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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9~17

  그리고 (어린 양이) 다섯번째 실을 열자, 나는 보았습니다, 제단(분향단) 아래서 도살당한 이들의 프쉬케들을, 하나님의 로고스와 그들이 가졌던 증언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


  다섯번째부터가 중요합니다. 넷이 지나면 꼭 반전이 시작될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반전의 그림은 도살당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도살'이라는 말부터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이 단어를 몇번이나 보고도 지나쳤으니 말입니다. 희랍어 '스파조(σπαζω)'의 번역어입니다. 제물로 드려진 동물을 죽일 때 쓰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쓰일 때는 폭력으로 그 사람을 상처입히고 살해할 때를 가리켜 쓰는 말입니다. 개역성경이는 모두 '죽이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서는 죽는 것과 도살당하는 것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도살'이라는 말이 나왔던 경우를 찾아봅시다.


요한계시록 5:6,7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왕좌와 네 생물 가운데서, 그리고 장로들 가운데서, 어린양이 서 있었는데, 도살당했던 양으로서,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것들은 땅 전체로 보냄받았던 하나님의 일곱 숨결들입니다). 그리고 그이가 왔고 그 왕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으로부터 차지했습니다.

   앞에서 요한계시록 5장의 하늘 성전 환상을 보았을 때, 그때 왕좌 가운데 계셨던 어린양이 "도살당했던" 이로 묘사되었습니다. 또 앞에서 스물 네 장로들이 부르는 새노래의 가사에서도 이런 가사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당신은 그 책을 차지할,
그리고 그 실들을 여실 자격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도살당했고,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피로
모든 지파와 말(혀)과 씨알과 민족으로부터 (보물을) 사드렸으며*,
그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창조하셨고,
(이제) 그들이 그 땅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본문에서 붉은 말이 평화를 '차지'하자, 사람들이 서로를 '도살'하게 되었다는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이 도살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억울한 죽음'입니다. 단순히 실제 죽음만을 가리키는게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압박을 받아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이 도살에 해당합니다. 누군가 평화의 이름을 독차지 하려고 했을때, 그 아래서 억울하게 타인의 칼에 찔려 죽임당했던 이들입니다. 그이의 가르침대로, 오른뺨을 맞은 이가 왼뺨을 돌려대는 것이 도살입니다. 2km가자는 이에게 4km가주는 것이 도살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한대로, "하나님의 로고스와 그들이 가졌던 증언"이 그들을 도살당하게 했습니다. 마치 유대와 로마 사이에서 평화를 외치다가 도살당한 그이와 같이 말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살다가 죽었던 이들이 제단 아래 있습니다. '제단'이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가 4,5장에서 보았던 하늘 성전의 심상이 여기 6장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제의기구들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말하는 제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은 지성소 휘장 앞에 놓이고, 그곳에서 향은 끊어지지 않도록 피워야 했습니다. 네 개의 뿔이 귀퉁이에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생각해봅시다. 요한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이라 불렀습니다. 그 향들은 금대접에 담겨서 스물 네 장로들이 하프와 함께 들고 있었습니다. 그 향들을 꽃아 놓는 제단이 분향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침내 성도들의 기도가 어떤 내용인지, 그들의 프쉬케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분향단 아래서 들리고 있고, 이제 분향단에 드려졌으니 이제 이 기도가 하나님께 달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거룩하고 참이신 주인이시여, 심판 않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우리들의 피를 떳떳하게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들의 기도 내용은 하나의 의문문, "언제까지...하시렵니까?" 입니다. 마치 하나님께 못마땅해하는 늬앙스로 들립니다만, 이러한 형식의 기도는 시편 가사들의 인유입니다.

시편 6:3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립니다. 주님께서는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시편 74:10
하나님, 우리를 모욕하는 저 대적자를 언제까지 그대로 두시렵니까?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저 원수를 언제까지 그대로 두시렵니까?

시편 79:5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원히 노여워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하심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까?


  이 구절들을 통해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언제까지입니까' 기도하는 내용은, 1) 자신의 구원 2) 원수에 대한 처벌 3) 하나님께서 화를 거두실 것 입니다. 이런 점들을 계시록 본문에 적용해보면, 일단 프쉬케 상태로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이 이뤄지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쉬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프뉴마의 사람으로 부활함으로 인간의 구원이 이뤄집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린도전서 연구 15장을 참고 바랍나다. 여기) 그리고 원수들은 본문에서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요한이 메시아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즉 도살자입니다. 참을 따라 사는 이들을 괴롭게 만들었던 이들을 가리키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화를 거두시는 날이 최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즉 그 날에 분향단 아래 있던 프쉬케들은 부활하여 프뉴마의 몸을 입고, 원수들은 처벌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가 걷힌 세상은 새롭게 되어, 그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이 도살당한 이들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빛나는 옷을 받았고, 그들이 짧은 시간 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종들과 그들과 같이 도살될 그들의 가족들의 수가 넘칠 때까지.


  그들은 빛나는 옷을 받습니다. 이 빛나는 옷은 앞에서 일곱 에클레시아에게 보낸 메시지에 줄곧 등장하던 것이었습니다. 사르데이스와 라오디케아에서 언급되었는데, 스물 네 장로들이 입고 있던 옷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도살당했던 이들이 마침내 이 옷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짧은 시간 쉽니다. 이 짧은 시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짧은 시간입니다. 베드로가 말한대로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태초부터 시작된 시간은 그의 피조물이니,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현재-미래의 도식을 넘어 계십니다. 이 "짧은 시간"이란, 메시아 예수의 단독 부활로 시작해서, 도살당한 이들의 단체부활로 이뤄지는 기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시간 동안 이미 도살당했던 사람들은 쉽니다.

  그리고 그 도살로 우리가 나아갑니다. 요한이 기록한 "그들과 함께 하는 종들", "그들과 같이 도살될 그들의 가족"은 그 도살되는 삶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아의 도살당함을 지나, 자신의 도살로 이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인자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주께서 말씀하신 "짧은 시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도살당하는 삶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실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어린 양이) 여섯번째 실을 열자, 큰 지진이 일어났고, 해가 검게, 검은 털로 만든 상복처럼 되었고, 달 전체가 피처럼 되었으며,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바람의 큰 흔듦에 의해 그 익지 않은 열매들이 떨어지는 무화과나무처럼. 그리고 하늘은 갈라졌고, 마치 책이 접히듯.


  다섯번째 실을 땔때부터 말(馬)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등장하고 나서 요한의 시선은 다시 하늘 성전(분향단)에 꽂혔고, 그 곳에서 도살당한 사람들의 프쉬케와, 죽어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기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실을 떼니 다시 그의 시선은 땅을 향합니다.

  지진입니다. 그리고 해는 검게, 보름달이 피처럼 붉어집니다. 하늘의 별들은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늘이 갈라집니다.  모든 산과 섬들은 그 자리에서 밀려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숨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최후의 심판에 피조세계가 허물어지는 그림이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계 전쟁에 대한 은유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분명 요한은 구약의 맥락 위에서 이러한 인유들을 가져왔을 것이고, 요한 자신도 우리가 그렇게 의미를 파악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이사야 34장의 인유들입니다.

이사야 34:4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져서 가루가 되고, 하늘은 마치 두루마리처럼 말릴 것이다.
포도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무화과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하늘에 있는 별들이 떨어질 것이다.


  이 구절은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맥락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천상의 일과 지상의 일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땅의 일은 천상의 일은 밀접한 상관이 있어서, 천체들을 가지고 지상의 일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4:29,30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곧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날 터인데, 그 때에는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3:24~27
"그러나 그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이 내용들은 '승천~재림'의 그 짧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 시간은 메시아 예수로부터 시작된 심판의 시작과 끝을 모두 포함합니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현시대의 권세들이 힘을 잃고, 새로운 공동체가 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살당한 이들의 모임인, 그 공동체가 마침내 그 '옳'을 확인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요한은 줄곧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다는 가벼움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전긍긍도 아닙니다. 저 본문들은 '승천~재림', '오늘'을 포함하고 있는 "짧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는 지금, 두 발로는 곧게 서고, 머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올이 바르도록 메시아를 따르면 됩니다. 이것을 위해 요한계시록이 쓰였습니다.

  이사야 뒤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 34:8
이 때가 바로, 주님께서 복수하시는 날이니,
시온을 구하여 주시고 대적을 파멸시키시는 해, 보상하여 주시는 해이다.


  도살당한 이들의 기도와 같은 내용입니다. 메시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한복음 3:18), 그 심판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승천에서 재림은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니 현재적 심판과 미래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는 내용입니다.

  해가 검은 털로 만든 상복처럼 된다는 표현 역시 이사야의 인유로 보입니다.

이사야 50: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어머니를 쫓아내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어머니에게 써 준 이혼증서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를 채권자에게 팔아 넘기기라도 하였느냐?
이것 보아라, 너희가 팔려 간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다.
너희 어머니가 쫓겨난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다.
내가 왔을 때에 왜 아무도 없었으며,
내가 불렀을 때에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느냐?
내 손이 짧아서 너희를 속죄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힘이 없어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꾸짖어서 바다를 말리며, 강을 광야로 바꾼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물이 없어서 죽을 것이며, 썩은 고기들이 악취를 낼 것이다.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하늘을 두르겠다."


  그리고 모든 산과 섬들이 그 자리에서부터 밀려갔습니다.


   이 표현은 계시록 뒤에서도(16:20) 등장합니다.


모든 섬들이 사라지고, 산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밀려났던 것이 16장에 가면 아예 사라집니다. 이 '섬들'과 '산'에 대해서는 16장 가서야 시원히 알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땅의 통치자들과 높은 사람들과 풍요로운 사람들과 힘센 사람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민들이 모두 그들 자신들을 동굴들과 산들로부터 있는 바위들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산들과 바위들에 대고 말하길, "우리 위에 떨어져라, 그래서 우리들을 왕좌에 앉은 이의 얼굴로부터, 어린 양의 화로부터 숨겨다오, 우리의 화 입을 큰 날이 왔으니, 누가 서 있을 수 있으랴?"


  땅의 통치자들은 앞에서 흰 말이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풍요로운 사람들은 저울을 든 검은 말과 연결됩니다. 힘쎈 사람들은 대검과 함께 나타난 붉은 말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모든 종들과 자유민들, 즉 로마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 이들은 로마를 따르다간 타나토스와 하데스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말하지만,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어린 양이 누구이신지 알게 되면 두려움에 숨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의 비뚤어짐이 부끄러워 에덴의 풀숲으로 숨었던 아담과 하와처럼,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뵈면 죽을 것이 분명하여 바위 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모세처럼, 이들은 하나님을 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끝내 어린 양 따르기를 거절했던 이들은 그 어린 양의 화로부터 피할 데가 없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피해서, 자기 내면의 바위로 숨는 사람들은 오늘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이 아닌 다른 것을 붙들었던 이들은, 그 붙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겪게 될 것입니다. 실은 이미 겪고 있습니다. 다만 그 허한 속이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어린 양 없이는 채울 수 없는 그 공허한 속에서부터 더러운 생각과 행실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덮어놓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드러날 것입니다.
 

이사야 2:19~21


그 때에 사람들이, 땅을 뒤흔들며 일어나시는 주님의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동굴과 땅굴로 들어갈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경배하려고 만든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 버릴 것이다. 땅을 뒤흔들며 일어나시는 주님의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구멍과 바위 틈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 바위 뒤에 비참하게 숨어 있는 모습은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입니다. 자신들이 피조물을 숭배했던 우상숭배자였음을 인정하고, 사자와 같은 어린 양께 투항하는 것이, 바위 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시대의 무수한 아담과 하와들이 그 풀 숲에서 나올 때, 공의의 법관으로 나타나신 어린 양은, 그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이 도(道)만이, 범죄자의 비참한 몰골에서 영광의 아들과 딸로 변할 수 있게 합니다. 어찌보면 삶은, 아담이 숨었던 풀 숲에서 나와 가죽옷을 입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6:9~17

  그리고 (어린 양이) 다섯번째 실을 열자, 나는 보았습니다, 제단(분향단) 아래서 도살당한 이들의 프쉬케들을, 하나님의 로고스와 그들이 가졌던 증언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언제까지, 거룩하고 참이신 주인이시여, 심판 않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우리들의 피를 떳떳하게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리고 그들 각각은 빛나는 옷을 받았고, 그들이 짧은 시간 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종들과 그들과 같이 도살될 그들의 가족들의 수가 넘칠 때까지.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어린 양이) 여섯번째 실을 열자, 큰 지진이 일어났고, 해가 검게, 검은 털로 만든 상복처럼 되었고, 달 전체가 피처럼 되었으며,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바람의 큰 흔듦에 의해 그 익지 않은 열매들이 떨어지는 무화과나무처럼. 그리고 하늘은 갈라졌고, 마치 책이 접히듯. 그리고 모든 산과 섬들이 그 자리에서부터 밀려갔습니다.

  그리고 땅의 통치자들과 높은 사람들과 풍요로운 사람들과 힘센 사람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민들이 모두 그들 자신들을 동굴들과 산들로부터 있는 바위들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산들과 바위들에 대고 말하길, "우리 위에 떨어져라, 그래서 우리들을 왕좌에 앉은 이의 얼굴로부터, 어린 양의 화로부터 숨겨다오, 우리의 화 입을 큰 날이 왔으니, 누가 서 있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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