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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9~17

  장면이 바뀌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넘치는 군중을 보았는데, 모든 나라들과 지파들과 민족들과 언어들로부터 나온, 그 왕좌와 어린 양 앞에 선 이들이었고, 빛나는 옷을 입고서, 그들의 양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듣기만 했던 것을 마침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열둘에 열둘을 곱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장 큰 단위를 곱해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이들, 곧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위 뒤에 숨어서 한탄하듯 물었던 이들에 대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뒤덮은 거친 불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 있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로부터(이 말을 표현하고자 요한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을 네 번 반복합니다) '출애굽'한, "큰 환란에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튀아테리아 에클레시아의 천사에게 전달된 메시지에 나왔던 "큰 환란의 날"이 이들에게는 찬란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위로도 감출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는 이들과는 달리, 어린 양 앞에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일곱 에클레시아에게 인자가 요구하셨던, 바로 그 빛나는 옷을!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 있습니다.

레위기 23:40~43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즐거워하는 것은 초막절을 기념하기 위함이요, 초막절은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안에 성막을 짓고 함께 사심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은 '우리들의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며 예수를 맞았으나, 예수가 '우리들의 하나님'이 아님을 확인하자 매몰차게도 그이를 거절했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낸 것도 다름 아닌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환상 속에 종려나무를 흔드는 이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 뚜렷이 드러나신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초막절은 참으로 기뻐할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장막을 짓고 그 안에 함께 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계시록 7:8절과 9절 사이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9절 이전만 하더라도 요한은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섬기는 이들이 그저 자신 뿐이라는 낙담을, 파트모스 섬에 갇힌 요한과 소아시아 지역의 에클레시아들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들에 대한 '이김'에 대해서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봄을 통해, 그들은 이 짓누름이 악의 최종적인 승리가 아니라 주께서 뚜렷이 드러나실 새로운 시대를 낳기 위한 산고의 시절임을 알게 됩니다.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시험의 때임을 알게 됩니다. 마치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실 이 "한 시간", 즉 이전의 토대가 흔들리고 새로운 집의 기초를 놓으실 이 (제자리를 위한) 혼란의 시기가 시험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요한은 이 시험의 때에(3:10) 함께 그 이김을 보자고 독려합니다. 요한을 비롯한 모든 본 사람들의 물줄기가 계시록에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그것은 들은 이들이 보는 날까지 버틸 수 있게 하는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견딤의 책입니다. 현시대와 오는시대가 끼인 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하나님께, 왕좌에 앉으신 분께, 어린 양께!"


그리고 모든 천사들은 그 왕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었는데, 그 왕좌 앞에 떨어져 그들의 얼굴을 향하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아멘! 찬양과 지혜와 고맙과 영예와 힘과 강함이

  우리 하나님께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아멘!"


  이긴 이들이 찬양하고, 모든 천사들이 코러스를 넣습니다. 사람이 부르는 찬양의 가사는 온통 출애굽 언어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출애굽을 뜻할 뿐더러, 요한이 극도로 묘사를 아끼는 '왕좌에 앉으신 분'은 도살당함으로 이스라엘을 심판에서 건져낸 어린 양과 '동격'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이 찬양을 들은 모든 천사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 일을 이루신 분에 대한 찬양, 그 일을 이루신 지혜, 그 일에 대한 감사, 그 일이 가져오는 영예, 그 일을 가능케하신 힘과 강함을 노래합니다. 그 출애굽이 현시대로부터 오는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아멘!

  장로들로부터 하나가 내게 말하며 물었습니다.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역사가 이뤄지는 그 날, "천사들도 흠모할만한 일이 벌어진 그 날", 스물 네 장로조차 요한에게 그 일을 묻습니다. 사람에게 벌어진, 사람을 위한, 사람을 통한 그 일을 말입니다. 요한은 울고만 있던 5장과는 달리, "내 주여, 당신이 알고 있습니다." 라고 의연히 답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한의 모습을 본 장로는 마침내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이들은 큰 어려움으로부터 나온 이들, 즉 이들은 옷들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빛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왕좌 앞에 있고, 그 분을 섬깁니다, 낮과 밤 동안, 그분의 성전에서, 그리고 그 왕좌에 앉으신 분은 그들에게 성막이 되어 사실 것입니다.


  "큰 어려움으로부터 나온" 이라는 말이 메시아 예수의 출애굽(구원)입니다. 그 출애굽을 겪은 이들은 자신들의 수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요한은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광야'와 '성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초막절을 나타내는 종려나무 가지가 나온 건,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그 안에 사신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의 집인 성막이 지어지고, 그 주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자신들의 장막을 치고 살았듯이 말입니다.

에스겔 37:26~28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튼튼히 세우며,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 한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  내가 살 집이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 성소가 영원히 그들 한가운데 있을 그 때에야 비로소 세계 만민이,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주인 줄 알 것이다.'"

 
  하나님의 성막에서 섬기는 사람들의 옷이 레위기 8:30에 나옵니다.

레위기 8:30


또 모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과 제단에 있는 피를 가져다가, 아론 곧 제사장 예복을 입은 아론에게 뿌렸다. 그는 또 아론의 아들들 곧 제사장 예복을 입은 그의 아들들에게도 뿌렸다. 이렇게 하여 모세는, 아론과 그의 옷 및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그 옷은 곧 제사장 예복입니다. 앞에서 요한이 출애굽기 19:6장을 인유하며, 출애굽한 사람들 곧 에클레시아가 제사장 나라, 거룩한 씨알이 될 것이라 말한 그대로, 그들은 그에 걸맞는 옷을 입습니다. 이 옷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래 다니엘서의 인유를 다룰 때 확인합시다. 지금은 피부터 얘기해야 합니다. 그 옷 위에 피가 뿌려집니다. 거룩한 구별의 피입니다. 곧 어린 양의 피, 비뚤어짐(죄)과 무관한, 부당함과 손잡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깨끗한 피가 뿌려집니다. 그리고 이 붉은 피가 앞에서 일곱번째 실(seal)이 떼지기 전에 사람들의 두 눈 사이에 찍혔던 실(seal)일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할 적에 어린 양의 피가 상인방과 문설주에 발라져 새 차원의 문을 그렸듯,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몸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스스로가 새로운 차원의 문이 될 것입니다. 뮈스테리온. 오는시대와 부활의 새로운 차원이, 바로 이 사람의 몸, 썩을 프쉬케의 장막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 일의 시작이 메시아 예수이십니다. 그이는 인간의 육체라는 장막으로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그 장막은 사람들에게 매 맞고 피 흘린채 도살당했으나, 그 장막 자체가 새롭게 되어, 부활이라는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결코 장막을 떠나 비물질적 상태가 되신 게 아닙니다.). 이후 승천입니다. 그 승천은 그이가 바로 하나님께 창조세계의 통치를 이양받는 인자임을 우주에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승천 이후, 이 지구 전체는 하나님 사시는 성전임을 밝히 알게 됩니다. 가나안이라는 지구 한 귀퉁이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차원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 예수를 따라 도살당하는 사람을 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이의 성전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낮과 밤으로, 어디에 있든 그이를 섬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미래 어느 순간에 반드시 되고 말 새로운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빛나는 옷에 대해서는 다니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11:35
또한 지혜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얼마가 학살을 당할 것인데,
이 일로 백성은 단련을 받고, 순결하게 되며, 끝까지 깨끗하게 남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끝 날이 올 때까지,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다.


다니엘 12:8~10

나는, 듣기는 하였으나,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천사님, 이 모든 일의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그가 말하였다.
"다니엘아, 가거라.
이 말씀은 마지막이 올 때까지 은밀하게 간직되고 감추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악해질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것이다.


  즉 빛나는 옷은 단련, 순결, 끝까지 깨끗하게 남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이야 말로 메시아 예수의 피가 뿌려진 제사장의 예복입니다. 이러한 삶이 낮과 밤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어린양을 섬기는 삶입니다. 다른 거 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다시 주리거나,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해도 그들에게 떨어지지 못하며, 모든 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왕좌 가운데 계신 그 어린 양이 그들을 목양하실 것이며, 그들을 산샘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숨을 부어) 그들의 두 눈으로부터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장로는 광야에 세워진 성막, 그리고 그 성막에서 피 뿌려진 옷을 입고서 낮과 밤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이미자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장면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장의 마지막 이미지는 광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광야와는 다릅니다. 그 광야는 '장막에 거하시는 하나님'(곧 부활몸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 그이입니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출애굽 이후의 광야에서의 삶과 같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가 필요없고, 바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필요 없으며, 해의 이글거림도, 그 어떤 어려움도 없는 곳입니다. 기이한 광야입니다. 광야는 광야인데, 광야같지가 않습니다.

  이 광야 같지 않은 광야에는 위로부터 왕좌 가운데 계신 그 어린 양이 계십니다. 어린 양이 이제 목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어린 양은 마냥 목자의 뒤를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존재같지만, 그 수동적인 존재가 이제는 능동적으로 흰 옷입은 이들을 목양합니다. 갑이냐 을이냐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극한의 '을'을 겪으신 분이 우리의 '갑'이십니다. 그 '갑 중의 갑'이신 어린 양은 에클레시아를 산샘물로 인도하십니다.

이사야 49:10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무더위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며, 샘이 솟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목가적인 그림에 사람들은 울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난 날이 견뎌왔던 삶이 기억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웠던 이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물보다 더 많은 숨결이 그들에게 부어집니다. 숨결은 눈물을 씻어냅니다.

이사야 25:8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7:9~17

  장면이 바뀌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넘치는 군중을 보았는데, 모든 민족들과 지파들과 민족들과 언어들로부터 나온, 그 왕좌와 어린 양 앞에 선 이들이었고, 빛나는 옷을 입고서, 그들의 양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하나님께, 왕좌에 앉으신 분께, 어린 양께!"


  그리고 모든 천사들은 그 왕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었는데, 그 왕좌 앞에 떨어져 그들의 얼굴을 향하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아멘! 찬양과 지혜와 고맙과 영예와 힘과 강함이

  우리 하나님께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아멘!"

  장로들로부터 하나가 내게 말하며 물었습니다.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큰 어려움으로부터 나온 이들, 즉 이들은 옷들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빛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왕좌 앞에 있고, 그 분을 섬깁니다, 낮과 밤 동안, 그분의 성전에서, 그리고 그 왕좌에 앉으신 분은 그들에게 성막이 되어 사실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다시 주리거나,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해도 그들에게 떨어지지 못하며, 모든 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왕좌 가운데 계신 그 어린 양이 그들을 목양하실 것이며, 그들을 산샘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숨을 부어) 그들의 두 눈으로부터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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