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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1~8

  장면이 바뀌고, 나는 보았습니다, 네 천사들이 땅의 네 구석에 서서, 땅의 네 바람들을 붙잡아, 땅 위에서도, 바다 위에서도, 모든 나무에서도 불지 못하도록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7장 전체 내용은 6장 마지막 절, "누가 서 있을 수 있으랴?"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그러니 "장면이 바뀌고(개역성경은 "이 일 후에")"는 역시나 시간 순서로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누가 서 있을 수 있으랴"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면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가 보게 되는 것은 네 개의 바람, 그리고 그 네 바람을 통제 하고 있는 네 천사입니다.

  이 '바람'은 프뉴마(πνευμα)가 아닙니다. 프뉴마를 그간 숨, 바람이라 풀어왔는데, 여기서의 바람은 프뉴마가 아닌, '아네모스(ανεμος)'입니다. 아네모스는 공기를 뜻하는 '아에르(αηρ)'에서 왔는데(air가 여기서 왔습니다), 성경에서 사탄을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부르는 점을 생각한다면, 프뉴마가 아니라 아네모스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네 개의 바람은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그 공중에서 부는 사람, 세력입니다. 그리고 이 바람들을 요한은 이미 봤습니다. 앞에 나왔던 네 마리의 말들이 곧 이 네 바람입니다. 네 마리 말이 스가랴 6:1~8의 인유였는데, 이미 그 본문에서 천사가 스가랴에게 그 말들이 '바람'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스가랴 6:5
그 천사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그것들은 하늘의 네 바람이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녹색 말이 각각 지배권, 전쟁, 빈곤, 죽음의 차원에서 땅을 짓밟아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한계를 정해두었습니다. 네 명의 천사들이 땅의 네 귀퉁이에서('넷'이니 곧 땅 전체에서) 이 바람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붙잡아 힘을 내다'로 푼 동사는 크라테오입니다. '붙잡고서 힘준다'는 뜻입니다. 명사형은 크라토스(κρατος)인데, '권능(權能)'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쥐고서 내는 힘이니, '권'을 '주먹 권(拳)'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명의 천사들이 바람채찍을 들고서 땅 끝 네 모서리로부터 휘두르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그 채찍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메시아의 몸에 떨어진 서른 아홉대의 채찍질처럼 매서운 삶의 바람이 살갗을 후벼놓습니다. 지배 권력과 그들의 전쟁과, 경제적 빈곤과, 질병과 죽음의 위협. 삶의 모든 국면으로 파고드는 이 채찍질에 "누가 서 있을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다른 천사가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로부터 올라가고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seal)을 가지고서, 그가 큰 소리로 네 천사들에게 부르짖었습니다(그들은 땅과 바다를 부당하게 하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땅도 바다도 나무도 부당하게 하지 말아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미간)에 인을 찍을 때까지는!"


  네 천사 말고 다른 천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떠오르는 해로부터" 나타난 천사입니다. 그는 해 뜨는 쪽에서 나타나 어디론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로부터"라고 번역한 전치사는 아포(απο)인데, 이 전치사는 출발지로부터 이탈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천사는 해(sun)로부터 나와서,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즉 동쪽에서부터 어디론가 올라가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쪽]과 [천사]라는 키워드는 에덴을 지키도록 명받은 불칼 든 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 '동쪽에서 온 천사'의 손에는 하나님의 '실(seal)'이 들려있습니다. 얼마전 '부활'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에 요한 당시 쓰였던 '실'이 잘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실은 단단하게 굳는 붉은 왁스인데, 문서를 봉인하기 위해 그 위해 찍고서, 그 위에 또 도장을 찍어 누구의 권한으로 이 문서를 닫아두었는지 명시합니다.(영화에서는 예수의 돌무덤을 밧줄로 막아놓고, 그 위에 여러 개 실을 찍은 뒤, 로마 황제 얼굴을 그 위에 다시 찍어놓았습니다.) 아마도 이 동쪽에서부터 나타난 천사는, 다시금 에덴을 누리게 될 새로운 아담들을 확정지으러 나왔을 것입니다.


  '부당하게'라 번역한 단어는 아디케오'αδικεω'입니다. '불의를 행한다', '올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해하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럼 '해'로부터 나온 천사가 '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군요.) 앞에서 보았듯, 네 개의 바람들은 사람들을 죄다 쓰러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지으신 창조세계에는 불의가 넘쳐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불의 속에서도 그 네 천사가 그 부당함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이 찍히는 순간입니다. 떠오르는 해로부터 온 천사가 자신을 '복수'로 칭한다는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에클레시아마다 천사가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 떠오르는 해로부터 나온 천사도 특정한 공동체를 가리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들로부터 메시아 예수의 피로 새로운 신분이 확정되는 순간만큼은, 그 세찬 바람도 어찌할 수 없는, '올(δικη)'이 선언되는 순간입니다.

  실(seal)을 찍는 것은 에스겔 9:4~6의 인유입니다.

에스겔 9:4~6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성읍 가운데로 곧 예루살렘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아라."


  또 그는,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성읍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여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아라.
노인과 젊은이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세상의 불의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표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예루살렘의 불의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죽임당합니다.(출애굽 때에 발랐던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기능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반전입니다. 먼저 죽임당하는 사람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이었습니다. 불의(아디케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이마에 하나님의 권한이 찍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올바르지 않음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두 눈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 눈 사이에 있는 인은, 그가 선악과를 넘어 참된 판단 곧 생명에 이를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실을 찍어 봉인한 문서가 그 내용을 드러내듯, 머리에 실이 찍힌 사람은 결국 그 실이 떼어지는 날에 그 속에 감추인 생명을 드러낼 것입니다. 따라서 실이 찍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현재에는 감추어짐, 나중에는 드러남. 생명있다고 그 피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마치 알과 같습니다. 그 생명의 알이 깨지고 생명으로 개화하는 날이 부활입니다. 그들은 새 존재로 지금 인정받았고, "짧은 시간"이 지나면, 새 존재로 완성될 것입니다.

  나는 인 찍힌 사람들의 수를 들었는데, 일 백, 사십, 사, 일천, 이스라엘 아들들의 모든 지파로부터 인 찍힌 이들 (이었습니다). 유다 지파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르우벤 지파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갓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아셀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납달리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므낫세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시므온 지파에서부터 열둘, 일천 인 찍힌 이들, 레위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잇사갈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스불론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요셉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베냐민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요한은 그렇게 붉음이 찍힌 사람들의 '수'에 대해서 듣습니다. 그들은 일 백, 사십, 사, 일천입니다. 144는 완전을 뜻하는 열둘의 제곱입니다. 즉 구약과 신약을 망라하는 하나님 씨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1000이 곱해진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많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민수기>의 인구조사 장면과 오버랩됩니다.

민수기 1:21,23
르우벤 지파에서 등록된 사람의 수는 사만 육천오백 명이다.

시므온 지파에서 등록된 사람의 수는 오만 구천삼백 명이다.


  이렇게 계수된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 곧 군대입니다. 메시아 예수의 부활이후 태동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이란 의미인데, 이 부름이란 군대로의 부름입니다. 즉 약속의 땅을 차지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열 두 지파는 제사장의 '판결흉패'에도 새겨졌는데, 이 판결흉패에 대한 내용은 여기(http://jaeduggi.tistory.com/757)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144,000을 열 둘로 나누어 계수할 때, 장남인 르우벤부터가 아니라 유다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유다지파로부터 나온다는 야곱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치 맏이인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복을 차지하듯, 메시아 예수의 지파인 유다 지파가 전체 군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 예수의 붉음으로 그 내용의 진면목이 봉인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요한은 들었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7:1~8

  장면이 바뀌고, 나는 보았습니다, 네 천사들이 땅의 네 구석에 서서, 땅의 네 바람들을 붙잡아, 땅 위에서도, 바다 위에서도, 모든 나무에서도 불지 못하도록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다른 천사가 떠오르는 해로부터 올라가고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seal)을 가지고서, 그가 큰 소리로 네 천사들에게 부르짖었습니다(그들은 땅과 바다를 부당하게 하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땅도 바다도 나무도 부당하게 하지 말아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찍을 때까지!"

  나는 인 찍힌 사람들의 수를 들었는데, 일 백, 사십, 사, 일천, 이스라엘 아들들의 모든 지파로부터 인 찍힌 이들 (이었습니다). 유다 지파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르우벤 지파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갓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아셀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납달리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므낫세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시므온 지파에서부터 12,1000 인 찍힌 이들, 레위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잇사갈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스불론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요셉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베냐민 지파에서부터 열둘,일천 인 찍힌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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