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요한계시록 5:8~14

  즉 그이가 그 책을 차지하자, 그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렸고, 이십 사 장로들은 각각 하프들과 향들(incense)로 가득한(그 향들은 거룩한 이들의 기도들이었습니다) 금 그릇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길,


  마침내 자격있으신 이가 그 책을 차지하셨습니다. 그러자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렸습니다. 아직 책 내용은 시작도 안했습니다. 다만 어린 양이 그 책을 손에 쥐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창조된 산 것과 에클레시아는 엎드립니다. 처음이자 마침이신 분이, 이 책을 차지하신 순간은, 역사의 중심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계몽했다며 그 어리숙함을 뻔뻔하게 드러내던 17세기도 아니고,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함정에 빠진 18세기도 아닙니다. 신을 없애면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타락한 이들의 20세기도 아닙니다. A.D.1세기. 그이가 하늘에 오르사, 그 책을 차지한 그 때. 그리고 그 때부터 역사의 절정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마지막 날이 시작되고, 마지막 날, 마지막 날, 그렇게 우리가 겪어나가는 날마다의 오늘이 마지막 날의 연속입니다.

  앞에서 이 장로들이 에클레시아를 대표하는 이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손에 예배를 위한 악기와 기도를 나타내는 향(享)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누릴 향(享)은 '형통(亨通)'할 때의 형(亨)과도 통합니다. 즉 향을 피워 연기를 내는 것은 위와 아래가 연결되고, 뚫려있는 것을 뜻합니다.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과 땅의 연결을 위함이요, 그렇게 연결된 자리가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렇다고 향만 피우면 그렇게 된다는 것은 미숙한 생각입니다. 요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 향들은 거룩한 이들의 기도였습니다." 즉 기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킵니다. 기도줄로 하늘과 땅은 곧이 뚫립니다. 우리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더라도, 이 계시록의 말씀을 듣고서 우리 눈이 씻길 때까지 참을 실천해야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참을 실천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따라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현시대에서 오는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말입니다. 에클레시아가 기도할 때, 그 에클레시아를 대표하는 스물 네 장로들은 각각 그 대접에 그 향들을 가지고 옛적부터 계신 이 앞에 엎드립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생각을 하면, 내 몸 하나 어찌 되는지만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새 노래'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무엇이 '새'입니까? '새'는 '헌'의 반댓말입니까? 그렇다면 '새'와 '헌'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메시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도 비뚤어진 생활 방식을 고치지 못하고 헤매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새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메시아의 죽고 사심으로 새로이 시작된 오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나의 삶은, 나를 '혹시나 내가 버림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빠뜨립니다. 그러는 와중에 무신론을 광고하는 이들은, '기독교는 인간에게 쓸데 없는 걱정을 주는 정신 질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지금와서는 아들을 깨닫게 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임을 압니다. '새'는 '헌'을 배격하는 이원론의 반쪽도 아니고, 한 순간에 완전해질 수 있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생장'입니다. 마치 나무가 새살을 내고, 그 새살이 굳고 하는 과정 속에서 나이테를 그려가듯, '새'는 '헌'을 부단히도 극복하며  절망과 부족함을 극복하며 다시 일어나게 하는 생장을 말합니다. 나무로 치면 생장이고, 사람으로 치면 일어남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시는 한 분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 신뢰는 나를 주저 앉아 있게 하지 않습니다. 무릎에 힘을 주는 것은 나를 일으키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온에는 새 마음이 일어나고, 내 몸은 하늘을 향해 다시 일어납니다. 죽고 사신 어린 양이 책을 차지하시자 터져 나오는 '새' 노래는, 그 노래가 그 '일어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새'가, '생장'이, '일어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에클레시아의 기도를 받아든 스물 네 장로들이 새 노래를 부릅니다. 땅에서의 에클레시아는 견디고 있습니다. 견디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속에서 일으키시는 힘을 따라, 몸을 일으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힘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저 누리에 눌러붙은 피조물들과 달리, 새로이 일어나는 에클레시아가, 끊임없이 일어나 단단히 서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하는 동안, 하늘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스물 네 장로들은 그들의 대표로서, 메시아의 일어섬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가족, 그들의 기도를 들고서 이렇게 노래 합니다.

"당신은 그 책을 차지할,
그리고 그 실들을 여실 자격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도살당했고,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피로
모든 지파와 말(혀)과 씨알과 민족으로부터 (보물을) 사드렸으며*,
그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창조하셨고,
(이제) 그들이 그 땅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옵니다. 아래서부터 한 마디씩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기도하는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들은 새로이 창조된 존재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맨들어졌습니다. '맨손체조'할 때 '맨손'은 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 입니다. 그러니 '맨'은 nothing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이 무언가 창조되었다면 '맨듦'입니다. 없는 것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에클레시아가 그렇습니다. 오히려 죄악이 넘치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맨들어지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제사장들이 맨들어졌습니다.
  '지파, 말, 씨알, 민족'은 전세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파는 이스라엘이요, 방언은 이방이요, 씨알은 이스라엘이요, 민족은 이방입니다. 그러니 유대와 이방이 반복되는 이 '넷'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제사장'으로 새로이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곧 에클레시아입니다.
  흑암, 공허, 허무로 살아가던 그들이 새창조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덕분입니다. 그이는 피로 그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이가 피로 그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면, 이들은 새로이 창조될 수 없었던 이들임에 분명합니다. 여기서 '사다'라는 말은 '아고라조'라는 말을 씁니다. 아고라는 공적영역입니다. 상거래와 재판이 이뤄지던 광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그래서 '다음 아고라'도 있지 않습니까?). '아고라조'는 "공적 영역에서 얻어서 소유권을 획득하다"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구매는 비밀스러운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구경거리를 보듯 모두에게 드러낸 구매였습니다. 출애굽 이야기로 하면 어린양, 구약의 제사로 하면 희생제사, 이스라엘을 통해 줄곧 이야기되고 전해졌던 그 일이, 공적영역에서(그것도 대낮에) 똑똑히 벌어졌습니다. 

골로새서 2:14,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이 '사다'는 말은 노예시장을 염두한 단어입니다. 자유가 없었던 노예가, 한 사람의 피로 구매되어, 이제 하나님께 매인 사람들이 됩니다. 완전히 다른 통치권. 나를 사신 분은 이제 나에 대해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 권리있으신 분이, 현시대의 노예였던 나에게 나라와 제사장이라 부르십니다. 본문에 '보물'이란 단어는 제가 추가한 것인데,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예수는 우리를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러한 예수를 알고 사는 것은 보물이 됩니다. 서로를 보물처럼 여기는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그 나라와 제사장들의 새 호흡이 기도요, 고난 속에서도 하늘계신 아빠를 찾는 그들의 기도가 곧 새노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노래는 새로 지은 노래가 아닙니다. 이전에도 울렸던 그 노래 그대로 입니다.

이사야 42:10~16


새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여라. 땅 끝에서부터 그를 찬송하여라.
항해하는 사람들아, 바다 속에 사는 피조물들아, 섬들아, 거기에 사는 주민들아,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아, 게달 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아, 소리를 높여라.
셀라의 주민들아, 기쁜 노래를 불러라.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쳐라.
주님께 영광을 돌려라.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섬에까지 울려 퍼지게 하여라.
주님께서 용사처럼 나서시고, 전사처럼 용맹을 떨치신다.
전쟁의 함성을 드높이 올리시며, 대적들을 물리치신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폐하게 하고, 그 초목들을 모두 시들게 하겠다.
강들을 사막으로 만들겠고, 호수를 말리겠다.
눈 먼 나의 백성을 내가 인도할 것인데,
그들이 한 번도 다니지 못한 길로 인도하겠다.
내가 그들 앞에 서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고,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겠다. 이것은 내가 하는 약속이다.
반드시 지키겠다."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놓은 어린 양은 그 새 창조의 책을 여실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속(redemtion)이라 말하는 사건은, 새 창조를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구속은 중요하지만, 구속은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새 창조의 맥락 위에서만이 제 의미를 갖습니다.


  어린 양이라는 단어가 계시록 전체에 28번 나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7 x 4. 온 세계를 충만히 다스리는 어린양을 나타내기 위한 횟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고 들었습니다, 많은 천사들의 소리 같았는데, 그들은 그 왕좌와 그 생물들과 그 장로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들의 어림잡은 숫자는 천천이요 만만이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길,


  이번에 요한은 보고 듣는 것이 하나되었습니다. 많은 천사들이 보였고,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입니다. 많은 천사들이 왕좌와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시점은 확대되어 마치 감추어져있던 콰이어를 보듯, 셀 수 없는 천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 천사들이 말하길,

"자격있다, 그 어린양, 그 도살당했던 이가,
힘과 풍요로움과 지혜와 강함과 영예와 뚜렷과 찬양을 차지할"


  자격. 땅 위의 에클레시아와 같은 고백, 스물 네 장로와 같은 고백입니다. 어린 양이 책을 열 자격이 있다고, 천사들이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물, 하늘에 있고 땅 위에 있고 땅 아래 있고 그 바다 위에 있고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시점은 다시 한 번 확대됩니다. 마치 헬리캠을 띄운 듯, 그는 왕좌, 네 생물, 스물 네 장로, 그 모두를 둘러싸고 있는 셀 수 없는 천사에 이어, 창조 세계 전체를 보게 됩니다. 하늘과 땅, 땅 아래, 바다,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소리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왕좌에 앉으신 이와, 그 어린양께
찬양과 영예와 뚜렷과 권능과이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같은 고백입니다. 4장에서 요한이 옛적부터 계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붙였던 수식어와 동일하게.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앞에서 요한은 왕좌에 앉으신 분을 인간 통치자로 그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4장에 들어와서 요한이 예수님을 표현하는 방식도 사람이 아니라 사자와 어린 양 같은 동물을 사용했습니다. 요한이 조심스럽게 표현한 그 어린 양이, 왕좌에 계십니다. 요한은 왕좌에 앉으신 이를 어린 양과 일치십니다. 이 어린 양이 당대 로마 황제를 섬기던 사람들이 생각하던 통치자 개념과 어찌 다를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양이 왕좌에 앉으신 이에게 나아갈 때, 그리고 함께 예배를 받으실 때, 다니엘 7장의 예언은 마침내 이뤄집니다. 요한은 이것을 계속 염두해두었습니다. 1) 어린 양이신 인자가 주권을 받으시고, 2) 그 주권은 모든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3) 그리고 나라와 다스림이 된 에클레시아가 언급되고, 4) 창조세계 전체로부터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십니다.

1)
다니엘 7:13,14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옛부터 계신 분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2)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이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여서, 옮겨 가지 않을 것이며,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3)
다니엘 7:18
그러나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을 것이며,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것을 누릴 것이다.'

다니엘 7:22
옛적부터 계신 분이 오셔서,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의 권리를 찾아 주셔서,
마침내 성도들이 나라를 되찾았다.

4)
다니엘 7: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력이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다. 권세를 가진 모든 통치자가 그를 섬기며 복종할 것이다.'


 

그리고 네 생물이 말했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창조세계의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은, 이에 '아멘'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5:8~14

즉 그이가 그 책을 차지하자, 그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렸고, 이십 사 장로들은 각각 하프들과 향들(incense)로 가득한(그 향들은 거룩한 이들의 기도들이었습니다) 금 그릇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 노래를 듣고서 말하길,

"당신은 그 책을 차지할,
그리고 그 실들을 여실 자격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도살당했고,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피로
모든 지파와 말(혀)과 씨알과 민족으로부터 (보물을) 사드렸으며*,
그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창조하셨고,
(이제) 그들이 그 땅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고 들었습니다, 많은 천사들의 소리 같았는데, 그들은 그 왕좌와 그 생물들과 그 장로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들의 어림잡은 숫자는 천천이요 만만이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길,

"자격있다, 그 어린양, 그 도살당했던 이가,
힘과 풍요로움과 지혜와 강함과 영예와 뚜렷과 찬양을 차지할.


  그리고 모든 창조물, 하늘에 있고 땅 위에 있고 땅 아래 있고 그 바다 위에 있고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 왕좌에 앉으신 이와, 그 어린양께
찬양과 영예와 뚜렷과 권능과이 시대들로부터 시대들에 이르도록.

  그리고 네 생물이 말했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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