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HY - モノクロ(링크)


요한계시록 5:1~7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왕좌에 앉아 계신이의 오른 편에 안쪽과 바깥쪽에 기록된 책을, 일곱 개의 실(seal)로 봉인된.


  먼 외딴 섬에 홀로 갇혀 있는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들을, 자신이 나고 자랐던 유대 문화 안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곳까지 끌려와 갇히게 된 사연은, 그가 계시록 서두(1:9)에서 밝힌대로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로마의 지배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씨도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달랐지만, 서로를 가족이라 불리며 로마 황제를 신(神)이라 부르기를 거절했으며, 그 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신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이한 고백을 공유하는, 자신을 그들과 한 가족이라 소개하는 요한, 그는 "하나님의 로고스와 예수에 대한 (법정)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 불리는 섬에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로마 황제가 앉아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굴종하던 그 자리는 로마 황제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 7장, 에스겔 1장, 이사야 6장, 스가랴 4장...그 자리는 성경의 예언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고(반대로 바로 이 자리에서 모든 예언이 흘러나왔고),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가 곁에 선, 온 땅을 통치하는 자리였습니다. 옛부터 전해지던, 사람들의 정신을 인도하던 글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다이몬', 석가의 공(空), 공자의 인(仁), 노자의 도(道).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이끌고 있다는 짐작들이 인류의 정신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글에서는 그것이 희미한 짐작이 아닌 뚜렷입니다. 그간 전해들었던 이야기들의 확인입니다. 따라서 모험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로) 완전하게 보장된 안전한 배팅입니다. 그에게 드러난 진실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이끌고 있던 정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의 존재 근거, 토대였음이 드러납니다. 지금 요한은 누구도 본적없던 만물의 토대를 마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왕좌의 오른 편에(혹은 "오른 손에", 왕좌에 앉으신 이가 사람과 같은 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달을 위한 표현일 뿐입니다. '오른'은 '옳은' 입니다),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내일 보게 될 찬양의 가사처럼 죽임당한 어린양의 유언(testamentum)입니다. '구약', '신약'이라고 할 때 이 '약'이 '유언'이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약속'이라 생각합니다만, 여러 약속 중에서도 특히 유언과 관련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의 유언을 적습니다. 이 유언의 내용은 당연히 '누가 상속을 받을 것인가'와 '무엇이 그 상속물로 주어질 것인지'에 집중됩니다. (이 생각을 하면 성경 전체를 새로이 읽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죽음'이후,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그들에게 무엇이 주어질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안쪽에 적은 내용을 요약해서 바깥쪽에 적어두고 '인(印, seal)'으로 봉합니다. 그리고 이 유언에 대한 일곱 증인을 세워둡니다.

  요한 계시록도 당대의 이러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일단 이 '책 심상'이 품고 있는 인유들 부터 확인합시다.


에스겔 2:8,9

너 사람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처럼 반역하지 말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 먹어라."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내 앞으로 뻗쳐 있었고,

그 손에는 두루마리 책이 있었다.


이사야 29:11

이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밀봉된 두루마리의 글처럼 될 것이다.

너희가 그 두루마리를 유식한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이것을 좀 읽어 주시오" 하고 내주면,

그는 "두루마리가 밀봉되어 있어서 못 읽겠소" 하고 말할 것이다.


다니엘 7:10

불길이 강물처럼 그에게서 흘러 나왔다.

수종 드는 사람이 수천이요, 모시고 서 있는 사람이 수만이었다.

심판이 시작되는데, 책들이 펴져 있었다.


다니엘 12:4,9

그러나 너 다니엘아, 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은밀히 간직하고,

이 책을 봉하여 두어라. 많은 사람이 이러한 지식을 얻으려고 왔다갔다 할 것이다."


그가 말하였다. "다니엘아, 가거라.

이 말씀은 마지막이 올 때까지 은밀하게 간직되고 감추어질 것이다.


  앞에서 유언 얘기를 꺼낸 것은, 이 책 내용 자체가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성경'을 의미한는 것은 아닙니다(그랬다면 '인으로 봉했다'고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흔히 말하는 '생명책'도 아닙니다(나 하나 어찌 되느냐보다, 더 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린양 예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토라 이야기가 어찌 이뤄지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다시 말해 메시아의 죽으심 이후, 1) 누가 그의 상속자이며, 2) 그들에게 무엇이 상속으로 주어질지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입니다. 죄로 얼룩진 옛 창조세계가 모두 죽음의 하수구로 휩쓸려 들어갈 때, 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새 창조와 그 완성에 대한 책입니다. 이제 요한은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마침내 알게 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옛적부터 계신 분의 왕좌'의 환상으로 시작한 4장에서, 다니엘의 인유였던 "이 일 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란 표현은, 바로 이 책의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을 비롯한 예언자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새 창조의 전모를 밝힙니다. 그 고대했던 일을 구약성경이라 말할 수도 없고, 그저 내 이름 하나 기록되었나 안되었나를 보고자 하는 생명책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인자의 죽음과 부활로 개시된 새창조와 그것의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큰 소리로 선언(케뤼쏘)하는 강한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 책을 열고 그 실(seal)들을 풀어낼 자격이 있는 이 누구인가?"


  그때 요한은 '강한 천사'를 봅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천사'는 다니엘 4장에 나옵니다.


다니엘 4:13~17, 23


내가 침대 위에서 나의 머리 속에 나타난 환상을 또 보니,

거룩한 감시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큰소리로 외치며 이렇게 명령하였다. 


'이 나무를 베고서 가지를 꺾고, 잎사귀를 떨고서 열매를 헤쳐라.

나무 밑에 있는 짐승들을 쫓아 버리고, 가지에 깃든 새들을 쫓아내어라.
다만, 그 뿌리의 그루터기만 땅에 남겨 두고,

쇠줄과 놋줄로 동이고 들풀 속에 버려 두어라.

하늘의 이슬에 젖게 하고, 땅의 풀 가운데서 들짐승과 함께 어울리게 하여라.
또 그의 마음은 변하여서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고,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서 일곱 때를 지낼 것이다.
 이것은 감시자들이 명령한 것이며, 거룩한 이들이 말한 것이다.

이것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지배하신다는 것과,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과,

가장 낮은 사람을 그 위에 세우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


...임금님이 보시니, 거룩한 감시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나무를 베어 없애되, 다만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줄과 놋줄로 동여서 들풀 속에 버려 두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게 하고, 들짐승과 함께 어울리게 하여라.

이렇게 일곱 때를 지내도록 하여라.'


  그 천사는 큰 소리로 '케뤼쏘'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의 명사형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연구'할 때, '케리그마'라 배운 단어입니다. '전도'로 번역된 케리그마라는 단어는 전령이 알리는 왕위 등극 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강한 천사도 '왕위 등극'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 왕좌에 앉으실 자격있는 분이 요한 앞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실(seal)을 사 본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어떤 선생님도 저에게 그 '실'이 무슨 뜻인지 말씀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저는 왜 옷감 짤 때쓰는 실도 아닌데 왜 실이라 부를지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잊었습니다.) 실(seal)은 봉투를 봉하기 위해 붙여놓는 것인데, 이게 인(印)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림에서 붉은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책을 열어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도, 땅 위에서도, 땅 아래서도. 그래서 나는 엄청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책을 열어 그것을 볼 자격이 있다고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늘에서도, 땅 위에서도, 땅 아래서도. 하늘에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하늘에도 없습니다. 요한은 이 사실에 절망합니다. 저 안에 쓰여있는 것은, 절망으로 가득한 현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소식인데, 아무도 저 책을 펼칠 자격이 없었습니다. "책을 펼친다"는 말은, 단순히 저 안에 쓰여진 비밀을 공개한다에 그치지 않고, 저 안에 있는 내용을 집행하고, 실행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들 중 하나가 내게 말했습니다. "울지 마시오. 보시오, 이겼소, 유다 지파로부터 (나온) 한 사자가, 다윗의 뿌리, 책과 그 일곱 실들을 열기 위해서.


  그런데 울고 있는 요한에게 스물 네 장로들 중 하나가 말합니다. 요한은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의 말은 창세기와 이사야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창세기 49:8~12


유다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너는 원수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 같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어 먹고, 굴로 되돌아갈 것이다.

엎드리고 웅크리는 모양이 수사자 같기도 하고,

암사자 같기도 하니, 누가 감히 범할 수 있으랴!
임금의 지휘봉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휘봉이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가 실로에 오시기까지,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그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가장 좋은 포도나무 가지에 맬 것이다.

그는 옷을 포도주에다 빨며, 그 겉옷은 포도의 붉은 즙으로 빨 것이다.
그의 눈은 포도주 빛보다 진하고, 그의 이는 우유 빛보다 흴 것이다.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로 이뤄진 열두 지파는, 그 중에 열 지파가 앗시리아 침략에 의해 멸망당하고, 나머지 베냐민과 유다만 살아남아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해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스라엘을 '유다 사람'이라 불러도 될만큼 이스라엘은 힘겨운 시기를 거쳤습니다. 그런데 그 유다 지파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셨고, 그이에 의해 야곱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집니다. 


이사야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깃발로 세워질 것이며,

민족들이 그를 찾아 모여들어서, 그가 있는 곳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이사야서 11장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이렇듯 스물 네 장로들 중 하나가 들려준 것은, "유다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합당'(우리는 어제 이 말을 만났습니다) 하다는 것입니다. 일곱 개의 실을 떼내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드러내고 실행하기에.


  이 말을 듣고서 요한은 기대했을까요? 정말 사자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셔서, 저 실들을 과감하게 떼내고서, 현시대의 악을 단숨에 물어뜯을 장면을 기대했을까요? 그러나 요한의 눈 앞에 드러난 것은, 그가 들었던 것과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왕좌와 네 생물 가운데서, 그리고 장로들 가운데서, 어린양이 서 있었는데, 도살당했던 양으로서,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것들은 땅 전체로 보냄받았던 하나님의 일곱 숨결들입니다).


bgm : Bewhy - So What(링크)


  어린 양. 얇은 다리로, 누군가를 짓밟을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어린 양이 서 있습니다. 요한이 들은 것과 보는 것은 서로 달랐지만, 사실 한 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 들었던 공감각적 심상입니다. 공감각적 심상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점이고,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는 더 큰 차원을 가리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이는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귀를 더 엽니다. 현실을 새롭게 하는 시작이 이 시각과 청각의 괴리에서 벌어집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현재 상태다."


  어린 양의 자리는 옛적부터 계신 이의 '오른 편'. 모든 산 생명을 대표하는 네 생물 '가운데', 모든 에클레시아를 대표하는 스물 네 장로들 '가운데' 입니다. 그이가 누가복음에서 이사야를 펴서 읽으시고, 그대로 하셨듯, 이 어린 양이 일곱 실들을 떼고, 그 책의 내용을 드러내고, 이루실 것입니다. 새 창조를 말입니다. 그 새창조를 이루는 방식이 '출애굽'입니다. '어린 양'이라는 말은, 우리를 유월절 사건으로 안내하고,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매달려 있던 한 나사렛 청년의 죽음이, 새창조의 방식으로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출애굽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순전하게 도살당한 어린 양이기에, 하나님의 사자(lion)입니다. 위용 넘치는 하나님 사자의 힘은, 순전한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타인을 물어뜯기는 커녕, 자신의 내면을 물어 뜯고, 자기 몸을 온전히 내어놓은 어린 양이, 오늘날까지 강력한 힘을 가진 사자로 알려졌습니다.




  본문에 "도살당했던"으로 번역한 것을 개역개정은 "죽임당한 것'처럼'"이라 번역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NASB도 저지릅니다.(as if slain) 이런 착오는 희랍어 접속사/전칙사인 '호스'를 잘못 번역한데서 옵니다. '호스'는 외견상 비슷해보이는 모습을 뜻하기도 하지만, '자격'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도살당하지 않았는데, 그렇게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도살당했기 때문에, 그이는 사자와 같은 어린 양이신 것입니다. 이 "도살당했던"은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며, 더불어 이사야 53:9의 인유이기 때문에, "~처럼"이라 번역될 수 없습니다.


  '뿔'은 '힘', '승리'를 상징합니다. 게다가 일곱인 것은 완전한 힘, 완전한 승리의 어린 양임을 나타냅니다. 뿔은 다니엘 7장에서 네번째 괴물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들의 승리를 비웃듯(시편 2:4), 완전한 뿔로서 나타납니다.


  '일곱 눈'은  스가랴의 인유입니다.


스가랴 3:8,9

여호수아 대제사장은 들어라.

여기 여호수아 앞에 앉아 있는 여호수아의 동료들도 함께 잘 들어라.

너희는 모두 앞으로 나타날 일의 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를 놓는다.

그것은 일곱 눈을 가진 돌이다.

나는 그 돌에 내가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긴다.

 

  또한 역대하 말씀도 참고할만 합니다.


역대하 16: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곱 눈'은 곧 성령.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하루만에 없애시는, 창조세계 전체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그리고 그이가 왔고 그 왕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으로부터 차지했습니다.


  죽임당했던 어린 양은, 다시 살아서 하늘의 성전에 나타났습니다. 강한 천사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새로운 왕이 나타나셨다는 케리그마. 그 왕은 어린 양의 능력으로, 온 천하를 호령할 유다의 사자이십니다. 합당하신 분의 등장. 그는 옛적부터 계신 분으로부터 이제 왕위를 이어 받습니다. 이 "오른편으로부터 차이"가 승천으로부터 시작된, 메시아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그가 숨을 부으십니다. 신격으로 인격을 곧게 세우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린 양이, 요한을 눈물 쏟게 했던 그 책을 하늘로부터 땅으로 열어 보이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1:20~23


하나님께서는 이 힘을 메시아 안에 발휘하셔서,

그이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 시대뿐만 아니라 오는 시대에서 일컬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메시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이를 만물 위에 에클레시아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에클레시아는 메시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가득 채우시는 이의 가득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5:1~7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왕좌에 앉아 계신이의 오른 편에 안쪽과 바깥쪽에 기록된 책을, 일곱 개의 실(seal)로 봉인된. 그리고 나는 큰 소리로 선언(케뤼쏘)하는 강한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 책을 열고 그 실(seal)들을 풀어낼 자격이 있는 이 누구인가?" 그러나 누구도 책을 열어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도, 땅 위에서도, 땅 아래서도. 그래서 나는 엄청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책을 열어 그것을 볼 자격이 있다고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로들 중 하나가 내게 말했습니다. "울지 마시오. 보시오, 이겼소, 유다 지파로부터 (나온) 한 사자가, 다윗의 뿌리, 책과 그 일곱 실들을 열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왕좌와 네 생물 가운데서, 그리고 장로들 가운데서, 어린양이 서 있었는데, 도살당했던 양으로서,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것들은 땅 전체로 보냄받았던 하나님의 일곱 숨결들입니다). 그리고 그이가 왔고 그 왕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으로부터 차지했습니다.


반응형

'요한계시록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 6:1~8  (4) 2016.03.21
요한계시록 5:8~14  (4) 2016.03.17
요한계시록 4:6b~11  (12) 2016.03.15
요한계시록 4:1~6a  (3) 2016.03.11
요한계시록 3:14~22  (5) 201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