던 것과 같이, 이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의'의 곁에서 섬기는 이로 두어 하나님닮음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삐뚤어짐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 얻는 새로운 삶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로 (도대체) 무슨 열매를 얻었습니까? 그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삐뚤어짐으로부터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곁에선 종이 되어, 여러분의 열매를 얻고, 하나님닮음에 이릅니다. 그 마지막은 오는 시대를 삶입니다. 삐뚤어짐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죽음이요,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것은 오는 시대를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주님이신.


7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내가 모세 율법 아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세 율법이 사람의 사는 시간만큼만 다스리는 줄 모릅니까? 즉 남편 아래 있는 여인이 살아서는 그 남편에게 법으로 묶여 있으나, 그 남편이 죽으면 언제든지 남편의 법으로부터 벗어나 그 법이 쓸모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그녀는 간통녀라 불러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어, 그녀는 다른 남자와 관계하더라도 간통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도 율법 앞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죽임당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바로 그 분과 관계 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모세 율법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몸 안에 있을 때에는, 율법을 통해 (드러나는) 견디기 힘든 삐뚤어짐이 우리의 몸의 구석 구석에서 힘을 발휘하여, 우리가 죽음 앞에서 열매 맺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붙들어 놓았던 것 속에서 죽어버렸으니, 그 율법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격의 새로움 속에서 섬길 것이요, 글과 문법의 낡음 속에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율법이 삐뚤어졌다 말하겠습니까? 일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삐뚤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삐뚤어짐이 기회를 붙잡아 계명을 타고서 내 속에 온갖 탐심을 만들어냈습니다. 율법을 먹지 않으면, 삐뚤어짐은 죽은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전에 율법에 떠나 있을 때에는 내가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명이 내 속에 들어오니 삐뚤어짐이 다시 생기를 얻고, 나는 죽어버렸습니다. 즉 나를 참된 삶으로 이끄는 그 계명이 오히려 나를 죽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삐뚤어짐이 기회를 붙잡아 계명을 타고서 나를 완전히 속이고, 계명으로 나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좋으신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닮은 것이 나를 살해했단 말입니까? 일 없습니다. 오히려 삐뚤어짐이 하나님닮은 그것으로 나를 죽게 만들어버려서, 삐뚤어짐의 정체가 폭로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명을 통해 삐뚤어짐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닮은 것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일 없습니다. 다만 죄가 정말 삐뚤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 닮은 것을 사용해서 나를 죽음의 영향 아래 두신 것입니다. 이는 죄를 (핑계를 댈수 없는)더한 죄에 빠뜨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것임을 압니다. 허나 나는 몸에 속하여 삐뚤어짐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즉 내가 나도 가늠할 수 없는 힘 아래 짓눌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한단 말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때면, 나는 비로소 (내가 아니라) 율법이 하나님답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 아래 짓눌려 있는 것이 나였던 적이 없습니다. 내 속에 거주하고 있는 삐뚤어짐만이 그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나였던 적이 없습니다. 내 속에 살고 있는 삐뚤어짐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속에 즉 나의 살몸 안엔 하나님의 성품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맘은 있으나 온전을 이루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 성품을 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실천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만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 일을 내가 한다면, 그 일을 이루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살고 있는 삐뚤어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한 가지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온전을 이루길 바라는 그 순간에도, 나에게 악이 함께 놓여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나는 내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내 손과 발을 지배하는 이 또 다른 법도 봅니다. 그 법은 내 맘의 법과 대치하여 싸우며, 나를 내 몸이 바라는 삐뚤어짐의 법 아래에 포로로 잡아옵니다. 나는 무거운 시험에 빠진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허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베풂'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반면, 살몸으로는 삐뚤어짐의 법을 섬깁니다. 


8


의심의 여지 없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유죄판결이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삐뚤어짐과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살몸이 굳건치 않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에 속한 살몸 모양으로 보내시고, 그 살몸 안에서 죄가 죄 있다고 판결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살몸 따라 행하지 않고 숨결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를 가득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살몸을 따르는 자들은 살몸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숨을 따르는 자들은 그 숨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살몸의 생각은 죽음이요, 하나님 숨의 생각은 생명과 고요함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살몸의 생각은 하나님과 맞서게 되니, 하나님의 법 아래 조화로이 있으려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몸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숨이 여러분 안에 거주하시면 여러분은 살몸 안에 있지 않고  숨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숨을 갖지 않으면, 그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 만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살몸은 삐뚤어짐으로 인해 죽은 살몸이요, 인격은 의의 판결로 인해 산 인격입니다. 또 만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숨이 여러분 안에 거주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의 죽는 살몸 마저도 소생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거주 하시는 그의 숨으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족 여러분! 우리가 빚진 사람들입니다. 허나 살몸에 빚진 것이 아니니 살몸을 따르는 삶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살몸을 따라 산다면, 죽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숨으로 몸의 짓거리를 죽이면,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숨에 이끌린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는 종의 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되는 숨을 받았습니다. 그 숨결로 부르짖습니다, 아빠 아버지! 숨님 또한 우리의 숨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이들이라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메시아와 함께 공동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나타나고자, 그와 함께 고난도 받는 한 말입니다.


  우리가 따져보니, 지금 이 때의 고난은 우리에게 곧 정체를 드러낼 그 영광과 비교할 가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세계의 간절히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세계가 허무함에 굴복하는 것은 제 뜻이 그러한게 아니라, 오히려 굴복하게 하시는 이의 소망 때문인데, 그 소망은, 바로 창조 세계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아이들 나타날 때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조세계 전체가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고통당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거룩한 숨결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 역시 함께 속으로 슬퍼하며, 아들됨 곧 우리 몸이 새롭게 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소망으로 우리가 온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하기에, 끈기를 가지고 기쁘게 기다립니다.


  이와같이 숨님도 맞은 편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즉 우리가 어떤 필요에 따라, 무엇을 기도해야할런지 알지 못해도, 숨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숨님의 생각하는 바를 아시는데, 이는 숨님이 하나님을 따라 씻어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함께 일하십니다, '좋음'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앞서 정하신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이들을, 그의 아들의 형상 본받을 사람들로 미리 정하셨다는 사실은, '그이'가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마침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향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에 두시면 누가 우리를 아래 두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을 고발하겠습니까? 그들을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죄 있다 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만나시는 분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어 놓겠습니까? 우리를 둘러싼 압박이나, 죄여듬이나, 폭력이나, 배고픔이나, 욕보임이나, 위험으로 내몰림이나, 칼입니까?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한 낮 내내 우리가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가 희생당할 양으로 여겨집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를 통해 압도적으로 이깁니다. 내가 확신하는 바,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들이나 권력자들이나 현실 문제나, 앞으로의 문제나, 할 수 있음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9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을 말합니다. 속이지 않습니다. 거룩한 숨결 안에서 나와 함께 양심이 증언하는 것은 

나에게 큰 슬픔이 있고, 내 맘에 사라지지 않는 걱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줄곧 기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나 자신을, 나의 형제들 곧 살몸을 따라 나와 동류인 사람들을 위해 제물 삼아주시라고.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들로 받아들여짐과 드러남과 언약들과 율법 세우심과 그 율법에 따른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있고, 살몸으로 따지면 그리스도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을 향해 계시는 하나님, 오는 시대 이르도록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로부터 난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가 '씨'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삭 안에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살몸을 통해 낳는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이 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돌아올테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뿐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을 통해 임신했는데, 그 사람이 우리 조상 이삭입니다. 아직 그에게서 자식들이 나오지도 않았고, 무슨 잘한 일이나 못한 일도 없을 때였지만, 선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부르신 이로부터 그녀에게 말씀이 있기를,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야곱은 내가 사랑하지만, 에서는 내가 미워했다" 함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불의가 있습니까? 일 없습니다. 그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그러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너를 세운 이유이니, 

곧 네 안에서 나의 힘을 나타내어

온 땅에 내 이름이 알려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뜻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뜻한 자를 완고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의 뜻에 맞설 수 없는데, 그 분은 어째서 여전히 사람을 나무라십니까?" 이 사람아! 감히 당신이 뉘기에 하나님께 맞서 반박하며 말하는 것입니까? 빚어진 것이 빚은이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대하십니까?" 하겠습니까? 토기장이가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다른 하나는 귀함 없는 그릇으로 한 덩이 진흙을 다룰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뜻하셨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그 화를 나타내시어 자신의 힘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부수려고 하셨던 화 그릇들에 대해서는 아주 꿋꿋함으로 참으셨다면?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드러나기 위해 만드셨던 그 긍휼 그릇에 대해서는 자신을 풍성하게 드러내시어,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하신다면? 이 그릇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유대사람 뿐만 아니라 이방사람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호세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듯이,


"내가 내 씨알아닌 자를 내 씨알로 부르겠고,

사랑받지 못한 이를 사랑받는 이라 부르리라.

또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말했던 바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외치기를, 


"비록 이스라엘 아들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보존될 것이다.

주께서 이 땅위에서 온통 이루시며 잘라내실 그 말씀을 행하시리라."

 

  이사야는 앞서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소돔이 되었을 것이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의를 따르지 않았던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오히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찌 그렇습니까? 믿음이 아니라, 노동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돌과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바위를 둘 것이니,

그를 믿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10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내 간절함으로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는,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인간다움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음을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결말이 확실히 드러난 앎'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앎이 없는 그들은, 자기 옳음 세우는데만 애쓰고, 자신을 하나님의 의 아래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한 모든 자에게 의의 신분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율법의 결말이신데도 말입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율법들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율법들 속에서 살리라."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즉 그리스도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짓입니다), 

'누가 심연으로 내려가겠느냐'

(즉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짓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합니까?


"말숨이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숨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당신의 맘으로 한 분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의 한 주님은, 그를 향해 소리쳐 부르는 모든 사람 속에 가득 차오르시어, 유대 사람이나 희랍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하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믿지 않았던 한 분을 어찌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과거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소식을 전하는 자 없이 어찌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없다면 어찌 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왕의 소식을 전하는 발들이여!"


  그러나 모두가 그 왕의 소식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주여,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믿었나이까?"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숨 한가운데를 지나갑니다. 그들이 정말로 듣지 않은 것이냐? 그러나 제 대답은 이러합니다. 아닙니다! 


"저들의 노래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저들의 말숨소리가 땅 끝까지 퍼졌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던 것 아니냐? 그러나 제 대답은 이러합니다. 먼저 모세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백성 아닌 자 곁에서 질투나게 하며,

내가 너희를 어리석은 백성 곁에서 성내게 하리라."


  이사야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나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 속에서 내가 찾은 바 되었고,

나에게 묻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또한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믿으려 하지 않고, 반박하기만 하는 백성에게 

내가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였습니다.


11


  그래서 제가 묻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버리셨습니까? 일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난 자요, 베냐민 지파입니다. 하나님의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에 관해 기록한 것을 모릅니까? 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대해서 고발하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주여, 저들이 당신의 예언자들을 죽였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어버려서,

나 하나만 뒤에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 마저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엘리야에게 무어라 했습니까?


"나에게 내가 남겨둔 칠천 사람이 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이들이다."


  이와 같이, 지금 이 새로운 시절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아 있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만약 은혜로 되었다면, 노동으로부터 났다 할 수 없는 것이요, 만약 은혜로 되지 않았다면,  은혜는 더이상 은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지금 쫓는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그것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택하심을 받은 자는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반변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구멍난 인격을 주셨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리.

오늘날 까지도."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의 밥상이 

저들에게 올가미와 사냥 덫과 돌뿌리와 

(저들의 행위에 대한) 마땅한 보응이 되게 하소서.

저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저들의 등을 온통 굽게 하소서."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 완전히 고꾸라졌습니까? 일 없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삐뚤어짐으로 구원이 민족들에게 이르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옆에서 그 구원을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의 삐뚤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피폐함이 민족들의 풍성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이 돌아왔을 때)의 풍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방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 사람의 사도인 만큼, 이 직무가 하나님을 나에게 뚜렷이 드러냅니다. (내가 할 일은) 어떻게든 내 동족들을 옆에서 질투하게 해서 이스라엘 중에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거절함이 세상의 평화가 되었다면, 이스라엘에게 나아가 손내미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첫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합니다. 그러나 만일 (본래 있던)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이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 나무인 당신이 품종 좋은 올리브나무 안에 접붙임되어, 그 뿌리 양분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그 (잘려나간) 가지들에게 자랑하지 마세요. 만일 자랑한다면, 당신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뿌리가 당신을 지탱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본래 있던)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임받기 위함입니다." 맞습니다. 믿지 않아서 그들이 잘려 나갔습니다. 반면 당신은 믿음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십시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본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당신도 아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베푸심과 엄격함을 보세요. 타락한 자들에게는 엄격함이, 여러분에겐 그 베푸심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베푸심 속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여러분도 잘라 버리실 것입니다. 또한 잘려나갔던 이들도, 믿음 없는데 머물고자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접붙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저들을 접붙이실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본성을 따라 나는 당신도 야생 감람나무에서 잘려, 그 본성을 거슬러 품종 좋은 올리브 나무 안에 접붙임되었는데, 본래 품종 좋은 올리브 나무의 가지였던 이 사람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기 자리였던 그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향해 지혜롭다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비밀은 역사의 한 부분(메로스)에서 시작하여 이방 사람들이 충만하게 들어오는 날까지 이스라엘에게 '마음의 굳어짐'이 있게 되었고, 그래서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시온에서부터 '흐르게 된 이'가 오리라.

야곱에서부터 하나님께 등돌린 이들을 다시 돌아서게 하리라.

내가 그들의 삐뚤어짐을 베어버릴 때마다

이것이 저희에게 내 언약을 따라 이뤄질것이다."


  복음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여러분들을 통해 원수가 되지만, 택하심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조상들을 통해 사랑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부르심에는 뉘우칠만한 잘못이 없습니다. 그 결과 여러분도 전에는 하나님께 설득되지 않더니, 이제는 이스라엘의 설득되지 않음으로 긍휼을 입었습니다. 이와같이 지금 이스라엘이,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이에게 설득되지 않는 것은, 저희도 이제 긍휼을 입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설득되지 않음에 가두어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아, 깊도다!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여!

그의 심판은 헤아릴 수 없고,

그의 길은 찾아낼 수 없네.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으며,

누가 그와 '더불어 논하는 이'가 되었으며,

누가 그에게 미리 드려져, 그의 보답을 얻으리요?


이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와서 그를 지나 그에게로 감이라.

그 드러남이 그에게 세세토록, 아멘.


12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가까이서 부르고 있어요. 하나님의 갸륵히 여기심을 통하여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세요. 이러한 제사가 이치에 걸맞는 여러분의 예배입니다. 이 '현시대'의 습관과 외모를 닮지 마세요. 오직 생각을 위로부터 새롭게 함으로 몸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해보고 인정하는데 이르세요. 그 뜻은 하나님을 닮아 좋고, 받아들일만 하며, 온전한 목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찢겨진 두 차원을 잇는 그 인격'으로 내가 여러분 중에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할 것에 대해 자만하지 말고, 오직 '중용'에 이르도록 마음 먹으세요.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신실함의 척도에 따라 나누신대로 하세요. 우리가 하나의 몸 안에 많은 부분들을 가진 것처럼,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가족들이 하나의 직분을 갖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되어, 서로 다른 이들이 그 한 몸을 따라 몸의 부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다양하고 탁월한 '카리스'를 따라 '카리스마타'를 받았습니다. 즉 믿음의 이치를 따르는 예언이 있고, 맡은 일 속에서 하는 맡은 일함이 있고, 가르치는 일 속에서 하는 가르침이 있고, 곁에서 옳은말 해주는 일 속에서 하는 권고가 있고, '여러 국면이 하나로 꿰뚫림' 속에서 하는 나누어줌이 있고, 열심 안에서 공동체 앞에 서는 일이 있고, 즐거움 안에서 자비를 베푸는 일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가식이 없습니다. 억눌려 지치는 고됨에서 떠나, 좋으신 하나님 안에 굳게 붙어 있으세요. 서로 진실한 애정을 다하여 사랑을 나타내고, 존중하기를 서로 먼저 하세요. 열심을 가지고 게으르지 말며, 마음에 열정을 품으며, 주께 종노릇 하여, 소망으로 기뻐하며, 어려움 중에 견디며, 기도로 가온을 단디 붙잡아, 씻어난 이들의 쓸 것들을 서로 나누며, 낯선이 대접하기를 힘쓰세요.


  여러분을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흐느껴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를 향해서 이와 같은 마음을 품어,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오히려 짓눌린 사람들과 어울리십시오. 자신에 대해서만 사려깊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온전한 일을 앞서 생각하세요.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세요.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들이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사안을 맡기세요. 기록되기를, 


"원수 갚음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원수가 배고프거든, 언제든지 그를 먹이십시오. 만약 그가 목마르거든, 언제든지 그를 마시게 하십시오. 그리하는 것이, 여러분이 그 원수의 머리 위에 핀 숯불을 쌓아놓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에게 정복당하지 말고, 선 안에서 악을 이기세요.


13

  

  숨 쉬는 모든 생명체는 다스리는 권세들 아래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면 권세는 있을 수 없고, 권세들은 하나님께서 질서있게 배치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권세를 벗어던지려는 자는 하나님의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요, 그 반대하는 자는 스스로 (그에 대한) 심판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닮은 일을 할 때에는 그 다스리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악한 일을 할 때에나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하나님 닮은 일을 행하세요. 그러면 (오히려) 그 권세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당신에게 있어 하나님 닮음을 이루는 사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악을 행한다면, 권력을 두려워하십시오. 권력이 달리 공권력을 가진게 아니니 말입니다.즉 권력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기 위해 (범죄에 처벌로) 갚아주는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 마음' 때문이라도 그 아래 놓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금을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을 위해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에게 줄 것을 납부하되, 세금을 걷는 이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관세를 걷는 이에게 관세를 납부하십시오. 두려워할 이를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를 존경하십시오.


  서로를 향한 사랑외에는 아무 것도 빚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가 율법을 다 이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만일 어떤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바로 이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이룸입니다. 


  '이 때'가 곧 '그 때'임을 보십시오. 그 때는, 이미 여러분이 잠에서 일어난 때요, 우리의 구원이 이제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진 때입니다. 밤은 지나가고 낮이 가깝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일들을 벗고, 빛의 무구를 입읍시다. 낮에 다니듯 단정하게 행합시다. 광란의 연회를 벌여 술취함에 빠지지 말고, 난잡하게 놀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음란에 빠지지 말며, 성냄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오히려 주 예수그리스도를 입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몸의 일을 행하지 마십시오.


14


  믿음이 굳건히 서지 못한 사람을 여러분이 용납하되, 그의 생각하는 바를 비판하지 마십시오. 한편으로 어떤 이는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믿음이 있고, 한편으로 다른 이는 굳건히 서지 못하여 풀만 먹습니다. 먹는 이는 먹지 않는 이를 없이 하지 말고, 먹지 않는 이는 먹는 이를 (문제 있다) 판단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용납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의 종이 제 주인에게 굳건히 섰는지, 아니면 넘어지는지를 판단하는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가 일어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어떤 날이 다른 날 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이 같다고 판단합니다. 각각 제 마음에 가득채워 지켜 나가세요. 날을 생각하는 이도 주를 향해 생각하고, 먹는 이도 주를 향해 먹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고맙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는 이도 주를 향해 먹지 않으니, 하나님께 고맙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자도 없습니다. 우리가 산다면 언제나 주를 위하여 살고, 우리가 죽는다면 언제나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언제나 우리는 주께 속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는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하심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가족들을 판단합니까? 당신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가족들을 없이 여깁니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주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나에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고백하리라."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들이 자신에 관한 말을 하나님께 아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더이상 서로를 죄 있다 생각하지 맙시다. 도리어 하나님 가족들 앞에 슬퍼할만한 일이나, 죄 짓게 할만한 일을 두고 있지 않는지를 생각하세요.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기를,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여길 때, 그 사람에게만은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형제가 먹는 문제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이것은 당신이 사랑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거늘, 먹는 것 때문에 당신의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하나님 닮음이 욕먹지 않도록 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은 먹음과 마심으로 있지 않고, 오직 거룩한 숨결 속,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 숨결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는 하나님과 뜻이 맞아서 기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 평화의 일들과 서로를 위해 집짓는 일들에 힘을 냅시다. 먹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마세요. 모든 것이 한편으로 깨끗하지만, 죄 짓는 맘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합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책감을 갖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기가 되었든 포도주가 되었든, 먹지 않는 것이 온전합니다. 당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향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을 붙들고 있어요. 자신이 옳다 믿는 바를 가지고 스스로를 죄 있다 하지 않는 이는 복이 있습니다. 반면, 먹을 때마다 철저하게 하나하나 판단하는 이는 그에 따라 판단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믿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부터 나지 않은 모든 것은 삐뚤어짐입니다.


15


  우리 '할 수 있는 이들'은 '할 수 없는 이들'의 굳건히 서지 못한 면들을 짊어져야 할 빚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들에게만 들어맞는 것은 참기쁨이 아닙니다. 우리 각사람은 (서로를 위한) 집 짓기를 바라보며, 이웃이 하나님과 뜻이 들어맞아 기뻐하도록 도웁시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는데, 오히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비난하는 자들의 비난이 나에게 떨어졌나이다."


  무엇이든지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의 가르침이 됩니다. 기록들에 나오는 견딤을 통하여, 그리고 속삭임을 통하여, 우리가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견디게 하시고, 곁에서 속삭이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서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같은 마음을 품게 해주셨기를 바랍니다. 이는 여러분이 같은 숨내쉼을 가지고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드러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서로서로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드러내신바와 같이. 제가 그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을 머리에 이고, 할례에 속한 종이 되셨습니다. 이는 선조들의 약속들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긍휼을 머리에 이고, 이방사람들이 하나님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로 

내가 모든 민족중에 당신께 고백하고,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겠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즐거워하라 민족들아, 그의 씨알과 함께."


  또한 


"모든 민족들아, 주를 높이며, 

모든 씨알들아, 주를 칭송하라!"


  또한 이사야가 말하길,


"이새의 뿌리, 곧 민족들을 다스리기 위해 일어나는 이,

민족이 그이 안에 소망을 두리라"

 

  소망의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모든 기쁨과 평화로 믿음 안에서 흘러넘치게 하셨으니, 이는 여러분들을 거룩한 숨의 능력 안에서 소망으로 흘러넘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생각하며 확신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닮음으로 가득해서, 모든 깨우침으로 흘러넘쳐, 능히 서로서로를 마음에 둘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용기내어 여러분께 썼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로 비롯된 사람들이란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대목에서부터, 내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자가 된 일까지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함인데, 이 드림이 거룩한 숨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일들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민족들을 경청케 하시고자 나를 통해서 힘입게 하신 것 외에는 내가 어떤 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때론 말과 일로, 때론 표적들과 경이로운 일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숨결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다니며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흘러넘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는 곳에서는 다른 이의 터 위에는 집을 짓지 않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한 이들이 알게 될 것이요.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이들이 함께 모일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을 향해 가려던 여러 번도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지역에서 더 할 일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스파니아로 가는 어느 때든 여러분에게 가려는 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나가는 길에 여러분들을 만나 여러분들로부터 먼저 부분적으로 채움을 얻은 후에 여러분들이 나를 거기로 보내주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씻어난 이들을 섬기려고 합니다.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씻어난 이들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얼마를 함께 나누겠다고 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잘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루살렘의 씻어난 이들에게 빚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숨쉬는 것을 민족들이 함께 나누었으니, 예루살렘 사람들을 살몸에 관한 것으로 섬겨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일을 마치고, 이러한 일의 열매를 저들에게 확실히 도장 찍은 후에, 여러분들을 지나서 스파니아로 가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갈때, 그리스도의 이야기들을 흘러 넘치도록 가지고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숨님의 사랑을 통해,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나와 함께 싸웁시다. 이는 이스라엘의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 나를 살리기 위함이요, 나의 섬김이 예루살렘 속에서, 그곳의 씻어난 이들에게 받을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16


  포이베를 여러분의 가족으로 함께 세웁니다. 그녀는 겡크레아에 있는 공동체의 일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주 안에서 씻어난 이에 걸맞게 그를 맞이하고, 무엇이든지 그녀에게 필요한 바를 도와주세요. 왜냐하면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를 뒤에서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의 목숨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방 사람들의 공동체도 고마워합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공동체도 찾아가 안아주세요. 내 사랑하는 에파이네토스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첫 수확입니다. 마리아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녀는 여러분을 위해서 많이 일했습니다.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들은 나와 같은 핏줄이며, 같이 감옥에 갇힌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에게도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또 주 안에서 나의 사랑하는 암플리아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우르바노스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스타퀴스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아펠레스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아리스토불로스의 사람들을 찾아가 안아주세요. 나와 함께 일하는 헤로디오나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주 안에 있는 나르키수스의 사람들을 찾아가 안아주세요. 주 안에서 많은 일을 하는 트뤼파이나와 트뤼포사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사랑하는 페르시다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녀가 주 안에서 많은 일을 합니다. 주 안에서 선택된 사람 루포스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입니다. 에슁그리토스와 플레곤과 헤르마와 파트로바와 헤르메스와 그들과 함께 있는 우리 가족들을 찾아가 안아주세요. 필롤로고스와 이유리아와 네레아와 그의 가족들을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리고 올륌파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거룩한 이들을 찾아가 안아주세요.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서로를 찾아가 안아주세요. 그리스도의 교회가 여러분을 찾아가 안아줍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가르침을 왜곡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주시하고, 그들로부터 떨어지세요.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배만 채울 뿐입니다. 그리고 유용하고 유창한 말로 순수한 마음들을 속입니다. 여러분의 잘 들음이 모든이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 대해 나는 기뻐하고, 또한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닮는데 지혜롭고, 악과는 섞이지 않기를.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여러분의 발 아래서 완전히 박살내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의 힘주심이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가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나와 같은 핏줄인 루키오스와 야손과 소시파트로스도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주 안에서 이 편지를 받아쓰는 나, 테르티오스도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나와 온 공동체의 손님인 가이오도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이 도시의 집안살림을 맡은 에라스와 형제 쿠아르토스도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여러분을 굳게 세울 수 있는 분께, 

  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을 따라, 시대들의 흐름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 그 비밀의 폭로를 따라, 신뢰하여 잘 듣도록 모든 민족들 속에서 깨닫게 하셨으니, 

  그 한 분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드러남이 세세토록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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