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표적 : 

찢기는 몸, 넘치는 생명



0. 서론 : 다리 만들기

-요한복음의 서론(1:1~18)과 결론

 

1. 변화된 물질, 다시 만나는 하늘과 땅

 

2. 그의 가치 : 죽음을 이기는 것

 

3. 그의 시간, 이제 일을 시작할 때

 

4. 찢기는 몸, 넘치는 생명

 

5. 혼돈 속 혼돈 속 혼돈 속의 인자

 

6. 예고편 : 죽음에서 일어난 사람

 

7. 모든 기적들은 이 빈 무덤을 가리키고 있었다.

 

 

0.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일곱가지의 '표적'(앞으로는 기적이라는 말보다는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단순히 예수가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게 아닌, 이스라엘 이야기의 문맥에서 이해되는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우리는 '예수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요한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요한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표적들을 정리하면,

-가나의 혼인잔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사건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난 사건과 이후의 논쟁

  입니다. 각각의 표적들은 점점 길어지고 복잡해지고,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게 됩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장의 셀로판 종이를 겹쳐서 하나의 그림을 만드려는 중입니다. 그 동안의 표적들을 잘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의도에 충실하게 따라갈 것이 요구되고, 또한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네번째 표적, 그 유명한, 오병이어를 만날 차례입니다. 
그간 이 본문을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이번 주는 글쓰기가 수월할 거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이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요한의 눈으로, 하나의 단일 사건 단위 안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반추하는 과정은 결코 일방통행의 사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복잡다단한 그림, 그러나 분명한 그림이 드러나,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오병이어의 짧은 이야기만 알고 있지만, 이 사건은 그 뒤에 긴 예수님과 무리들의 대화를 달고 있습니다. 이 대화가 네번째 표적의 의미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임의로 문단을 나눠보았습니다.

요한복음 6:1~71


1.

  그 뒤에 에수께서 갈릴리 바닷가, 다시 말해서 디베랴 바닷가로 가셨다. 큰 무리가 그를 따랐다. 그가 병자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려면,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야 하겠느냐?(예수께서는 그를 시험하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려는 일을 아셨다.)

  빌립이 말했다. "여섯 달치 품삯을 털어서 빵을 사더라도, 모든 사람이 조금씩 먹기에 충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 중에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끼어들었다.

  "보리빵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

  그들이 있던 곳에는 풀이 많았다. 사람들이 앉았는데, 모두 오천명 정도였다.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런 다음 생선도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주셨다.

  사람들이 배부른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와 조각을 모아서, 버리는 것이 없게 하여라."

  제자들이 모았더니,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정 세상에 와야 할 예언자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붙들어다 왕으로 삼으려는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홀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저녁 때, 예수의 제자들은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들은 배에 올라타서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갔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고,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강한 바람이 불고, 불결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배를 저어 10여 리쯤 갔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로 다가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겁을 먹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배로 모셔 들었고,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도착했다.


2.


  다음 날이었다. 바다 건너편에 머물러 있던 무리는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는 것을 보았었다. 또 그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지 않으셨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배들이 디베랴에서 왔는데,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뒤 그들에게 빵을 먹이셨던 곳에서 가까운 데로 왔다. 무리는 거기에 예수도, 그의 제자들도 없는 것을 보고, 그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닷가에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랍비여, 언제 여기로 오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이유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썪기 쉬운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까지 이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 곧 인자가 너희에게 줄 음식이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다."

  그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표적을 행해서 우리가 그것을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가 그들이 먹을 빵을 하늘에서 내려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 빵을 내려주신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이가 하나님의 빵이다."

  그들이 말했다. "주님, 이 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가 정말 나를 보았지만 아직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올 것이요,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을 내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다. 곧 그분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일으키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믿는 모든 사람이 오는 세대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3.

  유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수군거렸다. 그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했다. "이 삶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우리가 그의 부모를 알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그가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서로 수군대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예언서에는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아버지 앞에서 듣고 배우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온다.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나, 그는 아버지를 보았다."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오는 시대의 삶을 가졌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그들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먹고 죽지 않게 하는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준 내 살이다."

  이 말 때문에 유대 사람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들 안에 머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조상들이 먹고서 죽은 빵과는 다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에수께서는 이 말씀을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시는 동안, 회당에서 하셨다.


4.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말했다. "어려운 말씀이다! 과연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말을 두고 투덜대는 줄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거슬리느냐?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느냐?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 그것들이 영이고 생명이다. 하지만 너희 중에 몇은 믿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기를 배신할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 말씀에 예수의 제자 중 상당수가 그를 떠나서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돌아서서 물으셨다.

  "너희도 떠나가려는 것이냐?"

  시몬 베드로가 당당하게 말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너희 중 하나는 고발자다!"

  예수께서는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고, 예수를 배신할 사람이었다. 



1. 사건의 재구성

-유월절을 앞둔 어느 날
   먼저 배경을 먼저 살펴봅시다. 요한에게 있어서 이 배경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벌어질 때 요한은 언제, 어디서 벌어진지를 사건의 서두에 기록해둔다는 사실을 우리는는 확인하면서 왔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벌어진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어떠한 날인가요? 

  이 날은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보낸 마지막 밤입니다. 이 날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은 죽었습니다.(심지어 파라오의 맏아들까지). 절망한 파라오와는 달리, 문설주마다 피를 바른 이스라엘은 죽음을 넘어 자유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날,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가가호호마다 죽음의 천사가 그냥 넘어갔다고하여, '유월(passover)'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날은 악이 파멸한 날이자, 노예들은 자유를 찾은 날이며, 정의와 자유의 신이 마침내 드러난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자유의 날을 가장 중요한 절기로 계속 기념해왔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복절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사건이 있고나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유월절. 바로 이 유월절을 앞둔 어느 날,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는 낮에 벌어진 보리빵과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에 벌어진 물 위를 건너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그저 신기한 기적이 아닙니다. 표적입니다. 해석의 방법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셨다. 마치 만나를 주시듯
  먼저, 오병이어 사건을 생각해봅시다. 지금 여기는 들판입니다. 예수께서는 빌립에게 의도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까?' 였습니다. 이와 똑같은 고민을 유월절을 겪고 광야에 나온 사람들도 했습니다. 오늘날 통장 잔고를 보고 있는 회사원도 그 고민을 합니다. 물론 그들은 '어떻게 먹일까'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까'였겠지만 말입니다. 빌립은 불가능을 말했습니다. 안드레는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싸온 보리빵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들의 눈빛은 절망스러웠을 것입니다.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뒤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만 오천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예수는 빵과 생선을 들어 감사드리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빵과 고기는 찢기고 찢기고 계속 찢기며, 사람들의 허기를 채웁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신기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만나를 경험했던 그 시절 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남은 빵과 고기 조각들을 모아보니, 의미심장한 숫자로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생존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가 자신들의 눈 앞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저 사람만 따라 다니면, 고된 노동도, 굶주림의 아픔도 해결될 것입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던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해주었던 모세와 같이. 아, 이 사람은 신명기 18장에 이 땅에 올 것이라 예언된, '그 선지자'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그 선지자'에게 열광합니다. 이 소리는 얼마 가지 않아, '그 선지자가 곧 메시아다'라는 외침으로 바뀝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배불려준 예수를 왕으로 모실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군중들은 사라진 예수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남아 있던 제자들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집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배에 올라탔습니다.

-물을 밟고 건너온 한 사람
  이제 밤이 되었습니다. 이 밤에도 군중들은 찾아 거리를 헤매고, 예수는 산에서 홀로 계십니다. 제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강한 바람, 거친 물결.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향해 누군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물을 밟고서. 그들은 혼비백산했으나 그 물을 밟고 걸어온 사람은 말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유대인들에게 바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륙에 살기 때문에 바다를 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호수나, 바다나 큰 물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도 '바다'라 부릅니다. 바다를 볼 일은 별로 없지만, 그들은 바다에 대해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 자유인이 되었던 그 사건. 바로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이집트 군대에게 쫓기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다는 그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 '악'이었습니다.(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을 찾아온 로마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라"
  그 날에 하나님은 그 악을 갈라 길을 내시고, 그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언약백성의 앞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공포의 세력이, 하나님 앞에 굴복한 날로 기억되었습니다. 

  지금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센 바람, 거친 파도와 싸우는 제자들에게도 바다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바다 아래서  그들은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초라한 노를 붙잡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바다를 밟고 오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나다." 마치 그 옛날 바다를 갈라 백성을 구출한 하나님처럼.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요한은 이 사건을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적어도 분명한 것은, 유월절과 가까운 이 날 벌어진 모든 사건들이, 출애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태운 배는 목적한 땅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홍해를 지나 목적한 땅에 당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2. 사건 다음 날의 대화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어제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은 밤새 예수를 찾아 헤매다, 다음날 예수의 집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집에서 나오는 예수를 보고 의아해합니다. 어제 분명, 배는 한척뿐이었고, 그 배는 예수가 아닌 제자들만 타고 갔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예수께서 언제 집으로 오셨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후 일곱 개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과 답변들은 앞에 있던 네 번째 표적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단서들입니다.

-첫번째 질문과 답변 : 예수를 찾는 목적

 그들은 예수께서 바닷가에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랍비여, 언제 여기로 오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이유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썪기 쉬운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까지 이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 곧 인자가 너희에게 줄 음식이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다."


  오병이어의 무리가 예수께 던진 첫번째 질문은 '언제 집으로 돌아오셨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배 타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의 집인 가버나움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예수께서 나오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동문서답 하십니다. 언제 오셨냐는 그들의 질문에, 집에 온 방식(물 위를 건너 배에 탑승)이 아닌, 그들이 예수를 찾는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무리는 '표적'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예수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빵 때문에 예수를 찾는 것은 예수에 대한 합당한 추구가 아니며, 이러한 잘못된 목적을 위해서 노동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럼 예수를 찾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썪는 빵이 아닌, 썩지 않는 영생에 까지 이어질 양식이며, 그 양식을 위해 바른 노동을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은 인자가 줍니다. 인자는 곧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도 다시 인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옛 적부터 계신 이에게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양받는 바로 그 인자. 썩지 않는 양식을 주는 인자.
  이 첫번째 질문과 답변 속에서, 우리는 이어질 이야기들의 키워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 표적. 양식. 영생. 인자] 


-두번째 질문과 답변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일
  그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일이다."


  오병이어의 군중들은 이어서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풀면, '빵을 목적으로 일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이 있습니까?' 정도 되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군중들은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눈에는 이것만 보입니다. 역시나, 예수의 표적속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묶여 있는 바로 그 문제 때문에.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른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보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일'입니다.

-세번째 질문과 답변 : 표적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모세인가, 하나님인가?
 그들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표적을 행해서 우리가 그것을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가 그들이 먹을 빵을 하늘에서 내려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 빵을 내려주신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이가 하나님의 빵이다."


  이어 질문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로 넘어갑니다. 아마도 군중들은 예수의 첫번째 답변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적]과 [일]에 관해 들었으니 이제 군중들은 다음 키워드로 넘어갑니다. 그것은 바로 [표적]입니다. 요약하면 이것이죠, "당신은 무슨 표적을 통해서, 당신을 믿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오병이어 라는 표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표적이 아니라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그 표적을 이해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그 선지자', '메시아'로 환호했던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표적의 의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오병이어라는 드라마 안에서, 예수님의 배역을 모세라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먹을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은 만나를 먹게 해준 모세처럼 보였으니까요. 게다가 그들은 신명기 18장에 기록된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바라본 예수는, 자신들을 압제와 빈곤에서 해결해줄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다로부터 건너온 로마를 물리쳐줄 모세라면, 그들이 기대로 들뜰만합니다. 밤새 예수를 찾아다닐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관심을 모세에서 하나님으로 돌립니다. 표적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표적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세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하늘로부터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사람. 곧 그 사람이 표적이자, 하나님의 빵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해줄 모세가 아니라. 즉, 표적은 모세가 아니라 빵입니다.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네번째 질문과 답변 : 생명의 양식, 그것은 오는 시대의 생명

  그들이 말했다. "주님, 이 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가 정말 나를 보았지만 아직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올 것이요,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을 내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다. 곧 그분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일으키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믿는 모든 사람이 오는 시대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이제 오병이어의 군중들은 예수께 '그 빵'을 달라 말합니다. 표적 그 자체.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생명. 하나님의 빵! 이러한 요구에 예수는 숨김없이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라임을 맞춰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은 배고픔도,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목마름도 없을 것이다." 
  
  표적은 예수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오해한 사람들은, 만나의 표적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모세를 찾았다고 기뻐했으나, 오히려 예수의 가치는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빈곤을 해결하는 것도 죽음 안에 있습니다. 로마를 몰아내는 것도 죽음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세는 죽음 안에서 그나마 윤택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모세는 결국 죽음에 패배하게 될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빵입니다. 죽음 안에서의 시들어가는 생명이 아닌, 죽음을 깨뜨리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참된 양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건 만나와 같지만, 다시는 굶주리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만나와 다른, 즉, 새로운 만나. 예수는 바로 그러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양식을 가리켜, 이렇게 부릅니다. 영생. 오는 시대의 생명.

  예수께서는 일련의 과정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습니다. 이 믿는다는 것은 표적을 보고 예수의 참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보내신 자입니다. 예수는 그를 받아(그 사람 입장에서는 예수를 믿어)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 부활시킵니다.('일어나다'라는 동사는 언제나 부활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께서 하시려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 영생, 곧 오는 시대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오는 시대의 생명이 곧 양식의 정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오병이어의 군중이 예수를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표적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우리가 배웠던 말로 하면, 예수를 '티메'하지 않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오는 시대의 생명을 주시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낡은 시대에서 성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가치를 모르고 예수를 추종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그를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어떤 왕인지 모르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질문과 답변 : 오는 시대의 생명, 그것은 예수의 살점으로

  유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수군거렸다. 그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했다. "이 삶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우리가 그의 부모를 알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그가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서로 수군대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예언서에는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아버지 앞에서 듣고 배우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온다.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나, 그는 아버지를 보았다."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오는 시대의 삶을 가졌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그들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먹고 죽지 않게 하는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준 내 살이다."


  영생이라 번역된 말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는 시대의 생명입니다. 즉, 성서는 이 악한 시대가 분명한 끝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이것을 믿지 않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악한 시대의 끝이 곧 마지막 날입니다. 이 마지막 날 앞에는 이런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 시대의, 악한 시대의) 마지막 날. 그리고 세상은 그 마지막 날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맞습니다. 이 오게 될 새로운 시대의 삶을 가리켜 '영생'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악한 시대의 종말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마지막 날 의인이 살아나는 것을 통해서, 죽음의 시대의 종말과, 새시대의 시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바로 이 일, 악한 시대를 종결내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자신의 참가치를 드러내어 믿게하며, 그들을 부활시켜, 오는 시대의 삶을 살도록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자신을 하늘로부터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표적이자,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오병이어의 군중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배불려 주는 예수를 왕으로 삼겠다고 나섰으나, 그가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자, 그의 출처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의 부모를 알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사야 54:13을 인용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께 배우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예수께 나아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본 자요, 그를 믿어 그로터 배운 자는,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는 사람입니다.

  즉, 핵심은 예수를 믿어 오는 시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나, 그 만나를 먹은 이들은 모두 죽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재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나이신 예수는 다릅니다. 이제 그를 믿어, 오는 시대의 삶, 영생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그저 귀로 듣고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기에, 그의 살점을 먹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이뤄집니다. 

-여섯번째 질문과 답변 : 그 빵을 먹어라, 인자의 살점을 먹어라.

  이 말 때문에 유대 사람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엄중하게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킬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들 안에 머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조상들이 먹고서 죽은 빵과는 다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에수께서는 이 말씀을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시는 동안, 회당에서 하셨다.


  예수는 한 술 더떠서 자신이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피 마시는 것을 금지했으므로, 이것은 더더욱 유대인들에게 이상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피를 마시고, 유대 율법을 어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의 난도질된 살점과, 그의 흘린 피는 곧 그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 죽음을 통해 벌어진 일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믿을 때, 인생의 갈증이 사라지고(삶의 목적이 생기고), 배고픔이 사라지며(생존을 이겨낼 수 있으며), 오는 시대의 삶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사람들이 찾아야 할 진정한 만나입니다. 조상들이 먹고서 죽은 빵과는 다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찾고 있는 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만나. 그것은 바로 예수의 죽음이요, 그 죽음의 의미를 우리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곧 그를 먹는다는 말의 의미요, 예수의 살점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 사람은, 오는 시대의 삶을 살게 되며, 세상의 마지막 날도 그를 삼킬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로 새 시대를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에서 온 생명의 빵입니다. 표적을 통해 발견해야 하는 의미는 바로 예수가 이러한 분이시라는 것이며, 그를 찾아야 하는 목적도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히 위장을 채우기 위한 왕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말대로라면 인자가 죽는다는 말이 됩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는다니요. 이것은 유대인들의 기대를 오히려 무너뜨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자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짐승같은 로마를 박살내고 이스라엘에 자유를 찾아주리라 기대하는 존재가 인자입니다. 그런데 그 인자가 죽는다고요? 그의 살점을 우리가 먹어야 한다고요?

  그러나 이것이 오병이어의 의미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찢기던 빵이, 바로 인자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찢겨진 살점들은 사람들의 입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인자를 먹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기게 되고, 악한 시대의 종말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는 시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자가 말씀하십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준 내 살이다."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인자의 죽음으로 진정한 유월절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찢기는 살점. 십자가에서 찢기는 인자의 살점. 인자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시작되는 오는 시대의 삶. 그리고 부활. 

  사람들이 물고기와 빵을 씹을 때, 그 씹음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3. 사건의 의미를 듣고나서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일곱번째 대화. 이번에는 제자들이 반응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말했다. "어려운 말씀이다! 과연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말을 두고 투덜대는 줄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거슬리느냐?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느냐?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 그것들이 영이고 생명이다. 하지만 너희 중에 몇은 믿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기를 배신할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 말씀에 예수의 제자 중 상당수가 그를 떠나서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인자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날과 부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충격적인 재해석. 인자 이야기의 인자는 죽임 당할 것이며, 마지막 날 그 죽임 당하는 인자를 믿는 이들이 부활할 것이며, 이러한 출애굽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이 눈 앞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아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거슬리느냐?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느냐?"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인자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인자가 옛 적부터 계신이에게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양받기 위해, 구름과 함께, 땅에서 하늘로 이동하는 장면의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의 의도는, "너희들 인자 이야기의 결말을 본다면 어찌할테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들 중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결말을 보게 됩니다.) 즉, 인자는 죽임당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죽임당하지만 하나님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양받는다는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그 수수께끼에 대한 실마리는 이미 주셨습니다. 곧바로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고쳐 읽어보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성령이니, 육체가 찢기더라도 그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너희에게 한 말들이 영이고, 그 영이 너희 육체 안에 생명으로 기능한다. 고로, 너희의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육체가 찢기더라도 지장없는 강력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제자들 중 몇은 믿지 않는다. 내 말과 영을 받지 않는다." 


  이어, 배신자의 존재를 언급하시고, 아버지가 허락한 자만 이 말을 믿고 예수를 따른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에 제자들 중 상당수가 그를 떠나서 더이상 따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죽으러 가자는 인자와 함께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돌아서서 물으셨다.

  "너희도 떠나가려는 것이냐?"

  시몬 베드로가 당당하게 말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너희 중 하나는 고발자다!"

  예수께서는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열두 제자 가움데 하나였고, 예수를 배신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열 두 제자는 남았습니다. 너희도 떠나가려는 것이냐는 예수의 물음에, 우리의 베드로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무식하고 급한 베드로, 알고 말하는 것일지 의심이 되지만, 예수의 말씀을 비추어봤을 때 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베드로 한 명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택한 열 둘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 일은 표적을 드러내는 일이요. 그 표적은 자신의 죽음으로 오는 시대의 삶을 주시는 생명의 빵, 곧 인자이신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은 이 표적을 전하는 자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죽임당한 인자를 통해, 오는 시대의 삶을 살며, 부활을 소망하며 말입니다. 새로운 출애굽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운 날, 이들을 통해서 빵이 찢기고, 이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빵이 전달되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출애굽의 주역들이 될 것입니다. 그 출애굽은 인자가 자신을 찢음으로 개시하는 출애굽, 부활로 마지막 날과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출애굽, 승천으로 인자가 다스리는 출애굽, 오는 시대를 열어재낄 출애굽. 마치 빵이 찢겨진 이후, 열 두 광주리가 남았듯이, 인자가 자신의 몸을 찢으신 이후, 그 살점을 먹은 이 열둘이 완전하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은 고발자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를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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