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1~8을 보기 전에, 스가랴 6:1~8을 봅시다.

스가랴 6:1~8

내가 또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내 앞에 두 산 사이에서 병거 네 대가 나왔다. 두 산은 놋쇠로 된 산이다.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끌고 있고,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얼룩말들이 끌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건장하였다.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그것이 무엇들이냐고 물었다.

그 천사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그것들은 하늘의 네 영이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뵙고서, 지금 떠나는 길이다.
검은 말들이 끄는 병거는 북쪽 땅으로 떠나고,
흰 말들이 끄는 병거는 서쪽으로 떠나고,
얼룩말들이 끄는 병거는 남쪽 땅으로 떠난다."

그 건장한 말들이 나가서 땅을 두루 돌아다니고자 하니, 그 천사가 말하였다.
"떠나거라. 땅을 두루 돌아다녀라." 병거들은 땅을 두루 돌아다녔다.
천사가 나를 보고, 소리를 치면서 말하였다.
"북쪽 땅으로 나간 말들이 북쪽 땅에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



요한계시록 6:1~8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이 일곱 실(seal)들로부터 하나를 열자, 나는 네 생물로부터 하나가 천중같은 소리로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흰 말, 그리고 그 위에 활을 갖고 앉은 이, 그리고 그에게 면류관이 주어졌고, 이기면서 나아갔습니다, 또한 이기기 위하여 (나아갔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먼저 등장합니다. 이렇게 넷부터 등장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익숙한 전개방식입니다. 다니엘의 꿈에서도(7장) 네 마리의 짐승이 등장하고서 인자가 나타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에서도 신상은 네 제국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이후 '돌'이 등장했습니다(2장). 에스겔 14장에서도 에스겔이 예언한 심판도 숫자 4와 관련이 있습니다.

에스겔 14:21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사람과 짐승이 사라지게 하려고
나의 네 가지 맹렬한 재앙들
곧 전쟁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거기에 보낼 때에,
그 해가 얼마나 크겠느냐!


  정말 중요한 것은 다섯번째부터 일 것입니다. 그럼 그 앞에 나온 네 마리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네 마리 말은 마지막 날 이후 벌어지는 전지구적 재앙에 대한 다층적 묘사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순서를 꿰어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네 마리 말들 모두가 네 생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네 생물이 순서대로 한 마리씩 말을 땅으로 보냅니다.

  첫번째 말은 백마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본문을 잘못 읽고선 예수님을 '백마 탄 자'라 오해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말(馬)은 면류관이라는 말을 통해 '지배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권력'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어휘로 통용되지만, 사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는 것은 사회계약의 당연한 전제입니다. 다만 그 권력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물음입니다. 뒤에 나오는 "이기면서 나아갔습니다, 또한 이기기 위하여 (나아갔습니다.)"라는 말이 섬뜩하게 들립니다. 니체가 말했던 권력의지처럼, 그저 지배하기 위해서 지배하는 것,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는 권력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권력을 그 앞에 '정치'라는 단어를 붙이기만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흰 말은, 그러한 맹목적인 힘의 추구가 이 땅에 만연했음을 보여줍니다. 누구도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지 못하고, 서로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양자택일 속에서 서로를 짜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이 흰 말이 하나님 뜻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적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네 생물 중 첫번째 생물과 흰 말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지배하는 힘이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실 누군가가 어떤 방법으로 얻었든,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자격은 그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표현이 "천둥소리"입니다. 이 천둥소리의 심상은, 우리가 4,5장에서 보았던 하늘 성전을 떠올립니다. 힘을 발휘하는 모든 자격은, 제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두번째 실을 열자, 나는 두번째 생물이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붉은 말이 나아갔고, 그 말 위에 앉은 이에게 땅으로부터 평화를 차지하는 것이 주어졌고(그들 서로가 도살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에게 큰 대검이 주어졌습니다.


  어린 양께서 '실'을 떼십니다. 그저 '실'을 뗐을 뿐입니다(원어로는 '열다oepn'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 책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은 8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실을 떼시니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어린 양께서 인을 괜히 뗀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 마리 말들이 이 땅을 쑥대밭 만들지 않았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를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꽁꽁 감추고 있던 세상, 그 세상에 의사로 오신 어린 양은 그 문제를 문제로서 드러내십니다. 어린 양이 실을 여시니 문제가 생겨난게 아니라, 네 마리 말로 표상되는 인간의 문제들은 아담 이후 줄곧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어린 양은 그 문제를 뚜렷하게 드러내신 것이고, 그 드러난 세상과 인간성의 참상은, 분명 일곱개의 실로 봉인된 책의 내용과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붉은 말입니다. 역시 두번째 생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말(馬)은 '평화'를 독점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누군가가 평화를 독점하려고 하자, 평화는 사라지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도살하게 됩니다. 로마가 주창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로마는 신의 아들이라는 황제 중심으로 세계 재편하려고 했습니다.(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천황 숭배를 강요했던 일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자진해서 굴복했던 것은, 그러한 방식으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싸움 잘 하는 일진 아이 하나 때문에 반 전체가 쉬쉬한게 평화가 아니듯, 로마 제국의 강한 무력을 통해 이루려는 평화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본토에서는 남편과 아버지를 전쟁터로 보낸 부녀자들이 마음을 졸였고, 점점 넓어지는 국경을 지키기 위해 남자들은 끊임없이 전쟁터로 보내졌습니다. 붉은 말과 큰 대검이란, 평화의 이름으로 서로를 도살하는 싸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그 붉은 말은 지구 곳곳에, 그리고 이곳 한반대로에도 활개치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세번째 실을 열자, 나는 세번째 생물이 "가라"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검은 말, 그리고 그 위에 앉아 그 손에 (양팔)저울을 갖고 앉은 이.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세번째 생물의 가운데서 말하는듯한 소리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 그리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는 부당하게 하지 말아라."


  흰 말이 정치권력을, 붉은 말이 전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네 마리의 말들이 역사적 순서대로 나열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번째 검은 말은 '경제적 차원'에 대한 상징입니다. 본문에 저울이라는 단어는 '멍에'라 번역되기도 합니다.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물건에 가치를 어떤 식으로 매기는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버는 품삯입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일해서 번 돈으로 산다는 것이 고작 밀 한 되, 보리 석 되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이 쓰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는 '부당하게' 하지 말랍니다(A.D.9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밀과 보리의 품귀현상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의 포도원을 파괴하지 말라는 칙령을 내린바 있습니다). 이건 누구의 목소리입니까? 저 저울든 검은 말을 탄 자는 도둑놈입니다. 게다가 거짓말쟁이입니다. 정말 부당한 것은 노동자들이 굶어죽게 생긴 이 시장판입니다. 그런데 이 저울 재는 이는 부자들에게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비싸게 올려받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짓이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어찌 서민들에게 '멍에'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차별적인 가치의 저울이 불평등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은 고스란히 누군가가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멍에가 됩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는데, 그럼에도 밑빠진 독에 물붓듯 욕망을 끝없이 채우는 것을 선(善)이라 여기며, 많이 벌고 많이 누리는 것을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검은 말의 목소리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경제질서는 다람쥐 쳇바퀴와 같습니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는 욕망을 채우려는 현대산업에 "다람쥐가 자신의 노력으로 돌아가는 바퀴에 뒤지지 않고 따라가려고 더욱 노력"하는 것과 같ㅌ다고 말했습니다. 더 빨리, 더 세게 돌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말하지만, 이미 다람쥐는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멈출 수 는 없습니다. 멈추었다간, '소비라는 거룩한 순환'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너지는 것은 둘째치고, 경제 성장 수치가 얼마간 떨어지는 것조차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매체는 더욱더 쳇바퀴를 열심히 돌려서(노오오오오력해서), '우리는 성장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네번째 실을 열자, 나는 네번째 생물의 소리가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녹색 말,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이의 이름은 죽음이었고, 하데스가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땅의 1/4에 대한 엑수시아가 주어졌고, (그것은) 대검과 기근과 죽음과 땅의 짐승들에 의해서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번째 말(馬)은 녹색 말입니다. 그리고 녹색 말은 죽음이고, 그의 뒤에는 하데스가 따르고 있습니다. 결국 흰 말의 차원, 붉은 말의 차원, 검은 말의 차원은 겹쳐있고, 이제 요한은 네번째 말을 언급하며 더이상 그 말들이 표상하는 바를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밝힙니다. 죽음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라 번역한 말은 '타나토스'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의 신 이름이기도 합니다. 70인역에서는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재앙'의 번역어로 쓰였습니다. 즉 개인적 죽음이라기 보다는, 질병,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하데스'는 죽은 자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그 죽은 자의 차원이 타나토스를 따라 지금 땅에 있습니다! 즉 전염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생지옥'이 녹색 말이 뜻하는 바입니다.


  땅의 1/4이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엑수시아가 녹색 말탄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엑수시아'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연구 때 희랍어 단어를 그대로 썼기 때문에, 여기서도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썼습니다. 직역하면 '우시아(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단어에서 본질로부터 나온 힘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exosism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권리행사'를 말할 때도 '엑수시아'라는 단어를 씁니다. 어찌되었든 다행스럽게도(?), 땅 전체가 아닌 1/4만이 생지옥이 되었습니다(아직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 생지옥을 묘사하는데, 앞에서 사용했던 심상들이 다시 가져 옵니다. 서로 죽이는 데 사용했던 대검, 굶어죽기 딱 좋은 기근, 그리고 죽음.


  그리고 요한은 다니엘서 7장의 장면을 빼놓지 않습니다. 짐승들에 의한 파괴. 다니엘서 7장에서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옛적 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가고, 그이에게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직 짐승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승천 이후에도 짐승은 살아 있습니다.

다니엘 7:22~27

옛적부터 계신 분이 오셔서,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의 권리를 찾아 주셔서, 마침내 성도들이 나라를 되찾았다.
그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넷째 짐승은 땅 위에 일어날 넷째 나라로서,
다른 모든 나라와 다르고, 온 땅을 삼키며 짓밟고 으스러뜨릴 것이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다.
그 뒤에 또 다른 왕이 일어날 것인데,
그 왕은 먼저 있던 왕들과 다르고,
또 전에 있던 세 왕을 굴복시킬 것이다.
그가 가장 높으신 분께 대항하여 말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괴롭히며,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까지 그의 권세 아래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심판이 내려서,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멸망하여 없어질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력이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다. 권세를 가진 모든 통치자가 그를 섬기며 복종할 것이다.'


  지금 요한은 다니엘의 말이 가리키고 있는 바로 그 시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즉 다니엘에겐 예언인 것이, 요한에게는 성취되는 순간들이고, 예언자적 시각으로 이것을 읽어낸 요한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에클레시아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네 마리 말이 땅을 짓밟고 있는 오늘날까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6:1~8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이 일곱 실(seal)들로부터 하나를 열자, 나는 네 생물로부터 하나가 천중같은 소리로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흰 말, 그리고 그 위에 활을 갖고 앉은 이, 그리고 그에게 면류관이 주어졌고, 이기면서 나아갔습니다, 또한 이기기 위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두번째 실을 열자, 나는 두번째 생물이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붉은 말이 나아갔고, 그 말 위에 앉은 이에게 땅으로부터 평화를 차지하는 것이 주어졌고(그들 서로가 도살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에게 큰 대검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세번째 실을 열자, 나는 세번째 생물이 "가라"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검은 말, 그리고 그 위에 앉아 그 손에 저울을 갖고 앉은 이.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세번째 생물의 가운데서 말하는듯한 소리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 그리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는 부당하게 하지 말아라."

  그리고 (어린 양이) 네번째 실을 열자, 나는 네번째 생물의 소리가 "가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보십시오, 녹색 말,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이의 이름은 죽음이었고, 하데스가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땅의 1/4에 대한 엑수시아가 주어졌고, (그것은) 대검과 기근과 죽음과 땅의 짐승들에 의해서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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