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표적 :
변화된 물질,
다시 만나는 하늘과 땅
0. 서론 : 다리 만들기
-요한복음의 서론(1:1~18)과 결론
1. 변화된 물질, 다시 만나는 하늘과 땅
2. 그의 가치 : 죽음을 이기는 것
3. 생존에서 생명으로
4. 찢기는 몸, 넘치는 생명
5. 혼돈 속 혼돈 속 혼돈 속의 인자
6. 예고편 : 죽음에서 일어난 사람
7. 모든 기적들은 이 빈 무덤을 가리키고 있었다.
0.
오늘 우리가 보게 될 본문은 요한복음 2장 1~12절, ‘가나의 혼인잔치’로 알려진 본문입니다. 저 주일학교 다닐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었네” 라는 노래 엄청 불렀는데, 그 노래의 출처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다(요2:1~12)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그런가요, 어머니.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예수께서는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내려가셔서, 거기에 며칠 동안 머물러 계셨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입니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를 목격한 목격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목격한 예수에 대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지 백년 이내에 글로 쓰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그는 이 요한복음을 쓸 때, 일곱 개의 기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려고 작심했습니다. 즉, 집을 세울 때 기둥을 세운다면, 그는 요한복음이라는 집을 만들기 위해 일곱 개의 기적 이야기라는 기둥들을 세우고, 나머지 이야기들을 채워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요한복음을 이루는 일곱 개의 기적중 첫 번째 기적,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그 본문은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됩니다. “사흘째”.
그리고 사흘째가 되자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요한은 어떠한 의도로 이것을 써넣은 것일까요?
1. 사흘째 벌어진 혼인 잔치
: 새 하늘과 새 땅
A.D. 2,3세기 당시 요한의 글을 읽었을 예수 공동체 사람들은 저 사흘째를 보고 하나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흘째 벌어진 사건. 초대 교회에 있던 사람들은 이 사흘째라는 말을 보고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강력한 사건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바로 그 사건 때문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깨뜨리시고, 새로운 차원을 열어 재끼신 사건. 바로 그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과 함께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황제 숭배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요한의 직계 제자였던 폴리캅이라는 사람은 로마에 의해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그들이 목숨을 걸고 모여서, 참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독재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깨뜨린 한 분은 독재자보다 강하십니다. 이 부활 공동체. 초대교회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예수의 사흘째 부활 사건 이후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혼인 잔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창세기는 세상에 두 가지 차원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입니다. 땅은 인간의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은 따로따로 이지만 또 함께입니다. 마치 씨실과 날실이 서로 겹쳐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창조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즉, 사람은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알리고 실현시켜야 할 존재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이 점이 참 우리나라 유교와 비슷한 점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뜻으로 이 땅을 살아야 할 존재, 인간.
그런데 누군가 이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을 배신한 존재, 즉,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역의 인간에게는 죽음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때문에 하늘과 땅은 끊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뜻이 인간을 통해서 이 땅에 실현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어떻겠습니까? 하늘과 땅이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혼인에 대한 비유들이 더러 등장합니다. 그 때 이 혼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신랑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어디에 계십니까? 승천 이후, 하늘에 계십니다. 즉, 하나님의 차원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 날에, 그 예수께서는 홀로 오지 않으시고 하늘을 가져 오십니다. 즉, 그 날은 이 땅에 하나님의 차원이 마침내 드러내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새롭게 연결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신부된 교회와 이 땅은 예수님과 하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이 뜻하는 바입니다. 사탄으로 인해 이별했던 하늘과 땅의 하늘과 땅의 재혼입니다. 새로운 혼인입니다. 잔칫날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가나의 혼인잔치 본문은, 부활을 말하고, 하늘과 땅의 만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부활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것은 죄요, 그 죄가 가져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악을 끌어안고 그와 함께 죽임당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당한 비참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예수께서 죄를 해결하시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이제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것이 패배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이 다시 만나는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포도주가 없습니다.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이 혼인잔치를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없는 혼인잔치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즉, 주기도문으로 말하자면, “하늘에서 이룬 것이 땅에서도 이뤄지기” 위한 뭔가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2. 결혼식을 완성하는 새롭게 된 포도주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그런가요, 어머니.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
예수님의 답변이 아리송합니다. ‘혼인잔치에 중요한 요소가 빠졌다’는 어머니의 말에 예수님의 대답은,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였습니다.
이 말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빠졌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그 때에 이 중요한 요소가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빠진 것은 지금 포도주요,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이 포도주가 채워질 예수님의 때는 언제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가리켜, “이 잔” 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목이 마르실 때, 그 입술을 축였던 것도 바로 해융에 적신 포도주였습니다. 이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 사건이 있어야 혼인잔치가 완성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뤄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께서는 그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 자리에서 하늘의 차원이 이 땅에 드러났습니다.
지금 겨우 요한복음 2장에 들어왔을 뿐인데, 예수께서는 이것을 염두해두고 있었고, 이것을 목격한 요한이라는 제자는 이 사건을 기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이후 또 의미로 가득한 행동들이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 당부 이후, 일꾼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지시받습니다. 먼저는 예수께서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붓도록 지시하십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서 말입니다. 일꾼들은 군소리 없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 항아리에 담긴 물을 떠다가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주라고 지시하십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당부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일꾼들은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들을 골탕 먹이려고 그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던 예수께서는 돌항아리 여섯을 채우고, 그 채운 물을 잔치에 내놓으라고 명하셨고, 일꾼들은 이것을 그대로 지켜 순종했습니다.
마치 6일간 창조 활동이 다 채워지고, 그 창조가 다 채워지자 일곱 번째 날 안식이 찾아왔듯이, 여섯 항아리가 다 채워지고, 그 항아리가 다 채워지자 새로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됩니다. 물을 버리고 새 포도주를 담은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는데서 새 포도주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기존에 있던 물이 새로운 물질로 변화된 것입니다.
다시 사흘 째 그 날을 떠올려봅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째 되는 날, 마리아로부터 말도 안되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이 요한은 뛰기 시작합니다. 이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우리의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에서 본 것이라곤, 가지런히 놓인 세마포와 죽은 자들의 머리에 씌우는 두건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훔쳐갔다면, 이제 막 부패가 시작된 냄새나는 시신에서 애써 세마포를 벗겨내고 훔쳐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는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나타나신 그 예수는 이전의 그 예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할만큼, 분명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생선을 먹을 수 있었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몸은 이전의 몸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 몸은 벽 사이를 통과할 수 있었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물질.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몸은 변하여 부활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몸, 부활의 몸, 율법의 여섯 항아리를 지나 마침내 찾아온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워진 예수의 몸이 혼인잔치, 하늘과 땅의 만남을 위한 빠져서는 안될 요소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 땅은 인간의 차원, 그런데 사탄의 꾐에 빠진 인간으로 인해, 하늘과 땅이 이혼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 몸, 부활한 몸은 하늘의 차원과 땅의 차원 양 쪽에 속한 몸입니다. 이 새로운 물질인 부활의 몸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만납니다. 즉, 예수를 통해서 하늘과 땅의 재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야 포도주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혼인잔치를 완성하는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새로운 몸을 가지고 계신 예수이십니다. 이 분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만납니다. 이 땅에 하늘의 다스림을 가지고 오십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집니다.
3. 그 포도주를 나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포도주를 잔치에 내놓으라고 명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일꾼들입니다. 이 일꾼들은 말도 안되는 것을 명받았습니다. 그저 물을 여섯 항아리에 채우더니, 이제 가지고 나가서 잔치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대로 순종합니다. 물질이 새롭게 변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다가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사실 우리가 삶을 힘겨워 하는 이유는 바로 생존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제가 가르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에게, “너 왜 영어공부하니?” 라고 물으니까, 그 아이가 저에게 “살아남아야죠. 선생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가정이든, 나라든, 인생의 목적은 먹고 사는 문제, 살아남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생계과 생존이 인간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에서는 대학병원이 제약회사와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가 등장했습니다. 환자에게 좋지 않은 약을 뇌물을 받고 들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의로운 의사가 대학병원 원장에게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적반하장으로 이 원장이라는 작자는 “너 그럼 짤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공은 짤릴 각오를 하고 진실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저녁에 부인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의사로서의 정직한 신념보다, 우리 가족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 그래서 그 의사는 다시 원장을 찾아가, 뒷통수를 긁적이며 “제가 그 땐 말이 심했죠? 이번일은 없던 걸으로...” 이렇게 말 끝을 흐립니다. 그래서 그 의사는 병원에서 안짤리게 되었고, 이 소식을 알게된 부인이 병원앞으로 달려와 둘이 포옹하고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씁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 정의롭지 못한 이유, 올바른 것을 실천할 수 없는 문제의 근저에는 바로 생존과 생계의 문제가 놓여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토록 생존과 생게에 목이 매어 사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인간이 죽기 때문입니다.
죽기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새로워져서, 죽음을 이기는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처럼 말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저는 어느 날 이것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죽어도 다시 살고, 죽기 전에 하늘과 땅이 만나면 죽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은 생존과 생계를 넘어, 진실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물 떠온 일꾼들은 알았습니다. 물 떠온 예수의 종들은 알았습니다. 물질이 새로워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 새로워진 물질을 통해 하늘과 땅이 다시 만나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골고다 언덕과 빈무덤에서 이러한 일이 진정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해야죠.
4. 이렇게 좋은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물 떠서 가져가라 명받은 일꾼들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사흘째에 부활하셔서, 새로운 물질의 몸을 입으셔서, 그를 통해 하늘과 땅이 새로이 결혼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날라야 하는 일꾼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으면 우리의 몸도 새로질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희망 없음과 생존에 목맴과 생계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서둘러 이 물이 변해서 된 포도주, 죽을 몸이 변해서 된 예수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면,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몸을 갖게된 예수처럼, 우리도 우리의 고난의 끝에 부활이 있음을 믿고 예수처럼 살면, 우리를 통해서 이 위대한 예수 이야기를 전달받은 사람은 예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왜 이렇게 살아가는 법을 이제야 말해줬어.”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의 인정
-찬양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1.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2.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나무위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3.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를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5.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오-- 때로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죄의 고백 – 우리가 주의 뜻대로 살지 않음을 고백합시다. 우리가 그 분을 신뢰하지 않았고, 삶의 문제 속에 묻혀 그 분의 빛을 향해 고개들어 경배하지 않았음을 고백합시다. 그 분은 용서하시고, 우리가 새롭게 살도록 하십니다.
주변의 이웃 – 주변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가정씩 떠올립시다.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을 향해 일해주시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그들이 알게 하소서. 그들이 믿게 하소서. 우리를 사용하소서.
조국 – 이 나라를 다스려주옵소서 기도합시다. 이 나라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소서. 더불어 우리가 정의를 말할 때, 이 나라의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사랑을 가지고 하게 하소서. 가난한 자들, 헐벗은 이들을 삶을 신원하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조국을 놓고 기도합시다.
열방 – 시리아 내전, 필리핀 태풍, 세계는 산고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온 열방의 주님께, 이 세계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상처입은 지구촌 사람들을 싸매주실 것을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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